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 티나] 세하와 티나가 만나게 된다면?

루이벨라 2016-08-24 10

※ 검은양과 늑대개가 서로 동맹을 맺기 전에 세하와 티나가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망상으로 썼습니다.(소설 시점은 G타워에서 자신의 뇌의 주인을 교관이라고 부른 시기와 램스키퍼에서 동맹을 맺기 전의 사이입니다.)

※ 공식 설정에서는 서지수와 티나의 뇌의 주인이 같은 팀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같은 팀이었던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 이외에도 날조 설정 많아요...





 "휴우...덥다..."


 기상청에서는 오늘 폭염이 끝난다는 말을 했지만, 폭염이 끝나기는 커녕 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날씨였다. 이런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세하가 밖으로 나온 이유는 그토록 고대했던 게임 시리즈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걸 알고 게임팩을 사고 오는 길이었다. 같이 줄을 서서 사자고 약조했던 한석봉은 알바 때문에 세하에게 대신 게임팩을 사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차피 가는 김에 게임팩을 하나 더 사는 것밖에 없었기에 세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지금 세하는 게임팩을 들고 구로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석봉에게 가는 중이었다.


 원래 여름이란 습기와 더위의 상호조합인듯, 짜증나게 덥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계절이긴 했지만 이번 여름은 유독 더웠다. 마침 석봉을 만나러 가는 곳이 편의점이기도 하기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없는 구로는 쓸쓸했다. 하지만 쓸쓸함과 더불어 옛 외부 지하철역이라 그런지 쇠로 되어있는 레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하는 얼른 에어컨이 있는 편의점 안에서 몸을 식힐 생각으로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문을 열자 있는건...


 귀엽게 생긴 은발의 소녀가 냉장고 안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껏해야 8~9살로 보이는 외형의 소녀였다. 아이스크림 위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보여서 세하가 냉장고를 열며 가끔씩 미소녀가 랜덤으로 있습니다! 라는 상황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반사적으로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세하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더워서 헛것을 보았나, 라고. 하지만 헛것치고는 너무도 생생하게 보였는데...? 다시 한번 열어보았다.


 아까 전의 그 헛것이라고 추측하고 싶었던 소녀가 아직도 있었다. 심지어 자고 있던 눈을 떠서 세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사실 눈을 뜨기 전까지는 그냥 잘 만든 인간 외형의 인형이네,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

 "..."


 소녀와 세하의 시선은 맞닿고 있었다. 게다가 세하가 어지간히 시선을 피하려고 해도 소녀의 눈빛이 세하가 바라보는 눈빛쪽으로 따라왔다. 그제서야 소녀가 인형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잠만...인형이...아니라고...?


 1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세하가 소리를 지르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석, 석봉아--!!"

 "아, 세하구나. 게임 팩 건네주러 온거야?"

 "지, 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냉장고에...! 사, 살아있는 사람이...!!"

 "냉장고라니?"


 세하는 석봉을 끌고 와 자신의 눈이 보여준 장면을 석봉에게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간후로 보이는 건 세하가 문을 연 상태 그대로 냉기를 풀풀 발사하고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뿐이었다.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 없네?"

 "세하 너 더위 먹은거 아니야? 네가 이 무더운 날에 걸어서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했는데...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떡해.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잖아."

 "미, 미안..."


 석봉에게 얼떨결에 사과를 했다. 분명 세하 자신이 잘못 본건 아니었다. 분명 눈도 마주쳤는데...아아, 사실이었는지 볼을 꼬집어** 않았구나, 라고 변명을 하기에는 자신은 지금까지 계속 멀쩡히 생각도 하는 상태였다.


 그냥...석봉이 말처럼 더위를 먹은건가...처음 냉장고에서 그런 환영(?)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잖아...하하, 이 뜨거운 여름날씨가 사람의 뇌까지 망가뜨리는 모양이었다.

 



 세하는 결국 이 모든게 더위탓이라고 여기며 석봉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3일치분을 사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세하의 입에는 방금 전 아이스크림 하나가 물려있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아까보았던 환영(?) 같은거에 대해 다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런데...진짜 같았단 말이야..."


