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티나-트레이너.

로미로미로미 2016-08-10 4

"교관...임무..완료.....복귀..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강남CGV 인근 안전한 구역으로 도착한 티나.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뻐꾸기를 통해 트레이너에게 임무 완료했음을 전하고 있었다.


"티나, 수고했다. 그보다, 몸 상태가 심각해보이는군."

"그렇다..임무 수행 도중..뒤에서 다가오던 차원종을...센서 오류로 감지하지 못해....치명..상을..입었다."

"당장 고열을 식혀야겠군. 바로 홍시영 감시관에게 연락하지."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던 티나. 엄청난 고열로 주변의 공기가 달아올라, 일렁이는 모습은 뻐꾸기를 통해 지켜보던 트레이너에게도 보였다.


"알겠다..어서..얼음..을...준비...해야...으읏?!"


티나가 힘겹게 말을 잇던 중, 팔 부근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고열..위험..감지...강제안전모드..실행....."

"티나, 티나!"


..............


"...으읏..."


힘겹게 눈을 뜬 티나. 

그녀의 눈속에 들어와 인식된 정보는, 창밖으로 비치는 노을의 풍경, 방향제로 추정되는 사과 냄새, 조금 어두운 실내, 그리고 자신이 위에 누워있는 얼음욕조였다.


"...여긴..어디지.."


티나는 힘겹게 얼음욕조에서 일어나 앉아, 노을빛이 들어오는 창가쪽을 천천히 살폈다. 아마도, 욕실인듯 했다.


"강남CGV 인근에 위치한 벌처스 소유의 안전 주택이다."


천천히 주위를 살피던중, 시선의 반대편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 티나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교관?"

"실제로 보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군, 티나."

".....여긴, 욕실인듯 하군."

"그렇다."

"데이터로 저장된 기억에 의하면, 분명 나는 뻐꾸기로 교관과 통신을 하고있었다. 당시 신체의 온도는 수백도를 넘나드는 위험상태로, 나는 강제안전모드 기능으로 인해

안전모드로 전환되었다. 현재 상태로 되돌려준 것은, 누구지?"

"홍시영 감시관....이다. 고열의 안전모드 상태로 전환된 너를 보고, 홍시영 감시관은 처음에 키텐을 제거하기위해 너를 폭탄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그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개발되는 대 차원종 병기나 작전 수행에 있어서 너의 필요성등을 근거로 그녀를 설득해서 너를 정상상태로

되돌리고자 했지. 어쨌든, 일차적으로 액화질소를 이용해 너를 냉각시킨 것은 홍시영 감시관이다."


트레이너는 왠지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그 문제에 대해서, 교관과 홍시영 감시관에게 감사를 표하겠다."

"......"

"그런데 교관, 교관은 분명 다른 임무를 수행중이었는데, 어째서 이곳에 온건가?"

"당연히 우리 대원이 위급상황에 있으니, 와야하는 것이 아닌가. 부차적인 치료를 위해서 오기도 했고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 비효율적인 행동이군. 그냥 홍시영 감시관에게 맏겨도 되는 일인데, 굳이 여기에 찾아온것은 이해할 수..."

"티나, 그만."


트레이너가 티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금지하겠다..."


트레이너는 왜인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다, 교관. 금지하도록 하지."

"그보다 티나, 안전모드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체온이 정상화되었다는 뜻이다. 의복을 착용하도록."

"아,"


티나는 조금 놀란듯,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었다.


"무례를 범해 미안하다, 교관. 본래 인간들 사이에선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한 의복을 입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그만 의복의 착용여부를 망각하고 말았다."

"사과할 것 없다, 티나."


트레이너는 티나에게 의복을 건넸다.


"교관, 이건.."


그 옷을 건네받은 티나는,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여학교의 교복이다."

"교복? 그것은 학생들이 입는 옷이 아닌가. 나는 전투복이 편하다."

"그런가. 미안하다. 하지만, 사정이 있으니 잠시 이 옷을 입어라."

"삐빅...검색중.......... 검색완료."

"교관, 학생이 아닌이에게 교복을 입히는 행위는 인간의 지극히 저속한 욕망을 추구하는 한 방법에 속하는 것으로 검색이.."

"티나, 그것은 오해다. 네 전투복이 고열로 인해 손상되고, 여벌의 전투복들은 모두 세탁후 건조를 끝마치지 않은 상태라 급하게 구한 옷이 우연히 교복이었을 뿐이다."

"그런가, 알겠다. 그러나 교관, 나에게 저속한 욕망을 품는 것은 무의미하다."

"티나, 그런것이 아니라고 말했을텐데."

"알겠다, 교관."

"......후우..."


트레이너는 조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은 불순함 없이 틀림없는 진실이었지만, 티나가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일에 대해 의구심을 억제하도록 하는 것은, 그 스스로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었다.


"교관, 용무가 끝났다면 나는 홍시영 감시관에게 다녀와보겠다."

