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루이벨라 2017-01-12 4

※ 레하님(@seha_S2_yuri)의 썰을 바탕으로 써보았습니다.

※ 공홈에 먼젓번 썼던 글과 소재가 겹칩니다.(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0955/)

※ 목소리가 갑자기 안 나오게 된 유리와 세하의 시점을 각자 써보았습니다.






_She, Yuri_




 그것은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라는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이라고 보기 힘든 일이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갔다. 할 수 있는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아보았지만 목 상태는 지극히 '정상' 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걸수도 있다고 의사가 마지막에 덧붙였지만 그게 자신의 기분을 어느 정도 괜찮게 해주려는, 의사의 하얀 거짓말이라는 건 유리도 잘 알았다.


 유정에게는 문자로 대신 그 사실을 전했다. 걱정이 되었는지 직접 유리의 집으로까지 유정은 찾아왔다. 유리의 엄마가 스트레스가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하자, 유정은 당분간 푹 쉬라고 유리에게 말했다.


 의사소통은 조금 불편했지만, 대화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 뭐하면 메모장을 이용하거나, 몸을 이용해 표현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즉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기에, 당분간은 클로저 일을 못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전을 통해 소식을 전할 수 없으니 유리에게 위험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유정의 의견 때문이었다.


 클로저 일이 없는 방과 후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검도부로 바쁘고, 위상력에 각성하고서 클로저가 된 이후로도 바쁘기만 했던 방과 후 시간이 갑자기 남아돌자 유리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이 긴 시간동안 뭘하며 보내야할까. 처음에는 단비처럼 찾아온 꿀 같은 휴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이가 점점 길어지면서 유리는 점점 지루해졌다.


 비위상능력자 친구들과 며칠을 놀던 유리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슬비나 세하를 불러 같이 있고 싶었지만, 둘은 유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인지 예전보다 더 바빠져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뛰쳐나가는 세하의 뒷모습을 보며 유리는 답답했다.


 왜 자신의 목소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않게 된걸까.




* * *




 그러기를 2주, 유리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한동안 바빠서 못 보았던 세하와 오랜만에 주말에 만나서 데이트 같지 않은 데이트를 할 때 생긴 일이었다. 약속을 잡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는 메모지를 이용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하와 같이 보낸 반나절은 즐거웠다. 요 2주동안 허전한 듯이 보낸 자신의 시간이 한꺼번에 보상이 될 만큼.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세하가 유리에게 툭 뱉은 말 하나 때문이었다.


 -서유리...넌 내가 좋아...?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리는, 세하가 너무나도 좋았다. 지금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 위로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응, 좋아해' 라는 말은...


 ...목구멍에 가로막힌 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 나 '우' 나 같은 신음소리라도 나오면 좋겠건만...정말 누군가가 '목소리만' 가지고 간 듯이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유리가 얼굴이 빨개진 채 머뭇거리고 있자, 세하는 마시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으며 차분히 말했다.


 -미, 미안...갑자기 이런 말 하는 내가 당황스럽지...? 나, 나도 당황스럽네...


 고개를 돌린 세하의 뺨이며 귓불은 새빨개져있는 상태였다. 부, 부끄러워하는 건가...유리는 생각했다.


 그 뒤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카페에서 나온 두 사람은 해가 질 때까지 강남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윈도우 쇼핑도 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기도 하는 등...아까 전의 세하의 질문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그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세하와 유리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낮에 즐겼던 즐거움이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을 때, 붉게 물든 노을을 서로 바라보며 돌아갈 때였다.


 노을을 보며 아까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져가던 유리가 떠올라버린 세하가 다시 물었던 것이다.


 "...서유리...넌 나 좋아해...?"

 "..."


 목소리를 잃은 유리에게 대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괜시리 유리가 사라져버릴거 같아서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 실었다. 그러고보니 세하는 자신이 무례했다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겠지만, 유리 자신이 지금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라는 사실에 제일 상처받고 있음을 말이다.


 "...난 서유리 네가...유리 네가..."


 차마 유리의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자신까지는 없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세하나 유리나 둘다 서툴렀다.


 "...난 좋아..."

 "..."


 아무 말이 없을거라고는 예상했다. 유리의 반응을 확인하려면 얼굴을 봐야하는데, 자신이 한 말이 너무 낯간지러워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꼭 잡고 있던 유리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떨림이 좋아서 떨리는 게 아닌거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유리는 울고 있었다. 유리 자신도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거에 믿겨지지 않은듯 표정은 얼떨떨했다.


 "서유리...? 왜 그래? 내가 뭐 잘못 한거야?"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는 세하의 얼굴이 너무도 가까웠다. 방금 전 세하의 고백에, 유리는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동시에 슬펐다. 세하는 해준, 저 '좋아해' 라는 세 단어의 말을 자신은 할 수 없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좋아한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눈물이 갑자기 차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선을 다해 웃었지만 이를 기점으로 더 이상 웃는 얼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잘못했냐는 말에 유리는 고개를 세게 가로저었다. 아니다. 오히려 좋았다. 너무 좋아서 지금 뜀박질을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와 동시에...자신은 그 흔한 고백도 못한다는 처지가 너무 슬펐다.