 더위를 먹어서 보인 환상 또는 어젯밤에도 게임에 너무 열중해서 보인 환영? 같은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세하는 그런 얼굴의 소녀를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요즘 하는 게임에서도 그런 이목구비를 가진 여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 내 마음의 무의식이니 어쩌구라고 하며 따져보는건 귀찮을텐...'

 "응...?"


 세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뜨거운 길 한복판에 왠 사람 한명이 뻗어있는 것이었으니까! 세하는 놀란 마음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저, 저기요? 괘, 괜찮으세요?!"


 이번 여름은 정말 살인적인 날씨인 모양이었다. 자신은 생전에 안 걸리던 더위를 먹지 않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위로 인해(추측성)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지 않나. 세하가 몇번을 흔들자 쓰러져있던 사람의 팔과 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요? 내 말 들리나요?"


 이런 경우에는 어떡해야하지. 아, 일단 119를 불러야겠지. 열사병인지 일사병인지는 몰라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세하가 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려던 찰나...


 "...음..."

 "...?"


 그 사람이 세하의 팔을 꽉 붙잡았다. 어찌나 꽉 붙잡았는지 무의식적으로 아프다고 말을 던질 뻔했다. 세하는 그제서야 쓰러져있떤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얼굴을 확인하자 너무 놀라서 폰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손가락에 힘을 그러쥐어서 액정이 깨지는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다.


 "너...넌...? 아까 구로역에서...?"


 아까 세하가 구로역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서 본 그 소녀였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소녀의 체온이 자신이 본게 헛것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더위를 먹어서 잘못 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안도감이 찾아왔다.


 "뭐야, 너 그 냉장고 안에 있던 애 맞지?"

 "..."

 "왜 도망간거야. 나 그것 때문에 석봉이한테 이상한 취급..."

 "얼음..."

 "...?"


 세하의 말을 자르는 소녀의 목소리. 분명 얼음이라고 했다. 소녀의 뺨에 핀 홍조라던가, 괴로워보이는 듯한 표정을 보니 소녀가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 수 있었다.


 "...얼음이...필요하다...몸이...과열되었다..."

 "어...?"


 몸이 과열되었다? 표현이 좀 독특하기는 했지만 지금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소녀의 피부는 매우 뜨거웠다. 과열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할거 없을만한 체온이었다. 그로보아 지금 소녀는 더위를 타고 있고, 차가운 것이 절실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병원을 가면 응급조치로 다 해줄테지만, 소녀가 구급차를 부르려던 자신의 행동을 저지한 모양으로 보아 병원으로까지 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 이 장소에서 제일 가깝고, 시원하다고 생각될만한 곳은...

 



* * *

 



 티나는 자신의 앞에 있는 오렌지주스를 빨대로 쭉 빨아마셨다. 얼음이 동동 띄워져있어서 과열되어있던 몸이 식혀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이 앉아있는 곳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잘 들어오는 어느 집의 거실 소파였다.


 "이제 좀 괜찮아?"


 자신을 들쳐업고 여기까지 온 소년이 자신에게 물은 말이었다. 자신은 전투용 안드로이드이기에, 여러가지 총기를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질량이 비교적 무거운데도 소년은 별 말 않고 자신을 이 집으로 데리고 와주었다.


 ...뭐, 이 집에서 거기까지는 3분이라는 짧은 거리기는 했지만.


 얼음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런 대처도 나쁘지 않았다. 공기 전체가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가 과열되어있던 티나의 몸을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그보다 열사병 같은거면 병원에 가는게 더 낫지 않나?"


 소년이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자신에게 묻는 말이었다. 병원은 가지 않는게 좋았다. 랄까...지금의 자신은 수배령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인간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가는 병원에 가보았자 엄청난 혼란만 줄게 뻔했다.


 "괜찮다. 몸이 많이 냉각되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만...나중에 또 몸이 안 좋아지면 병원에 꼭 가는게 좋을거야."


 그럴 걱정은 없었다. 오늘은 무척 더운 편이었다. 그 더운 날에 하필 구로역을 지난게 자신의 크나큰 실수였다. 트레이너의 심부름을 가다가 너무 더워서 눈에 띄는 냉장고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거 뿐이었는데...