"그러도록 해라."


풀이 죽은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티나는 옷을 갖춰입고 안전주택을 나가 홍시영에게 향했다.


"이곳을 정리해야겠군."


혼자 남게된 트레이너는, 한숨을 연거푸 쉬면서 욕조를 정리하기로했다.


현재 하수시설이 고장난 이곳에서 고체화된 물을 처리하기란, 사실 매우 어려운일이었다.

그나마 위상력을 갖춘 트레이너는 해결방안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약한 위상력을 발휘해 얼음을 녹여 물을 서서히 증발시키는 일이었다.


"답답하군."


욕조에 손상이 가지않도록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은 어려운일이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느린속도에 트레이너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티나.."


노을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욕실 안, 트레이너는 쓸쓸히 앉아 티나를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객체는 현재의 로봇 티나가 아닌, 약 20년전 실존했던 그녀였지만 말이다.


"..."


트레이너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임무수행에 지쳐 쉽사리 느낄틈 없던 슬픔이라는 감정. 고요한 독백의 시간에서

그에게, 그간의 그 감정들이 물밀듯 한꺼번에 들어왔다.



..................

"교관님! 저 다녀왔어요!"

"아, 왔나."

"교관님, 교관님! 이거 보세요! 케이크를 사왔어요!"

"케이크라. 열량이 높고 지방과 탄수화물 성분만이 높은 음식이군. 최근 훈련을 시작할 때, 이런 음식들은 금하라고 했을텐데."

"으...그래도, 엄청 맛있어 보였는걸요.."

"충동적인 구매를 했군. 그런식으로 욕구에 휩쓸려 충동적인 소비습관을 가지게 된다면, 분명 금전적인 문제가 생겨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클로저로서도 모든 행동에 침착하고 절제적인 태도를 보여야하는 본분이 있음에도..."

"에이, 그러지말고 드셔보세요!"


말하던 트레이너의 입속에, 갑자기 달콤한 크림과, 폭신한 시트, 딸기가 들어왔다.

어느틈에 포크를 준비해왔는지, 그녀가 떠먹인 것이었다.


"웁..."


갑자기 입속에 음식물이 들어와 당황한 트레이너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흠흠...그래도, 맛은 있군.."

"에헤헤, 교관님, 얼굴 빨개지셨어요. 하하하.."

"....."


부끄러운 것을 숨기려는 자신의 교관이 귀여워 보였는지,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자, 교관님, 한 입 더 드셔보세요!"

"나는 되었다. 신체의 영양 균형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런식으로 계속 먹게된다면 좋지 않은 영향이 가겠지. 나는 그만 먹도록 하겠다.

사온 수고가 있으니 너도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히 나눠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에잇."


트레이너가 긴말을 하는 도중, 또한번 그녀는 트레이너의 입에 습격하듯이 케이크를 밀어넣었다.

방금전보다 훨씬 큼직한 크기에, 크림과 딸기도 잔뜩 퍼올린 한입이었다.


"웁..."


다시 한번 당황한 트레이너는, 포크를 손에든 그녀를 쳐다보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본 트레이너는, 못이겨 다시금 케이크를 우물우물 먹었다.


"교관님, 잘드시네요! 크큭."

"이거, 교관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이제 나는 정말로 먹지 않겠다."

"아, 그러세요? 그래도,"


그녀가 포크를 건넸다.


"제가 먹여드렸으니, 이제 교관님도 절 먹여주실 차례에요."

"...너.."

"자, 자, 빨리요!"


그녀는 입을 벌리고, 참새처럼 파닥대며 눈을 꾹감고 케이크가 입속에 들어오기를 갈망하듯 기다렸다.


"후우...정말이지."


그녀의 어리광에 못이긴 트레이너는, 얼굴을 완전히 붉히고 순순히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아앙~"


큼직한 케이크를 넙죽 받아먹은 그녀는, 맛있다는듯 해맑게 웃으며 오물거렸다.


"음, 맛있어! 마치 드넓은 초원에 와있는 듯한 맛이네요, 교관님."

"...묻었다."

"네?"

"입가에, 크림이 묻었다."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돌린채, 트레이너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요..?"


그녀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크림을 닦으려 손을 휴지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굵은 팔뚝이 먼저 휴지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


휴지를 집은 트레이너는 당황한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에, 교관님이 닦아주시게요? 헤헤, 알았어요. 자.."

"무슨 소리를! 그런것이 아니다. 단지 휴..휴지를 건네려고 했을 뿐... 흠흠."


교관이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하하, 하하하.. 알겠어요, 교관님. 교관님도 참."


그녀가 휴지로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웃었다.


이후 웃음이 멎자, 고개를 돌리던 트레이너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정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조금의 정적이 흐르자,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트레이너는 입을 열려고 했다.


"저, 교관님."


하지만 그전에, 그녀가 트레이너에게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뭐..뭐지."


"저, 교관님한테 고백할게 있어요."

