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의 이야기
루이벨라 2016-12-23 2
※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있습니다.
※ 바이올렛의 오디오무비와 바이올렛 에픽을 바탕(오디오무비 90%+ 에픽 10)으로 써보았습니다.
※ 스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대단히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 날 한 기자가 내게 접촉을 했다. 벌쳐스의 비리에 대해 알려달라고 말이다. 난 당연히 거절했다. 사장의 딸인 내가 회사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왜 해야했는지도 몰랐고, 난 나의 소중한 아버지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기자에게는 곧장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자는 혼잣말하는 듯이, 하지만 내 귀에도 똑똑히 들릴 정도의 음색으로 말했다.
-당신의 그 소중한 아버지가 만약에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도 말이죠?
악마의 속삭임.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가 들었던 메피스토의 목소리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빠져들면 결코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그 악마의 손길이.
난 아직도 그 기자와의 만남을 '악마와의 만남' 이라고 표현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나에게 악수를 내민 그 손이 날 지옥으로 이끌어줄 메피스토의 손으로 보였고. 어찌 보면 그 기자의 손은 악마가 아닌, 천사 아니 거기까지면 너무 오버스럽고 구원의 손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잘 된 일인지 아닌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 * *
그 기자가 보내준 자료는 날 충격으로 몰아붙이기에 충분했다. 나의 친아버지라 여겼던 벌쳐스의 사장님은...사실은 나의 백부(伯父)셨다. 나의 친아버지는 내가 12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위상력에 각성을 하게 된 거라고 기자가 보낸 자료에는 써 있었다.
내가 12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었고 뒷자리에 탔던 나만 심하게 다쳤다라고들 했다...
했다...좀 부정확한 말투를 쓰는건 나도 그 사고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는게 없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들 그렇게 말했다. 내가 좀 다치기는 했지만 아버지도 나도 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그 후로 좀 불필요한 말을 많이 듣기는 했다. 부녀지간이 어쩜 그리 쏙 빼닮았냐는 등, 아버지를 닮았으니 분명 훌륭한 아가씨로 자라겠다는 등의...주위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지금의 아버지를 '친아버지' 로 알게끔 세뇌를 시킨 것이었다. 나는 알게모르게 세뇌를 당한거고. 그렇기에 난 지금의 양아버지가 내 '친아버지' 인줄 알고 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이제부터는 아니었다.
내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남은 건?
남은 건 '복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했다. 처음에는 격한 감정에 휩쓸리기는 했지만 마음이, 심장이 금방 차분해졌다. 차분해졌다못해 차가워졌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는데 침착해하는 내 자신을 보고 오히려 내 머리가 더 놀랬다.
자료를 한참을 뚫어져라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내 그런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건 그 기자 쪽이었다. 설마, 나도 이 상황에서 조소가 나오리라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기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 자는 내 구원자일까, 아니면...나를 파멸로 이끌려는 나만의 메피스토일까.
-좋아요.
하지만 난, 받아드릴 것이다.
-그 제안, 받아드리도록 하죠.
복수도.
* * *
그 이후로는 순조로웠다. 자료는 찾으면 찾을수록 많이 나왔다. 애초에 사장의 외동딸이 마음만 먹으면 안 볼 수 없는 자료는 없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금방 틀어지지 않았다. 난 연기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가끔 꾸기도 했다.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사소한 감정을 틀어내지 않게끔 아버지가 반강제적으로 연기를 하게끔 시켰다. 그런 나니까, 아버지 앞에서 연기를 펼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요새 본사를 들락날락거리는게 잦던데, 무슨 일 있냐?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한달 만에 저녁을 같이 먹는 사랑하는 외동딸에게 하는 말이 고작...고작...
...안돼, 여기선 연기를 해야지...
-저도 곧 이 벌쳐스를 물려받을 몸이에요. 그런 제가 회사의 일에 관심을 갔는 것이 싫으신가요, 아버지?
