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8. 재와 먼지의 영지 -

Articulus 2017-01-0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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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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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 

  너무나도 서글프게 이슬비는 울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그녀의 울음을 그치게할 수 없다. 서로를 향한 연심(戀心)이 처음보다 더 타오르고 있는 연인들에게, 지금과 같은 비보(悲報)는 마음을 찢어버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결국 슬픔을 못참고 플레인게이트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가버린 슬비와 그녀의 뒤를 따라간 유리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그대로 이곳에 서글프고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 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김유정이, 조심스레 비보를 전한 연구원에게 물었다.
  "민성진 박사님, 들려주셨던 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위상력이 제1위상력과 제2위상력으로 나뉘어있다는 것은 아시겠지요. 꿈의 힘인 제3위상력 상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두 개의 위상력은 서로 반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제일 처음 차원종들의 잔해에서 이세하 요원의 위상력이 검출된 이후, 전 그가 차원종들과 동화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웠죠. 그리고 그의 위상력이 차원종들의 위상력과 결합했을 때 보이는 반발성의 정도를 가지고, 그가 차원종들과 얼마나 동화되었는가를 체크했습니다."
  "계속 이야기해주세요."
  "하아… 그런데 오늘 오전만 하더라도 반발성을 보이던 두 위상력이…, 더 이상 큰 반발성을 띄지 않게 되었어요. 불과 몇 시간만에 일어난 일이라,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이유도 모르고 저 역시 검사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연구원의 말은 모종의 이유로 세하의 차원종과의 동화가 촉진되었다는 말이다. 두 위상력이 서로 반발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의 결과를 의미한다.
  먼저 제3위상력의 완벽한 구현이라는 긍정적인 결론이 있지만, 사실 현존하는 기술력으로는 제3위상력의 완벽한 구현이 불가능하다. 아주 잠시동안 이러한 성질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두 개의 위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강남 사태 때 아스타로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던 검은양 팀도 죽을뻔한 위기에서 겨우 살아나지 않았던가.
  또 다른 결과는 하나의 성질이 반대의 성질에 완벽히 잠식되는 부정적인 결과다. 위상력의 잠재력·구현력 등의 다양한 수치를 평가하여 총체적인 위상력의 등급을 나누는데, 세하의 위상력은 유니온의 클로저들 중에서도 상당히 톱 클래스에 속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와 계약한 차원종의 등급은 일반 차원종을 아득히 초월하는 군단장급이다. 아무리 본인의 위상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먹히는 쪽은 오히려 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비록 위상력을 상실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위상력의 성질은 완벽하게 제1위상력에 가까운 제3위상력의 모습을 띄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기억 등을 잃어버리게 되겠지.

  지금의 상황으로 볼때 전자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99.9%의 가능성으로 후자의 결과로 진행될 것이다. 이세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분위기는, 이제 싸늘한 절망으로 식어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두에게 전혀 방법은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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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윽, 세하, 넌 바보야아, 흐윽…"
  "슬비야, 그만 울어… 괜찮을거야, 분명히 방법이 있을거야."

  플레인게이트의 입구 밖 공터에서 쭈구려앉은 채로 모은 팔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 슬비를 감싸고 품어주면서 유리는 애써 위로하고 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 어떤 말을 할지라도 슬비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너무나도 이세하가 원망스러웠다, 슬비를 이렇게 울려버린 그 빌어먹을 남자를.

  "상처줄 일 없을거라며, 이 나쁜 이세하."
 
  눈물을 머금으며 더 이상 말없이 유리는 슬비를 안으며 토닥여주었다. 이대로 슬비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있을 생각이다.
  밖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특경대원들은 안의 상황을 모르기에, 갑자기 그녀들이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들의 말을 듣건대, 이세하와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침울한 이곳의 상황과는 달리, 이곳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이들의 시선에선 비웃음이 느껴져왔다. 슬비나 유리, 그리고 특경대원 중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발각되지 않았음을 자부하며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울고 있다니, 꼴보기 좋군."
 
  이능원에 소속된 위상능력자팀 중 하나를 관리하는 한재민은 기분좋게 웃었다. 여기에서는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정말로 기뻐하는듯한 표정이다.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바가 없기 때문에, 웃음을 통해서 그 기쁨을 외부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관 님이 그렇게 기분 좋게 웃으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바로 옆에서 밖의 상황을 같이 지켜보고 있던 은발의 여성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남성이 되물었다.

  "난 항상 잘 웃지요."
  "그런 이상한 웃음 말고요."
  "나현 씨가 잘 모르는가본데, 제가 짓는 웃음은 항상 좋아서 짓는 웃음이랍니다."
  "아, 예, 예."

  다시 남자의 시선은 창 밖을 향했다.
  여전히 울음을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는 슬비와 그녀의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유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뗄줄 모르며 남자는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더 이상 눈물도 흘리지 못하게 만들어 줄테니까."

  자신들을 향해 엄습해오는 위기를 전혀 알지 못한채, 그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눈물 흘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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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정말 짜증나서 못봐주겠네. 꼰대, 어쩔거야?"

  결국 이런 분위기에 불만을 터뜨리고만 나타는 다짜고짜 트레이너를 향해 물었다. 그의 섬세한 성격은 이런 암울한 분위기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는 이런 곳에 오래있기를 싫어했다. 당장 할 일이 없다면 이곳에서 나가기를 그는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장 어디론가 다른데로 움직이기를 원하는 마음을 그는 트레이너를 향해 내뿜으며 묻는 것이다.
   그에 대한 트레이너의 답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글쎄. 우리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은 더 고려해보아야 한다. 검은양 팀과 어떻게 움직일지 조율을 해보아야만 해."
  "언제부터 그렇게 남들 눈치 보면서 움직였지? 어차피 이세하, 그 망할 녀석만 찾으면 되는거잖아? 모범생 녀석이 저렇게 나자빠져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겠어?"
  "물론 네 말이 맞다만…"

  트레이너는 말을 줄이며 잠시 김유정의 표정을 살폈다. 이 시선에 담긴 의미는 단 하나다, 자신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김유정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향한 시선을 알아챈 김유정은 딱잘라 거절했다.

  "안돼요. 어차피 세하를 구하기 위해선 슬비가 반드시 필요해요. 늑대개 팀만의 단독작전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저 모범생이 그만좀 질질짜게 하라고, 아줌마! 지금 이대로 가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잖아!"
 
  나타의 말이 옳다는 것은 김유정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슬비가 저렇게 위로받는 것조차 거부하는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녀도 평정심을 되찾겠지만, 그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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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있고 싶다는 말로 유리를 돌려보낸 슬비는 홀로 플레인게이트를 떠나 검은양 팀의 아지트에 돌아왔다. 이 아지트는 얼마 전 오랜만에 검은양 팀이 이곳에 모인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1달 전만 해도 이곳은 검은양 팀의 모든 팀원들이 모여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브리핑을 듣던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막만이 감돈다.

  오랜만에 찾아온 주인을 맞이하듯 아지트의 문은 더욱 크게 끼익거리며 열렸고, 전등을 켠 후 슬비는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고 짧은 잠을 청했다. 그녀가 이른 시간임에도 잠에 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늘 밤, 아니 며칠 밤을 새더라도 홀로 이세하를 찾아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마 전 특수요원의 심사과정에서 김유정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품 안에서 꺼내들어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위기의 순간에 쓰라고 건네받은 부무장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무장이기에 선뜻 쓰기가 힘들었다. 
  '유리한테라도 건네줄까'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역시 자신을 생각해서 이것을 개발해준 이들과 건네준 이를 생각할 때 역시나 쉽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슬슬 눈이 감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충분히 피곤해있었다. 다만 세하가 너무나도 걸렸기에, 피곤하지 않은양 말했을 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지금은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하겠다는 생각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 18-2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지쳤고, 이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거라고 생각되어요. 시간은 아깝게 흘러가지만, 모두 이만 해산하고 탐사는 내일 계속하도록 할게요."
 
  손목시계를 보면서 김유정은 그렇게 말했다. 이슬비가 울음을 터뜨리고 이곳을 떠난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같이 밖으로 나갔던 서유리가 혼자 있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들어온지 약 20분 정도 되기도 한 시간이다.

  이제 세하가 완전히 차원종이 되기까지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탐사에 열을 올릴 것만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냉정하게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진단을 내렸다. 그녀의 해법이 제이에게만큼은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탐사하고 있는 구역은 미탐사 구역인데다가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미처 데이터베이스에 조차 없는 강력한 차원종이 등장할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저로서의 경력이 부족한 미스틸과 유리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였다. 그들은 제이와는 달리 곧바로 김유정에게 따져물었다.

  "유정이 누나, 세하 형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미스틸의 말대로에요, 언니. 세하가 완전히 차원종이 되어버려서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면, 그 때에는 슬비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지도 몰라요. 언니, 저희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발 탐사를 허락해주세요."
 
  두 사람의 간곡한 호소는 단언에 거절되었다.
  다만 거절한 사람은 김유정이나 제이가 아닌, 트레이너였다.

