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큡세하유리세하] (속續) 주문(Incantation) -진짜와 가짜-

루이벨라 2016-12-12 2

이전편과 이어집니다.

※ 이게 제발 마지막 편이었으면 좋겠네요...
※ 또 유리 비중이...유리야, 미안해 2222





 꿈...꿈을 꾸었다.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확신이 안 갔지만 어쨌든 꿈 비스무리한 것을 꾸었다.

 내용도 별로 기억 나지 않았다. 엄청 많은 양의 스크린 화면이 자기 눈을 스쳐지나간 듯한 느낌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빠르게 스쳐지나간 화면 속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언제적인지는 기억이 안 났지만 분명 유리와 같이 와플을 먹으러 갔었던 때의 일이었던거 같았다. 유리가 와플을 한입 가득 물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세하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그랬던 때의 일이었다.

 왜 그 장면만 눈에 들어오고,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억날 수 뿐이었다. 또렷하게 떠올렸을 뿐이었다.

 내가 저 자리로 다시 돌아가**다는 걸.

 -아, 세, 세하야...! 정신이 드니!?
 -...오세린...선배?

 그걸 깨닫자마자 세하의 시야에는 세린이 보였다. 자신을 보며 울음을 터트리는 세린. 그리고 그런 세린과 세하의 주변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연구진들.

 세린의 말에 의하면 세하가 무사히 클로저의 의식을 구하는데는 성공했지만...오히려 세하가 프로그램에 되려 갇혀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세하의 옆에서 다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세하가 조심히 물었다. 제가 프로그램에 어느정도 갇혀있었죠? 머뭇거리던 세린이 답했다. 2일정도 됐어...만약 1시간이 더 지났다면 3일이 되었겠네...라고. 그래서 연구진들 대부분이 세하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좌절하고 있었던 중이었다고 했다.

 세하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쥐었다 펴보았다. 움직인다. 내가, 이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그제서야 또렷이 느껴졌다!

 이 벅차오르는 감정은 뭘까. 내가...내가 움직이고 있다. 가상 프로그램에 들어가있을 때는 움직이긴 했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못했다. 메피스토에게 한방을 크게 얻어맞아도 아프긴 했지만 허울뿐인 아픔이었다. 세린이 아무리 몸이 다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식 속에서 부상을 입으면 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건 아픈 게 아닌거 같다. 내 몸이, 내 몸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데...아파도...그냥 허울뿐인거 같은데. 마치 나랑 존재가 허울뿐인거 같은데...

 그때즈음 스쳐지나가는 그 녀석의 몇마디.




 -난 솔직히 말해서 네 녀석이 부러워...

 -실제할 수 있다는 거의 기쁨을 네 녀석은 모를거야...

 -실제하는 거의 따뜻한 체온, 실제하는 것의 심장 소리...

 -네 녀석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거라 모르겠지...!!



 아아...그래서...그래서 그 녀석은...

 ...그런거구나.



* * *



 "-나타나셨군, 진짜 양반."

 '세하' 의 말에 세하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를 잡고 있는 손도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너..."
 "-말했잖아. 네가 없는 사이, 내가 유리 채갈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

 그게 정말 진심이었나...상대방이 진심이라는 건 세하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자신과 다르다고 부정은 해왔지만 저기 있는 '세하' 도 세하 본인과 똑같은 인물이라는 걸.

 단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일 뿐이었다.

 한참을 노려보던 두 세하 중에서 먼저 말을 꺼낸건 '세하' 였다.

 "-하아, 그래...어차피 난 되지도 않는거 알아..."

 체념한 말투, 그리고 쓸쓸한 말투였다. 그러고 보니...예전에 볼 때보다 왠지 모르게 몸이 반투명해진 느낌이었다. 기분 탓인가.

 세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세하' 는 피식 웃었다.

 "-뭐야,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거지?"
 "..."
 "-뭐야...그 '동정심' 어린 듯한 표정은?!"
 "..."

 세하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돌아왔다. 자신은 분명 돌아왔다. 자기가 꼭 돌아와**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품으로, 옆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이 기분은 뭐지? 전에 저 녀석을 보았을 때는 이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잖아?

 '세하' 가 말했다.

 "-난 서유리를 원해."
 "...나도 그래."

 단도직입적인 말이었다. 그건 세하 쪽도 마찬가지였다. 세하의 질문에 상대방은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렇기에, 그걸 알고 있길래 더욱 쓸쓸하다는 듯이.

 "-알아, 안다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하가 더 이 세계에 어울리고, 자기는 오히려 '방관자' 에 가깝다는 사실을.



* * *



 처음 '의지' 라는 걸 자각하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이 유리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먼저 떠오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을 향한 알 수 없고도, 커다란 감정도 같이 말이다.

 갓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각인' 같이, 무작정 이끌렸다. 무조건적으로. 큐브의 홀로그램이란 것을 통해 의식이 들어갔을 때 이걸로 유리와도 만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뛸듯이 기뻤다.

 하지만 홀로그램은 일시적이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몸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그 간절함이 누군가에게 들렸는지 다른 홀로그램들과는 달리 자신은 존재하듯 존재하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세하의 감정이 불안정해지거나 몸이 약해질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세하의 첫대면 이후, 큐브의 전원이 전부 꺼졌을 때가 유리와의 첫만남이었다. 유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쏙 들었다. 자기한테 다가온 유리의 감정보다 더 크게, 자신이 좋아한다고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만남은 짧았다. 짧았기에 같이 있고 싶다, 아니 적어도 가까이에서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의 주위에는 언제나 세하가 있었다. 질투가 났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냥 옆에 있고 싶은데, 그 옆자리에 있고 싶은데.