_He, Seha_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여느 때의 아침과 같이, 일어나 화장실로 간 세하는 무언가 이상하다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으레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하던 세하에게서 오늘은, 하품을 하며 같이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냥...잘못 들은 거겠지? 세하는 일부러 '아~' 라는 소리를 내보았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몇번을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웠다.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지도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일상 생활을 하는데는 불편함은 그닥 없었다. 하지만...


 "..."


 세하는 변기통을 붙잡고 목 깊숙한 곳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너무 깊숙히 넣었는지 헛구역질이 몇번이고 나왔지만 세하는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그리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자, 세하는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 심하게 헛구역질을 했는지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져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목을 괴롭힌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세하 자신은 지금 너무도 심각했다. 유리에게서 '세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그 말 하나가, 족쇄가 되어 자신을 계속 따라다녔다.

 또한 계속 바라보며 좋아하는 상대가 있을 수 있잖아? 라는 세하의 말에 유리가 너털스럽게 말했다. 표현하지 않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 라고.


 그런 말이 오간거 치고 지금 둘의 교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세하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된 것만 빼면 말이다.


 세하는 한숨을 쉬며 마저 씻기 위해 거울 앞에 섰다. 어딘가 주눅이 든, 안색이 창백한 소년의 얼굴이 거울을 통해 비추어졌다. 불쾌했다. 그리고 그 불쾌함이 드는 소년의 얼굴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더 불쾌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난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까?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객관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관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본 결과, 세하는 '아직도' 괜찮은 남자는 아니었다. 유리에게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된 이후론 그 주관적 사고에서 세하는 계속 마이너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로 마이너스만 3번째. 계속 거울을 바라보다가는 또 못난 점을 발견할 거 같아서 세하는 신경질적으로 세수를 했다.




* * *




 "우와~여기 크레페 진짜 맛있다! 세하도 이 초코 크레페 먹어볼래?"

 "..."


 목소리를 잃기 전후로 유리의 태도에 변함은 없었다. 변한 건 세하 자신이었다. 본래 세하 자신이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불편했다. 오늘 일부러 목이 긴 티를 입고 온 것도 오랜만에 만난 유리가 자신의 목에 난 상처에 걱정을 할까봐였다. 물론 그 목에 난 상처를 낸 장본인은 세하였다. 이러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며 하는 행동이지만 소용없다라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하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유리는 새로 개장한 공원 주변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렸는지 말이 없었다. 차라리 세하한테는 그게 나았다. 유리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도...지금도 이렇게 손이 떨리는데...여기서 더 심각해하는 걸 유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거 원...너무도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이 아닌가.


 유리는 꽤나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세하와의 대화보다는 세하와 같이 있는 이 순간 자체가 즐거운 거 같았다. 본의 아니게 클로저 일을 당분간 쉬면서 유리도 꽤나 바빠서 둘이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만날 일은 요 근래 들어서 없었다.


 "오늘 날씨 참 좋다~ 그치, 세하야?"


 세하야, 세하야, 세하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유리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유리에 비해 지금 자신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어느덧 헤어져야할 시간이었다. 세하와 유리의 집 방향은 정반대였기에 중간 부분에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쉽다는 듯 유리의 손만 매만지던 세하의 손 위로 유리의 또 다른 손이 겹쳤다. 유리도 너무 아쉬운 표정이었다.


 "너무 아쉽다...언제 우리 세하 보려나."

 "..."

 "이상하네...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세하가 유리의 눈가를 살짝 훔쳤다.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세하에게 말했다.


 "그럼 또 연락할게. 다음에 보자~"

 "..."


 멀리 사라지는 유리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잘 가라고, 몸 챙겨서 가라고, 꼭 연락해달라고...말을 못하는 자신이 이 순간 너무 싫었다.


 이 순간뿐이랴. 오늘 하루종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자신이 싫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도 불러주지 못하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이...


 ...아...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한심하다. 이제는 울기까지 하는거야? 하지만 다행스러웠다. 유리가 없는 이 순간에 이런 추한 모습이 나와서. 유리에게만은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울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누구지...? 이미 심장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온기와 향기가 나는 사람은...


 ...유리였다. 자신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표정을 ** 못했지만 아마도...유리도 슬퍼하는거 같았다.


 이래서...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는데...이런 모습 보여주면 슬퍼할게 뻔했으니까.


 "...괜찮아."


 유리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을거야...세하는 괜찮을거야..."


 그래...그러면 좋겠는데...세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목에다 손을 가져갔다. 신은 믿지 않지만, 이번만은 빌어보기로 했다.


 빨리...누구라도 좋으니 내 목소리가 돌아오게 해주세요...이 울보가 더 이상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작가의 말]


글의 바탕이 된 썰입니다.





2024-10-24 23:13: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