  "김유정 부국장의 말대로 하는게 좋을거다, 미스틸테인, 서유리."
 
  두 사람의 시선이 험상궂은 인상의 남성에게 향한다.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유리가 물었다.
 
  "왜죠? 왜 세하를 못 구하러 가게 하는 거예요?"
  "그건 너희들의 생명을 위해서다. 만약에 이세하를 구하러 가던 중에 너희가 외부차원에서 생명에 지장을 받는다면, 그건 그를 구하지 않는만 못해. 소를 위해 대가 희생할 수는 없는 법이지."
  "저희는 약하지 않아요! 그건 램스키퍼에서도 트레이너 씨 역시 인정하셨잖아요!"
  "그래, 너희는 훌륭한 전사다. 하지만 너희가 내딛는 곳은 최상위급 차원종의 영지야. 만에 하나라도 그곳에서 '놈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장담컨대 너희는 반드시 죽는다."
 
  반박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애쉬와 더스트는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구로에서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아주 잠깐 그들과 힘을 겨룬 적이 있었지만,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분명히 힘의 급이 너무나도 달랐기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그 때에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식요원이 된 지금이라도 마찬가지다. 검은양 팀 전체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게 그들이기에, 지금처럼 전력의 공백이 많은 때에 그들과 싸우겠다고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너무나도 분하지만, 서유리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미스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트레이너의 말에 그들은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다.

  "유리나 미스틸의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세하만큼이나 너희도 나에겐 중요하다는걸 알아줬으면 해. 더 이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는건 보고 싶지 않아…"

  김유정의 한숨소리와 함께 들려온 말은, 너무나도 서글픈 말이었다.
  더이상 누구도 그 말에 말을 붙이지도 않았고, 그 말에 대하여 반박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했다는 암묵적인 동의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마음은 다른 곳에 있기에, 서유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슬비가 있는 플레인게이트의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도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려고 그러는 것일까.

  "검은양 팀, 오늘은 모두 퇴근하도록 하세요. 집에서 푹 쉬고, 내일 아침 7시부터 다시 이곳에서 탐사를 진행하도록 하죠. 그 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시고, 그저 최대한 몸을 쉰다고만 생각하세요."
 
  상사로부터 퇴근명령이 내려지자, 제이와 미스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짐을 챙겨서 밖으로 향한다. 
  김유정이 지하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제이에게 말했다.

  "제이 씨, 나가면서 유리에게도 전해주세요, 내일 7시에 이곳에서 다시 집합한다고요."
  "알았어, 유정 씨. 유정 씨도 충분히 쉬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제이는 미스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겨 지상으로 올라간다.
  이제 이곳에 남은 또 다른 전력인 늑대개 팀에게도 김유정은 지시를 내려**다.

  "늑대개 팀도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내일부터 검은양 팀을 도와서 집중적으로 탐사를 진행할거에요. 그러니 오늘 밤에는 푹 쉬시고, 내일 오전 7시까지 이곳에 다시 모여주세요."
  
  김유정의 지시를 받은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통솔하는 팀원들에게 말한다.
  "잘 들었겠지. 늑대개, 나를 따라 밖으로 이동한다. 너희에게 자세한 지시사항을 내려주겠다."

  그의 지시대로, 그를 따라 모든 늑대개 대원들이 플레인게이트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벌처스와 유니온의 관계자들, 그리고 김유정 부국장 뿐이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현재 시간을 잠시 확인하더니, 다른 이들처럼 밖으로 나갔다. 그녀 역시 퇴근하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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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밤 늦은 시간. 
  플레인게이트에 남은 사람은 이제 유니온의 기술지원팀에 소속된 연구원들과 벌처스의 관계자들 뿐이다. 그밖에 늑대개 팀이나 검은양 팀은 잠시 휴식을 위하여 이곳에서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이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잠시 플레인게이트의 폐쇄과정이 중단된 이유로 소수의 벌처스의 인력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반면에 유니온의 연구원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차트를 서로 보여주며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낮에는 없던 이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차원압력 분야의 권위자인 최보나 연구원으로, 무척이나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들보다 스무살은 더 많아보일 사람들과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제일 처음 플레인게이트의 폐쇄조치가 내려졌을 때, 그것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만으로는 유니온을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그녀는 잠시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다가 유니온의 연구원들 중 검은양 팀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플레인게이트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캐롤리엘을 통하여 전해듣고, 약 1시간 전 이곳에 도착했다. 그녀가 이곳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그동안 유니온의 내부망과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들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그동안 그녀는 이세하가 어떤 이유로 유니온을 배신하고 차원종과 손을 잡았는지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유니온은 거기에 대해선 이렇다할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해서 그녀의 심기만 불편할 뿐이다. 비록 한 주가 약간 넘는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이었지만 그녀가 만나서 알고 있는 이세하는 절대 소문이나 유니온의 해명대로, 자신의 사익을 위해 차원종과 손을 잡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곳마다 그녀는 검은양 팀의 변호를 자처해왔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해서 알게된 진실은 유니온의 어두운 부분을 여실없이 보여주었다. 플레인게이트의 폐쇄조치 명령이 내려진 때로부터 유니온의 일방적인 모습을 조금씩 깨달아나가던 그녀였으나, 이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특히 세하가 완전히 차원종과 동화되기까지 이틀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에, 그녀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검은양 팀이 그를 찾기 위해 외부차원의 미탐사 구역으로 탐사를 나갔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자신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심하며 이렇게 다른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많은 것을 다른 연구원들이 지원을 해주고 있기에 그녀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녀의 전공분야 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PNA 조작이다.

  위상능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력의 핵심인자로서, 마치 사람의 인체의 가장 기본 요소인 DNA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DNA가 각자 달라 개인으로 구별되는 것처럼, 위상력 역시 마찬가지로 PNA가 다르기에 각자 구현할 수 있는 위상력이 제각기 다른 것이다.
  다른 종(種)의 DNA가 달라 형태가 달라지듯이 PNA의 확연한 차이가 차원종과 인간이 가지는 위상력의 성질을 결정한다. 그 말은 제2위상력을 발현할 수 있는 능력자의 PNA와 차원종의 PNA가 각자 가지는 공통분모로서의 PNA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세하를 구하기 위해선 이슬비의 위상력을 그에게 쏟아부어야만 한다. 특수요원이 그녀의 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를 구할 수 없다. 이 때 그냥 위상력을 주입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변조된 위상력을 그에게 주입하는 것이 더욱 확실한 효과를 불러온다. 즉 이슬비가 발휘하는 위상력의 PNA를 제2위상력으로서 가지는 공통분모로서의 PNA 인자들을 더욱 효과를 극대화시킬 때, 차원종이 되어가고 있는 - 심지어 차원종이 된 후일지라도 - 이세하에게 보다 확실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그녀는 이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슬비의 PNA를 조작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슬비는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그녀가 있는 것일까?


  한편 같은 시간의 플레인게이트의 입구.
  늦봄의 밤에 부는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하늘에는 차가운 보름달이 구름 한 점 없이 떠 있었고, 달빛이 비추는 그 아래로 입구의 문에 기대어 홀로 이곳을 지키는 여성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달빛 아래에서만큼은 확실하게 보이는 검은색의 유니온 정식요원복. 등 뒤로는 임펄서 블레이드를 걸치고 왼쪽 다리에 묶어놓은 가죽집 속에 자신의 권총을 넣어두고선, 완전무장상태로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이곳으로 누군가 올 것이라 예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스커트 끝자락을 살짝 흔들고 지나칠 무렵, 그녀는 눈을 떴다. 자신의 앞에서 한 명 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몸이 가벼운 소녀의 발자국 소리로 들렸기에,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왔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왔어, 슬비야?"
  "유리야…"

  소녀는 말 끝을 흐렸다, 왠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버렸다는 듯이.
  하지만 소녀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던 또 다른 소녀는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저 안으로 가려는 거지?"
  "유리야, 부탁이야. 모두에게는 비밀로 해줘."
  "걱정마. 나도 너를 따라서 저 안에 들어갈 거니까."
  "ㅁ,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에 슬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위험한 곳에 같이 들어가겠다고?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착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느새인가 자신 앞으로 다가온 유리가 그녀의 오른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이세하, 그 녀석 때문에 우리 슬비가 벌써 몇 번이나 울었는데!
  이대로는 억울하니까, 꿀밤이라도 때려주러 가야지~"
 
  웃음기가 가득한 발랄한 서유리.
  덕분에 슬비의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유리야,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정말로 위험해.
  나나 세하 때문에 유리 너까지 위험해지는건 싫어."
  "하하, 걱정마, 걱정마! 이 천하무적 서유리 님이 모두 다 쓸어버릴테니까."
  "유리야,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야."
  "하지만 슬비야, 우리는 한 팀이야. 이미 같은 몸이나 다를 바 없어."