 옆엔 언제나 다른 녀석이 있어.

 짜증나.

 짜증난다고.

 그런 질투의 감정을 철저히 느낄수록 또 하나 드는 대조적인 감정.



-어쩔 수 없다는거...알잖아?



 너희는 항성과 행성. 오히려 난 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과도 같은 존재. 아니...왜소행성이라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까.
 저 녀석이 사라지고 내가 그 옆자리를 차지해도 어차피 자연스럽지 않을 그림이라는거 잘 안다고.

 그리고...저 녀석이 사라지면 나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쯤은...더 잘 안다.

 그냥 어린아이의 작은 투덜거림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어느 한켠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있는.

 ...난 바보다. 알면서도 뗴를 쓰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바보.



* * *



 "세하야...?"

 어색한 침묵 속에서 유리가 세하를 조심히 불렀다. 두 명의 세하가 모두 유리를 바라보았다. 각자가 금색 눈동자와 붉은 눈동자로 유리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세하에게 다가가는 유리가 꺼낸 첫 한마디.

 "돌아왔구나."
 "...어."

 돌아왔어, 라는 세하의 말을 끝으로 모든 주문이 풀려버린 느낌이다. 유리도, 세하도, 그리고 '세하' 마저도.

 모든 주문이 풀려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거 같은 기분이 들어.

 돌아왔다, 라는 말에 유리는 세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원래부터 얘가 손힘이 이렇게 셌나? 라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아픔이 느껴지는 악력이었다.

 "돌아왔어...! 정말로..."
 "..."
 "-..."

 유리가 잡아준 손은 따뜻했다. 아, 이게 사람의 체온, 온기라는거구나. 따스하다. 유리에게 잡힌 손을 다시금 한번 움직여보았다. 역시, 잘 움직인다.

 나, 정말 돌아온거구나. 안도감. 또 한번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 감정을 마냥 놓치기 싫어서 유리를 힘껏 안았다. 따뜻하다. 사람의 품이라는 것도 이렇게 따뜻하구나. 다시금 알았다.

 두근-

 "...??"

 이상한 느낌이었다. 프로그램에 갇힌 클로저를 구하러 몰래 세린에게 찾아가기 직전, 느꼈던 그런 류의 통증이었다. 아프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린 그런 통증 말이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어서 세하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아..."
 "...가버렸구나."

 가버렸다, 라는 유리의 말에 세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 그 녀석이. 유리의 말처럼 가버린 것이다.



* * *



 "...세하는 정말이지 바보라니까."
 "...미안."
 "왜? 뭐가 미안한데?"

 유리의 질문에 세하는 찔린 표정이었다. 그런 세하를 보며 유리가 살짝 웃었다. 적어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말없이...가버린 거."
 "괜찮아. 돌아왔잖아."

 세하에게서 '돌아왔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주문이 풀려버린거 같았다. 언제나 웃어**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웃는 가면을 쓰고 있는거 같은 유리는 그 가면이 벗겨진걸 어렴풋이 느꼈다.

 유리가 웃는 옆모습을 보며 세하는 생각했다. 예전과는 달리 많이 활기차진 웃음이다. 세하도 가끔은 너무 억지로 웃고 있는게 확연히 보이는 유리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단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고비는 넘어간 거 같았다. 램스키퍼의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보던 유리가 세하의 몸에 바짝 기대어 물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이렇게 있어본게 얼마만이지?"
 "그러게. 임무도 서로 바쁘기도 했고."

 그리고 이렇게 둘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져본 적도 오래 되었다. 이 분위기가...나쁘지 않았다.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리가 대뜸 말했다. 유리의 눈속에 비치는 별들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 앤 어디갔을까."
 "..."
 "미, 미안...! 하하...역시 세하한테는 이런 말 하는건 아니겠지?"

 유리가 자기한테 미안할 건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무릎을 꿇고 빌어 마땅한 잘못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그 녀석. 불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해보였던 적안(赤眼)이 떠올랐다.

 "...걱정 마."
 "응...?"

 세하가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안해도 될거야.

 "분명 자고 있겠지."
 "...그렇구나."
 "응..."

 자고는 있어도, 편하게 자고 있지는 않겠지. 그런 기분일까. 프로그램에 갇히면서 느꼈던 한순간의 공포. 내가 존재하는 거 같지 않은 공포. 그런 공포에 늘 시달리고 있던거 아닐까.

 "세하야, 저거 거문고자리지? 그치?!"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는데 그런 세하를 유리가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활기찬 유리의 눈이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다. 그래, 우울한 기분은 잠시 털어버리기로 했다.

 "바-보. 그건 거문고자리가 아니야. 거문고자리는 저기 있잖아..."

 지금 이대로가, 정말 행복하다.





[작가의 말]


제가 이때까지 썼던 큡세유세 정리차원이라 좀 설명적인 느낌이 많고 짧습니다.
세하와 세하는 서로의 입장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라고 좀 떡밥(?)적인 느낌으로 끝냈네요...(끝냈어...어쨌든 끝냈다고...!)
그냥 떠오른 말인데 어머니께서 저보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게 더 큰 사람이랑 결혼해라' 라고 늘 말씀하셨죠.
여기서 세하랑 유리는 결혼하겠죠. 네, 아마도.

독자 : 작가님, 큐브세하 좋아하시죠?
애쿼 : 네, 많이많이 좋아합니다.
2024-10-24 23:12:4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