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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츤데레데레나타데레 2017-01-23 0
이 글은 클로저스 갤러리에 올라온 한 만화를 모티브로 쓰여졌음을 알립니다.
링크-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3514487&page=2&exception_mode=recommend
"으, 그흑...크후......"
마치 물에 얼굴이라도 박은 사람처럼 제대로 호흡조차 못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꽤나 처참했다. 당장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듯이 잔뜩 충혈된 두 눈, 식은땀에 젖어 이마에 눌러붙은 머리칼들, 마찬가지로 땀에 젖은 흰 면티와 트레이닝 반바지라는 꽤나 단출한 복장. 그 자체로 폐인을 연상시키는 외형의 남자는 집 안을 싸돌아다니며 모든 창문과 문을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 버티칼까지 치며 외부에서의 접근과 시선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있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그 기행에 대한 집착에는 광기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이윽고 집의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차단된 끝에 남자는 마지막 창문이 있던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몸을 떨었다. 그것도 잠시 곧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키곤 자신의 방으로 향하여 덮어뒀던 노트북을 열고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다.
"알려야 해.....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남자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조용한 집 안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 타건소리만이 울리고 그와 동시에 새하얗던 게시물은 빠른 속도로 채워져나갔다.
"위험해.... 모두가 속고있어...... 더 이상 사실을 은폐하게 둘 수는 없어..... 이대로라면 그들이──"
띵동─
"흐아아악?!"
단순히 초인종 소리임에도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젖혔고 그 여파로 체중이 뒤쪽으로 쏠렸다. 값싼 등받이 의자에는 그 무게를 버틸 여력이 없었고 결국 남자는 의자와 함께 성대하게 뒤로 자빠지며 방바닥에 머리를 부닥쳤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남자는 잔뜩 경직된 근육탓에 뻐근한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다.
"으윽, 이 시간에 누구지?"
"택배입니다."
남자의 혼잣말에 답하듯 문 밖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야밤에 초인종을 누른 이유를 설명했다. 남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노트북을 덮고 방을 나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네, 나가요."
무슨 택배일까. 얼마 전에 주문한 컴퓨터의 부속? 아니면 서적? 그것도 아니라면 떨어져 사는 어머니가 보내신 생필품일지도 모르겠다고, 남자는 행복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으며 잔뜩 긴장됬던 몸을 느슨하게 했다.
현관에 있던 슬리퍼를 발판 삼아 그대로 팔을 뻗어 도어락을 풀고 현관문을 연 남자는 곧 문 밖의 모습에 의아에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벌써 간 거야?"
아마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떠난 것이라 추측하며 남자는 근성 없는 택배기사에게 속으로 질타를 보냈다. 기껏해야 몇 십 초. 그 짧은 시간을 못 기다리고 자리를 뜨다니 꽤나 막돼먹은 사람이다.
그렇게 택배기사의 자취라도 찾아보자 한동안 어둠을 응시하던 남자는 곧 체념하며 택배기사가 두고 갔을 택배를 찾고자 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택배는 보이지 않았고 문에 가려졌을 가능성을 염두하여 남자는 슬리퍼를 고쳐 신고 현관 밖으로 발을 내딛으며 문을 당겨 가려진 안쪽을 확인했다. 그곳에도 역시 택배는 없었다. 하지만 상당히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물건이 그곳에 놓여있었다.
"뭐야 이건?"
물건을 집기 위해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팔을 뻗었다. 두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음과 동시에 놓아진 문은 자연스럽게 닫혔고, 남자는 그에 상관하지 않으며 손에 집힌 물건을 응시했다. 테를 구성하고 있는 검은색 플라스틱과 그 안쪽에 끼워진 노란색 렌즈. 선글라스라고 불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노란색 선글라스..... 설마.....?!"
분명 그럴 터인 전혀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남자에게 별다른 의미로 전해진 듯 했다.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았던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초점 없는 시선은 손에 쥐어진 선글라스의 렌즈에 닿았고 그 상태로 남자는 몸을 경직시키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의 시선 너머 렌즈에는 무언가가 비춰졌다.