-흐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현재 벌쳐스의 사장 자리에 유력한 인물로는 나와, 숙부님. 아버지는 숙부님을 별로 내켜하지 않으신 눈치이기에 이 말을 꺼내면 나에 대한 의심은 조금 풀린다. 숙부님께는 죄송하지만 말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버지와 숙부님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에도 난 숙부님이 너무도 좋았다. 냉철하고 거의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떤 때라도 조카를 먼저 생각하고 진정으로 날 사랑해주신 분이시니까.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순간은, 나의 이용가치, 즉 나의 위상력이 얼마나 자신을 편리하게 해줄까하는 때에만 보여줬다. 그것도 아주 잠깐만.
-...알았다. 하지만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연락이라도 하려무나.
-알겠습니다.
따로 감시를 보내려는 속셈이겠지만...뭐, 이제 어느정도 자료는 다 모았다. usb에 이미 다 옮겨놓은 상태였다. 이제 본사에 볼일은 없다. 하지만 갑자기 본사에 대한 발걸음을 끊으면 또 의심을 받겠지...귀찮지만 일정 기간으로 본사에 오는 수 밖에.
눈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아버지 쪽에서 먼저 일어나셨다. 대화라고는 방금 전 한 대화가 전부인 불과 30여분도 채 되지 않는 식사였다.
-가실려고요?
-요새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잠시 멈칫하셨다.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걸 그 작은 행동으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더 관심을 가졌다가는 또 감시가 높아지겠지.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죄송해요. 제가 감히 사장님의 일에 주제넘게 참견을 하려고 했네요.
-아니다. 너도 곧 일에 관심을 가질 나이니 이해한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아버지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있던지라 손바닥에는 손톱 자국이 새빨가게 나 있었다. 완벽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아버지도 속아넘어가셨겠지.
- ...하이드.
-네, 아가씨.
-차를 끓여주세요.
* * *
나한테도 한참 의문이었던 부분을 그 기자 덕에 알게 되었다. 난 12살을 이전으로 선명하게 나는 기억이 없었다. 그나마 있다고 해도 희미하게 나는 정도였다. 그 희미하게 있는 기억도 대부분 나의 아빠와 관련된 기억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의 아버지와 기억 속에 있는 나의 아빠의 분위기 등이 완전히 달라 가끔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사고로 인해 아버지의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다는 둥, 어렸을 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목표는 지금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나의 아버지였다, 라는 걸 나에게 믿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걸 믿으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난 7년이 지나서야 겨우, 사실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빠' 는 거짓이 없었다. 거짓을 한 건 오히려 내 주변에 있던 사장의 패거리들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옳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나의 아빠는 자상하신 분이셨다. 바쁜신데도 불구하고 하나 뿐인 딸을 위해 주말의 오후 시간대는 늘 비워두신 분이셨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여윈 자신의 딸이 늘 안타까우셨고, 자신이 그 두배 이상의 몫을 해**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았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아빠가 엄마의 자리까지 충분히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빠가 날 앗아갔을 때의 그 절망감은 어땠을까.
아빠와 나는 일요일 오후마다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아빠의 신분으로 인해 으레 경호원이 한두명은 붙을텐데도 아빠는 그 시간만큼은 나와 단둘이 보내고 싶다며 경호원을 뿌리치셨다. 그렇기에 일요일 오후는 일주일 중 나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없다. 다만 이 대화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가야, 이건 제비꽃이란다. 영어로는 바이올렛(Violet)이라고 한단다.
-바이올렛이요?
-그래. 이 꽃에는 그리운 이를 한없이 기다리다 꽃이 되었다는 전설도 같이 있는 꽃이란다. 색이 참 예쁘지?
그때 본 제비꽃은 매우 고운 자주색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제일 좋아하는 꽃은 제비꽃이다.
