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좋아해

루이벨라 2016-10-31 6

※ 세하의 특수요원 심사 퀘스트 내용을 토대로 써보았습니다. 특수요원 퀘스트를 안 하신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수 있습니다.(그래봤자 특수요원 심사 내용 아주 조금 나옵니다.)

※ 전편에 썼던 세하유리와 내용이 약간 이어집니다.(그렇지만 전편을 꼭 읽어야만 내용을 이해할 정도의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지내야했던 적이 많았다.


 노을이 지고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과 헤어질 때쯤이면 언제나 내가 마지막으로 집으로 출발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오늘은 엄마가 무슨 맛있는 반찬을 해준다, 오늘은 아빠와 같이 놀기로 했다, 라는 등의 스쳐지나가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어렸을 때의 내가 매일 저녁마다 가야했던 집에는...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없었다...




* * *




 막간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마저 게임을 하기 위해 구석에 앉아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후 내 등을 향해 거세게 안기는 사람 한명...얼마나 세게 안겼는지 하마터면 콤보를 잘못 구사할 뻔했다.


 "세하야!"

 "...자꾸 달라붙지 마, 서유리."

 "에이, 왜 이리 까칠하게 굴어?"


 서유리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꾹꾹 눌렀다. 귀찮다. 감상은 그거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유리는 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등뒤로 바짝 다가와 내가 게임하는 양을 구경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게임을 하고 싶은가해서 몇번 게임기를 손에 쥐어준 적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서유리는 '아, 아냐, 난 게임 잘 못해' 라면서 다시 내 손에 게임기를 쥐어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처음에는 귀찮았다. 난 게임을 하면 내 세계에 빠지는 편이다. 게임 하나에만 집중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유리가 내 등에 달라붙어 게임을 관람한지 4번째가 지나고 나서야...겨우 자각하게 되었다.


 서유리가 나를 뒤에서 껴안을 때마다, 내 목을 살짝 감은 서유리의 팔이 너무 따뜻해서, 내 이름을 몇번이고 부르는 목소리에 너무 두근거렸기 때문에 게임이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작은 온기가 이렇게 따스했다는 걸 몇년동안 알지 못했다.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발현할때마다 나오는 열기와는 비교도 안되었지만 어쩐지...그게 더 가슴에 남아버려...


 이름을 불리는 것도 비슷한 경우였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세하' 라는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불러왔는데 이렇게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영화나 책에서와 같이 '그 목소리로 내 이름만 불러줘' 와 같은 생각(솔직히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어떻게 하는지 싶다)은 안했지만 비슷한 맥락 선에서 보면...조금 기뻤을 뿐이다. 갑자기 로또 당첨이라도 된거 같은 기쁨은 아닌,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려나.


 그냥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씩 쌓여서...


 좋아하게 된건지도 모른다.




* * *




 제일 어렸을 때의 기억의 시작은 텅 비어있는 우리집 거실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었다. 컴컴하고 어린 내가 보기엔 컸던 가전제품들의 행렬, 그리고 사람이 살고 있는것 같지 않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거실에서 난 무엇을 하고 있었냐하면...'어울리지 않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때의 상황이라면 넌 분명 게임하고 있지 않겠어?' 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게임 같은 거에 관심도 없었다. 그냥 현관문이 열리는 게 잘 보이는 거실 부근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걸 기대하면서, 그 열린 문으로 내가 반갑게 맞이할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혼자서 밤을 보내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 기억은 별로 좋지 못하게 끝을 맺어야만 했다.


 결국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그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커다란 집에 혼자 있는 어린애가 가지고 있는 건 무료하게만 느껴지는 어쩌면 쓸모없다고 생각이 되어질지도 모르는 무수한 시간뿐. 요리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같이 먹어줄 사람은 없었다.


 혼자 먹는 밥은 늘 식욕이 안 도는 법이다.


 이따금씩 집으로 사람들이 오고가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의 친구, 혹은 동료라는 사람들이 가끔씩 찾아와 내 안부를 물어보고 갔다. 엄마의 근황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엄마가 세하 엄청 보고 싶어해...!

 -엄마가 세하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엄마가 세하...!

 -엄마가...!


 그럼 뭐해. 정작 본인은 오지도 않는데. 그런 말 따위...그냥 허울뿐인 '말' 뿐이잖아.


 엄마는 혼자 있는 내게 미안했는지 그 다음부터는 으레 선물같은 것도 같이 보냈다. 장난감, 동화책, 스케치북 등등...뭐 그런 것들이었다. 이런 물건들의 특징은 혼자 내버려두면 금세 차가워진다는 것이었다. 혼자면 춥다는 건 잘 안다.


 그리고 몇년 후에야, 난 엄마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내가 항상 바라보았던 문에서, '우리 세하~!' 하면서 날 힘껏 껴안아주던 엄마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엄마...였는데...


 어째...기분이 이상했다.


 그후로 엄마는 거의 집에 계셨다. 제법 나한테도 말을 걸려고도 하고 나와 재밌는 추억이라도 만들고 싶어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상하게...실감이 안나. 그냥 엄마라는 허상이 같이 있는 거 같은 느낌?


 물론 내가 엄마를 싫어한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가 돌아오셨을 때는 무척 기뻤다. 지금도 나와 엄마는 그렇게 나쁜 관계는 아니다.


 다만 문제점이라면...


 -세하야? 오늘 엄마랑 쇼핑 갈...?

 -됐어요.