  한 팀.
  그렇다. 그들은 검은양 팀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클로저들.
  지극히 유소년스러운 팀 컬러를 가지고서, 정의라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사명을 다하는게 그들. 이미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서로 별개의 존재였던 그들은 한 몸이 되어갔다. 이제는 서로가 한 명이라도 없으면, 원래 있어야할 것이 없어진 것처럼 이상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다른 팀원들도 그녀만큼이나 세하의 부재에 대해 슬픔과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더 이상 슬비는 말하지 않았다.
 
  두 소녀는 손을 맞잡고, 나란히 그리고 천천히 플레인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두 사람이 문 앞에 다다르자, 자동문은 저절로 둘을 인식하고서 받아들인다. 플레인게이트는 강남대로의 한 지하에 있기 때문에, 문에서 약간 더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슬비는 다시 한 번 동료의 각오를 물었다.

  "유리야, 마지막으로 물을게. 따라오지 않아도 널 원망하지 않을게. 정말로 같이 갈거야?"
  "응. 세하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슬비가 도착하도록 지켜줄거야."

  그녀의 각오를 듣는 사이에, 벌써 플레인게이트 대기실에 엘리베이터는 도착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들에게 쏠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유니온의 연구원, 그리고 벌처스의 관계자들 뿐이다. 특경대에 속한 이들은 다른 곳에 있는지,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의 눈초리는, 슬비와 유리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 하다.
  그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무척이나 당당하게 플레인게이트로 향했다. 두 원형의 구조물이 서로 맞물리고 교차하며 회전하는 그곳을 지나면, 그들은 외부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두 사람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란 연구원들이 달려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위상능력자가 아닌 그들이 클로저인 그들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들은 단지 두 명이서 저 안으로 향하려는 이들을 막는게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판단하여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리라. 두 사람 역시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이들의 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고.
 
  몇 시간 전 자신들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던 민성진 박사가 입을 열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두 사람."
  "생각하시는대로 세하를 구하러 가요."

  유리가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박했다.

  "생각이 있는겁니까? 미탐사 구역 중 가장 깊은 곳, 더욱이 최고위급 차원종의 영지로 들어가겠다니요?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에요. 아까도 트레이너 씨가 분명하게 경고했잖습니까!"
  "걱정 마세요. 우리는 애쉬와 더스트를 만나러 가는게 아니라, 세하를 만나러 가는거니까요."
  "말장난 하지 말아…"
  "닥터 민성진, 잠시만요."

  남자의 말을 끊고 중간에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무척이나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이다. 유니온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슬비와 유리마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다. 아마도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연구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그대로 말을 끊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앞으로 나온 이는 역시나 두 사람의 예상대로였다.

  이제야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이지만, 과거 이곳 플레인게이트 탐사팀장을 역임한 여자 아이.
  자신의 소속을 드러내는 유니온의 연구원들이 입는 흰색 가운의 왼쪽 가슴에는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는 그녀의 신분증이 달려있다. 그녀가 쓴 커다란 원형 테두리의 안경 안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이 빛나고 있다.

  "보나구나. 정말 오랜만이야."
 
  플레인게이트의 탐사 도중 국제공항으로 향했던 검은양 팀은 정말로 오랜만에 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이 국제공항에서의 사건을 종결시키고 신서울로 되돌아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에는, 이미 플레인게이트가 폐쇄절차를 밟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 이곳을 떠난 후였다. 이렇게 다시 재회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이야, 이슬비, 그리고 서유리. 두 사람, 정말로 그곳으로 갈 생각이야?"
 
  더 이상의 대답을 불필요하다고 여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아마 그들에게는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최보나는 그들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하기 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리지 않을게."
  "닥터 최보나!"

  연구원들이 그녀의 이름을 거세게 부르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선택을 가로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을 자신들이 막은들, 억지로라도 그들은 반드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애써 이곳에서 힘을 빼면 외부차원에서 더욱 그들이 지쳐할 수도 있으니, 막는 것은 막지 못하느니만 못하다.
  대신 연구원들의 항의를 무마하는 동시에 두 사람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녀는 제안을 했다.

  "대신 두 사람이 이대로 외부차원으로 나가게 되면,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할 수 있어. 그래서 PNA를 외부환경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위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려고 해. 잠깐이면 되니 시간을 내줘."
  "그 정도라면…"

  말꼬리를 흐리며 슬비는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것은 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외부차원을 탐사할 수 있도록 PNA를 조작해서 돕겠다는 최보나의 말에 다른 연구원들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타협선을 찾은 것이다.

  최보나는 자신이 매고 있는 가방 안에서 두 개의 병을 꺼냈다.
  무언가 유리병 안에서 출렁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그녀가 꺼낸 것은 약이 틀림없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각각 한 병씩 건네주고,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너희들의 PNA 인자들의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약이야. 효과는 하루 정도 지속될거야. 마음같아선 PNA 인자 자체를 교채해주고 싶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을게.
  너희가 향하는 곳은 외부차원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위험한 곳인지도 몰라. 정말 조심해야할거야. 여건이 좋지 않다면, 곧바로 돌아와야해?"

  보나의 걱정을 한가득 받으며, 그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애써 지어준 약을, 그들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그 자리에서 마셨다.
  맛은 씁쓸함으로 가득했지만, 그것을 먹자 효과가 그 즉시 나타나려는 것일까, 곧바로 몸이 타오를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훈련 프로그램 안에서 각 단계의 강적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위상력 강화 디바이스의 수치가 증가할 때의 그런 기분이다. 몸을 순환하는 위상력들이 더욱 날렵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두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즉효약이라 효과가 빠르네. 두 사람 모두, 무사히 돌아와야해. 세하만큼이나 너희 둘도 중요하니까."

  뼈 있는 말이다.
  슬비와 유리는 자기만큼이나 세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들은 세하만큼이나 두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점의 차이겠지만, 그들의 무게는 세하보다 무겁다면 무겁지 덜 무겁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처음 강남에 들어섰을 때부터, 검은양 팀은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최고의 결말을 낸다. 이 우습기 짝이 없는 목표가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일으켰는가. 칼바크 턱스 역시 그것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 기적을 이뤄내는 데에는 언제나 검은양 팀이 있었다.

  슬비와 유리는 다짐했다.
  지금은 둘이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셋일 거라고,
  반드시 저 안에서 이세하를 구해서 돌아오겠노라고 말이다.

  PNA 조작이 완벽히 끝나자, 연구원들은 길을 열어주었다.
  그녀들이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 누군가 다시 그녀들을 불러세웠다.
 
  "요원님들, 잠깐만요."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다.
  자신들을 위해 끝까지 희생해줄 너무나도 좋은 남자. 신강고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검은양 팀은 이 사람을 통해 여러 도움을 받았다. 자신을 김가면이라는 가명으로 소개하는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걸, 받으시죠."
  "이건?"
 
  두 사람은 각각 뿌리는 모기약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무언가를 하나씩 받았다. 시제품인지 제대로 된 명칭도 써있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물으려고 하자, 그보다 앞서 남자가 설명을 해준다.

  "저희 벌처스가 개발한 특제 스텔스 스프레이입니다. 외부차원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이곳에서 끝낸 실험으로는 이 스프레이의 효과가 다 될 때까지 절대 차원종에게 발각되지 않더라고요.
  시제품인지라 재고가 얼마 없어서 드릴 수 있는건 이것 뿐이네요. 기껏해야 3시간 정도의 효과만 볼 수 있겠죠.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하지만, 유용하게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원종에게 발각되지 않는 스프레이.
  유니온 다음가는 기술력을 가진 벌처스의 제품답다. 전혀 생각해**도 못한 물건이라 자신들이 이런 것을 받아도 되는가, 두 사람은 고민했다. 그들의 고민을 읽은 듯, 김가면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부담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야 이걸 얼마든지 생산해낼 수 있거든요. 그저 아쉬운게 있다면, 이것 밖에 드리지 못한 것이죠.
  힘 내주세요, 요원님들. 반드시 이세하 요원님을 구해주십시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의 뜻을 표하고, 두 사람은 플레인게이트로 다가섰다.
  그리고 두 개의 원형 구조물이 교차하는 그곳에 발을 딛고서, 자신들을 마중하는 이들에게 몸을 돌려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무사히 갔다올게요!"

  두 개의 원이 맞물리며 교차하는 그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외부차원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의 무사귀환과 이세하의 구출을 각자 기원하며, 두 사람이 사라진 플레인게이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시 반이다.


  ◆ 18-3

  "후후, 너도 보이지, 이세하?"
  "…"
  "너의 애인이, 그리고 동료가 오고 있어."
  "…"

  애쉬와 더스트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있는 이세하 옆에서 한 마디씩 던진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호흡만 할 뿐, 이세하는 아무런 대꾸도 그들에게 해주지 않았다.

  "후후. 이 녀석, 완전히 맛이 갔는데?"
  "얼마 남지 않았어, 너를 완전히 가지는 데까지는."

  남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분명히 들리는데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너무나도 즐거운 것인지, 둘은 각자 익숙한 이름을 세하의 귓가에서 들려주었다.

  "서유리."
  "이슬비."

