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하] 트라이앵글(Triangle) - 클로저, 이세하의 이야기
유리벨라 2016-03-28 1
※ 예전에 큡세하유리 & 큡세하유리세하 쓴 사람입니다.
※ 여기서 나오는 3세하는 정세하(우리가 익히 아는 게임폐인 이세하)와 큡(큐브)세하(40판 큐브 시절 보스로 나왔던 차원종이 된 세하)와 광휘세하(암흑의 광휘로 인해 흑화된 세하)입니다.
※ 3세하 소재 많이 좀 써주세요. 3세하는 사랑입니다. 약간의 세슬(세하슬비) 요소 포함.
※ 이번은 '정세하'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다음편에서는 '큡세하' 나 '광휘세하'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될겁니다.(아마도)
※ 서클톡방에서 잡담하다가 소재를 얻어 쓰게 되었습니다. 서클분들 사랑해요~
※ 설정 날조주의. 그리고 항상 말합니다. 큐브 & 폭주큐브는 아주 좋은 소재입니다.
일상의 작은 균열은 언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 * *
"아, 또 게임 오버잖아..."
유니온 신서울 지부 소속 <검은양> 팀의 클로저 이세하. 신강고등학교 2학년 C반에서 재학 중. 혈액형은 A형. 취미는 게임. 앞서 말했듯이 '게임' 이 취미인 소년답게 세하는 한창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세하가 열중하고 있는 게임은 학교 친구인 석봉에게서 다운을 받은 일명 추리게임이었다.
원래 세하는 추리게임 같이 골똘히 생각하는 게임은 딱 질색이었지만 석봉이 알려준 군침이 도는 정보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게임의 난이도가 워낙에 헬(Hell)이라서 제작사에서 내기를 걸었다고 했다. 게임이 출시된지 보름 안에 이 게임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사람에게 한해서 게임 관련 상품을 후하게 준다는 것이었다. 석봉 앞에서는 그런 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척 했지만 그래도 한번 알고나니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결국 1단계에서도 못 깼다는 석봉의 게임 데이터를 받아서 지금 세하가 이어나가면서 하는 중이었다.
석봉의 말에 의하면 게임 클리어까지 49단계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세하는 16단계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어려워봐야 어려울까' 라는 가벼운 마음과 상금을 쉽게 탈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게임을 잡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런 생각은 점점 안하게 되었다.
세이브를 간신히 하며 겨우 16단계에 도달을 하기는 했지만, 49단계까지 남은 계단이 너무나 많았다. 그제서야 제작사가 보름이라는 시간을 제한하면서 크나큰 내기를 걸었는지 이해도 되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게임이 쉽게 클리어되지 않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게 분명했다.
"또 이슬비가 잔소리를 해대겠지..."
안 그래도 게임기를 달고사는 세하가 마음에 안드는 슬비는 요즘들어 세하가 더 게임기에 열중하는 모습에 화가 난거 같았다. 가뜩이나 국제 공항이 베리타 여단에게 점령당한 후, 남은 잔존 세력들을 정리해야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의 세하 모습이 슬비 눈에 썩 좋게 보이지는 않을터였다.
"..."
G타워에서 국제 공항으로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들을 믿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아군이라고 믿었던 데이비드가 사실은 배신자였고, 신강고에서 만나 몇번 싸워보기도 했던 벌쳐스의 처리부대였던 <늑대개> 팀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고...
분명 G타워에서 아스타로트를 처리하고 돌아온게 어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이 현실이 꿈이 아닐까. 그렇다면 꿈에서 깨어난다면 내 앞에 닥칠 현실은 이거와 다른걸까?
삐-
"아..."
잠시 딴생각을 했을뿐인데 게임기에서는 자그만 오류음이 들렸다. 버튼을 잘못 눌러서 게임오버가 또 된것이다. 이거 49단계까지 갈 수 있는거 맞아? 벌써 16단계에서 13번째 실패를 하고 있다고. 추리게임 같은걸 안해본 탓도 있지만 이건 너무 말 그대로 헬, 지옥의 난이도였다.
