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스토리]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루이벨라 2016-09-04 0

※ 티나와, 티나를 만든 과학자를 초점으로 둔 단편입니다.(하지만 티나는 별로 등장하지 않아요...)

※ 설정 날조주의.

※ 그 과학자가 왜 티나를 살리고 싶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시작으로 쓴 깨작깨작한 단편입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건가."

 "아, 칼. 어서 오게."


 칼바크 턱스는 내심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친구를 보았다. 쾡한 얼굴, 얼굴 밑까지 내려와 줄넘기를 해도 될거 같은 다크서클, 영양상태의 부실함이 한눈에 보이는 마른 몸. 자신과 함께 천재적인 과학자로 예찬받던 그 남자는, 언제나 의기양양했던 그 남자를, 칼바크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칼바크와는 다른 분야인 안드로이드 분야에서 혜성처럼 떨어진 신인, 이라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과학자로 추앙받았었다. 실제로 그럴만한 능력도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그럴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저 친구의 문제점은...사람의 정(情)이 너무 깊었다는 것이었다. 과학자란 어느 순간에서는 냉정해져야하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는 정이 지나치게 깊다는 것이었다.


 이게 몇년 전에 일어난, 더 이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소위 전쟁...이라 불리는 학살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맞서는 적 앞에서 인간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늘어나는 건 희망이 아닌 절망, 그리고 희생자의 수였다.


 칼바크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러다 자네의 몸이 상하겠네."


 애초에 그가 칼바크에게 말한 건 허황된 '꿈' 에 지나지 않았다. 과학자라는 사람이 허황된 '나비' 만을 쫓는다는게 칼바크는 영 미덥지 않았다. 처음에 친구인 그를 도와준 이유는 단순한 연민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가족마저 잃어버린 친구의 모습은...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사실 위태로운건 지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년을 같이 매달렸지만 그의 친구가 꿈꿨던 건 '유토피아' 와 같은 것이었다. 환상적이지만,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와 같이, 손에 닿지 않는 것. 하지만 지금은 그 위태로움이 한층 더해진거 같았다.


 칼바크의 진심어린 걱정에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칼바크를 보았다. 칼바크는 움찔거렸다. 그의 친구가 저렇게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칼."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친구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말리지 말게. 나 혼자서라도 해낼거니까 말이야..."

 "..."


 칼바크는 곧바로 연구에 몰두(라기 보다는 미쳐가는 듯한)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끝으로 연구실을 나왔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총명하고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친구가 하나의 광견(狂犬)이 되어버렸을까.


 인간들이 흔히 가지는 감정. 정, 그거 하나 때문인가.


 역시 인간들이 아닌 '신' 을 믿기 시작한 건 자신이 그 친구보다 더 잘한 일인거 같았다.


 그 후로 칼바크가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친구의 소식은 죽었다라는 소식이었다. 위상력 창출 안드로이드를 만든다는 소문에 테러리스트 단체가 그의 연구소를 습격해서 저항하던 와중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년 후, 칼바크는 국제 공항에서 뜻밖의 얼굴과 재회하게 된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자식이 한명이 있는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아내가 죽고 난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딸아이가 나한테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곰돌이 인형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던 딸은 정말 평범한 소녀였다. 연구실에 종종 찾아와 옆에서 그림책을 읽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이게 살아있는 행복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딸아이가 10살이 되기도 전에 일명 '전쟁' 이 터졌다. 난 차원종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개발이라는 연구진의 일원 중 한명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소위 말하는 윗 상부에서 연구소를 순찰하러 왔다가 그날 나와 같이 있던 딸아이를 보게 된 것이다. 곧이어 난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딸아이가 위상력에 각성한 위상능력자였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계속되는 전쟁통으로 인해 인력은 부족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무작정 끌고 가 전쟁에 투입을 시킨다고 했다. 딸아이는 한번도 무기를 사용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라고는 없을 줄 알았다. 딸아이가 전쟁통에 끌려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난 서둘러 짐을 챙겼다. 내가 반역자, 라는 호칭을 얻게 되어도 소중한 딸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도망칠 수 없었다. 딸아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난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요.