  아주 잠깐 세하의 몸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잠깐의 테스트를 마무리하고서 애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완벽해. 비록 약간의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우리의 의식에 잠기는 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어."
  "벌써 기대돼, 애쉬. 이 녀석의 의식이 우리로 물들게되면, 그 땐 나를 봐주겠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더스트. 이 녀석은 내가 장난감으로 써먹을거거든."
  "흥, 우리의 장난감이겠지!"
  "뭐, 아무래도 좋아. 이제 놈들이 여기까지 오는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그러니, 그 사이에 놀이의 준비가 끝나야만 해."
  "맞아맞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놀이를 준비하고 있었지?"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것 같던 남매는 다시 심술을 부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준비한 놀이가 더욱 재미있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중에 더스트가 말했다.

  "놀이를 위해선 먼저 둘만이 있어야해."
  "맞아. 그렇기 위해선 서유리를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빼돌려야겠지?"
  "걔는 어떻게 가지고 놀까?"
  "머리가 어벙한 녀석이니 그에 맞는 방법으로 놀아줘야겠지."
 
  그리고 동시에 말하기를,
  "그나저나…"

  남매의 시선이 다시 일제히 이세하를 향했다.
  "서로 죽기 직전까지 치고박게 만들까?"
  "아니면, 정말로 서로 죽이게 만들까?"
  "아니지.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되돌려놨다가, 바로 앞에서 돌변하게 만들어버리자구."
  "아냐. 그년이 공격할 때 갑자기 이 녀석의 몸을 마비시켜서 방어도 못하게 만들고, 그 공격에 치명상을 입어 눈 앞에서 연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하는건 어때? 분명히 그년, 정신이 나가버릴거야."
  "쯔쯧. 그건 우리의 취향이 아니야, 더스트."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애쉬?"

  남자아이의 형상을 한 차원종의 입꼬리가 치켜올라간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여자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거야. 이 녀석을 사용해서 도망칠 수 있는 힘까지 완전히 탕진하게 만든 후에, 우리가 나서서 이슬비양을 붙잡는거야. 그리고 이 녀석처럼 만들어버리는거지. 어때?"
  "꺄하~ 애쉬, 정말 머리 좋구나? 키키키, 그렇게 하자."

  남매의 시선은 이세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를 눈 앞에서 듣고 있으면서도, 전혀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채 이세하는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마치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니면 의욕조차 상실해버린 사람처럼.

.
.
.

  이슬비와 서유리는 하루 전 탐사에서 그러하였듯 붉은 차원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붉은 차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느샌가 다시 불어난 차원종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분명히 어제 이곳을 지나갈 때 모든 차원종들을 전멸시켰는데, 하룻밤 사이에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나타난 차원종들은 스케빈저 타입의 차원종들로, 수없이 강한 적들을 상대해 온 두 사람에게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 이들이다. 적들을 마주하자 붉은 차원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김가면에게 받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고작해야 몇 시간만 유효할 뿐인 귀중한 물건을 이런데서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내 들었기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을 뿌리는 때는 애쉬와 더스트의 영지에 들어설 때이다. 그 때까지는 이것을 아껴야만 한다.
 
  어제만큼이나 많은 수를 자랑하는 스캐빈저들은 슬비나 유리같은 고위클로저에겐 매우 약한 적에 지나지 않지만, 세하를 구하러 갈 때까지 어떤 강한 차원종과 조우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상력과 체력을 낭비하는 것은 피해야만 한다.
  어차피 적들은 무찌르면 다시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들을 최대한 빨리 지나치는 것 뿐이다. 마침 두 사람은 회피와 기동에 있어서만큼은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하위급 차원종들과의 전투는 그저 피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유리야, 최대한 빨리 주파하는거야."
  "오케이."
  "내 손을 잡아."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슬비를 보며 유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국 슬비는 유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의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내 손을 잡으면, 유리 너까지 공중을 함께 날 수 있어."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 유리는 금세 이해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제안에 답했다.
  "에이, 그러면 저 차원종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리를 쫓아오게 될거야. 그러니까 나는 지상으로 갈게."
  "하지만 그러면 유리, 네가 위험해져."
  "걱정마. 회피 하나는 끝내주게 자신있으니까."
  "상황이 어려워지면, 꼭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해야해?"
  "알았어!"
 
  자신의 위상력을 사용하여 이슬비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일반적인 클로저들과는 다르게 어디론가 이동할 때에도 자신의 위상력인 염동력을 사용하여 그녀는 장시간 공중에서 체류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서유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특기인 회피 기술과 빠른 기동력을 살리기로 했다. 그래서 공중으로 날아가서 차원종들의 추격을 피하는 슬비와는 달리, 적들 사이를 과감히 빠른 스피드로 돌파하며 지나친다.
 
  "비켜라, 비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서유리의 몸놀림에 놀란 것일까, 스캐빈저들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녀가 자신들의 사이를 지나치는 것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 뿐이다. 사실 스피드만 두고 보았을 때, 검은양 팀 심지어 늑대개 팀에서도 따라올 사람이 얼마 없다. 그녀의 스피드에 맞춰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던 상대는, 그녀가 신강고와 국제공항에서 마주했던 늑대개 팀의 아가씨 - 그녀는 자신을 '바이올렛'이라고 소개했다 - 뿐이다.
 
  그렇게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적들 사이를 주파하기를 벌써 10분 째, 그들은 어제 탐사를 위해 이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빠르게 신전의 입구까지 다가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일부러 공격하지 않고 지나치기만 하는 이들을 이상하리만큼 적들은 뒤쫓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상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음에도, 그저 운이 좋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것이 그들을 기다리는 '그들'의 농간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주 빠른 속도로 외부차원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위상력을 사용하여 몸놀림을 강화하느라 체력이 떨어질만 하지만, 둘은 왠지 모르게 지치지 않았다. 아마도 최보나가 준 약의 효과인 듯 하다.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고 이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준 그녀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눈 앞의 차원종들을 지나치느라 시간을 신경쓸 겨를 없이 계속해서 날고 뛰고 달렸다. 몇 십 번의 사이킥 무브를 하고 약 1만 번의 뜀박질을 한 결과, 그들은 어제 그들이 도달했던 폐허의 신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 그들은 무전 상으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나타날 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어제 그들이 이곳에 들어섰을 때 분명히 적이 나타났다. 이 녀석들을 물리치고, 또 다른 곳으로 들어갈 지 아니면 이들은 무찌르고 가야할 지 그들은 고민해야했다. 결국 후자의 결론을 내린 그들은 전투 준비를 마치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신전의 입구를 들어섰지만 이상하게도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유리가 물었다.
 
  "이상하네, 적이 나타나지 않아."
  "아까부터 이상했었어. 우리들이 지나쳐도 적들은 우리를 쫓아오지도 않았어, 심지어 적대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된 걸까?"
  "글쎄."
 
  그들은 눈 앞을 바라보았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한 갈래 길이 그들의 앞으로 뻗어있다. 이 길을 따라가게 되면, 아마도 애쉬와 더스트가 지배하는 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이 스프레이를 뿌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슬비야, 우리 서로 스프레이 뿌려주자."
  "그래, 여기서부터는 뿌리고 가는게 좋을 것 같아."
 
  자켓 안에서 스프레이를 꺼낸 두 사람은 서로의 몸과 옷 곳곳에 스프레이를 구석구석 뿌려준다. 특별한 향은 없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뿌릴 때마다 위상력의 기척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위상능력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이 변화는, 정말로 벌처스가 실용적인 것을 개발했다는 놀라움을 가져왔다. 신기해하는 눈치로 두 사람은 꼼꼼히 스프레이를 뿌렸다.
 
  신발 끝까지 스프레이를 뿌리고나서, 두 사람은 스프레이 안에 담긴 액체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 아래로 세게 흔들어보았다. 벌써 반 정도 사용한 것 같다.
  김가면의 말에 의하면 효과가 3시간 정도 지속된다고 하니, 반 정도 남았으니 이제 한 번 더 뿌릴 수 있을 것이고, 그 말은 총합 6시간 동안 자신들의 기척을 숨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차원종은 없기 때문에 당장 이 스프레이의 효과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눈 앞에 적이 나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우선은 계속해서 움직여보기로 했다. 이 이상은 미탐사 구역이므로 긴장해야만 한다, 어제 그들의 관리요원의 말대로 얼마나 강한 차원종이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유리야."
  "응?"
  "이거 받아."

  슬비는 자켓 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들었고, 그것의 총열을 자신이 잡은채 손잡이가 유리쪽으로 향하게 하여 그녀에게 건네었다. 영문을 모르는 유리가 고개만 갸우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총에 익숙해지지 않아. 유리 너라면 더 능숙하게 사용하겠지."
  "잠깐, 슬비야. 이건 유정 언니가 너를 위해서 준거야. 내가 쓸 순 없어."
  "정 그러면, 세하를 구한 후에 돌려줘. 그 때까지는 네가 쓰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슬비의 권유를 받아들인 유리가 총의 손잡이를 잡고, 총의 무게를 가늠하듯 들어보더니 이내 어딘가를 겨냥해본다. 마치 원래 자신의 무기인양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녀는 총을 다루었고,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판단이 옳았다고 슬비는 생각했다. 

