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바람아.미래를 향하는 산들바람. [스포주의]

HieloCor 2016-08-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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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과 함께 감상해주세요.





1.


-정말, 이걸로 만족하는 건가?


-미래는... 내 뒤를 따라오는 녀석들에게 맡긴다. 나만 한 녀석은 없다만 뭐, '저 녀석들'이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겠지.


-큭큭큭... 우스운 녀석 들이군. 너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대의를 위해서라면, 우스꽝스러운 광대건 손가락질 당하는 정신병자 건 되어주지.





2.


 '이 모든 게 클로저의 미래를 위한 거야.'


 '뭐, 너 같은 애는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





3.


 "사냥개를 이렇게나 끌고 와서는... 그렇게나 내가 눈에 거슬렸나?"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솔직한 심정으론, 지금이라도 자네를 다시금 내 측근으로 두고 싶을 정도지. 자네는 아주아주 뛰어난 인재였으니 말이야."


 "하. 우습지도 않은 말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든다. 돛대. 씁쓸한 표정으로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고는, 외부 차원의 환경 탓인지 제대로 불이 붙지 않는 라이터를 연신 찰칵거린다. 씁쓸한 향이 코와 입을 채우고는, 폐 속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온다.


소속 불명의 무장병이 대충 30명 안팎. 전원, 위상력을 주입받은 듯 희미하게나마 위상력이 느껴진다.


 "김기태 요원.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투항해라. 승산이 없다는 것쯤, 알고 있겠지?"


 "아니. 승산이라면 충분해."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에, 희미한 미소를 짓는 김기태. 그래. 승산이라면 충분하다. 저 녀석들은. 저 검은양들은, 분명 용과의 싸움 끝에 한 걸음 더 앞을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저런 어린아이들에게 자네와 같은 역량을 기대한다면 곤란해. 분명 우수한 아이들인 건 맞지만..."


-서걱.


데이비드 리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섬뜩한 절삭음이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움찔 멈추는 데이비드 리의 입. 뺨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이 '더 이상 입을 열면 다음은 없다'라는 의지를 보내오는듯했다. 뒤늦게 반응한 처리 부대의 요원들이 김기태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으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채. 어느샌가 발도 되어진 날카로운 도신이, 데미플레인의 불길한 빛깔을 반사하며 요사스럽게 번뜩였다.


 "너 따위에겐 클로저들의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어."


 "... 이게 자네의 대답인가."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은, 김기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저 능구렁이의 목을 베어내기에는 지금의 그에게 남아있는 힘이 지나치게 부족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할 수 없다'가 '하지 않는'이유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을 이어오던 김기태가 깨달은 하나의 진리였다.


 "용과 손을 잡고 헤카톤케일을 부활. 이후 초 대형 차원종의 폭주를 인위적으로 일으켜 신서울 일대에 풀어 회담을 방해함과 동시에 나를 제거한다. 그 뒷일은, 신생 클로저 팀인 '검은양'들에게 일을 해결하도록 유도하여 그들의 성장을 보조... 성인 납셨군."


 "조금만 눈치채는 게 늦었으면, 지금쯤 그 잘난 듯이 주절거리는 입을 땅 밑에 묻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뱉어내고는, 가볍게 끝을 밟아 불시를 끈다. 언뜻 불어오는 산들바람.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 삼키는 소리가 산들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곧 시작된다.


그곳에 있던 처리 부대원 모두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꼈다.


 "태풍이 몰려오기 전의 바람은, 오히려 잔잔하고 고요하지. 그저 습한 기운을 품고, 어금니를 감춘 채 조용히 불어올 뿐."


김기태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긴장감을 참지 못한 처리 부대원 한 명이 괴성과 함께 총구를 당긴 것은 그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4.


-산들바람 베기. 이 기술의 이름은, 그런 의미야.










5.


총구를 당기려던 요원의 손은, 이미 그 팔에 붙어있지 않았다.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요원의 동공이, 그런 시각 정보를 받아들인 채 극심하게 떨렸다.


 "으... 으아아아아악?!!!!"


손이! 손이이이이!!!


주저앉은 채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기다려 주기에는 상황이 빠듯하다. 곧장 땅을 박차고서, 날아오르듯 적진 한 가운데를 향해 달려든다.


우선 한 놈.


요령 좋게 아래에서 위로 도검을 휘두르며, 주저앉아있던 녀석의 목을 베며 동시에 휘둘러져오던 단검을 튕겨낸다. 동시에, 위상력을 동반한 돌풍이 전방에 서있던 요원 둘을 베어넘긴다. 총구를 조준할 수 있는 간격을 내어주는 시점에서 패배. 어떻게든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 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압!"


기합과 함께 거합. 초승달 모양의 빛줄기를 허공에 새겨 넣으며, 또다시 둘. 뒤따르는 바람의 칼날이, 동료의 등 뒤에서 기회를 노리던 녀석의 목을 베어내며 또 하나. 우후죽순. 파죽지세. 압도적인 전력 차가 두 진영 사이에 있었으나, 그조차도 메꿔버릴 수 있을 압도적인 기량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 누가 그 모습을 위상력 상실증에 걸려 그 능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라 생각할까. 이미 힘의 크기는 그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부족해지는 만큼 절제하고, 절제되는 만큼 다듬어져, 다듬어지는 만큼 날카로워져간다.


 "힘에 맡긴 체 휘두르던 과거의 검보다, 지금의 그 검이 오히려 더욱 위협적이군..!"


그런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김기태가 일곱 명 째의 요원을 베어넘겼을 때였다.


 "드디어 싸울 마음이 생겼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곧장 검을 휘두른다. 눈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의 시선은. 그의 감각은. 그의 검 끝은, 처음부터 저 '악'을 향해 있었으니까.


달려들던 데이비드 리가 급하게 몸을 옆으로 비튼다. 세로로 새겨지는 허공의 균열. 시각화될 정도로 압축된 그의 바람은, 이미 바람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대지에 깊은 균열을 일으키며 날아간 검기가, 또다시 한 명의 요원을 베어 시체로 되돌렸다.


 "역시... 자네는 너무 위험해. 내 목적을 눈치채기 전에,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네를 제거했어야 했는데."


 "흥. 아직 나불거릴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옆에서 덮쳐들어오던 녀석의 배에 검을 꽂아 넣고는, 꿰뚫린 상대 채로 검을 들어 올려 주변의 적을 향해 휘두른다. 일순간 생겨난 정면의 빈틈. 김기태의 몸이 달려듦과 동시에, 데이비드 리 또한 김기태를 향해 뛰어들었다.


 "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어볼까!"


 "바라던 바다!"


불길한 기운을 품은 짙은 보랏빛과, 날카롭게 번뜩이는 청색 검기가 격돌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악과,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영웅. 정해진 결말을 알고서도, 산들바람은 멈추지 않고 덧없이 불어갔다. 멀리. 더욱 멀리. 어디까지고.





6.


-이것이 이 A급 요원 김기태님의 최후의 출격이다!










2024-10-24 23:10:3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