[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1. 늑대의 사냥 -
Articulus 2016-08-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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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여러가지 이유로 봤을 때, 지금 검은양 팀이 이렇게 카페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때문일 것이다.
이세하.
스트라이커라는 코드네임을 부여받은 그 자를 체포할 것을 유니온은 신서울지부의 감찰국원들에게 지시했고, 그에 따라 검은양 팀은 5분대기조 형식으로 빠져 예비전력이 된 상태이다.
현재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는 순찰을 하면서 차원종 세력이 출몰할 경우 특경대를 도와 섬멸하는 것이 전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그들이 이렇게 한직(閑職)으로 밀려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이세하와의 교전, 그리고 서유리의 부상으로 이어진 참패가 결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과연 여전히 자신이 알파퀸의 아들임을 과시라도 하듯 이세하의 위상력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고, 거기에 차원종의 간부로부터 부여받은 제1위상력까지 더해지면서 감히 대적하기조차 두려운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를 검은양 팀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유니온은 그들에게 평시의 정찰 임무만을 부여한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더이상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유리가 세하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그 날, 유니온은 공식적으로 이세하를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만약에 유니온이 정보통제만 성공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까 라고 슬비는 생각해보았지만, 사실 그것도 힘든 일이었다.
이미 이세하가 차원종 세력에 가담한 사실은 유니온의 관계자만이 아니라, 아주 일부라도 이미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그저 놔두었다가는 유니온만이 인정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이 될 뻔 했으니, 이번의 유니온의 대처는 유니온답지 않게 빨랐다고 할 것이다.
딸랑딸랑.
카페의 문에 달린 방울들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매우 낯이 익은 얼굴인지라, 검은양 팀은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늦어서 미안해요."
김유정이다.
신서울지부 요원관리국의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녀는 동시에 검은양의 관리요원이기도 했기에, 이렇게 그들을 찾아오는 일은 익숙했다.
다만 그들이 임무를 담당하지 않는 평시에 관리요원으로 있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그녀는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야할지 망설였다. 이세하의 체포 명령이 내려진 이후, 검은양 팀은 이렇게 계속해서 생기를 잃은채 있거늘, 그녀는 그럼에도 그들에게 다가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유리의 퇴원과 함께 처음으로 모인 이 자리에서 전해야할 이야기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에게 다가가기도 예전과 같이 쉬웠다.
"어서와, 유정 씨. 뭘 마실거야?"
"괜찮아요, 제이 씨. 저는 딱히 생각이 없네요."
"그래? 알겠어."
제이는 일어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차가운 녹차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제 유정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인지, 그녀는 먼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유리가 입원하고 처음으로 같이 모이는 자리죠?
오늘 여러분들에게 모이라고 한 이유는 정도연 박사님에게서 들어온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도 전달해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정도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유리는 재빨리 반응했다.
"세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건가요!"
"……"
유정은 말이 없었다.
그것만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세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어려움이 있음을.
"위상변환엔진의 원리를 이용해보려고 해."
"위상변환엔진이요?"
"응. 세하가 가지고 있는 위상력을 일순간 고갈시켜, 차원종의 위상력을 세하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이 작전의 골자야. 다수의 장치들이 설치된 곳으로 세하를 유인하는데 성공하게 되면, 세하의 위상력이 고갈되면서 동시에 차원종의 위상력도 고갈돼. 그 때 일제 공격을 가해서 차원종의 힘을 세하로부터 분리시키는 거야."
"그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유리가 기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슬비의 반응은 달랐다.
"언니, 위상력이 고갈된 상태의 세하를 공격하게 되면, 차원종의 힘이 분리될지는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세하도 일반인과 다를바가 없게 되어요. 만약 그런데도 세하를 공격하게 되면…"
"맞아… 십중팔구 세하는, 생명을 잃게되겠지."
"네?"
유리와 미스틸의 눈동자가 부풀기라도 한듯 잔뜩 흥분한 상태로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는 곧바로 유정에게 따지듯이 물어왔다.
"언니! 이런 위험한 작전 뿐이에요? 다른 작전은요!"
"누나, 세하 형을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요. 아무리 세하 형이 차원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세하 형은 세하 형이에요!"