 돌아와서 분명히 기뻐해야할 엄마에게 알수없는 증오가 꿈틀거리고 있던 내 자신이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왔을 때의 상황은 내가 상상보다 더 했다. 처음 유니온 건물로 들어갔을 때의 나에게 보인 관심은 의외였다. 너무나도 의외였다.


 -네가 그 알파퀸 아들이라며?

 -알파퀸 아들이라면 어머니처럼 훌륭한 클로저가 되는 거지?

 -알파퀸 아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테스트...

 -알파퀸 아들이라면...

 -알파퀸...


 날...'알파퀸의 아들' 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내' 가 아니라 '나의 엄마', 알파퀸 서지수였다.


 -엄마가 알파퀸이면 이정도는 당연하지?

 -엄마가 알파퀸이라니! 부럽다, 야~

 -헤에...알파퀸 서지수! 나 완전 팬이야...

 -와, 알파퀸 눈색이랑 똑같구나!


 훈련을 같이 하는 아이들도 엄마 이름은 잘 알았지만 내 이름은 잘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물어도 '알파퀸 아들이래요!' 라는 대답을 했다. 그게 한 10번 정도 반복되어지니...


 ...질렸다.


 그때쯤부터 머리에 염색을 하고 다니게 되었다. 눈에도 서클렌즈를 끼게 되었다. '엄마의 아들' 이라는 것이 정말 내 이름이 되어버리는 거 같아서. 엄마와 전혀 다르면 적어도 '엄마의 아들' 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 않을거라 믿으면서.


 클로저 일은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그 일을 해버리면 정말 엄마의 아들로 계속 살아갈거 같아서.


 클로저 말고 다른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게임. 게임할때에는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게임에서 오직 이기기 위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집중하니까 그런 것들에게 신경을 쓸 시간은 자투리도 없었다.


 어렸을 때는 혼자인걸 무척 싫어했던 내가, 이제는 내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거리를 둔다. 하지만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렇게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던 중 어느날 엄마가 나에게 먼저 권유했다. '<검은양> 프로젝트' 라고.




* * *




 그리고, 그리고...


 -여어! 이세하! 뭐야뭐야, 너 정말 게임하는거야? 우와, 정말 엄청난 게임중독자이네.


 첫날부터 내 목에 과감하게 헤드락을 걸며 등장한 미모의 여고생. 나와 같은 신강고등학교 교복을 입었더랬다.


 -너 내 얼굴 몰라? 우리 같은 반이잖아!


 내 얼굴과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는 말에 그 아이는 당연하다는듯이 말했다. 자꾸 치근덕거리는 그 아이가 떨어지게끔 엄마를 아냐고 물었다.


 -알파퀸? 네가 알파퀸의 아들이라고?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는 의외로 태연한 반응이었다. 다시 한번 말했다. 나 정말 알파퀸 아들이라고.


 -응? 그게 뭐 어때서?


 왜 그러냐는 그 아이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말...의문을 정말 모르는건지, 연기를 하는건지...어느쪽이든...다시금 하려던 게임에 집중하려하자 그 아이는 다시 헤드락을 걸었다.


 -얘얘, 지금 이렇게 게임만 하고 있을때야?! 유니온의 정식요원은 4급 공무원 취급이라고! 연봉도 두둑하고...!

 -...


 그게 서유리와 나의 '공식적인' 첫만남이었다. 소감은...그냥 보통.




* * *




 "...있잖아."

 "응?"


 한창 내가 깎은 과일을 먹고 있는 서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한창 게임에 열중해있는 것으로 알아 군말없이 앞에 놓인 과일만 먹고 있던 서유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 말이야..."


 마저하고 있던 게임기의 화면에서 눈을 뗐다. 사과를 오물거리고서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서유리의 맑은 벽안을 바라보면서.


 "...널 좋아해."


 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네가, 내 이름을 곧장 불러주웠던 네가, 실수로 렌즈가 빠져 금안을 보였을 때도 '예쁘다' 라는 말만 해준 네가, 승급 심사 프로그램에서 돌아왔을 때 걱정했다며 날 안아준 네가, 내가 요리를 할때마다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어주는 네가, 가끔은 엉뚱하지만 그래도 팀원들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네가, 볼때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네가...


 너무 좋다.


 서유리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먼저 꺼낸건 나였지만, 도저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이상하게 자꾸 뺨 부근으로 열이 달아올랐다. 그렇다면 지금쯤 얼굴 완전 빨개졌겠지...? 흐아, 이런 모습을 보일 순 없...


 쓰윽-


 '응?'

 "나 좀 봐."


 저리 말하며 그런 내 얼굴을 찬찬히 들어올린 건 서유리였다. 어쩌다 바라보게 된 서유리의 얼굴은 잔잔했다. 미세한 감정 0.1g이라도 들어가면 바로 얼굴에서 표시가 날거 같이 잔잔한 얼굴이었다.


 아, 그런거구나...서유리가 한숨을 살짝 쉬었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있었다.


 "하아...내가 먼저 말할려고 했는데! 헤헤~첫타자 뺏겨버렸네...?"


 아, 그런거구나...서유리가 대답했다.


 "나도야. 나도, 세하, 좋아해...!"


 그 직후 입술 부근에 닿은 작은 온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또 따뜻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작가의 말]

세하 특수요원퀘 하면서 이 대사를 보고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소설에서의 세유는 항상 서로 쌍방향 삽질을 하네요. 유리쪽에서도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언제 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p.s. 마지막 장면은 지나가다 본 애니의 장면 하나를 참고했습니다.(어떤 애니인지는 안 알려드리겠습니다 ㅎㅎ)


추가 p.s. 세하유리 회지 내고 싶다...

2024-10-24 23:11: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