  유리의 주 공격은 리펄서 블레이드를 이용한 검격이었지만, 정찰과 기동에 특성화된 그녀의 클래스는 간혹 원거리 공격도 가능해야만 했다. 기존의 권총은 매우 훌륭한 위상병기였지만, 그럼에도 화력을 투사하는 장거리 공격 시에는 어려움을 겪는 그녀였다. 그래서 간혹 권총 한 자루만 더 있더라면 더 파괴적인 공격이 가능할 것이라는게 그녀의 생각이었기에 부무장으로 쓸만한 권총 한 자루만 더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이렇게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손에 귀한 무기가 들어왔다. 게다가 무척이나 가볍고 손에 쉽게 익었기에 더욱 좋았다. 훌륭한 무기가 생긴 것에 그녀는 기뻐하며 자신에게 무장을 건네준 슬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 고마워. 잘 쓰고 돌려줄게."
  "응. 유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야 기쁠거야."

  웃음을 나누는 두 사람.
  훌륭한 친구이자, 그리고 훌륭한 전사이자 전우.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나 신뢰한다. 이렇게 죽음이 가까운 공간에도 거리낌없이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신뢰의 표징일 것이다. 서로가 있기에, 슬비와 유리는 앞으로가 두렵지 않았다.
  조금씩 어둠이 드리우는 외갈래길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각오를 다졌다.

  "그럼, 갈까?"
  "그렇게 하자."
 
  두 소녀는 크게 심호흡하고서, 한 방향으로 길게 펼쳐진 길로 쭉 들어섰다.
  저 멀리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도 못한 채, 둘은 계속 적의 영지로 나아갔다.
 
.
.
.

  복구작업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강남대로의 어느 변에 여러 사람의 인기척이 나타났다. 넓게 퍼져서 플레인게이트 입구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특경대원들이 잠에 골아떨어진지 3시간 째 되는 시간, 그들이 잠자는 틈을 타서 여러 명의 숨겨진 위상능력자들이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플레인게이트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재민 관리관이 이끄는 팀원 중에서도 에이스들, 그것이 인기척의 정체였다. 그들은 저마다 어둠 속에 숨어들기 적합할 정도로 어두운 색의 정장을 입고서, 플레인게이트 입구 근처에 주차해있는 트레일러 가까이 다가왔다. 플레인게이트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는 특경대원들은 한 명도 없었기에, 그들은 더 이상 조심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한 명씩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플레인게이트 앞은 새벽의 고요가 감도는 곳이 된다.
 
  검은 색의 트레일러는 유니온 마크가 찍혀 있어, 아무도 이것이 초대받지 않은 이들의 소유임을 알지 못했다. 이 차가 특경대, 심지어 서유리나 이슬비 외 검은양 팀과 그 밖의 늑대개 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검은 색 트레일러의 한 쪽 벽에 크게 새겨진 유니온 마크 덕분이었다. 이 차 안에 자신들을 위협할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이것의 존재를 묵인해버린 것이다.
 
  트레일러 안을 지키고 있는 한재민 관리관과 팀원 중 한 명인 서나현이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온 에이스들을 맞는다.
 
  "어서와요, 상훈 씨. 다시 보는군요, 상협 씨. 그리고 오랜만에 보죠? 주찬 씨, 상미 씨, 수현 씨, 종현 씨, 그리고 재영 씨."
  "오랜만이군요, 한재민 관리관님."
 
  안경을 쓴 남성으로부터 이름이 불린 모든 이들이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인사했다.
  그는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여러분들은 아시다싶이, 우리 팀 안에서 가장 에이스들입니다. 각자 이끌고 계신 반원들은 모두 이 근처로 불러모으셨겠죠?"

  남자의 질문에 모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의 일관된 답변에 남성은 만족하며 말한다.
  "좋아요. 이번에야 말로 우리 팀 전원이 움직일 수 있겠군요. 적을 얕잡아보고 모든 팀원을 작전에 투입하지 않은 건, 역시 큰 잘못이었어요. 이번에야 말로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 여성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방심은 언제나 금물이죠. 하지만 의외에요, 그렇게 임무에 실패할 줄이야. 유니온의 방해라도 있었던 모양이죠?" 
  "아뇨.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3위상력의 사용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죠."
 
  저번 이슬비의 승급심사 때 티아매트 대책실을 급습했던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갑자기 그 말을 듣고 움찔한다.
  말로만 들었던 제3위상력, 그것을 사용하는 이가 나타났다는 말 때문이리라.
 
  "제3위상력? 어떻게?"
  "야, 김상훈. 너 오면서 이런 말 없었잖아?"
  "그런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아무리 우리가 수가 더 늘어나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불안에 떠는 저들과는 달리 한재민의 표정은 매우 안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곧 그들을 안정시키며 말했다.
  "걱정마요, 제3위상력을 쓰는 그 녀석은, 절대 찾아올 수 없을테니까."
  "네?"
  "검은양 팀 요원 두 명이 외부차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그 제3위상력을 사용하는 녀석, 이세하를 구하기 위해서이겠죠. 차원종 놈들도 두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렸을테니, 쉽사리 이세하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겁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관리관 님."
  "후후,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세 명의 유니온 정규 클로저와 싸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성의 말에 옆에 있는 은발의 여성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두 명이 플레인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놔두신게."
  "그래요.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던거죠. 음후훗." 
 
  웃음을 그치고서 남성은 안경을 고쳐쓴다.
  그리고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현재 시간, 오전 3시 10분. 저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30분이 되면, 저 안에 침투한 우리 쪽 사람이 연락을 줄겁니다. 신호가 오면 일제히 진입하도록 하죠.
  목표는 플레인게이트의 파괴. 외부차원으로 들어간 이들만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머지 2명이야 처리하는 건 식은죽 먹기이겠죠."
 
  자신들의 지휘관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음에 놀라며, 그들은 순종의 뜻으로 일제히 승낙의 대답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선을 옮겼다, 20분 후 자신들이 습격할 그곳으로.
 
.
.
.
 
  외부차원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빛은 어두워져만 간다. 빛을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곳이 있는가하면, 빛은 비추지만 매우 약하게 들어오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이 걷고 있는 땅은 빛이 약하게나마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더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빛이 약해져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온 곳이 확실히 애쉬와 더스트가 지배하는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의 위상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확신이 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위상능력자들은 자신이 가지는 위상력의 컬러에 따라 머리색 혹은 눈색이 그에 맞춰 변해간다. 그런 것처럼 장시간 위상력에 노출되게되면 반드시 그 위상력의 색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곳의 길목의 곳곳에 방치된 바위들과 이곳의 대지는 모두 타버리고 남은 재처럼 윤기없이 회색과 백색에 가까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건너온 붉은 차원과 확연히 달라진 이곳의 풍경을 보며 이곳에는 분명히 애쉬와 더스트, 그리고 이세하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어두침침한 곳에서 세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유리가 안타깝게 한숨지었다.
  슬비는 어렴풋이 특수요원 심사에서 메피스토를 조우했을 때 그가 보여준 기억을 통해서 이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슬픔, 가련함, 쓸쓸함, 외로움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 그들의 곁을 떠난지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그가 고생했을지는 너무나도 눈에 선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하를 빨리 구해야만 해."
  "응. 꼭 세하를 구하자, 슬비야."

  다시 한 번 다짐을 다지고서, 두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이 외갈래길을 벗어나서 거대한 대지에 이른 후부터, 두 사람은 조금씩 더 속도를 내어 주파해나갔다. 벌처스 특제 스프레이을 뿌린 것이 아까울 정도로 아직까지는 차원종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결코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스프레이를 뿌린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쩌면 차원종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스프레이를 뿌린 효과 때문일지도 모르기에, 그런 후회따윈 전혀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플레인게이트를 통과하여 탐사를 시작한지 벌써 2시간이 다 되어간다. 외부차원은 얼마나 방대한지, 두 사람이 하루 종일 탐사한다고 하더라도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이곳도 결코 다 돌아볼 수 없다. 2시간의 시간을 두 사람은 결코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아마 이대로 계속간다고 할지라도, 몇 시간 내로 세하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물론 적과 조우하여 싸우게 되는 것이 결코 두렵지는 않다. 언제든지 적이 나오더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두 사람에게는 있었다. 다만 바라기로는 이 기나긴 탐사가 제발 빨리 끝나기를, 두 사람은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

 

  빛의 조사량이 극도로 줄어있어 앞이 멀리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에 비해서 더 줄어든 속도로 진행하고 있던 그들의 앞에 매우 이상한 지형이 나타났다. 그곳은 푸른 차원의 '안개 벌판'이라 이름 붙인 지역을 둘러싼 희멀건 안개와 같은 것들이 앞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 물론 그곳보다 더욱 짙게 끼어있어, 안개 속으로 계속 펼쳐지는 대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안개와 같은 구름들이 짙게 드리운 곳으로 나아가자, 갑자기 유리의 시야에서 슬비가 사라졌다. 동료의 행방을 잃어버리자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었고, 그녀는 슬비의 이름을 불렀다.

