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광기
막시무스1호 2015-10-22 0
빨간색, 파란색, 녹색, 회색 등등 온갖 색이 다 섞여서 딱딱하게 굳어내린 색은 검은색이었다. 아주 탁하고 짙은 검은색, 얼핏보면 석탄같기도 했다. 사실 석탄이 맞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시체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에 들려오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세기 싫어질 정도로 많은 차원종이 내는 괴상한 소리, 스캐빈져 종류가 내는 특유의 비웃는듯한 소리부터 가이스트 류가 내는 뼈를 꺾는 소리, 마나나폰들이 내는 육중한 발소리, 하지만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따로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자신의 숨소리, 한숨 내뱉을때마다 피로가 쌓이는지 몸이 무거워지고 어깨가 짓눌려졌다. 심장은 그 한계를 모를 정도로 빨리지는 정도가 느려지지를 않았고, 밀려오는 피로에 자꾸만 눈을 뜰려고 눈꺼풀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가끔씩은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잡아 고정시키면서 밀려오는 졸음을 떨쳤다.
'이딴 상황에서도 잠이 몰려오다니, 나도 미쳤군.'
얼마나 싸운걸까, 시간 감각같은 것은 차원종들을 뭉개면서 점점 무뎌지다가 사라져버렸다. 제일 약한 스캐빈져 한 마리를 죽일 때 1초, 가이스트는 2초, 마나나폰 3초.
'1분은 60초고...한 시간은 100분? 아니아니, 60분이니...'
"어이쿠! 깜빡 졸았네!"
갑자기 눈을 파낼 기세로 달려든 스캐빈져덕에 잠이 확 깬 그는 스캐빈져가 기특해보이기까지 했다. 마음 속으로 하는 소리건, 목에서 뽑아낸 쉬고 해진 목소리건 필요없었다. 기특하지만 적은 적.
스캐빈져를 피한다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돈 그는 곧바로 스캐빈져의 뒷목을 잡아 그대로 땅에 눌러찍었다. 스캐빈져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허리뼈를 꾹 눌러 끊어버렸다.
"으음, 좋아좋아. 아직 펄펄하군."
거짓말이었다. 허세였다. 어차피 알아듣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나라가 달라도 말이 안 통하건만, 종이 다른데 어떻게 약간의 의미라도 전달이 되겠는가? 그는 원래 과묵했다. 힘든 싸움일수록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입을 열었다.
"죽이는 거에 미쳐서는 날뛰는 짐승들아, 나도 짐승이란다. 인간으로 분류되는 종이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달려나갔다. 얼굴에는 일그러진 웃음을, 왼손에는 휘어진 철퇴를, 오른손에는 다 쓴 진통제 주사기를 들고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포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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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도 못 받고 밀려오는 차원종과 싸우다가 희열로 미쳐버리는 클로저의 이야기입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 작가님께서 아~주 좋아하실법한 느낌으로 썼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니 아주까지는 안 되겠네요. 아무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