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또 보자
루이벨라 2017-01-18 13
※ 지인분의 썰을 바탕으로 써보았습니다.
※ 네틱세하x암광유리
-또 보자...!
그 울림이, 아직도 기억 한켠에 남아있다. 언제나처럼 또 볼 수 있을거라 믿었기에, 언제나처럼 내일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었기에 나는 그런 인사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래, 내일 봐...!
* * *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검은양> 팀원들을...
언제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했던 이슬비, 어딘지 모르게 믿을 구석이 있는 제이 아저씨, 활기찼던 미스틸, 그리고...
...누구였더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몸은 예전의 내 몸이 아니었다. 70% 이상이 안드로이드로 이루어진, 감히 '인간' 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괴리감이 느껴지던 몸이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바로 알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할 때마다 머리가 이상하게 지끈거렸다.
캡슐 밖으로 나온 나에게, 정도연 박사님은 비고를 들려주었다.
그 날, 우리 <검은양> 팀은 '그 일' 을 맡았다고 했다. '그 일' 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도연 박사님은 정확히 알려주시지 않았다. 내가 그 때의 기억이 없고, 과거의 기억도 희미한 이유는 아무래도 '그 일' 로 일어난 충격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향을 준 거 같다고 하셨다. 그런 나에게 억지로 '그 일' 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전멸. 지원 병력이 도착했을 시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는 나 혼자였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상태도 무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황이었고, 내가 어떤 시술을 받더라도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했고, 결국...
내 몸의 70% 이상은 안드로이드가 대체하게 되었다. 정도연 박사님이 한번 몸을 움직여보라는 말에 손을 살짝 움직여봤다.
...내가 알던 몸이 아니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과거의 이세하는 이제 없구나.
...어차피 이제는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쯤...너무나도 잘 알았다.
* * *
그렇게 다시 살아가던 날, 문득 기억해버렸다. 잊고 지냈던, 어딘가 비어버린 거 같은, 과거의 기억 일부분이 말이다.
그것은...환하게 웃고 있는 어떤 소녀의 형상이었다. 위로 아무렇게나 올린 검은 머리, 그 옆에 있는 빨간 머리핀, 맑은 색의 벽안을 가진 소녀였다.
-세하야....!
밝게 웃고 있는 얼굴처럼, 낭랑하고 활기찬 목소리. 웃을 때마다 보이는 덧니마저도 매력적이게 보였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밝게, 나한테 웃어주는 걸까. 그리고 그 소녀의 미소를 보자 내 마음도 차분히 안정되었다. 사이버네틱 시술을 받은 이후, 불안정하고 살아도 살아있는거 같지 않았던, 내 마음에 평온이 조금은 온 것이었다.
누구였을까. 분명 내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 같은데. 그렇게 소중했던 사람이라면 왜 기억을 못하는걸까.
얼마 후, 난 정도연 박사님께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소녀에 대해서 아냐고. 정도연 박사님은 머뭇거리며 나에게 그 소녀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서유리.
서유리...서유리? 그래, 그런 울림의 이름을 가진 아이였지. 난 아마도 그 이름의 울림을 좋아했던 거 같았다. 하루종일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서유리도...'그 일' 에 참여한 <검은양> 팀원이었다는 거. 정도연 박사님은 '그 일' 에서 유일한 생존자는 나 혼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인 즉슨...
...서유리도 죽었다는 말이 되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랄까.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실감이 오지 않을 감각들임이 분명한데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왜 이래, 왜 이러냐고...! 마치 고장난듯이, 왜 떨림이 멈추지 않는거냐고...!!
그 떨림은 한참 뒤에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완전히 멈췄는데도 불구하고 난 계속 내 몸이 떨리고 있는 거 같은 착각도 들었다.
서유리가...나한테 그렇게 중요했던 사람이었던걸까. 다른 팀원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담담하게 느껴졌는데, 왜 유독 서유리만...
희미하게만 남아있는 나의 기억이 이럴 때 원망스러웠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는 과거의 기억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뿐이었는데...절실해졌다. 도대체 내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드디어 내일이네.
