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양의 뜻을 아는가?
클라리시아레이피어 2015-11-02 1
먼저 내 소개를 하자면 그저 그런 유니온 측 인사 중 하나이고, 본 이야기에는 등장도 없었으며, 아마 앞으로도 할 일이 전혀 없을 거라 생각되는 그런 인물이다.
그러니 이름 같은 건 묻지 말라. 어차피 들어도 모를 테니까.
이런 내가 굳이 이런 자리를 빌어서까지, 이딴 글을 써갈기는 이유를 말하자면…, 으음, 뭐라고 해야할까.
아아, 그래.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정말로 질려버렸다. 끔찍하리만치, 짜증나리만치 질려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이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진행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 흑막이 어쩌고, 배신이 어쩌고 하는 풍파극을 나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요즘 상황을 보면서 이런 감상이 든 게 한 두번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조금 참을 수가 없었다.
가령 대표적이고도 결정적인 예를 들어, 지금 TV를 통해 그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낯짝 사진을 뉴스 속보에다가 드러내놓고, '저 현상 수배 됐어요. 데헷~!'이라고 말하는 듯한 데이비드 리를 말할 수 있겠다.
이는 내가 이번 글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이기도 한데, 그 낯짝과 하는 짓거리를 보자니 그 인간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검은양? 당신이 정한 이름입니까?"
"그렇네. 어떤가? 꽤나 괜찮고 귀여운 이름이지 않나."
"짖궃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름이군요. 아마 절대로 일부러겠죠. 안 그런가요?"
"으음? 뭔가 그 반응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시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유럽에서 수십 년을 살다 온 당신이 그런 말을 하십니까?"
"하하. 이런, 이런. 눈치 챘나 보군."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낯짝이었다.
그런 낯짝으로 태연히도 쓰고 있는 안경을 올려 쓴다고 생각하면서, 짜증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이토록 사람 의욕을 뚝뚝 떨구는 사람도 참 드물었다. 특히나 그 일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알파벳은 달라. Sheep이 아니라 Lamb거든."
"더 질이 나쁘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Lamb가 요즘에 양을 나타내는 속어로 쓰였다고는 하지만, 원래 뜻은 어린양 아닙니까? 그걸 그 뜻과 합치면은 나오는 말은 '골칫거리 꼬맹이'이라는 소리죠."
"아니, 왜 꼭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자네는 너무 성격이 삐딱해."
"국장님 만큼은 아니죠. 사람 좋은 얼굴로 상관, 부하, 동료, 친구, 연ㅇ,ㅣㄴ……, 아, 연인은 없었지. 빼고 아무튼간 그런 인간들의 뒷통수를 깔삼하게 후려갈길 인간 같으니라고."
"…자네 뭔가 지금 엄청 실례되는 말을 하지 않았나?"
"기분 탓입니다."
"아닌 것 같은데? 것 참.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었는 데, 그런 말을 하기인가? 이거 참. 자네도 사람이 너무하는 군."
"그렇게 신경이 쓰이시면, 그 테러리스트 처자한테라도 가서 사귀어달라고 하시죠. 안 그래도 요즘 당신이 자기네들의 대의니 뭐나 하는 상황에 놓여있어서 개줄 걸린 개마냥 복종할 것 같던데, 사귀어달라는 말을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네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흑막 노릇에 열심히인 발정난 카사노바."
"……"
순간 입을 뻐끔거리면서 할 말을 잃은 그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던 추억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그 어깨에다가 주사를 한 발 꽂고는 귓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을 때는 정말로 기분이 째졌었는데.
"자, 자, 그럼 지금부터 위상력 주입 수술을 시행할 테니까. 입 다물고 편히 주무시라고요."
"잠…까…, 자ㄴ……ㅔ"
그리고 몇 가지 필요한 조치를 모조리 끝마친 다음에, 마취가 풀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지라, 그가 들고 왔던 파일을 슬쩍 넘겨보았었다.
아아,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이여! 그리 큰 기대는 하지 말라.
애초에 정말로 중요한 파일을 이 자리에 가져와서, 그대로 방치한 채 잠들 정도의 인간이었다면 그 자리에 그 분께서 올려놓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가 본 파일은 그저 그가 말한 검은양이라는 팀의 구성원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기록해놓은 일종의 신상 명세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게 꽤나 예술이었다.
이세하.
차원전쟁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알파퀸의 아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잠재력만큼은 원 탑.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기 어머니의 위상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매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그것을 게임을 통해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음.
그것을 보고 어딘지 모를 장난기가 돋은 나는 옆에다가 이렇게 써갈겨주었는 데, 이게 또 꽤나 괜찮은 추억이었다.
한 줄 요약 : 현실 회피형 게임 폐인.
이슬비.
차원종에 의해 양친이 사망. 그리고 충격으로 위상력이 각성.
이후 위상능력자 양성 시설에 들어갔고, 착실한 엘리트로서의 면모를 보임.