  "슬비야! 어딨어!?"
  "유리야, 어디있어? 나 여기있어! 꽤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

  목소리가 약간 멀리서 들려온다. 아마도 동료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유리였나보다. 슬비는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아간 모양이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꽤 긴 거리가 벌어진 듯 하다.  
  안개 너머로 분명히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너무나도 멀었기에 마치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어디로 나아가야 그녀를 찾을 수 있을지, 유리는 감히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슬비를 불러보았다.
  "슬비야! 조금만 다시 뒤로 와줘! 우리, 너무 멀어진 것 같아!"
  "……"

  크게 불러보앗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미처 못 들은 것일까, 그녀는 다시 한 번 불러보기로 했다.

  "슬비야! 다시 뒤로 와줘! 우리, 너무 멀어진 것 같아!"
  "아니야, 서유리 양. 이슬비 양은 널 버리고 먼저 간거야."
  "맞아, 그년은 널 버렸어."

  유리의 귀에 익숙하지만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조우하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던 바로 그들, 애쉬와 더스트를 만나버리고 만 것이다. 역시 최고위급 차원종인 그들에게는 벌처스의 특제 스프레이 따윈 소용이 없나보다. 미처 대처방법도 마련하지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제 그녀에게 펼쳐진다.

  "우리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해, 서유리 양."
  "우리 정말 오랜만에 만나네?"

  분명히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 때문에 모든 시야가 0에 가까워졌음에도, 왜이렇게 이들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일까. 오히려 더 뚜렷하게 보이기에 겁이날 정도다. 물론 그런 이유야 그들이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무, 무슨 일이야!"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야. 왜 여기까지 찾아온거지, 인간?"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세하를 구하러 왔지!"
  "후후, 너희를 저버린 녀석을 구하러 왔다고? 아, 정말로 한심하군."
  
  애쉬가 기분나쁘게 그녀를 비웃는다. 그것은 그의 말을 잇기 시작한 더스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머리 나쁜건 변하지 않았구나?"
  "뭐라고?"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 데이비드같은 녀석에게 이용만 당하는 거라구."

  서유리의 최근 기억 속에는 매우 기분 나쁜 것이 있다.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바로 그것이다. 강남 사태를 함께 해결했던 데이비드 리의 배신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을 배신하던 그 날, 그녀에게 무전재킹으로 무척이나 아니꼽게 쏘아붙엿던 말은 결코 잊을 수 없다. 

휴… 여전히 이해력이 부족하군, 서유리 양. 그래 가지고 어디 출세나 할 수 있겠어?
자네는 좀 아깝게 생각하고 있어.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적당히 속여서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하하핫!

  자신을 비웃던 그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그녀에게 바로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그가 자신을 비웃던 내용, 즉 자신의 어리숙함에 대해 비꼬는 그 말은 더스트의 말 속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그 당시 데이비드를 향해서 뿜었던 분노가, 이제는 자신을 비웃는 차원종을 향하기 시작했다.
 
  "비웃지마, 더스트."
  "왜? 기분이라도 나쁜거야?"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한 발의 총탄이었다.
  슬비가 그녀에게 건네준 권총의 약실에서 쏘아진 총탄은 깨끗하게 더스트의 몸 한 가운데 박혔다. 선명하게 총탄 자국이 나타났지만, 마치 칼로 벤 물이 금방 다시 하나가 되듯 원래대로 돌아와버린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적중한 총탄에 아픔도 느끼지 않는듯, 더스트는 오히려 비웃을 뿐이었다.
 
  "고작 그거야?"
  "뭐야…, 어째서!"
  "이건 우리의 분신이야. 설마 진짜인줄 알았어?"
  "이렇게나 멍청해서야. 역시 서유리 양 다워."
 
  가만히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던 애쉬가 말을 거들자, 서유리는 왼쪽 다리에 차고 있는 집에서 원래 그녀가 쓰던 권총까지 뽑아들었고, 양 끝을 둘을 향해 겨눴다. 하지만 전혀 남매는 두려움을 않았고, 계속해서 웃음만 흘린다.
 
  "네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동안, 이슬비 양은 멀리 가버렸지.
  사실 처음부터 이세하 놈과 이슬비 양이 단 둘이서 만나서 죽을 때까지 싸우도록 만드려고 했거든."
  "넌 처음부터 방해꾼이었어, 서유리.
  그러니까 초대받지 않은 손님답게, 문 밖에서 혼자서 놀고 있으라구. 놀거리는 충분히 줄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남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덮고 있던 짙은 안개 역시 사라졌다.  안개가 걷히자 앞으로 넓게 펼쳐진 잿빛의 대지 - 전장 - 위에는 수많은 차원종들이 그녀를 노려보며 으르렁대고 있다. 아마도 이 안개는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계략 뿐만 아니라, 이 수많은 차원종들을 숨기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나보다. 
  그녀는 찬찬히 눈 앞에 있는 수많은 차원종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해왔던 다양한 차원종들이었다. 단지 그 수는 감히 그녀가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
 
  서유리는 알아챘다, 처음부터 그들이 이곳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잘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것을. 차원종들이 그들의 뒤를 쫓지 않았던 것도, 애쉬와 더서트의 영지에 들어와서 차원종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모두 그들을 이곳까지 끌어들이기 위한 차원종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함정에 빠진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이 수많은 차원종들과 싸워 반드시 살아나가리라고 다짐하며, 그녀는 쌍권총의 모든 탄환들을 일제히 차원종들을 향해 쏘아놓기 시작했다. 

  특정 대상을 조준하고 쏘는 것이 아니기에 명중률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발사한 총탄에 실은 위상력은 반드시 적중해야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적에게 적중하면 관통하고, 적중하지 못하면 상대 근처에서 산산조각나며 폭발한다. 
  그녀의 제압사격에 수많은 차원종들이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한채 사살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매서운 기세로 그녀에게 달려든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와 재빠른 스피드로 두 권총에서 탄이 빈 탄알집을 비우고 대신 그 자리에 꽉 채운 탄알집을 꽂아넣는다. 그리고  권총 한 자루를 다시 왼쪽 다리에 차고 있는 집 속으로 넣어두고서, 대신 빈 오른손으로는 등 뒤에 걸쳐둔 리펄서 블레이드를 뽑아든다. 아무리 장거리 공격을 가한들 사실 그녀의 주공은 근접공격이므로, 그녀는 이 편이 더 전투에 편할 것이다. 

  권총이 두 자루로 늘어났기에 전투 중간에 탄이 다 떨어질 경우 재장전을 해야하는 횟수를 반으로 줄일 수 있기에, 더 효과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이들을 처리하고, 슬비와 다시 합류하여야만 한다. 
  유리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몇 마리의 하위급 차원종들에게 탄환을 한 발 씩 박아주고서, 그 뒤로 달려든 세 마리의 차원종을 위상력을 실은 검격으로 크게 베어낸다.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져가는 차원종의 사체 사이로 그녀의 근심어린 표정이 보인다. 
  그녀는 간절히 빌었다,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슬비가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 18-4
 
  "닥터 최보나, 이슬비 요원과 서유리 요원 단 둘 만을 외부차원으로 보냈던 건 역시나 큰 실수였어. 분명히 우리는 징계를 받을거야."

  유니온의 연구원 중 한 명이 투덜댄다. 어쩌면 이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클로저 요원들은 단독 작전의 수행을 위해선 해당 구역에 대한 위수명령지정서가 있어야 한다. 사실상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인 김유정 부국장의 허가를 얻지도 못한 상태인데다가, 두 사람은 플레인게이트 지역에서 단독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들은 유니온의 연구지원팀과 같은 비전투부서에 소속된 이들이지만, 분명히 클로저들의 단독행동을 막을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 상황을 눈 뜨고 지켜보았다는 점에서는 직무유기를 사유로 하여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저는 두 사람을 믿어요. 분명히 두 사람은 이세하를 데리고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만약을 생각해야지!"
  
  다그치는 연구원을 향해서, 두꺼운 목소리가 쏘아졌다.
  "두 사람은 훌륭한 전사이니, 걱정마시오."
  "응? 트레이너 씨? 철수하지 않았던거요?"

  최보나에게 다그치던 남성 연구원은 약간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그를 보고서 놀랄만 하지만, 대부분은 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다지 놀랍게 여기지 않는듯 했다. 당연한 것이, 그의 행방을 쫓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니 그럴만 하다.
  다만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여성 연구원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ㅌ, 트레이너 씨? 다, 당신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나요?"
  "여기에 온 이래로 쭉 이곳에 있었소만."
  "다, 다른 늑대개 팀원들은!" 
  "다들 행동하고 있소. 물론 이곳에서 먼곳에서 말이오. 곧 이곳으로 올 한 명과 멀리서 이곳 주위를 정찰하고 있는 또 다른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지. 왜 그러시오?"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을 줄이는 연구원의 표정이 굳어간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왼손 팔목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더욱 표정이 초조해져만 간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트레이너만큼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듯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잠시 화제를 다른데로 돌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째서, 당신은 여기에 남아있는거죠?"
  "내가 남으면 안되는 일이라도 있소?"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얼마 전 전력의 공백을 타서 양의 목숨을 노리려는 이리들이 있었지. 일전에 김유정 부국장에게 약속한 바가 있었소, 그들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한 우리도 양을 지켜주겠다고 말이오. 그래서 양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지."
  