흠, 이슬비라면 잘하려나? 수사극을 보는게 취미인 슬비에게 이 추리게임은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하가 게임기를 붙들고 살면서 임무에 방해가 된적도 적지 않게 있는터라 '게임' 이라는 매체에 대한 인상은 슬비에게 안 좋은 편이었다. 말도 붙이기전에 염력으로 게임기를 뺏어서 부숴버리든지 하겠지...
그러고보니 오늘은 이 게임이 출시된지 8일째가 되는 날이다. 보름의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7일이라는 시간이 더 남기는 했지만 아직 반도 못 깬 이 게임을 남은 시간 안에 다 깰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요새 안 그래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불면의 밤이 며칠동안 이어져서 심신이 피로한데 정해진 기간 내에 목표를 완성하려면 연거푸 잠을 줄여야할 판이었다.
요즘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국제 공항에 머무르며 하는 일은 잔존 일당의 처리였다. 그에 따라 각 사람들별로 맡은 구역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슬비는 관련 보고서를 꼼꼼히 내라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상황에 맞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보고 '목표치' 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임무에 신경쓰게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서인지도 모른다.
세하는 한숨을 쉬었다. 또 슬비에게 잔소리를 듣기는 싫었으니까 곧 건블레이드를 잡고 맡은 작전 구역으로 떠나기는 해야했지만...
일단 눈앞에 닥친 목표를 작게 잡아보기로 했다.
"일단 17단계 시작 부분까지는 가보게 하자..."
그러기를 10여분. 세하는 짜증어린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단계 클리어까지 갔는데 npc가 쳐놓은 함정에 걸려서 또 '게임 오버' 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16단계를 어떻게 클리어할지는 대충 알거 같았기에 슬슬 작전 구역으로 가려고 하는 찰나...
바로 옆, 귀가 위치한 곳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오랜만이야, 이세하."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 *
-난 차원종이 된 이세하, 바로 너 자신이라고.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의 악몽이 다시금 살아나는 거 같았다. 게임기를 든 왼손과 건블레이드를 잡은 오른손이 작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망령과도 같은 존재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떨고 있는건 아니었다. 세하가 지금 두려워하는 건 '차원종이 된 자신' 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존재' 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다시 안 올거 같이 말하더니."
"흐응, 내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좋은 말로 할때 당장 꺼..."
자신의 도플갱어와도 같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이 녀석을 돌려보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소리의 진원지로 몸을 돌린 세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흠? 왜 그러지? 반응이 초면인거 같이 말이야?"
분명, 세하는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 를 2번 만났다.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그 '존재' 는 자신을
'용의 위광을 얻은 이세하' 라고 소개했다. 그때 보았던 묵직한 갑주를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이 처음, 큐브에서 승급 심사를 할때 나타났던 '차원종이 된 이세하' 의 모습이었다.
지금 자신과 같은 정식요원복을 입은, 그러나 자신과는 다르게 적안을 가진, 웃는 모습이 남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그때의 모습이었다.
분명 2번째 만났을 때는 1번째 만났을 때와 동일 인물인것처럼 굴었으니 지금 자신을 아는 척하는 이 인물도 그들과 동일 인물일수 있다.
"...그냥. 전에 만났을 때와 모습이 좀 다른거 같아서."
"무슨 소리지? 난 그때 그대로인데?"
"그때는 분명 용의 위광을 얻은 이세하라고..."
세하가 이 말을 꺼내자 앞에 있던 상대방은 매우 당황한 눈치였다. 평소에 능글맞던 포스와 다르게 세하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장난기와 냉소가 섞여있었던 적안에는 진지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녀석을...보았다고? 정말이야?"
"...왜 시치미를 떼는거야. 그 녀석이랑 너랑 동일인물 아니야? 똑같이 '차원종이 된 나' 라고 했잖아!"
"동일인물? 하, 내가 그딴 녀석이랑 동일인물이라고?"
세하의 반박에 '세하' 는 웃어보였다. 고른 이가 다 보일 정도로 아주 크게. 하지만 이 모습에 오히려 세하는 꺼름칙했다. '세하' 는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았으니까.
"...대단하군. 아주 대단해. 그래서, 천하의 이세하께서 어떻게 했지?"
"..."