재능은 그저 그런 편이나, 그것을 커버할 정도의 노력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옴.
그 성실한 성격을 높이 사서 리더로서 고려 중.
참고로 취미는 드라마 감상이라고 함.
마찬가지로 적어줬다.
한 줄 요약 : 복수귀가 되다 만 애늙은이.
서유리.
고등학생의 나이에 처음으로 위상력을 각성한 소녀.
이로 인해 검도 선수로서의 경력이 끝장났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유니온의 공무원이 되기로 결정함.
주의 사항은 머리가 조금 심하게 나쁘다는 것이며, 먹을 것에 대해서는 사족을 못 씀.
그리고 가족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함.
또 적어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솔직히 살짝 고민을 조금 해야 했다.
간단한 소개문만으로는 확언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아무렴 어떠랴~!'라는 심정으로 둘 다 적어버렸다.
한 줄 요약 : 긍정적인 바보 or 긍정적인 바보를 연기하는 망가지기 직전의 소녀.
제이.
어린 시절 차원 전쟁에 참가하였던 전쟁 영웅.
위상력의 약화를 이유로 이미 은퇴했었으나, 그 특유의 노하우와 경험을 높이 평가하여 다시 불러들임.
다만, 현재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으므로 장기간의 싸움에는 부적합함을 고려해야 함.
일단은 고문역으로 내정하였으나, 유사시에는 경험이 부족한 리더를 대신하여 명령권을 행사하게 할 예정임.
이번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이 쪽과는 면식도 튼 사이였기에 더더욱 자신 있게 써갈길 수 있었다.
한 줄 요약 : 어디에나 있을 법한 배신당했고, 배신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배신 당할,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 영웅.
미스틸테인.
독일 유니온 지부에서 보내온 성창.
앞으로의 계획에 따라 요긴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엿보임.
각성을 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최강의 전력이 될 거라고 예상.
그러나 만약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시급한 폐기가 요구됨.
휘유우~. 하고 이 때는 휘파람을 불었었다.
꽤나 재미있는 녀석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인정사정없는 펜놀림을 멈추지는 않았다.
한 줄 요약 : 자아정체성 결여 물질.
마침, 거기까지 딱 썼을 때 데이비드가 일어났고, 내가 낙서한 종이를 보더니만 허탈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나를 잠시 째려보더니만 그대로 일어나서, 몇 번 몸 상태 체크하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런 다음에 본 이야기가 시작될 동안 열심히, 아주 열심히, 내가 말한대로 뒤에서 흑막 노릇을 하며 즐겨댔다.
그럼 나는 그 때 뭐하고 있었냐고?
으음, 솔직히 별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뭐, 가끔 옛날에 알고 지냈던 녀석 중 하나가 얼굴에 검은 지퍼 달린 마스크를 쓰고 와서는 왠 개소리를 내뱉길래 대강 필요한 자재와 기계를 빌려주거나, 옛날에 그 분께 소개 받은 꼬꼬마 차원종 둘이 와서 소름 끼치는 어투로 협박을 하며 뭐라 ***거리는 것에 최대한 협조를 한다거나, 아니면 내가 주식을 투자했고, 약간의 기술 고문 직을 맡고 있는 회사에서 찾아온 왠 여자를 명령 받은 대로 거기 사장한테 소개시켜줘서 왠 괴상한 처리부대의 감시관으로 취임시켜주거나, 되도 않는 헛짓거리를 꾸미는 지부장에게 도저히 써먹을래야 써먹을 데가 없어보이는 아직도 자기가 A급을 뛰어넘은 S급이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를 이어붙여주거나 했지만, 그런 짤막한 에피소드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솔직히 그 때는 기계 하나 뜯어고치느라 조금 바빴기에 녀석들 부탁 들어주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특히 본래 집중하던 일이 몰래 해야 하는 일일 때는 더더욱 말이다.
하긴, 애초에 취미 삼아서 멋대로 저지른 일이니, 나도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뭐, 거기서 정식 요원 시험을 치루는 예의 그 골칫덩이 꼬맹이 팀의 모습으 보자니, 그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으니, 뭐 됐다.
아아, 그러고보니 그 때가 좋긴 좋았는 데.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에 왔는 지 나 참.
하여간, 데이비드도 데이비드다. 저런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면상을 가지고서, 주위 눈치를 보며 일할 거면 그냥 ** 지낼 것이지, 왜 괜히 욕심 부리다가 현상 수배같은 게 걸리냐, 이 말이다.
덕분에 나도 이제 슬슬 잠적해야만 하지 않은가?
유니온이 꼬리를 맡는 것도 걸리고, 저 이상만 앞서는 테러리스트들이 달려올 것도 꺼림칙하기 이를 데 없으니, 내가 사라져줘야지. 뭐.
그럼 기회가 닿는다면 다음에 또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슬슬 미칠 듯이 꺾이고 꼬여가며 돌아가는 세상에서 언제까지고 살아남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