 -끝내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아가?

 -아빠, 차원종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한다는게 클로저의 사명이라고 들었어요. 난...가야만 해요. 가서, 사람들을 구할 거에요.

 -...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난 결국 딸아이의 말을 들어주었고 딸아이는 그 다음날 바로 전쟁통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가끔씩 연구소로 날 찾아오는 딸아이의 두손에는 늘 물집자국이 잔망스럽게 나있었다. 총이라는 거 생각보다 무겁고 조준하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라고 딸아이가 말을 할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딸아이는 자신을 가르쳐주는 '교관' 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늘 조잘거리며 내게 말을 하곤 했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너무도 강한 사람이라고. 자신도 교관님처럼 강해진다면 이 전쟁은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라고.


 딸아이가 그림책에서 조준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대견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딸아이는 자신이 내민 소신을 꿋꿋이 밀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늘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씩씩하게 적응을 해가는 딸아이와는 달리, 전쟁에서 나오는 희생자의 숫자는 날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묵주를 손에 들고 밤마다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딸아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그리고 나한테 와서 밝은 미소를 띄우며 조잘거릴 수 있는 하루를 보내게 해주십시오, 라고.


 그리고 신은 내 기도를 무시했다. 딸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신따위는 없었던 거다. 그래, 그걸 왜 이제 알았을까.


 ...믿을건 오로지 나, 나밖에 없었을텐데.




*




 가끔 나를 만든 과학자에 대해서 의문이 들때가 많았다.


 그와 나는 어떤 관계였을까. 왜 그는 날 살리려고 했을까. 그 목적이 단순히 테러리스트에게 팔기 위해서? 클로저 암살용 안드로이드로?


 그게 아니라면...




*




 딸아이의 장례식에서 혼절하듯이 울었다. 인간의 감정이 극으로 치닫게 되면 모든 것을 울음으로 승화하게 된다는 것처럼 꼬박 3일 동안 내리 울었다. 분노, 슬픔, 후회 등등 복합적인 의미가 많이 담긴 눈물이었다. 그 중 대부분의 감정을 차지한건 나약해서 있지도 않은 신에게 기대었던 나에 대한 분노였다.


 ...이렇게 있을수만은 없었다. 뭐라도...아무거라도 내가 살 의미를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떠올랐다. 아니, 필사적으로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딸아이를 어쩌면,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




 김가면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기적적으로 움직이게 된 안드로이드라고. 나와 똑같은 설계대로 안드로이드를 더 만들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김가면은 나에게 말했다.


 -티나씨가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정말로 티나씨를 살리고 싶었던 순수한 목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악의 따위는, 없었다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




 소문을 듣고 온 테러리스트 단체에게 그만 총을 맞고 말았다. 거의...이제 딸아이가 눈을 뜨기 직전이었는데...절대로 못 넘긴다는 나를 향해 테러리스트들은 총을 겨누었다.


 맞는 순간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테러리스트들이 딸아이가 담긴 캡슐을 옮겨가는 것을 보자 마음이 찢어질거 같았다.


 아, 안되는데...이제...거...의...딸아이가...눈을 뜨면 보여줄 세상이...첫번째 세상이...거기가...되어서는 안되는데...


 눈이...이상하게 감겨만 갔다...




*




 칼바크 턱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 옛친구의 딸, 티나여.


 ...아버지였구나.




*




 딸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해주고 싶었던 것이 있다. 딸아이가 생전에 좋아했던 그림책을 잔뜩 사주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 환하게 웃는, 티없이 웃는 딸아이의 미소.


 딸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줄 선물이 있다. 하얀 곰돌이 인형. 안고 자기에 적합한 사이즈의 작은 곰인형.


 딸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듣고 싶던 말이 있다. 아빠, 라고.


 딸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다시 아빠 딸로 와줘서...고맙...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2024-10-24 23:11: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