자신을 묘하게 깎아내리는듯한 '세하' 의 말투에 세하는 심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그때의 갑주를 입은, 위광을 얻은 세하와 지금 이 앞에 있는 '세하' 는 다른 존재인거 같은 예감이 들어 폭주를 해서 폐기되었던 1세대 큐브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해주었다. 세하의 설명을 다 들은 '세하' 는 처음 보였던 당황했던 모습과는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입가에 우아한 호선을 그리고 있는 미소까지 가지면서 말이다.
"...그렇군. 일이 아주 재밌게 되었군."
"...이거 하나만 물어**. 도대체 너희 정체는 뭐야?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건데?!"
"말했잖아. '나' 는 '차원종이 된 이세하' 라고. 물론 '그 녀석' 도 마찬가지지."
'그 녀석' 이라는 건...폭주의 큐브에서 만났던 '세하' 를 말하는 거 같았다. 세하는 언제나 정해진 답변에 답답함을 느꼈다.
차원종이 된 이세하. 앞에 있는 존재에게도, 폭주의 큐브에서 만났던 존재에게도 들었던 그들의 정체.
차원종의 힘에 아무리 유혹을 느꼈다고해도 자신은 이제는 그런 유혹은 뿌려칠 수 있을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유혹을 느꼈던 시절의 자신보다는 훨씬 더. 그런데 아직도 무의식 중에 그런 마음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세하는 자기 자신이 구역질나게 느껴졌다.
"차이는 있지. 나는 막연히 '차원종의 힘을 가진 이세하', '그 녀석' 은 '용의 위광을 얻은 이세하' 지만 말이야."
그 차이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하가 그들에게 듣고 싶은 대답은 정체와 관련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고...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거지?!"
그렇다. 무의식이면, 자신의 무의식이 실체화가 된거라면 왜 자꾸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걸까. 자신의 무의식 중 일부분은 아직도 자신이 차원종의 힘을 받아**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적어도...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충분히 강해졌으니까. 정식요원이라고 유니온에게서 정식적인 명칭도 내려받았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시물레이션을 통해 실체화가 된거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큐브 안에서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그때는 큐브가 작동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로 인해 세하는 그게 정말 '시물레이션' 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실에 점점 다가올수록 믿지 않으라는 주문을 몰래 외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 자기 앞에 일어나는 일을 믿고 싶지 않기에는...
"너무 생생하지?"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 '세하' 가 세하에게 되물었다. '세하' 가 세하에게 손을 뻗어서 뺨을 쓸어내렸다. 시물레이션이 아니다. 실체로 존재하는 류의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도 내가 한낱 시물레이션 따위와 날 비교할거야?"
"...아니."
결국 자그맣게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세하에게 만져진 촉감은 시물레이션류가 아닌, 진짜 '존재' 하는 류의 촉감이었으니까. 하지만 '존재' 는 하되, 존재하지 않은 거 같은 묘한 기분도 들었다. 세하 자신에게는 온기가 있지만 눈앞에 있는 적안을 가진 '세하' 는 온기는 없었다. 차가워서 마치 죽은 사람의 냉기를 연상케 했다.
"...존재는 하지만 살아있지는 않는거 같아."
"흠,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군."
전에 폐기된 큐브에서 만난 '세하' 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실제할 수 있다는 거의 기쁨을 네 녀석은 모를거야. 실제하는 거의 따뜻한 체온, 실제하는 것의 심장 소리...네 녀석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거라 모르겠지!
"흠, 네 앞에 자꾸 보이는 이유가 그거와도 적지 않은 관련이 있긴 하지."
'뭐지...? 내 생각을 읽고 있는거 같잖아...?'
"너와 내가 별개의 존재라고 해도 내 근본적인 본질은 '이세하', 바로 너라고."
네가 곧 나이기도 하니까, 그런거 아는건 대충 쉽잖아? 어깨를 으쓱거리는 앞의 상대가 얄밉게 보이기도 했다.
"뭐, 오늘은 좀 원래의 목적과 다르기도 하지만."
"..."
"지금 저 앞에, 절대 가지 마."
왠 경고? 평소(그래봤자 딱 한번 만났지만)에는 차원종이 되라느니둥, 실제하는 거의 기쁨이라니둥의 소리를 날릴텐데...? 갑작스럽게 자신을 걱정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세하' 가 가르킨 방향은 지금 세하가 가려고 하는 작전 구역 방향이었다. 슬비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가려고 하는 그 작전 구역이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내 작전 방해하기까지 하는거야?"