두 사람은 확실한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녀도 이미 예상한 바이지만, 정말로 반대의견이 거셌다. 그녀 역시 이런 작전을 시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전에 슬비가 이야기해준 칼바크가 말했다고 하던 그 방법대로 할 경우, 슬비가 희생해야만 한다. 그녀는 그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슬비가 희생하게 놔둘 수도 없잖니."
유정의 울음섞인 답을 들은 유리와 미스틸은 그대로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슬비가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희생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지만,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다.
다시금 침묵이 그들 사이를 뒤덮었다.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인 제이는 이 서먹한 분위기를 빨리 풀어**다는 것을 누구보다 실감했다.
그는 화제를 우선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생각하고 물었다.
"늑대개 팀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지?"
"그들은…, 아니에요. 그들도 통상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유정은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말을 돌릴 뿐이었다.
제이는 그녀가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에게 캐묻지는 않고, '그래?' 라고 되물어주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그녀가 늑대개 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도 역시 세하와 관련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맡은 임무가 그저 세하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욱 과격한 임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세하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은 늑대개 팀은 나타의 부상도 완전히 회복되어 다시 임무에 복귀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첩보와 이세하의 처리. 그들은 검은양 팀보다도 더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클로저들로서 유니온의 통제 하에 있지만 유니온의 뒷면에서 일하는 존재들로서, 감찰국의 클로저들이 공식적으로 움직이며 이세하를 체포하려 한다면, 이들은 유니온의 어두운 면을 잘 반영이라도 하듯 이세하를 찾아서 처리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유니온은 이세하를 죽일 것을 지시하지는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체포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유니온의 클로저를 공격하고 부상입힌 자로서, 처리되어야할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유니온은 그들이 벌처스에 있을 적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처리의 임무를 맡긴 것이다.
다시 한 모금 차가운 녹차음료를 한 모금 넘기면서 제이는 말했다.
"그들은 어디에 있으려나."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있는데, 슬비만은 냉정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놓아둔 휴대폰을 들고서 잠시 카페 밖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화할 데가 어디에 있다고."
씁쓸하게 제이는 말했다.
◆ 11-2
"여기는 티나, 목표물을 발견했다."
어린 소녀의 부드럽지만 동시에 차가운 목소리가 무전기로부터 들린다.
사나운 인상의 회색 자켓을 입은 남자는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그 상태로 대기해라. 목표물을 절대 시야에서 놓치지 마라."
"알겠다. 통신 종료."
소녀의 무전이 끝남과 함께, 트레이너는 주위에 있던 이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지금 강북의 어느 한적한 거리를 함께 걷는 중이었다.
"티나가 놈을 찾은 모양이다."
"헹! 그 녀석, 어디서 따로 돌아다니고 있나 했더니만, 제 역할은 하는 모양이군."
나타가 콧방귀를 끼며 말한다.
동시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듯, 그는 허리 뒤로 두르고 있는 쿠크리의 칼날 부분을 스윽 오른손으로 문질렀다. 며칠 전 이세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그에게 있어서 복수는 꼭 필요했다. 이번에야 말로 그를 죽이겠다고 다짐하듯 하늘색 머리의 위상능력자는 험악한 미소를 흘렸다.
그를 제지하듯 약간 얼굴을 찌푸린채 트레이너는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나타. 너 혼자서, 놈을 상대할 수는 없다.
저번에 네가 죽지 않았던 건, 정말로 하늘이 도운 것이다.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도록 해라."
"흥! 말 안해도 알고 있어."
고개를 휙 돌리고선 나타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평소같았으면 트레이너의 말을 듣고 방방 뛰었을테지만, 며칠 전의 전투로 그도 혼자선 도저히 이세하를 이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그렇기에 차분한 것이겠지.
하피가 물었다.
"트레이너 씨. 그렇다면 놈은 지금 어디에 있는거죠?"
"흠... 티나가 현재 있는 지점은 수락산 쪽으로 보이는군. 그 근처라고 보아야겠지."
"수락산? 신서울 북쪽 끝자락에 있는 그곳에는, 도대체 왜?"
"그거야 알 수 없지. 다만 유니온이 우리에게 의뢰한 것은 최우선적으로 지켜야만 한다. 우리에게 놈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지, 반드시 우리는 놈을 처리해야만 한다."
트레이너의 눈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싸늘함에 나타와 레비아, 하피 모두는 떨 수밖에 없었다.