 저 소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디에서 본적이 있는 얼굴이라 자신과 친분이 있을만한 것으로 생각되어 소년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얼른 탈출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걷다가...쓰러진거고, 저 소년에게 다시 발견되어지고...


 부엌에 있던 소년이 자신이 있는 거실 쪽으로 나왔다. 비교적 꽤 넓은 집인데도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혼자 사는건가. 남의 사생활을 알아차릴 취미는 없기에 그냥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티나는 소년이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 좀 녹기는 했지만 아이스크림 특유의 냉기는 있었기에 먹는데 지장은 없었다. 소년도 자신이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게 보였다.


 ...분명 자신은 저 소년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을 처음 본다는 식으로 대했다. 그렇다면 티나와 소년은 만난 적이 전혀 없었던, 그야 말로 '낯선 사람' 의 관계였다.


 그럼에도 저 소년의 얼굴이 매우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거 같았다. 어디서더라...그건...


 Rrrr~


 "어, 잠깐만."


 저 멀리서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소년이 잠시 자리를 비켰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티나는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저 소년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더라...?


 멀리서 소년이 뭐라고 대화하는게 어렴풋이 들렸다.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자신의 부모되는 사람과 통화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잠깐만...


 부...모?


 그제서야 티나는 깨달았다. 저 소년의 얼굴을 본게 티나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티나?


 언제나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그녀' 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교관?"

 -...잠시만...


 그녀는 티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애절하게, 마치 그리운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그제서야 확신이 들었다.


 저 소년의 얼굴을 본것만 같은 기시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티나 본인이 아닌, '그녀' 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 * *




 "미안, 오래 기다렸...?"


 어머니 서지수와 통화를 마치고 온, 세하가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 물으려고 질문을 꺼냈는데 무언가 미묘한 기분이 들어서 말을 멈추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소녀. 아까까지만 해도 무표정했는데 지금은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인형' 같았는데, 지금은 '인간' 이 된거 같은 기분이었다.


 "...너?"

 "고마워, 오빠. 이렇게 집으로 초대해줘서."

 "어? 어..."


 목소리도 한층 생기발랄해져있었다. 소녀가 짓는 미소가 너무나 티가 없이 맑아서 세하는 잠시 당혹스러웠다.


 왠지...아까 전에 자신이 본 소녀와 겉모습만 같은 뿐, 다른 누군가인거 같았다.


 딱히 소녀에게 할말이 없어서 자신이 마저 플레이하던 게임이나 마저하기 위해 세하는 게임기를 들었다. 한창 열중해서 하는데 시선이 느껴져서 시선의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가 턱을 괴고 자신이 게임하는 걸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세하는 잠시 생각하며 게임기를 소녀에게 건넸다.


 "게임 하고 싶어?"

 "아니. 오빠가 열중하는 표정이 보기 좋아서."


 열중하는 표정이 보기 좋다, 라...갑작스런 칭찬을 듣자 기분이 묘하게 쑥쓰러웠다. 뻘줌한 기분으로 버튼을 다시 조작하는데 조금은 쓸쓸한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소중했던 사람의 표정과 비슷해서."

 "..."


 게임기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You died' 라는 문구를 내보내고 있었다. 세하는 세이프를 열어 다시 속행해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세하가 게임기를 옆에 두고 소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소중했던 사람이었어?"

 "응. 정말 멋지고 강한 사람이야. 나도 그 사람을 본받아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소녀는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을거야."

 "..."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해서, 뭐라고 위로를 해주어야할거 같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세하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라는 경험을 아직 해** 못했기에 무슨 말을 해도 그냥 시덥지 않은 위로가 될게 분명했다.


 고민도 잠시. 소녀는 곧 명랑한 얼굴이 되어 세하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렇게라도 봐서 기뻐."

 "..."

 "그리고 깨달았어. 잘 지내고 있구나..."


 소녀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심부름이 있어서."

 "어? 기다..."


 적어도 해가 진 뒤에는 가라고 말을 하려했지만 소녀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아까 구로역 냉장고에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처럼, 바람같이.


 정말, 기묘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어...?"


 "너는...?"


 이 둘은 양과 늑대의 동맹이라는 관계에서 다시금 재회하게 되었다.





2024-10-24 23:10: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