"아, 이건 장기적으로 보면 너와 나를 위해서야."
"...그거 참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네."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세하는 중얼거렸다. 세하가 늘상 손에 쥐고 있는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는 행동은 작전 구역에 진입하기 직전에 하는 행동이었다. '세하' 가 하는 말은 무시하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절대 가지말라는 표현과는 달리 '세하' 는 딱히 세하를 말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냥 참 마음에 드는 조언(?)을 말해주지, 라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작전 구역으로 향하는 세하를 보며 '세하' 는 중얼거렸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이세하."
* * *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지?'
슬비가 맡긴 작전 구역은 오늘뿐 아니라 근 이틀동안 세하가 자주 찾았던 곳이었다. 이제는 작전 구역의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다고 과언이 아닌 장소인데 오늘따라 무언가가 달랐다. 공기가 갑갑하다고 해야할까, 중력이 무겁다고해야할까, 어쨌든 그런 류의 이상한 느낌이었다.
'빨리 잔당 처리나 하고 가서 쉬어야지.'
세하에게 쉰다는 의미는 게임을 한다는 소리지만 말이다. 마침 오늘따라 잔존 일당이 별로 보이지 않아 빨리 돌아갈 수 있을거 같았다. 이제 얼추 정리는 끝낸거 같아 유정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 뭐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산에서 호랑이와 마주친다면 오금이 저린다(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표현으로는 참 알맞은 어휘 선택이었다)는 느낌류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자신을 멈추게 하고 있는거 같았다.
아까 작전 구역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세하' 의 말이 떠올랐다. 알고 있었으면 좀 더 자세하게 말하던가, 아니면 필사적으로 말리던가...! 아니, 그전에 세하와 '세하' 는 그런 관계를 할만큼의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세하도 그렇고, '세하' 도 그런 눈치였다) 관계.
'따로 연락할 수도 없고...이거 어쩌자는거야?'
소집 시간에 자신이 나타나지 않아서 다른 동료들이 찾아오는 걸 기대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소집 시간까지는 시간적으로 너무 많이 남아돌았다. 그리고 세하가 소집 시간에 (약간이라도) 늦는 경우가 많아 기다려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 긴 시간동안 이렇게 소금기둥처럼 묶여서 서 있기는 싫었다.
'어서 움직이라고...어?'
소집 장소 쪽에서 자신한테로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누굴까? 일단 누가 나타나주는 것만으로도 벌써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안도의 마음만 들면 다행인데 불길한 예감도 같이 들었다. 아마도...저기서 다가오는 인영의 주인공이 누구든지 간에 그렇게 반가운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군.]
"..."
슬픈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다.
* * *
[오랜만...아니군. 뭐, 전에도 보았지.]
'...그냥 게임 핑계대면서 이슬비한테 잔소리 듣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건 처음이다.'
[흠, 그건 아니라고 보아지내만.]
너무 차갑게 사그라든 자안과, 백발을 가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바로 자기 앞에 있었다. 아까처럼의 '세하' 처럼 정말 다시는 재회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다)이었다.
폐기 직전의 큐브에서 만난 용의 위광을 얻은 세하. 데미플레인의 새로운 군주로 자리잡았을때 되었을지도 모를 세하.
[다시 만나서 반갑군.]
'난 아니야!'
[이거 좀 서운하군.]
이 기묘한 느낌은 또 뭐야. 입은 여는데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로 읽혀졌다. 지금은 세하 자신도 비슷했다. 몸이 굳어서 입도 열리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외치는데 상대편도 세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아들으며 대꾸하고 있었다.
이게 '대화' 축의 속하기는 하련지 모르겠다.
'넌 또 왜 나타난거야!?'
[...역시 그 녀석을 만났군.]
이 앞에 있는 '세하' 도 그 '세하' 를 아는 모양이었다. 서로를 알기는 하는데 둘 다 상대방을 우호적으로 바라**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건 그 둘과 세하에게도 해당되는 상황이니 할말은 없었다.
[신기하지 않나. 클로저 이세하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게.]