"늑대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늑대가 공격할 때면, 언제나 함께지."
"그 말은…"
"놈의 목덜미를 무는 건, 유니온 놈들이 아닌, 바로 우리 늑대개다."
으드득.
트레이너는 이를 갈며, 북쪽 저 멀리를 바라본다.
이세하가 있을 그곳을.
.
.
.
"목표 이동 중."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사냥꾼의 시선으로 그녀는 목표물 - 이세하 - 를 쫓고 있다.
단 한 순간도 한눈 팔아서는 안 된다.
한 때는 악령으로 불렸던 그녀는 지독한 클로저 암살가였다.
A급 요원인 김기태마저 치를 떨었던 그녀의 악명은 높았다.
비록 지금은 더 이상 클로저를 암살하는 일은 없지만, 그녀의 처리 실력은 여전히 뛰어난 저격실력으로 그 어떤 처리대원보다 더 뛰어났다.
트레이너가 가장 신뢰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녀의 인식명은 티나.
위상력을 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안드로이드이자 생명체이다.
목표물과 몇 km나 떨어진 지점에서 노리고 있기에, 목표물인 그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을리는 없다.
전시상황이라도 유효할 정도로 그녀의 위장은 완벽했다. 더욱이 산이라는 지형이므로, 엄폐할 곳은 꽤 많았기에 충분히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목표물과 그녀의 거리는 5km 정도.
현존하는 대인 저격 소총 중에 그 정도되는 유효사거리를 가진 총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 정도 거리에서도 저격이 가능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위상력을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위상력의 보조를 받은 탄환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깔끔하게 위상능력자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굳이 근거리로 접근할 필요를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조준경에 담김 이세하의 모습은 어딘가 매우 슬퍼보였다.
감정을 인정한 그녀에게, 그 모습은 정말로 쓸쓸해보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그녀가 쓸쓸해지는 것 같았다.
"당신은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게 물으며 그녀는 조준경으로 그의 모습을 계속하여 쫓았다.
◆ 11-3
이세하는 너덜너덜해진 유니온의 정식요원복을 벗어버리고, 대신 갑옷과 얼추 닮은 어떤 옷을 애쉬와 더스트로부터 받아 입게 되었다.
디자인만으로 따졌을 때는 최악이지만, 여러가지 위상력에 의한 공격에 대해서는 유니온의 요원복보다도 더 놀라운 방어효과를 보여주니, 그로서는 좋든 싫든 이것을 입어야만 했다.
며칠 전 서유리와의 전투에서 그는 여전히 위상력에 의한 공격이 자신에게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거 전혀 공격이 먹혀들지 않던 아스타로트와는 별개의 문제인듯 했다.
애쉬와 더스트에게 확인한 결과, 제3위상력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무적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한 성질의 위상력을 가진 이들의 공격에 의한 피해를 매우 최소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굳이 차원종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도, 검은양팀 전체가 데이비드에게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면 정말로 피해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 와서 생각하면 무엇하겠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검은양팀 전체가 나섰을 때라도, 그는 그녀의 안위를 더 생각했을 것이다. 차라리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자신과 같이 처하느니, 자신 혼자 처하는 지금의 상황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것이므로, 전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는 것이다.
그는 도봉산 아랫자락의 인파가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산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쉬와 더스트는 이곳에서 데이비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이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의 목숨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놈의 목숨을 거둬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이세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을 오르던 그는 허리춤에 걸고 있던 건블레이드를 뽑아 들고서 말했다.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위상력을 그렇게 흩뿌리고 다니면, 위장은 하나마나다.
그렇다면 전투를 위해서 찾아온건 아닐터. 모습을 드러내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꺼내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쌍의 빛나는 날개를 가진 자가 그의 앞으로 날아와 착지했다.
분명히 마주한 적이 있는 얼굴이다. 아마도 그가 기억하는 바가 정확하다면, 이 위상능력자의 이름은 이리나 페트로브나.
"용케도 알고 찾아왔군, 클로저 이세하. 아니, 이젠 차원종 이세하인가?"
"근접전투에 있어서는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모습을 드러낸거지? 설마 포기라도 한 모양인가?"
"너의 그 기분나쁜 위상력은 저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느낄 수 있다. 음산할 정도로 차갑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분노가 있군. 데이비드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온 모양이지?"
