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오디오 무비 소설화

우리도기부다 2016-08-21 1

창공을 휘날리는 하얀 머릿결. 무엇인가 기억날 것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악령은 마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여자와 닮았었다.

그녀는 나를 교관이라고 불렀었다.

 

악령이라고?”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연구원은 나에게 한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흰색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은 알 수 없는 조준경에 가려져 있었다. 저격하는 모습만이 담겨있는 사진에 담겨있는 여자는 체구가 작았다. 한때 많은 위상능력자들이 죽었던 그 전쟁에서 본 한 여자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유니온의 클로저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죠. 지난 반년 간 확인된 것만으로도 13명의 정예 클로저들이 당했습니다. 말 그대로 악령에게 당한 거죠.”

그 악령에게 당한 클로저들은 정예 클로저라고 했다. 과연 얼마나 강력할까.

유니온에 의뢰가 들어왔어요. 우리에게 그 악령을 처리해달라고 하더군요.”

유니온에서 부탁할 정도라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걸까. 분명 강력한 위상능력자라고 예상된다.

같은 동업자로써 믿음직하게 임무를 완료해야겠다. 나는 의뢰를 받는 사람이니까.

걱정 마시오. 악령이든 뭐든, 우리 늑대개의 이빨을 피할 수는 없소.”

그런데 왜일까. 나는 작전구역으로 가는 도중에도 그 사진을 잊을 수 없었다. 분명 목표로서만 기억하면 될 텐데, 그 이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데…….

 

작전구역에 도착하자 처리해야 되는 대상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과 거의 똑같다고 해도 될 만큼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작전구역으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기억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빠르게 잠입하여 늑대가 목덜미를 덮치듯 목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으윽…….”

조준경이 벗겨지면서 목표의 얼굴이 전부 드러났다. 그러나 그러던 도중에도 목표물은 눈을 감고 있었다.

너는 대체 정체가 뭐지? 정말로 악령인가?”

사진과 실물이 비슷할 때 겹쳐 보인다고 했나. 생각 속에서 겹친 그 얼굴과 눈앞에 있는 얼굴은 거의 완벽하게 겹쳐보였다.

목표물은 나의 말을 듣더니 눈을 떴다.

나는. 악령이 아니다.”

목소리는 완전히 달랐다. 아니 목소리가 아닌 말투가 완전히 달랐다.

목표물이 그런 말을 하는 도중 나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보았다. 어느새 오른손에는 이상한 스위치를 부들부들 떨면서 쥐고 있었다.

악령이 되는 건. 너다.”

아차, 하는 순간 목표물의 움직임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오른손을 막을 수는 없는 상태였다. 목표물의 오른손을 막는 것보다 상대방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다시 생각난 그 얼굴과 너무나도 똑같았기에. 다시 기억이 났기 때문에. 그렇기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폭하겠다!”

그 의미심장한 발언과 함께 목표지점은 폭발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군요. 기계에서 위상력을 발산시키기 위해 위상능력자의 시신을 재료로 삼을 줄이야.”

위상능력자를 재료로 삼아서 기계에서 위상력을 발산시킨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눈앞에는 시험관에 담겨있는 로봇은 실험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에 잠겨서 보관되고 있는 실험중인 실험체. 이 로봇은 눈을 감고 그저 실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런 실험체가 아니고 그저 검사를 하는 것 뿐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인간다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재료로 사용했다니. 인륜에 어긋난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기계는 내가 알던 여자아이를 닮았다. 죽은 것인지 죽지 않은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시신이라고 했나. 그럼 이 안드로이드의 재료가 된 위상능력자는?”

사망했어요. 피부와 뇌조직 25%정도를 제외하면 말이죠. 이런 건 사이보그라고 부를 수도 없어요. 사실상 이 로봇에 붙어있는 인간의 기관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보조기관에 불과하니까요.”

즉각적인 답이 들어왔다. 마치 내가 잘못들은 것처럼. 무엇인가 희망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기억속의 그 여자아이를 찾았는데, 이미 죽어있고 이 도플갱어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닌 로봇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13명의 정예 클로저를 죽였다.

시신을 재료로 한 이 로봇은 사람의 희망을 짓밟는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마음까지 죽였다.

그때의 그 아이가 이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까.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돌고 있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 과연. 확실히 악령이로군.”

지금, 뭐라고 하셨죠?”

, 아무것도 아니요. 그보다도 본사는 저 아이를 어떻게 처리 할 예정이요?”

어느새 나는 이 악령을 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이 이유일까. 보살피고 싶은 것이 이유일까.

무엇보다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얼굴은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 지금도 이 시험관과 같은 통에 담겨져 있는 아이다.

지금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시험관에서 눈을 감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갇혀있는 순간이 갑갑하지는 않을까.

눈앞에 있는 아이는 분명 악령일 텐데 나는 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아이를 보살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켜주고 싶다.

폐기처분을 한 뒤에 해부를 하거나, 아니면 동결시킨 뒤에 샘플로 보관할 것 같군요.”

멀어지는 것이 싫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바로 이것일까. 그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싶은 아이다.

