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기르는 사람 0001
Gerardo 2015-11-02 0
밥은 든든히 먹어두었다. 일하다 배고프면 답이 없다. 혹자는 너무 먹어서 속이 무거워 진다며 먹지 않고 일을 나가야 좋다고 떠벌리기도 했었다. 물론 그는 틀렸다. 그 증거로 그는 죽었다. 난 살았고. 결정적으로 그런 오지랖 넓은 녀석이 개입할만한 의견대립이 언제나 그렇든 나는 과식을 일절 해본 적이 없다. 영양부족으로 쓰러지지 않을 정도는 ‘든든히’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단말을 꺼내 대강 강남의 지도를 훑어보았다. 현재 상황이 얼마나 미처 돌아가는지, 십 수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거물들이 일제히 도시 한복판을 활개치고 돌아다니는데, 문제는 이 지역 담당이 우리 팀이다. 검은 양이라고 이름붙인 이 팀은 내 상관인 데이비드 국장이 밀어붙인 저 연령 예비 클로저 집단으로서, 다가올 미래의 세대교체에 대비하여 신진세력을 조기 양성한다는 거창한 명목 아래 발족한 팀이다. 문제는 다들 나이가 어려서 ( 개중에는 배태랑이 섞여있다고는 해도 따로 구분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 실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출중한 것도 아닌 다들 고만고만한 인물들만 모여 있다. 그들의 잠재적 재능이 어떠하든 간에 현 상황이 그렇다는 것. 때문에 현장에 나가있는 지휘관의 선택이, 잘못하면, 그대로 몰살로 이어지기 딱 좋은 녀석들이다.
그렇게 되면 매우 곤란한 이유가 이 녀석들은 잘하면 칭찬받지는 않지만 못하면 호되게 욕먹을 소지가 다분한 녀석들이라, 다른 말로 하면 숨만 쉬고 있어도 윗분들에게 용돈이나 두둑이 받을 녀석들이다. 또 다른 말로 미성년자들이다.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치면 모든 것을 끝장 낼 폭탄과도 같은 팀인 것이다. 어린양이건 어른양이건. 반대로 그냥 숨만 셔주기만 하면 되는 팀이기 때문에 당장 이 자리에서 공을 세운다고 하여도 데이비드 국장의 어깨에 힘 조금 들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녀석들도 오래 살아남으면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가 된다.
가짜이긴 해도 전장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은 이미 경력자이고, 경력자의 모임은 곧 실질적인 세력으로서 작용한다. 그 실질적 세력은 아무래도 자신들을 후원하는 데이비드의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고 말이다.
때문에 국장은 나 같은 고문관 떨거지를 주워 다가 이런 일을 맡긴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네가 무대 뒤의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하네.”
마음 같아서는 새 직장을 주신 우리 국장님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일에는 속이 빤히 비치더라도 속내를 드러내는 게 아니다. 그냥 “기태는요?” 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했다.
그는 한숨 쉬듯이 후하고 웃고 나서 다시 말했다.
“동기인데도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 모르겠어.”
순간 부아가 치밀면서 입모양만 ‘전우 조 옜었죠.’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국장의 다음 말에는 경청했다.
“자네도 알거라고 생각해, 그는 자네와 달라. 그는 항상 무대 앞에서 모든 조명을 다 받고 싶어 하지.”
전혀 적대적이지 않은 말이다. 나는 이 일을 기태 놈과 같이 시작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그 당시 나는 위상력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운용법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고, 기태는 정말 정석 같지 않은 정석 ( 흔히 말하는 족집게 ) 라인을 잘 타서 내가 겨우 B에 올라왔을 때 S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술집에서도 자기가 이제 정말 하늘같은…….
‘뭐라 했더라?’
기태 놈이 같이 데리고 다니는 여성 클로저 (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 때문에 대판 싸우고 며칠 후에 있었던 일이다. 뻔뻔한 놈인 줄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얼굴만 비추고 가자했던 것이 결국 말술 들이키고 다음날 아침에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장소에서는 그냥 죽어라 마신 기억밖에 없다. 웬일인지 그녀석이 사더라.
“목장에서 가축을 기를 때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나?”
데이비드 국장이 말을 이어주어서 사고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로 고마운 처사였다.
“반대로 가**. 일단, 소. 힘세고 건강한 소가 있어야 해.”
여기서 이해 못 한 사람은 그 소가 나라고 생각하겠지. 결론적으로 아니다.
‘실력 있고 권위 있는 현 에이스 A급 요원 김기태.’
“묵묵히 억센 풀을 씹어줄 건강한 소 말일세.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우리 양들.”
그림 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이 내용은 새로운 유기농법의 사례로 지목된 미국의 농장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야, 이사람 정말 나한테 ‘그걸’ 시키려나 보다.
“그리고 닭. 소와 양이 먹지 않고 남긴 풀이나 그들의 배설물 속 기생충을 잡아먹는 닭.”
그가 그린 그림은 마치 정위치의 재활용 쓰레기 표시처럼 보였다. 세 꼭짓점에는 각각 닭, 소, 양이 그려져 있었다. 소가 왼쪽 아래, 맨 위에 양, 그 옆에 닭. 각각, 기태 놈, 그가 만들 팀, 특경대 혹은 벌처스 거지들. 즉, 이거다. 혹시나 있을 대부분의 강한 차원 종들은 김기태가 우선으로 처리한다. 나머지 고만고만한 녀석들은 그 팀이 치고 남는 전력은 특경대나 거지들이 청소한다. 하하하. 이 인간, 이제 나에게 물어볼 것이다. 나는 이 그림 중 어디에 속하냐고 말이다.
“자네는 자네가 어디를 맡길 거라고 생각하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네.”