"잘 아는군. 오늘 놈은 내 손에 죽는다. 놈에게로 가는 길을 막겠다면, 너도 똑같이 될 뿐이야."
"안타깝지만 데이비드는 오늘 아침, 이곳에서 떠났다."
"뭐라고?"
"데이비드는 나를 이곳에 남겨, 자신을 찾아올 손님 - 이세하 - 을 되돌려보내라고 했었지.
데이비드는 자기를 찾는 부질 없는 짓은 그만두라고 했다, 더이상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
"그의 예상대로 첫 손님으로 네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리고?"
"예상치 못한 둘째 손님은 저 멀리서 너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이리나의 시선이 이세하를 떠나, 저 멀리의 누군가를 향했다.
.
.
.
"읏!"
조준경에 눈을 가까이 데고서 목표물을 계속하여 주시하던 티나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이 먼 거리에서도 이리나는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파악이라도 한 듯, 계속하여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그녀에게 발각된 이상, 그녀와 싸울 의지가 없어보이는 이세하에게도 발각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임무를 완수할 수는 없게 된다.
"여기는 티나, 임무 속행 불가능. 발각되었음. B 지역으로 이동하겠다. 이상."
"발각되었다고? 빨리 자리를 떠라, 티나!"
트레이너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리기도 전에, 이미 티나는 라이플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를 뒤덮었던 나뭇잎들이 걷어지고, 그녀는 재빨리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날 노리고 있었나?"
"…스트라이커와, 대면."
어느샌가 그녀의 뒤에는 그녀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리고 있었던 목표가 서서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검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더 격하게 움직여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면,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대로 검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기세로 손가락 끝을 방아쇠에 걸어둔 채, 이세하는 차갑게 쏘아보았다.
"늑대개 팀의 티나였었지. 너 때문에 여러모로 슬비가 작전에 지장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난 명령받은 대로 작전에 임했을 뿐이다. 이슬비는 작전 완수에 있어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임무완수를 위하여 그녀를 공격한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어쩔 수 없는 기계로군."
"난 그저 기계가 아니다, 차원종."
차원종이라는 말이 꽤나 듣기 싫었는지 이세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계 따위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난 이미 말했다. 나는 그저 기계가 아니다."
"거슬리는군. 죽어라."
아무런 감정 없이 이세하는 말을 툭 뱉은 후, 그대로 건블레이드를 찍어 내리듯 티나를 향해 찔렀다.
방어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 티나는 그대로 그의 검에 몸이 꿰뚫려 사망할 것이다.
하지만 티나는 이대로 자신이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세하의 말에 반박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저 기계만은 아니었다. 감정을 자각하고 교관을 새롭게 결정한 이후, 그녀의 태도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생의 의지,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다.
무척이나 빠르게 찔러들어온 그의 검을 정면에서 막아내는건 어렵다.
그렇다면 치고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녀는 뛰어난 저격수, 그렇다면 근거리에서의 접전에서는 이세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승부가 아닌 회피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 그녀의 뛰어난 인공지능이 내린 결론이었다.
핑.
칼날에서 날카로운 쇠붙이가 뽑힐 때의 소리와 함께, 짧은 군용 대검을 뽑아든 티나가 이세하의 건블레이드를 쳐내고, 그 칼날을 미끄러지듯이 하여 타고 올라와 이세하의 가슴을 노렸다.
예상 외의 반격에 살짝 놀란 이세하였지만, 그녀에게 반격의 틈을 내주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서, 그녀의 공격을 흘려보내듯 피했다.
이세하가 옆으로 빠지자 티나는 빠른 속도로 이세하에게 접근하여 단검으로 그를 벤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근접전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공격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회피하지만, 간혹 깊이 찔러 들어오는 공격은 건블레이드로 쳐내며 그녀와의 근접전을 계속해서 그는 이어갔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근접전, 티나는 계속하여 그와의 근접전을 감행할 경우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계산해내고선, 그를 멀리 쫓아내듯 크게 군용 대검을 휘둘러 그와의 거리를 벌린 후, 단검을 집에 꽂은 뒤 곧바로 등 뒤의 샷건을 뽑아 들어 아주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는 위력을 가진 산탄총의 탄환이 그대로 이세하를 향해 날아왔다.