  삐빅.
  트레이너의 왼쪽 귀에 꽂혀있는 소형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는 티나, 20분 전 모습을 감췄던 미확인 대상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알겠다. 우선은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보고하도록."
  『입감 양호. 통신 종료.』

  무전상으로의 통신을 마치고, 트레이너는 표정이 굳어있는 연구원에게 넌지시 말한다.
  "밖에서 이 주위를 정찰하고 있는 우리 대원이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한 모양이오. 이 근처는 비관계자들이 철저하게 통제될텐데 말이지. 설마 또 다시 그 때처럼 위장신분이라도 사용하는건가?"

  이것이 자신을 떠보는 것임을 알아챈 연구원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면, 꽤나 머리가 아파질 것이다. 아무래도 트레이너는 이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듯 하다. 더는 의심을 살만한 움직임을 보여선 아니 된다.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늑대개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
.
.

  어둠이 가득한 강남의 거리.
  과거였다면 이곳은 24시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으로 찬란히 빛났을 거리이지만, 강남사태 이후 이곳은 해만 지면 어둠이 내려앉아 새로운 해가 돋을 때까지 빛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강남대로는 중요한 교통로인지라 신속히 복구가 이루어졌지만, 플레인게이트와 같은 경우는 그 중요도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쉽사리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곳인지라 그 일대로는 복구가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주위로는 강남사태 때 파괴된 건물들과 도로의 잔해들, 그리고 파괴된 자동차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폐허가 된 이 일대 중에서도 플레인게이트 근처만큼은 인공조명을 설치하여 한 밤 중에라도 시야의 확보가 용이하도록 해놓았는데, 정작 이 주위를 지키고 있는 특경대원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자신들 가까이까지 낯선 이가 접근하였는데도 알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안에서는 연락이 없으니, 종현 씨는 진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저 특경대원들을 기절시키세요. 그리고 곧바로 안으로 몰래 들어가 상황을 파악한 후, 다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관리관 님."

  짙은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입구 옆에서 보초를 서다가 잠에 빠진 특경대원 두 명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어떤 손수건을 가져다대어 강제로 호흡을 막았고, 그들은 잠시 낯선 손길에 놀라 발버둥을 쳤지만 곧 제압당하고 정신을 잃고 만다. 아마도 이 손수건에는 사람을 강제로 기절시키는 약물이 묻어있는 모양이다.
  두 명을 벽에 기댄채로 앉은 자세로 만들어 놓은 후, 남성은 손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귓가에 차고 있는 소형 무전기를 통하여 어디론가 발신을 하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댄다.

  "어머, 특경대원 분들이 잠에 빠지셨나보군요."
  "……"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남성이 바라본다. 거기에는 매우 곱상하게 생긴 여성이 팔짱을 낀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색의 리본으로 매끈한 하늘색의 긴 머릿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재벌가의 아가씨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시간 그리고 이런 곳에 왜 이런 사람이 나타난 것일까.

  "볼 일 없으면 가시지? 여기는 당신같은 일반인이 올 곳이 아니니."
  "어머 그런가요? 그런데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손수건들, 조금 흥미가 생겼어요. 봐도 될까요?"
  "당장 사라지지 못해!?"
  "하이드."
  "으헛! 어, 어느새?!"

  여성이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어둠 속에 있던 남성이 상대의 손에서 손수건을 낚아채서 다시 여성 근처로 다가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자신의 손에서 손수건이 빠져나가는 것을 전혀 막지 못한 남성은 무척이나 당황하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남녀를 쏘아보았다.

  "네놈들, 누구냐!"
  "이 손수건에 묻어있는 액체, 설마 약품인가요? 그렇다면 저 두 분은 잠든게 아니라, 누군가 기절시킨 모양이네요."
  "망할, 왠 녀석들이 갑자기 나타나선."

  그는 잠시 트레일러 안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안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바깥의 상황을 인식하고 곧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은 잠시 기회를 찾고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눈 앞의 여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예컨대 당장 전화기를 들어서 경찰에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뭔가 손을 써야 한다.

  "얼마 전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 명의 클로저가 승급심사를 보는 중에, 왠 괴한들이 쳐들어와서는 그 클로저와 동료들을 위협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제 눈 앞에서 다시 벌어지려고 하다니, 이것 참 기분이 나쁘네요."
  "나대지 마!"

  상대는 일반인. 그에 반해 그는 위상능력자이다.
  상대가 되지 않는게 뻔하다. 아마도 여자와 그녀의 곁에 있는 저 남자는 그의 움직임조차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하는 방법은 정공법. 약물같은 화학물을 쓰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상대를 기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 그렇기에 이렇게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

  자신을 깔보는 여성에게 접근하는 남성.
  위상력으로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강화하면, 두 사람의 벌어진 거리 따위 1초 이내로 좁힐 수 있다. 먼저는 자신을 비웃는 저 여성, 그리고 그 옆의 남성을 약간의 위상력을 실은 공격으로 기절시켜 처리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던 찰나, 여성을 향해 내뻗어진 그의 팔이 누군가의 팔에 의해 막혔다.

  "뭐야!"
  "아가씨에게 손 대는 건, 용서하지 못합니다."
 
  방금 전에 자신의 손에서 손수건을 강탈해간 남성이다. 어느새인가 자신의 스피드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앞을 막아선 것이다. 공격하기 위해 내뻗어지던 팔은 상대의 팔에 의해 막혔고, 덕분에 강제로 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신속히 거리를 벌리고 떨어진 남성은 자신의 팔에 닿은 얼얼한 기운을 느꼈고, 그것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했다.
 
  "이건, 위상력…!"

  맞댄 팔에서 분명히 위상력을 느낀 남성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두 명이 어쩌면 위상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막아선 남자에게서 위상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저 여자의 얼굴, 어디선가 분명히 보았다.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실물로는 아니지만 사진으로는 보았던 얼굴인데, 어디서 보았을까?

  "당신, 전에 검은양 팀을 습격했던 그들과 한패죠?"
  "……"
  "역시나 그렇군요. 그렇다면 잘 되었어요, 이대로 우리 늑대개 팀의 포로가 되어서 정보를 제공해 주시겠어요?"
  "늑대개? 설마!"

  그제서야 남자는 기억했다, 눈 앞의 여성의 얼굴을.
  강남사태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지명수배 대상으로 오른 과거 벌처스의 처리부대 늑대개 팀과 관련된 인물로 수배중인 여성이다. 그녀가 이곳에 도대체 왜?

  "그래요.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장님께서 늑대개 팀을 이 일대로 소집시키셨어요. 덕분에 제게 내려진 잠시동안 잠적하고 있으라던 지시도 거둬졌죠.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감사하다고 말해둘게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윽…"
  "이런 역겨운 일에 대한 벌은, 충분히 받아야겠죠!"

  어느새인가 여성의 오른팔에는 무척이나 커다란 검이 들려져 있었다.
  너무나도 가녀린 팔로 어떻게 저런 거대한 무기를 휘두룰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거대한 검이었다. 저런 검은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만한 검이다. 너무나도 거대해서 실용성이 떨어지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그것을 무척이나 가볍게, 그러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코 앞까지 다가왔고, 아주 크게 허공을 베어 세찬 바람을 밀어낸다. 바람은 충격파가 되어 그대로 상대의 몸에 직격했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남자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근처에 주차된 어느 자동차의 옆에 부딪혀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는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싱겁군요. 고작 이 정도 공격에 기절하다니."
 
  여성이 신은 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점차 그에게 가까워진다. 그녀는 상대가 완전히 기절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간 것이다. 상대가 어느 정도로 전투의 프로인지는 미처 알지도 못한채로.
  그녀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분명히 기절했다고 생각한 남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성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망할 년이이이이이이이잇!!"
 
  타앙-
 
  "으, 으아아아아악! 내 다리이이잇!"
 
  어디선가 발사된 총탄이 정확히 남자의 오른쪽 다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의 공격은 완전히 여성에게도 다가가지도 못한 채 멈춰섰고, 남자는 저격당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땅을 이리저리 기며 비명을 지른다. 살짝 식은땀을 흘리는 여성에게, 하이드라고 불린 남성이 급하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하이드.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앞으론 방심하지 말아야겠어요."
  "그나저나 방금 전의 총격은?"
  "분명히 티나 씨일거예요. 위상능력자에게 총격을 가할 수 있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아가씨, 주위를."
  "알고 있어요, 마치 쓰레기 더미에 파리가 몰려드는 것처럼 몰려들었군요."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들 주위를 많은 이들이 둘러쌌다.
  분명히 그들과 상대한 저 남자의 동료들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과거 검은양 팀을 습격했던 그 자들일테고.