'...그래봤자 뭔 상관이야. 지금 내가 너인것도 아니고.'
[그건 맞는 말이다만, 생각해보았나. 왜 나랑 그 녀석이 네 앞에 실체라는 비슷한 상황으로 나타나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세하는 머리로 크게 한방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넌 지금의 넌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해서 아직도 차원종의 힘을 갈망하는 네가 있다는 것에 역겹다고 느끼겠다만.]
'...'
[뭐, 어때. 그런 욕망을 가진 넌 한낱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거 뿐이지.]
'그럼 차원종은 안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행차를 했다는거야?'
앞에 있는 '세하' 의 표정이 굳었다. 아마도 세하의 반응이 자신이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분명 지금 자신을 보는 '세하' 의 눈에는 살기(殺氣)가 가득한데 자신을 헤치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 자세히 보니 손 부분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참고 있는거 같았다.
[예상 외군. 뭐, 그래야 이 몸의 본체라고 할 수 있지만.]
'...'
[지금 제일 해치우고 싶은 존재가 있지 않은가.]
해치우고 싶은 존재는 아니지만, 용서를 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있었다.
'데이비드...'
[인간은 항상 욕망에 사로잡히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 그게 명확해지면서...]
'너희들이 나타나는거라고?'
큐브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G타워 사건으로 확실히 강해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 욕망이 큐브에서 시물레이션으로 나온거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물레이션이 아니고도 이렇게 나타날 수 있다는 소리야?!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
'...그럼 나 말고 다른 검은양 팀원들에게 일어나야하는거 아니야? 왜 유독 나한테만...'
[글쎄, 한번 잘 생각해**?]
묘한 수수께끼만 남긴다. 평소라면 둘다 자기를 죽이거나 할 정도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데 오늘은 묘하게 둘다 충고(?)를 하기 위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관계가 있다는거야?'
너희들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거와, 데이비드와의 관계가.
[잘 생각해보라니까. 요새 그런 쪽 게임 잘하고 있던거 같던데?]
명백한 비난조. '세하' 는 세하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게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말한건 아니다. 그저 의지가 그렇게 느껴졌다.
"-[부정하지 말라고. 네가 살아있는 한 우리도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
한순간이지만, '세하' 와 '세하', 그리고 세하 자신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린거 같았다. 이제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데도 세하는 한동안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예 주저앉아버리기까지 했다.
* * *
"이세하, 너 오늘 괜찮았어?"
"...무슨 소리야."
보고를 다 했는데도 슬비가 게임을 하고 있는 세하 옆에 다가왔다. 지금 막 17단계의 마지막 부분을 하고 있는데 나타난 슬비가 세하한테는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또 게임을 한다느니의 잔소리를 퍼부으려고 온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비가 한 말은 의외였다.
"아까 유정언니가 네가 맡은 작전 구역의 위상력 수치가 잠깐이기는 했지만 평균 수치를 훨씬 맴돌았다고 걱정했어. 곧 사라지기는 했지만 너 그때 작전 구역에 있었잖아. 그래서 물어보는거야."
"..."
용의 위광을 가진 이세하,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었다. 그 위광이...실제로도 측정이 되어진다는거야...?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할 수 있는 부분이고, 아닌 부분인걸까. 잊을만하면 왜 나타나는걸까. 그리고 욕망이라니, 자신의 욕망이라니.
슬비에게 한번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은적이 있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싫었으니까.
세하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아무 일 없었다고 느낀 슬비는 단순한 측정 기구의 오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기 직전, 슬비는 17단계 마지막 부분에서 답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세하를 물끄러미 보다가 선택지 하나를 눌렀다. 갑작스런 슬비의 행동에 세하는 잘못된 답을 누른거면 어쩌자는거야! 라는 말을 하려다 'clear' 라는 뜬 게임 화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슬비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세하에게 말했다.
"어지간히 힘든가보네. 그래도 쉬엄쉬엄하라고."
"..."
오늘은 유독 묘한 일이 많았다. '세하' 가 말한 수수께끼의 답이 마치 이 게임처럼 감조차 잡히지는 않지만 이거 하나만은 작게 맹세하기로 했다.
어떤 일이 생겨도 '클로저' 이세하로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