며칠 전만해도 입고 있었던 유니온의 요원복 차림이었다면 아마 너덜너덜하게 되어버렸겠지만, 지금은 위상력을 실은 공격을 당해도 아주 피해가 큰 공격이 아닌 이상 모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갑주를 온 몸에 두른 상태이기 때문에 걱정할 염려 따윈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티나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않는 이세하를 보고 자신이 이겼으리라 생각하겠지.
까아아아앙!
흩어진 탄환들이 일제히 이세하의 온 몸을 향해 퍼져나갔지만, 모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튕겨나간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혀를 찼다.
최선의 수를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회피책으로 샷건을 그대로 버린 뒤, 어깨춤에 띠로 두르고 있던 자동소총을 꺼내어 이세하를 향해 지향사격을 실시했다. 탄알집 안에 끼어있는 모든 총탄이 무서운 속도로 비워져간다.
기관단총의 총탄들이 총열을 긁으며 쏘아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소음기도 장착하지 않아 과격한 총소리가 타타타- 여과 없이 그 일대로 퍼져나간다. 분명히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이 나라는 징병제 국가이다보니 국민의 반 이상은 군대를 반드시 다녀오므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는 건 더더욱 당연할 것이다.
티나는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주위의 피해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듯 했다.
애초에 그녀에게 주어진 목표는 단 하나, 이세하를 쫓는 것이다. 그녀는 늑대개 팀원들과 같이 활동하기보다는 단독활동을 하는데 더 일가견이 있다. 국제공항에서 신서울로 이동할 때부터 트레이너의 지시를 받고 단독행동을 해온 그녀이다. 물론 당시에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데이비드의 추적이었지만, 지금은 지시의 내용이 바뀌어 이세하의 추적을 그 목표로 삼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를 죽여도 상관없지만 가능한 아무런 상처없이 체포를 원하는 것이 유니온의 입장인만큼 그녀 역시 기존의 방식대로가 아닌 스무스한 방식을 택하였다. 물론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그녀가 그를 죽여도 아무도 트집잡지 못하겠지만.
기관단총의 총탄들이 흩뿌려진다. 아까의 샷건보다는 그 관통력이 현저히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위상력을 띄고 있는 총탄들이기 때문에 한 번에 쏘아지는 샷건보다 여러 번에 나눠서 공격해들어오는 지금과 같은 공격이 이세하에게 있어서는 더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떨어지는 물이 한 자리를 계속해서 치면서 바위를 깎아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가 총탄들을 피해 그녀와 거리를 벌리기가 무섭게, 티나가 수류탄 두 개의 안전핀을 뽑더니 그대로 이세하를 향해 던졌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공격에 그대로 이세하는 휘말리게 되었다.
강한 섬광과 함께 시끄럽게 수류탄이 두 번 폭발한다. 파편과 연기로 자욱한 그 폭발 안에서 이세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만.
티나는 이세하라면 그 폭발 안에서도 충분히 생존하였을 것이고, 또한 그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이것은 그저 도주를 위한 견제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잠시 번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그녀는 산 아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도주는 늑대개 팀이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11-4
"경감님, 수락산 인근에서 총소리와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응? 거기는 차원종들이 출몰할 리가 전혀 없는 곳일텐데. 게다가 오늘은 군부대 훈련도 잡혀있지 않았잖아?"
"네… 하지만 많은 등산객들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하산하는 소동이 그 일대에서 벌어진 터라, 특경대가 그 일대로 출동하라는 지시입니다."
"에이, 귀찮게시리. 얼마 전에는 남산에서 형상복제자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튀어나오더니, 이번엔 수락산에서 또 이상한 놈들이 나오는 거야? 이야, 정말이지, 클로저 놈들은 뭘하고 있나 모르겠구만."
불평을 늘어놓는 남성.
다분히 근육질인 남성은 귀찮음과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옷을 주섬주섬 차려 입었다. 아마도 강북 일대를 관할하는 특경대의 간부인 모양이다. 그는 얼마전 남산 시민아파트 일대에서 발견된 형상복제자 사건과 남산타워 아래의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느라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좀 사건을 마무리하고 쉬려고 하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니 그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출동하지 않으면 강남 사태 이후 잔뜩 강화된 감사가 그들을 옥죄일 것이니, 좋든싫든 우선은 출동을 해야만 한다. 불만가득한 그가 주절대면서도 출동준비를 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리라.