"흐, 으아아아아악!!!"
주변에 완전히 녹아들 것처럼 어두운 감색의 로브를 두른 남자의 모습이.
격통을 느끼며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는 더 이상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마등조차 스칠 새도 없이 남자의 몸은 빠르게 식어만 갔고 죽기 전 마지막 찰나, 파르르 떨리는 눈앞에 나부끼는 감색 로브를 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그 로브는..... 전.... 제협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아아..... 그래, 이건 분명..... 그 때 내가....... '
마음 속에 품은 상념조차 끝을 ** 못한 채 남자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짧은 의문 그리고 후회만이 남아있었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매칭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암흑의 광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하피였고, 나와 같은 레어 아바타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제이 그리고 특수요원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유리와 나타의 4인 파티. 레벨은 전부 77레벨. 모집한 파티가 아닌 랜덤 매칭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무저갱 베리하드.
분명 시작은 평범했다. 다들 평균 이상의 스펙을 지닌 덕분인지 보통 때보다 패턴과 패턴 사이의 간격이 빠른 것을 제외한다면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진행이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티어메트의 체력이 표시되기 시작할 무렵. 40줄이라는 수치가 표시된 직후 제이가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날기분을 사용하였다. 혹시 모를 패턴 스킵을 기대하며 나도 덩달아 이카루스 폴을 시전했다. 아주 찰나의 시간차로 제이의 날기분의 데미지가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도 알기 힘든 차이로 동시에 들어간 두 스킬의 순서를 알 수 있었던 것은 흐릿하게 보였던 날기분의 데미지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들 수고하셨...."
"아니, 잠깐 방금...."
기분 좋은 아이템 드랍소리와 함께 여왕 주변에 보라색 두 줄기가 내려온 것이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무언가 버그가 일어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40줄에서 보스가 죽는다니 타임어택 영상을 올리는 유저들조차 불가능했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속에서 일부가 그 추측을 부정했다. 마지막 순간 봤던 날기분의 데미지 때문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 못했지만 자릿수는 확실히 보였다. 무려 9자리. 억대의 데미지였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내 이카루스 폴은 기껏해야 4천 만. 마지막 각성 전이었다고 해도 겨우 3줄 깎는 게 고작일 데미지다. 그렇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은 제이라는 것이 된다.
"도대체 뭐야? 40줄에서 원킬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고!"
파티원 중 한 명이었던 나타가 열변을 토했다. 나라도 같은 반응일 것이다.
유리는 아까 전에 말했던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고개만을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마 데미지를 제대로 본 것은 나 뿐인 듯 했다.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이를 언급하고 치하함과 동시에 웃으며 현재 스펙이라도 물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내 말을 이어지지 못했다. 조용히 있던 제이가 나서며 이상한 말을 꺼낸 것이다.
"이야, 하피님 정말 강하시네요."
'어?'
도저히 예상치 못했던 쌩뚱맞은 소리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분명 제이의 날기분의 이룩한 대업적이다. 그것을 왜 자신에게 미루는 것인지 그 진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뭐야, 왜 여왕이 사라진 건데....."
나타가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고개만 갸웃거릴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제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표정을 아주 찰나지만 포착해냈다. 그것은 음흉함을 담고 있는 미소였다.
거기서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 여러분 방금 날기분 한 방에 억 단위가 뜬 걸 제가 봤....."
"무슨 소리인가요, 하피님?"
내 말을 끊으며 제이가 말을 건네왔다. 동시에 몸을 돌리며 상체를 굽혀 나와 눈을 맞춤과 동시에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곤 눈을 치켜뜨며,
"여왕의 체력을 깎은 건 제 날기분의 아니라 하.피.님의 이카루스 폴이잖아요?"
그리 말했다. 곧 몸을 빼며 뒤로 물러난 그였지만 묘하게 하피라는 이름을 강조한 것에서 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방금 상황의 책임을 내가 아닌 하피라는 캐릭터에게 전가할 셈이다. 강캐에게 주어지는 책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 아니......"