벌써부터 면접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말 잘못하면 바로 탈락이겠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답은 나와 있었고 단지 그것을 상대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다. 여기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하는 일반인들은 고민할 대목이지만, 아쉽게도 나는 다분히 상식외의 사람이라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질문을 듣자마자 양복 상의에 넣어둔 볼펜을 꺼내었다. 그리고 낙서된 냅킨에 간단하게 내 낙서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끝냈다. 낙서는 마치 간단하게 작은 원을 그리는 것처럼 짧았다.
그렇게 앞에 놓인 달디 단 커피를 단번에 들이키고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결과
“통신 연결 되었습니다.”
아직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검은 양 팀의 관리요원 김유정 씨의 목소리이다. 직급 상 동급이지만
“작전요원님. 보네주신 작전 지역 조감도 및 거리뷰는 받았습니다. 저희보다 먼저 오셔서 미리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네요.”
직책은 내가 높다. 내가 하는 일이 더 우선되기 때문이다. 무대를 만들고 준비하는 일이다. 대체로 아무리 유능한 지휘관이 지휘한다고 해도 한 사람의 현장 판단은 완벽하지 않는다. 다른 팀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이 팀은 안된다. 생체기 하나 나면 안 되는 팀이다.
“확인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작전구역은 크게 강남역 인근, 역삼 주택가, 그리고 시간의 광장, 파괴된 쇼핑몰. 이 둘도 포함되는군요. 흠, 역삼 골목길, 신논현역. 전부 맞습니까? 아, 현재 팀원들은 이쪽으로 이동 중 입니다. 만나 보실래요?”
벌처스 처리부대 건도 있고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사실은 걔들 만나는 것이 조금 귀찮다. 특히 이슬비와 이세하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예. 항상 제일 위험한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장 효율적인 장소에서 싸울 수 있겠네요.”
간단하게 긍정하고 장비를 확인했다. 40mm 기관포 정상. 탄약 5발 중 1발 소비 정상. 식량 및 예비물자가 든 가방 확인, 정상.
솔직히 근신 당하기 전에 일했던 곳이 감찰국이라 이 일이 익숙하면 익숙했지 낯설지는 않다. 그래도 책상 업무가 반 이었던 그 때는 지금에 비하면 안락하기 그지없는 시절이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냐하면 절대 아니다. 아버지 일도 있고.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지금 나의 일은 우리 양들이 무모하게 과식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곧 이곳에 올 닭들이 어떤지를 확인해 볼 시간이다. 결론은, 바쁘다. 그런 일이다. 그래서 검은 양 내에서 나의 코드는…….
데이비드는 그 날 남자 둘이서 만나기는 많이 부담스러운 식당에서 혼자 남아있었다. 이곳은 그가 자주 애용하는 데이트 코스이며 사업장이다. 그곳에서 그는 방금 그가 점찍어 놓았던 전 감찰국 ‘***’가 낙서한 냅킨을 들어보았다. 본래 그 냅킨에는 자신이 그리는 일종의 구상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었다.
그는 감찰국뿐만 아니라 유니온 대한민국 지부에서 알아주는 유명인 이다. 물론 외국에서는 그다지 이슈꺼리가 되지 않겠지만, 여기는 아직 유교 문화가 뿌리박힌 곳이라 그는 원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그 이기에 데이비드는 더더욱 이 일을 맡기고 싶다.
그가 그린 삼각형은 마치 정위치의 재활용 쓰레기 표시처럼 보였다. 세 꼭짓점에는 각각 닭, 소, 양이 그려져 있고 각각의 동물 그림에는 화살표가 있어서 순환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소의 머리가 귀엽게 그려진 a 점에서 양이 그려진 b점 까지 그 b에서 닭이 그려진 c까지, 또, c에서 a까지 화살표 처리가 되어 있다.
각각, 김기태, 검은 양, 특경대를 뜻한다. 강력한 차원 종들은 해치우며 모범을 보일 김기태. 그 김기태를 본받으며 성장할 검은 양 팀. 남은 전력을 처리하면서 자세한 상황 보고를 해 줄 특경대. 그리고 이 사이클 자체를 지켜낼 자신. 어찌 보면 완벽한 계획이다. 계획은 말이다.
문제는 세상이 계획대로 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분명히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계획에는 여유를 넉넉히 두어야 한다.
만약에 김기태가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담은 검은 양이 떠맡는다. 그러하면 그 부담의 일부가 사고를 부르고 특경대 까지 그 여파가 **다. 검은 양의 일 처리가 시원치 않으면 특경대의 부담이 커지고 그 피드백은 그대로 김기태에게 돌아간다. 이러면 처음 정했던 순서가 망가져서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겠지. 특경대는 자신을 청소부 취급하는 현실에 울분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검은 양을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 자신의 계획에 지장을 준다. 즉, 서로 맛난 풀을 뜯어 먹다가 결국에는 목초지 자체가 황폐화한다.
여기서 해결책이 ‘그’이다. 그는 구명난 목초지를 메우고, 소와 양과 닭이 가장 좋아하는 풀이 많은 곳을 조성하고 그리로 유도한다. 닭은 서운하지 않게 그들의 배설물속 살찐 기생충을 듬뿍 먹인다. 즉, 이 문제는 풀을 기르는 사람을 투입함으로서 해결된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요령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해 낼 것이다. 풀만 잘 기르면, 현장을 잘 조성하면 나머지는 가축들이 유기적으로 다 알아서 한다. 가축들이 마음 놓고 서로 좋아하는 풀만 먹는데 목장이 돌아간다.
풀을 기르는 사람 ( Grass Keeper )
유니온 소속 B급 요원 안원철(安元喆)의 코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