또 다시, 서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말이야...
희미하게 들리는 건 내 목소리. 지금의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잡음이 하나도 없는 맑은 목소리였다.
-위험한 임무라는데...정말 괜찮겠어?
-내 걱정보다는 네 걱정을 하는게 더 좋을걸, 서유리?
-세하는 임무 하다가도 게임기를 볼 거 같으니까 그렇지!
-야, 내가 언제 게임기만 봤다고 그래?!
티격태격. 둘의 사이는 제법 좋았나보다. 아니, 왜 추측하듯이 말하는걸까, 나. 분명 저 대화는 나와 서유리가 했던 말일텐데. 과거의 나의 기억일텐데...
...왜 이렇게 낯설게만 느껴질까.
-아,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내일 덜렁되지 말고, 알았지?
-네네, 알았어요. 세하도 게임기만 쳐다** 말고, 알았지?
서유리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댔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서 있는 서유리의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보여지는 듯 아른거렸다.
-또 보자...!
'...!!'
또 보자. 그 말에 나도 오른손을 살짝 올려 대답했다.
"-그래, 내일 봐...!"
라고.
...이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 '그 일' 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 일' 을 내가 왜 기억을 못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도, 왜 서유리에 대한 기억만이 빈 퍼즐 공간처럼 있었는지도, 그리고...
내가 서유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울고 싶었다. 보통이라면 분명 이 상황에서 울어야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내 눈은 메마른 듯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 * *
다음날, 난 '그 일' 이 일어났던 현장으로 떠났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그리고 무엇부터 손을 봐야할지 모르겠는, 처참한 현장으로 말이다.
분명, 이 장소에서 우리 5명이 겪은 일은 똑같았겠지. 하지만...결과는 달랐다. 나만 살아남았다. 어째서 나만 살아남았을까. 왜, 나만. 왜, 하필 나만...?
바람이 휑한 공터를 비집고 지나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왜, 아무것도 기억을 못했는지, 아니 기억을 안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안드로이드로 구성되어버린 뇌로, 못 기억해낼 것도 없었다.
내가...그 감당을 하지 못하리라는 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기억을 안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또 보자, 라고 한 그 약속. 그리고 내일 보자, 라고 한 그 약속.
...그걸 지키지 못했는데. 그리고 죄인같이 나만 혼자 살아남은, 이...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였다.
정말...나약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에게 아직도 '인간' 적인 면이 남아있는 거 같아 또 다른 안도감을 느꼈다. 다만...가슴은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을 듯이 너무 아팠지만 말이다.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까와 비슷한 바람이 내 앞을 다시 스쳐지나갔다.
...이제 가봐야겠지...어차피 여기서 지난 일을 후회해도 '그 때' 로...내가 원하는 '그 때' 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쯤은...나도 잘 알았다.
바스락-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 순간이었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여기 있는걸까. 이 '폐허' 에 나처럼 감상에 젖어 찾아올 또 다른 이가 있다는 소리일까. 인기척이 느껴진 곳은 잔해더미들이 높이 쌓여있는 곳...꼭대기였다.
"..."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분명, 나 말고 살아남은 이는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상황이라고 했었다. 그런 끔찍한 사고에서 멀쩡히 살아남아있을 사람은...없었다.
그 사람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이목구비, 익숙한 표정. 다만 다른 점은 눈동자가 시원스러운 벽안이 아닌, 잔혹함이 묻어나오는 자안(紫眼)이라는 것. 흑요석 같던 머리가, 빛을 잃어버린 백발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보았던 '용' 이라는 존재의 위상력이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
하지만 말이다...
"안녕, 세하야?"
그 목소리, 그 웃음, 그 표정은...변하지 않았다. 분명 서유리였다...!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아니, 서유리는 죽었다. 나도 그렇고, 주변인들도 모두 그렇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심장은...
"...어."
지금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어했다.
"안녕, 서유리."
내 대답에 서유리는 미소를 지었다. 환하게, 그 저녁놀에서 보여주었던 그 웃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