"경감님, 왠 사람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에? 무슨 사람들?"
"그게… 소속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행정부 쪽 사람들 같습니다."
"엥?"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곧 그들로 유추되는 사람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짙은 정장 차림의 세 명이었는데, 모두 공무원증으로 보이는 것을 가슴까지 내려오는 목걸이형 패에 넣고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옅은 갈색빛 머리의 남성만 파랑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이들은 넥타이는 따로 하지 않은 차림이다.
맨 앞의 남성이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아마 악수를 청하는 모양이다.
"정현수 경감님 되시지요? 반갑습니다, 한재민 입니다."
"반갑습니다. 공무원들로 보이시는데, 어디 소속이십니까?"
정현수 경감의 눈은 지긋이 그가 패용한 공무원증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공무원증의 앞면은 증명사진, 이름과 함께 소속된 부처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부처는 대한민국 정부라고만 적혀있다. 그가 아는 선에서는 대한민국 정부라고만 적힌 공무원증은 없다. 혹시나 위조된 공무원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누가 감히 위조된 증을 가지고 경찰을 직접 만나러 오겠냐는 생각에 그런 의심은 접어놓는다.
"아, 저희 소속은 모르셔도 됩니다. 다만 중앙정부 산하에 있다는 것은 알려드리죠."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특경대가 지금 수락산 일대로 출동하려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출동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보쇼, 가뜩이나 강남 사태 이후로 감사가 강화된 마당에, 신고를 접수하고도 출동하지 않으면 징계받는 건 우리 아니오? 바쁘니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경감님, 움직이지 마시죠. 경고합니다."
"경고는 개뿔, 중앙부처 나부랭이 따위가."
코웃음을 치면서 그를 지나치려던 찰나, 그의 뒤에 있던 이들 중 남자가 정권지르기 식으로 정현수 경감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결코 닿는 일이 없었는데도 그는 갑자기 뒤로 밀려가듯이 날아가 벽에 그대로 부딪혔다.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가 무섭게, 사무실 안에 있던 특경대원 몇 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조차 곧 멈추었다.
"여러분들도 저렇게 되기 싫다면 조용히 계시죠. 가만히 계시면 아무런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다, 당신들… 도,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어떻게 위상력을!"
마른 기침을 연거푸 하던 정현수 경감에게 자신을 한재민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당신들, 곧 기억이 소거될테니까 말해주죠.
우리는 행정부 산하에 비밀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니온이 아닌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위상능력자들의 기관이랄까… 명칭으로 이능력자관리개발원이라고 이능원이라는 기관명이 있긴하지만, 사실 그것도 알려지지 않았으니. 뭐,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유니온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어 그쪽에 소속된 사람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원래 소속된 기관으로 돌아갔죠.
아참, 중앙부처 나부랭이라고 하셨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이래뵈도 4급입니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 직급으로 따졌을 때, 저 사람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높은 직급이기 때문이다.
"저는 비록 위상능력자가 아니지만, 제 뒤의 두 친구들은 위상능력자이니 조심히 행동하는게 좋을 겁니다. 아, 어차피 이대로 기억을 소거하면 다 잊어버리니 상관 없으려나."
웃음이 잘 어울리는 남자는 뒤의 두 사람에게 무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의 지시를 받은 두 사람 - 아마도 남자와 여자로 보인다 - 은 선글라스를 착용하더니 자켓 안의 주머니에서 기다란 무언가를 꺼내어,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마치 카메라의 플래시와 같은 빛이 터지더니, 그 빛을 본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지은채 그대로 자리에 쓰러진다.
벽에 부딪혀 아픈 허리를 이끈채 일어나려고 하던 정현수 경감은 어느새인가 자신 앞에 다가온 갈색 머리의 남자를 보았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묻기도 전에 그는 눈 앞에서 반짝이는 섬광을 보았고,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모두 선글라스를 벗는다.
"하여간 특경대 놈들, 행동하는 것만큼 머리도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련지.
나현 씨, 현우 씨, 슬슬 정리합시다. 나현 씨는 신고기록 자료들 전부 파기시키고, 현우 씨는 사무실 좀 정상으로 만들어놓고."
"예."
"네."
두 남녀는 짧게 대답하고서 갈색 머리 남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의자에 걸터앉은 갈색 머리 남자는 잠시 천장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놈들, 잘 처리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