  "상황이 좋지 않아졌어요."
  "아가씨, 제가 어떻게든 뚫어볼테니, 그 사이에 빠져나가십시오."
  "아뇨. 친구를 버리고 가는건 딱 질색이라서요. 같이 싸워요, 하이드."
  "훗, 역시 제 말을 들을 아가씨가 아니시죠. 그렇다면 뒤를 잘 부탁하겠습니다, 아가씨."
  "저야말로, 하이드. 티나 씨가 지원을 요청했을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아요!"

  바이올렛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0명이 넘는 인원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곧 위상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 세차게 강타하는 소리가 고요한 이곳을 가득히 메운다.

.
.
.

  『여기는 티나, 트레이너 현망에 있나? 이상.』
  "여기는 트레이너. 말해라, 티나."
  『현재 바이올렛이 적들과 교전 중이다. 육안으로 식별한 바로는 전의 그 녀석들인것 같다. 신속한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
  "알겠다. 곧바로 늑대개 대원들에게 전파하도록 하겠다. 내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바이올렛을 엄호해주도록. 이상."
  『알겠다. 통신종료.』

  티나와의 대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곧바로 트레이너는 귓가에 꽂고 있는 소형 무전기를 통해 자신 예하의 모든 대원들에게 현재 상황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트레이너다. 놈들이 나타나 바이올렛과 전투중인 모양이다. 모든 대원들은 이 무전을 받는 즉시, 플레인게이트의 입구로 모여 적들과 교전하기 바란다. 신속히 움직여라. 이상."

  그의 무전 내용을 들은 유니온의 연구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묻기 시작했다.
  "밖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요?"
  "도대체 누굽니까!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건가요!"

  질문에 단 한 마디로 트레이너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해."

  그리고 그는 한 여성 연구원을 잠시 바라보았다. 움찔하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여성은 시선을 애써 돌려 피하며 트레이너를 애써 무시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 트레이너는 조용히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가 잠시 멈추어 서서 말했다.

  "김유정 부국장에게 연락하시오. 전에 이슬비 요원의 승급심사를 방해했던 녀석들이 또 다시 나타나서 플레인게이트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말이오. 난 그러면 이만 나가서 싸우도록 하겠소."

  할 말만을 남기고 회색 코트의 남성은 대기실 밖으로 모습을 감추자, 현재 상황이 무척이나 심각한 것임을 알아차린 연구원들 중 한 명이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트레이너가 말한대로 김유정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리라. 김유정에게 현재 소식이 전파된다면, 아마도 저 안에 들어가지 않은 다른 검은양 팀원들이 이곳에 올 것이고, 또한 유니온에도 이 소식이 전파될 것이다.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그들은 모든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져 외부차원으로 향한 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이곳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18-5

  "유리야! 서유리! 어디 있어!"

  한참을 안개속을 헤매는 이슬비는 자리에 결국 멈추어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로 약 20분 전에 자신을 부르는 동료의 소리를 들은 이후로 동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동료를 잃은 후, 계속하여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득도 없다.

  한 가지 더 심각한 것은 한참을 안개 속을 헤매며 다녔기에, 길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완전히 시계(視界)가 0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알 수 없다. 당장 앞에 무엇이 있는가 분간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완전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린 셈이다.
 
  "이를 어쩌지… 유리야, 어디로 가버린거야."

 
  저벅.
  무언가,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발소리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던 슬비였지만, 계속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히 발소리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들려올 발소리라고는 단 한 명 뿐이다, 바로 그녀의 동료이다.

  "유리니? 유리야, 여기야! 나 여기있어!"
 
  기쁘게 발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서 소리를 치는 이슬비.
  무척이나 밝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던 그녀가 어떠한 변화를 느꼈다. 이 주위에 덮힌 안개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곳 저 너머에, 사람의 형상을 한 실루엣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보다 키가 커다란 사람의 형상이었다. 아마도, 유리이겠지.

  "유리야!"
  "…, 쳐…"
  "유리, 야?"
  "도망……, 쳐."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것은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분명히 남자의 목소리다. 미성(美聲)이지만 분명히 남자 음역대의 목소리이다. 더군다나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이기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나타난 것은,
  서유리가 아니라,
  이세하였다.

  "세, 세하야!"
  "오지마아앗! 도망, 치라고오! 제바아아아알!" 
  "어째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는 도망치라며 크게 소리질렀다. 그리고 너무나도 구슬프게 울부짖는 남성은 그대로 땅에 나자빠져버렸다.
  슬비는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쓰러진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고, 그의 몸을 이리저리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숨만 쉴 뿐이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세하야! 세하야! 정신차려, 이세하!"
  "소용없어, 이슬비 양."
  "이제 이세하는 거의 우리의 것이 되었으니까."

  이세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원흉들의 목소리이다.
  증오와 분노로 가득찬 눈으로 쏘아보며 슬비는 소리쳤다.

  "웃기지마!"
  "그 눈빛,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그걸 보니 더욱 너도 이 녀석처럼 만들어주고 싶어졌어."
  "자, 그럼 똑똑히 봐. 네가 믿지 못하는 비극을 보면서, 아주 망가져버려."

  남매의 말이 끝나자, 슬비의 다리 위에 누워 있던 세하의 머리가 아주 천천히 들렸다. 마치 좀비가 일어서는 것처럼 그는 상반신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더니, 이내 완전히 땅을 딛고 일어섰다. 고개를 푹 숙인채 일어선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면서 호흡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슬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분명히 세하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세하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무척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 느낌, 그것은 너무나도 짙게 그의 몸에 스며든 재와 먼지의 힘이었다.

  "이, 세하…"
 
  그의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그의 몸을 짙은 자색의 오오라가 감싼다.
  그것은 너무나도 강하게 발산되는 위상력이 몸 주위를 맴도는 현상으로, 차원간섭현상과 비슷한 원리로 발생하는 이상변화이다. 그런데 이때의 오오라의 색은 분명히 위상력의 컬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평상시의 이세하가 보여주었던 푸른 빛의 위상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더이상 그의 인간으로서의 이성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즉 인간 이세하로서의 사형선고를 의미한다.

  "눈 똑똑히 뜨고 봐. 이제부터 너의 남자친구가 네게 어떤 짓을 할지 말야."
  "아주 좋은 경험이 될거야. 너덜너덜하게 몸이 찢기고 서로 찔러 피를 내면서 죽을 때까지 싸워보라고."

  남매의 모습이 흐려져간다. 이곳에서 이탈해버린 그들은 아마 저 멀리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려는 모양이다.
 
  "날, 찾지… 말랬지…,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 먹…어."
  "어떻게 그래!"
  "제발, 도망가…! 빨리!"
 
  무척이나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지만, 그 말은 슬비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할 기운도, 그리고 말을 이어갈 이성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버렸을 때, 그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

  휴대폰의 가장 기본적인 벨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받아든 전화.
  전화가 연결되었다.

  전화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다.
  현재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이자, 유니온 신서울지부 요원관리국의 부국장인 여자이다.

  "이렇게 전화를 드려 죄송해요."
  "……"
  "상황이 너무 안 좋게 되었어요. 세하를 구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전력 부족이에요."
  "……"
  "저희가 마음에 드시지는 않겠지만, 도와주세요. 지금 외부차원에서 슬비와 유리가 세하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
  "부탁이에요, 정말로."
  "…… 전화, 끊어요."

  전화가 끊어진다.
  어둠으로 가득한 집, 밤 늦게까지 TV 하나를 켜놓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던 이 사람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벽의 한 쪽에 걸려있는 검 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아들."
 
  그렇게 말하고선,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잡았다.







  빨리 쓴다고 했는데, 너무나도 늦게 올리고 말았습니다.
  변명거리가 될려는지 모르겠지만, 시험이 끝나고도 바쁜 일들이 생겨버려서 틈틈이 짬을 내서 쓰다가, 쓰기는 진작 다 썼는데 저번 한 주 동안 상경하느라 시간이 없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PC방들은 이상하게 모두 익스플로러 10을 쓰더군요. 전 11환경에서 작성하느라, 10에서 올리면 소설이 많이 이상하게 되어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뒤늦게 내려와 약간의 수정을 하고 이렇게 올립니다.

  너무나도 늦은 시간에 올리게 되어 죄송하기도 하고... 스퍼트 내서 쓴다고 했는데, 정작 빨리 쓰지도 못하고.. 이 게으른 사람을 용서해주소서.
  곧 완결이라고 제가 너무 풀어졌나봅니다. 빨리 완결내야 독자분들께서도 좋아하실텐데요..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미래는 역시 몰라요. 더욱 틈틈이 써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세요!!

  ※ 최종화 '엔드 크레딧'에 쓰일 팬아트 그려주실 분들 계시다면 꼭 말씀해주세요! 소설의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생각나는 아무 장면이나 그려주시면 됩니다. 그려주신 분들께는 너무나도 감사드릴 것 같아요. 이 글쟁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실 분들을 구합니다!  





2024-10-24 23:13:1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