이대로 넘어간다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직감했다. 뭐라도 반론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시야에 미소를 짓고 있는 제이의 모습이 비쳤다. 무척이나 호의적인 미소로 보였지만 그것이 품은 살기는 여지 것 겪어본 무엇보다 등등하고 날카로웠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어질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기서 무언가 잘못 발설하기라도 한다면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훈훈하게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던전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살기는 사라지지 않고 질척질척하게 내 몸에 달라붙어있는 것 같아서 나는 홀로 몸을 떨었다. 결국 남은 입장 제한횟수를 전부 소모하지도 못한 채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그것이 약 30분 전의 일.
"그래서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파티 플레이로 던전에 들어갈 일이 있다면 코어는 사전에 지급된 허술한 검 13강을 챙겨가라고 말이야."
주인의 영원히 부재가 된 집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것처럼 느긋하게 앉은 로브의 남성은 특유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또 다른 로브의 남자는 벽에 기댄 채로 답했다.
"그렇긴 한데 말이죠, 날기분의 데미지에 얼이 빠진 파티원들을 보면서 조소하는 쾌감은 좀처럼 잊을 수 없어서요."
로브에 가려진 얼굴에서 유일하게 밖에 들어난 입이 호를 그렸다. 그 모습을 본 낮은 목소리의 남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참 질이 나쁘군."
"그렇지 않고선 이런 일 해먹기 힘들죠."
조금도 반성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 가벼운 태도를 지닌 남자의 말에 낮은 목소리의 남자는 한손으로 눈을 덮으며 헛웃음을 연발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그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내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소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로브자락을 정리한 그는 벽에 기댄 남자를 향해 고했다.
"아무리 네가 우리 협회의 기둥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이번 일의 책임은 완전히 회피할 수 없을 걸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벽에 기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비해 꽤나 고분고분한 태도에 안심하며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일단 그 속죄의 일부로써 이곳의 뒤처리는 맡기도록 하지. 나는 먼저 돌아가서 최대한 잘 말해두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남자는 조용히 벽에 기댄 남자를 응시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다.
벽에 기댄 남자는 "뭐, 윗사람이 까라면 까야죠."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실없이 웃었다.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 그 태도에 미간을 구긴 남자는 곧 한숨을 내쉬며 집을 나섰다.
홀로 남은 남자는 벽에서 몸을 떼며 집 안을 가로질러 집 주인의 방을 찾아갔다. 그곳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것은 새하얀 노트북. 얼마 전까지 사용한 것인지 미미하지만 온기가 남아있었다. 남자는 노트북을 열어 방금 전까지 작성되고 있던 하나의 글, 건의 게시판에 올라갔을지도 모르는 장문의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화면을 덮고 충전기와 마우스를 분리한 채 그 노트북을 품 안에 챙겨넣었다.
"이야, 그건 그렇고 이번엔 허를 찔려버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남자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에 담겨있는 것은 지난 일에 대한 후회도, 허를 찌른 대상에 대한 분노도 아니었다.
"설마 그 순간에 모두의 시야 밖으로 나가서 불패를 시전 할 줄이야. 그 2억이라는 데미지가 없었더라면 여왕이 그렇게 죽어버릴 일도 없었겠지요. 게다가 그렇게 태연하게 연기라니....."
오로지 흥미와 희열. 그 두 가지 감정을 담으며 남자는 연신 중얼거리고는 실없는 웃음으로 헤실거리며 방을 나섰다.
"전에는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고 상당히 우호적으로 지냈습니다만 이렇게 먼저 특요까지 받아버리다니 말이죠. 이것 참 곤란합니다. 이대로 더 이상 눈감아주는 것도 무리겠지요."
갑자기 입을 꾹 닫은 남자는 백발의 머리칼을 쓸어올림과 동시에 로브의 후드를 뒤로 젖혔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무표정인 채로 굳어버려서 상당히 섬뜩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양 팔뚝에 굵은 핏줄이 돋을 정도로 주먹에 힘을 쥐며 방금 전까지 입 밖으로 내던 경박한 목소리가 아닌 결의를 담은 중저음으로 중얼거렸다.
"전유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