또다시 이런 시험관 속에서 샘플로 보관되는 광경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다. 이 아이 또한 분명 괴로울 것이다. 갑갑한 샘플로 살아가거나 완전히 분해되는 것보다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줄 수는 없을까.

다시 한 번 가르칠 수는 없을까.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어쩌면 나는 창공을 휘날리는 저 하얀색 머리카락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아이가 말한 그 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것 보다는 확실한 것이 있다.

나는 다시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우리에게 주지 않겠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재시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부탁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물어보았다.

 

눈을 뜬 나는 어떠한 암흑 속에서 벗어났다.

나는 어떤 것에 조종당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보다 강한 무언가가 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감싸며 나의 제어권을 다시 가져갔다. 의식이 사라지지만 또 다른 나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려고 했다.

그때 또 다른 나는 눈을 떠버렸다.

 

다시 마주한 아이는 생기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처음 봤을 때 와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보다 전에 봤었던 아이와 비교했을 때는 눈에 생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날 기억하나?”

기억한다. 나를 제압한 위상능력자로군.”

그보다 전의 일은 아무래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외에, 나에 관한 기억은 없나?”

없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나는 다시 한 번 겹쳐 보았다. 역시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가 맞는다는 확신을 들게 했다. 하지만 거듭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결국은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알겠다. 네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명령권자의 재설정을 실시했다. 재설정은 재대로 이루어졌나?”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제는 나의 대원으로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재설정완료 됨. 알겠다. 이제부터는 당신이 내 교관이다.”

그 아이에게만 듣던 말을 듣자 나는 기억들이 몰려왔다. 그 기억이 새로운 장면을 형성하고 있었다.

교관이라고…….”

그렇다 교관. 나는 내 명령권자를 교관이라고 부른다. 왜 그러는 건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다시 생각나려고 한다. 그때의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도 딱 이렇게 마주보고 있을 때였다. 교관과 훈련병으로서 마주한 그때. 지금 다시 떠오를 것만 같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교관?”

어느새 나는 교관들만 입고 있었던 파란색과 검정색이 섞여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눈앞에는 첫 번째로 만난 그 아이가 서있었다. 작은 체구의 하얀색 머리. 그리고 마주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고, 작고 귀여운 학생처럼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상력에 눈을 떠서 전쟁터로 나가야만 하는 일. 그런 아이의 교관을 맡았을 때의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고, 그저 하나의 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첫 만남에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교관님. , 강해지고 싶어요. 강해져서 이 전쟁을 막고 싶어요. 그게 우리 클로저의 사명이니까요.”

그 웃음을 아무런 생각 없이 넘겼지만 이제 와서 왜 다시 생각 난 걸까.

그 순수한 얼굴 대신 생기 없는 눈을 가진 얼굴을 보고 있다. 첫 만남에서 순수했던 아이가 지금은 악령이 되어 13명의 정예 클로저들을 죽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기억 속에 아이는 경례하며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절, 강하게 만들어주세요. 교관님!”

모든 일의 시작인 창공이 보인다. 겨우 기억 속의 일일 뿐이지만, 그러면서 첫 만남은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 다시 만났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자 같은 사람인 아이를.

교관. 내 말 듣고 있나?”

꿈은 끝났다. 다시 생기 없는 아이가 보였다. 같은 사람인 듯 다른 사람인 이 아이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봤지만 정말로 비슷하게 생겼다. 그 아이와 이 아이가 왜 계속해서 똑같이 보일까. 또 다시 아이를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다시 그 일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보면 또 다시 겹쳐 보일 것만 같아서 눈을 피했다.

. 무슨 일이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지. 임무에 집중하기 바란다.”

그 꿈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다시 집중해야 한다.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걱정 마라. 집중하고 있으니까. 너야말로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물론이다. 나는, 강하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이다. 완전히 그 아이와는 다른 사람이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그래야 나 또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야만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교관?”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이제부터 너의 인식명을 티나라고 하겠다. 언제까지고 악령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내가 강하게 만들 아이를 악령이라고 부를 생각은 더 없다. 그 순수한 얼굴을 보면 악령이라고 부를 생각 따위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 경례를 받으면 악령보다 천사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 악령이라고 불려도 상관없다.”

잠자코 지시에 따르도록. 너는 오늘부터 티나다.”

악령이라고 부르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악령이라는 것은 13명의 정예클로저를 암살한 아이이다. 그리고 너는 새롭게 태어난 아이이다. 악령이 아니라.

알겠다, 교관. 나는 오늘부터 티나다.”

그래. 너는 티나다.”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다가왔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너를 죽음으로 몰지 않겠다. 그리고 네가 단정 짓는 그 강함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 너와 나의 관계는 다시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했던 그 약속을 계속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는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이 아이를 단정 지었다.

, 악령이 아니다.”

 

-티나 오디오 무비 소설화-

by more closer

 

주의: 이 소설은 트레이너의 시점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확실치 않은 정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꼭 알아주세요.

 

다음 소설 예정은 없습니다.(때가 되면 쓰겠죠.)

2024-10-24 23:10: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