아직도 궁금했다. 난 왜 그런 소중한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그 당시 상황은 전혀 기억을 못하는 걸까. 심리 관련 책을 몇번 들추어본 결과, 내가 지금 '해리성 기억 상실' 이라는 걸 앓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일정 부분만 기억이 없는. 기억 상실 같은건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기억 중에 그 부분만 공백인 이유는 대충은 알았다. 난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기억을 되찾고 싶은 한편, 그 기억이 어느날 갑자기 돌아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아빠의 죽음은 큰 의미였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그 기자가 나의 조각난 기억 부분을 가져왔을 때 기뻤다. 내가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것과 남을 통해 알아낸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래서, 그런 안도감에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맞춰지고 있는 퍼즐에는 내 얼굴이 그려져있었다.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나의 얼굴이...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오늘은 아빠의 기일이다. 전에는 그저 아버지의 동생분의 기일이라 생각해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모든 걸 알고 있는 지금은, 크게 와닿는다. 숙부님이 매년 날 억지로 성묘를 오게 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숙부님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
"아빠..."
얼마만에 부르는 아빠일까. 희미한 기억 속에 있는 그 따뜻한 미소를 보고 싶은데...이미 너무 늦어버린걸까요, 아빠? 아빠가 쓰다듬어주던 그 따뜻한 손길도 이제는 느낄 수 없겠죠? 아빠가 일요일 오후마다 저한테 해주신 말들, 전부 다 기억하고 싶은데 이 불효녀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아빠...
어쩌면 좋죠? 나 정말 그 남자의 딸이 되어가는거 같잖아요. 어째서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지고 있는건데...?
"여기 있었구나."
"...숙부님."
숙부님도 오실 줄 알고 있었다. 요 몇달 동안 아버지의 감시로 인해 나와 숙부님은 잘 만나지 못했다. 어렴풋 듣기로는 아버지와 숙부님의 관계는 요즘이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빠의 묘에 성묘를 온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이제는 나와 숙부님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 감시도 없이 숙부님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1년에 한번, 오늘 이 장소에서밖에 없었다.
나와 숙부님은 말없이 묘비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하겠다고 했니?"
오랜만에 본 조카에게 하는 숙부님의 말이 저것이었다. 서운한건 없었다. 숙부님은 내가 아는 한, 날 정말 '사랑' 으로 대해준 유일무이한 가족이었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숙부님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맞아요. 딸로서 아버지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나에게까지도 철저히 숨긴 계획. 아버지의 감시가 높아짐으로서 그 '계획' 에 대해서 조금만 볼 수 있었지만 심상치 않은 계획이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아니 그 남자를 단번에 무너뜨릴 아킬레스건이라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쪽에서 더 이상 그 정보를 모으지 못한다면 직접 들어가서 정보를 모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난, 어떤 면에서는 당돌했다. 그런 날 보며 숙부님은 부녀가 쏙 닮았다고 했는데, 숙부님은 지금의 아버지가 아닌, 나의 친아빠와 내가 꼭 닮았다는 말을 하셨던 것이었다. 하긴, 내 기억 속에도 아빠는 가끔 무모하기는 했다.
"이대로라면 저와 숙부님은 적이 될지도 몰라요."
"...안다."
"그러니, 만약에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요, 숙부님. 저의 아버지...아니, 아빠의 묘를 저대신 꼭 지켜주세요."
"...알았다. 약속하마."
'적' 으로 다시 만나기 전에, 조카와 숙부의 관계로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거라 생각하니 최선을 다해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숙부님."
"..."
숙부님은 날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안타까우신거죠? 하나뿐인 조카가, 어렵사리 내린 이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시니까.
"전 아버지를 위해 힘낼거에요, 숙부님."
아버지, 이 세상에서 정말로 소중한 나의...친아버지, 아빠를 위해서...
난 할 것이다.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15382
[작가의 말]
날조가 많습니다. 아직 바이올렛 에픽을 다 하지 못한 상태에서 쓴 것이기에 그런걸수도...
곧 크리스마스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전 집에서 치즈케이크 먹으면서 클로저스하며 보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