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19화
검은코트의사내 2016-06-07 0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여기에 와서는 무슨 일 있는거야?"
리더님이 물어도 나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리더님 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나를 불러서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왜냐고? 라이칸 그룹의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되든 알바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슬비가 누구랑 사귀든 말든 어차피 자기가 넘볼 수 없는 운명인데 뭘 그리 걱정하냐고 대답할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슬펐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오기만 했는데 말이다. 라이칸 토스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그녀에게 고백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박준우, 만약에 슬비에게 험한 짓을 한다면 나는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가 되면 결정이고 뭐고 없다. 강재호 교수님의 강연이 떠올랐다. 자꾸만 머리 속에서 강연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가지 선택을 함으로써 정체가 발각되는 것을 대신하여 다른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이건 강재호 교수님이 말한 논리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셈이었다. 절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판단하고 싶다. 생각해보는거다. 분명히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난 믿는다.
"어이, 석봉아.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그냥... 강재호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나서요."
"아, 강재호 교수님? 그분이면 우리 라이칸 토스들도 좋게 보고 있는 편이야. 왜냐하면 그분도 라이칸 토스니까 말이야."
"네? 뭐라고요?"
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재호 교수가 라이칸 토스였다니, 그럼 설마 라이칸 토스의 숙주정도 되는 사람이냐고 묻자 최태인 리더님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한번도 만나뵙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분이 강의하신 선택지에 대한 내용은 우리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어. 우리는 처음에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결국에는 선택하는 게 딱 한가지밖에 없더라고... 이미 인간으로 살아가긴 틀렸어.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라는 얘기지. 바로 라이칸 토스로써 살아가는 거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들의 적이 되었지. 안 좋은 점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그건 바로 그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지. 안 그런가?"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인간과는 다르게 잡아먹음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강해지는 거다. 내 친구들보다 강해져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지킬 힘을 갖는 거다. 그거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력으로 행사할 수 없다. 내가 평범한 학생으로써 친구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길이다. 라이칸 그룹에서는 유일하게 나 혼자만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학교 그만 두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만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을 포기한다는 건 학교생활과 내 친구들도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나는 절대 그런 선택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라이칸 토스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뭐란 말인가? 왜 내가 이렇게 변함으로써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야되는 지 모르겠다. 항상 좋은 선택만이 있을 수는 없다. 좋은선택이라해도 다른사람에게는 피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했다.
"강재호 교수님의 강연은 우리 라이칸 토스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지. 그분은 대학 교수로 위장하면서 학생들을 끌여들이며 식사거리를 제공하신 분이기도 해. 듣자하니 강재호 교수님께서 그러셨는데 말이야. 어느 위대한 분께 가르침을 받은 거 뿐이라면서 겸손을 보이셨더군. 이 강의 영상을 봐봐."
리더가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 파일을 재생시켜서 나에게 보였다. 화면에 나온 강재호 교수가 과거에 자신이 뭘 했느냐는 내용이 담겨있는 셈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이 꼭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불행해질 수가 있다는 게 됩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교수가 되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아닙니다. 저를 가르쳐 주신 위대한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수가 그냥 똑똑해졌을까요? 그들도 한 때는 배우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가르치듯이 저도 학생시절 때 저를 가르쳐주신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강재호 교수님을 가르친 위대한 분이 누굴까? 아마 교수님 뻘 되는 사람일 게 뻔했다. 학교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누군가에게 배워서 얻은 지식이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본인은 이렇게 겸손하지만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이분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없어. 우리 라이칸 토스들의 입장을 이해해주신 몇 안되는 교수님이지.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아야했어. 감염된 이후로는 처음부터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곧바로 라이칸 토스가 될 운명이었던 거지.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옳지 않는 일일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선택해야 돼.왜냐하면 살아가기 위해서야. 선택없이는 살아가는 건 불가능해."
리더님은 내가 강재호 교수님의 말을 듣고 신세한탄하는 줄 알고 있다. 나는 아직도 라이칸 토스가 된 거에 대해서 완전하게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 표정을 보면 다 티가 난다. 아직도 인간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감정이 그들에게 보이는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원인을 빨리 알아내고 싶었다. 어째서 내가 감염이 되었는지 말이다.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도 알 텐데 말이다. 하지만 잠깐, 만약 원래대로 돌아간다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슬비는 여전히 준우와 사귀고 있을 테고 나는 평생 왕따로 살아야되니까 말이다. 생각해 내**다. 강재호 교수님의 말이 성립되는 거라해도 완벽하지 않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래봐야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나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두가 이익이 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그건 현실에도 적용되는 얘기다.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 정체를 들키지 않거나 슬비가 괴롭지 않을 방법을 나는 생각해야되겠다. 하지만 이들에게 상담받을 수 없다. 비협조적으로 나올 게 뻔하니까 말이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야, 테이블 모서리 조심해. 아 잠깐... 너도 이제 강해졌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치는 걸 리더가 말해주려고 했지만 나는 부딪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파서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아... 순간 좋은 방법이 떠오르는 듯 했다. 이렇게만 하면 슬비가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준우가 아무리 나빠도 사나이의 자존심은 걸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죄송했어요. 다음에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올게요. 제가 잠시 착각했나봐요. 저는 어차피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몸인데 말이죠. 신경쓰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 덕분에 안심했다. 혹시나 석봉이 네가 감정에 흔들려서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네 표정보니까 그럴 걱정은 없는 거 같아. 조만간 또 우리가 나설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 때까지 푹 쉬어둬라."
"네."
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갔다. 처음부터 이러한 방법을 썼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그래. 슬비야. 조금만 기다려, 곧 그에게서 구해줄테니까 말이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