"..고백?"


트레이너는 평소처럼 명랑하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조금 진지한 의구심을 가지고 물었다.


"저, 실은, 교관님을....우으......아, 아무것도...아니에요."

"왜그러지. 혹시 훈련중에 기물이라도 파손시켰나. 그런문제라면, 걱정할 필요없다. 너의 자비를 요구하진 않겠다."

"그, 그런건, 아니에요."

"그런가. 그럼 뭐지? 혹시, 진로에 있어서 갈등이 생겼나? 지금 일에 후회가 든다면, 망설이지 않고 말해도 된다. 언제까지나 네 의견을 존중하겠다."

"그, 그런건 더더욱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제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허둥지둥 말을 덮었다.


"이, 이거, 냉장고에 넣고 올게요."


그녀는 급하게 케이크를 냉장고에 보관하기 위해, 그것을 들고 냉장고 쪽으로 성급히 가려했다.

그러다, 탁자의 모서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우와앗?!"

"이런!"


-콰당!


....


"우으으..."


그녀의 시선으로, 케이크는 엎어져있었다. 그리고, 아래엔...


"교..교관님?!"

"으.........?!"


두사람은 우연히 서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마주보고 엎어져있었다.


"..교관님..."

"...흠흠..."


그녀는 몸을 제어하지 못했다. 분명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교관님도 일어나게 해드려야하는데, 왜인지 몸은 그자세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몸의 얼굴을 오히려 교관쪽으로 더 들이댔다.


"..자, 잠깐, 무슨.."

"교관님, 교관님..."

"우읍?!"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입술이 포개진 다음엔, 입술이 열렸고, 입술이 열린 다음엔, 혀가 들어갔다.

트레이너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사실 그 또한 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와, 그녀의 입이 그를 붙잡아 두었다.

그것은 위상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뭔가의 힘과도 같았다.


"우음..교..교과히...(교관님...)"


500ml의 냉수가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에 담겨 끓을만한 시간. 그정도의 시간이 지난뒤, 둘은 서로의 입을 떼었다. 끈끈한 타액이, 두 사람의 입 사이에 연결되어있었다.


"교관님...교관님..."


그녀는 일어나기는 커녕, 다시금 입을 포갰다. 역시 트레이너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이성이 녹아 섞여들어가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격렬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선, 한참 후에, 차오르는 숨을 못이길 지경에 이르러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두 사람다 격한 훈련을 마치고 온 것처럼, 온몸에 땀을 흘렸고, 얼굴은 만면에 홍조를 띄고 있었다.


"교관님....좋아...좋아..해요..."

".....나도, 그렇다.."

"...교관님...정말..이에요?"

"....."


트레이너는 부끄러움에 가득차,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님..."

"고마워요, 고마워요.. 좋아해요, 교관님..."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키스를 나눴다. 중간중간, 서로 계속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


.....................


'교관님, 교관님... 좋아해요..'


어느덧 물이 모두 증발해갈 때였다. 트레이너는 여전히, 과거를 회상중이었다.


[교관님...교관님....교관.....교관...]...


"교관!"

"음?!"


트레이너는 멍하니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티나가 쭈그려 앉은채, 바로 옆에서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우앗!.."


그 모습에 트레이너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 교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멍하니 있던 상태에서 놀란 것은 이해가 간다만, 그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전의 교관의 행동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군."

"...아니, 딱히 문제 없다."

"그런가."

"흠흠..그렇다."


트레이너는 얼굴을 붉혔다.


"교관, 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것이, 매우 당황스럽고 싫은 행동인 건가? 그렇다면, 자제하도록 하겠다."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 단순히 놀랐을 뿐이다."

"꽤나 놀랐던 모양이군. 사과하겠다, 교관."

"괜찮다, 티나."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교관은, 방금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그것은....과거를 회상했기 때문이다."

"과거? 무슨 과거지?"

"...."


트레이너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 질문을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런가, 알겠다.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겠다.

그런데, 교관. 나는 남이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방금 처음 보았다. 눈물의 성분을 파악하기 위해, 핥아봐도 되나?"

"...그것 또한 허락하지 않겠다."

"알겠다."

"...그럼, 나는 이만 임무를 재개하러 가보도록 하지."

"그런가, 와주어서 고맙다, 교관. 이 빚은, 잊지 않겠다."

"...그래. 그럼, 이만, 가보도록하지. 조만간 또 실제로 만나기를 원한다, 티나."


트레이너가 흐트러진 옷을 고쳐입으며 말했다.


"나를 실제로 만나는 것에 어떤 특별한 목적이라도 있는것인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만."

"........답하지 않겠다."

"알겠다."


트레이너는, 그 말을 끝으로 욕실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티나의 옆에서 잠깐 멈춰섰다.


"티나."

"왜그러지, 교관."

"....임무, 열심히 수행하도록."

"그 조언, 새겨듣도록 하겠다."


2024-10-24 23:10:3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