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키우기 [P]
ddrkc 2016-12-23 0
철과 철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상대의 건블레이드와 내 검이 부딪힌 팔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눈 앞의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위상력... 집중!!'
검에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위상력이 감도는 내 무기를 힐끗 쳐다보니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왠지 컨디션이 좋다. 저 괴물을 상대로 이기지는 못해도 크게 한 방 날릴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검을 힘차게 치켜들었지만ㅡ
"느려."
"에엑?!"
[챙!!]
엄청나게 묵직한 힘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검을 놓쳐버리고 뒤로 튕겨 넘어졌다.
"아야야야......"
"괜찮아?"
나는 통증이 느껴지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손을 내밀어주는 상대를 올려봤다. 전투를 끝냈음에도 여전히 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위상력이 일렁이고 있는 건블레이드를 쥐고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전설적인 클로저 알파퀸의 아들이자 이 세계관 내에서도 손꼽히는 잠재력을 지닌 소년. 훗날 검은양 팀으로 들어가게 되는, 액션 MORPG 게임 [클로저스]의 주인공.
"이게 괜찮아 보여? 하나뿐인 여동생을 그렇게 날려버리고 말야."
"맨날 대련하자고 조르는 게 누군데......"
그리고 내 오빠이기도 한ㅡ
이세하다.
*****
"으으으...... 온 몸이 뻐끈해......"
"그러게 왜 맨날 그렇게 무리하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넌 클로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못 싸워서 안달인건데?"
내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던 이세하가 게임기에 눈을 고정한 채로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쳇, 아무리 클로저가 싫어도 사랑스런 동생한테 그렇게 까칠할 건 뭐람.
"연구소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는 게 얼마나 지루한 지 알기나 해? 가끔은 이렇게 몸을 풀어주면서 운동도 해줘야 되는 거라고."
"그니까 그거 유니온에 다른 훈련생들 붙잡아서 하면 되잖아. 왜 맨날 나만 못살게 구는 건데......"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말했잖아? 오빠가 아니면 재미 없다고."
"귀여운 여동생 컨셉 해봐도 소용 없거든. 넌 평소엔 이름 부르다가 꼭 이럴 때만 오빠라 부르더라?"
쳇, 남자가 무드 없긴. 이 정도의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동생을 가졌는데도 이렇게 무심하다니, 이러니까 유저들한테 고X 소리나 듣고 다니지. 나는 억지로 지어보이던 미소 띈 얼굴을 구기면서 팔을 뺐다.
"그래도 이세하 너도 나 덕분에 훈련 많이 하고, 좋잖아?"
"많이 하긴 개뿔. 너 아니었으면 이쪽으론 평생 발도 들일 일도 없었어."
처음으로 게임기에서 눈을 떼고, 유니온 건물 쪽 방향을 노려보며 이세하가 중얼거렸다.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강력한 위상력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노력을 안 하는 게으른 천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비교되며 차별을 당하며 자랐고, 그 때문에 질려버려 클로저의 길을 놓아버린 것은 물론 재능에 대한 콤플렉스가 극도로 심한 상태다. 처음엔 이세하를 아니꼽게 본 유저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음에도 인정받기는커녕 폄하당하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이세하의 인생사를 알게 된 이후엔 오히려 이 정도로 올바르게 자라난 이세하가 엄청난 상식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정도니까.
"그럴거면 니 위상력 나 주지 그래?"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이딴 위상력, 줘도 안 가질거야."
"에헤이, 농담인데 또 정색하는 거 봐라.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도와줬잖아?"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그건 [내가 있던 세계]에서의 설정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이세하는......
"이세하의 천재 여동생이자 유니온의 前 최연소 과학자 타이틀을 가진 이세정이 말야."
그것을 말하기 전에 우선 나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이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이세정. 이세하의 쌍둥이 여동생이며 나이는 이세하와 똑같은 18세다. [이 세계에서의]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나는 이전 세계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내가 즐겨하던 게임이던 클로저스의 세계관에서 환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흔한 클리셰라고? 그냥 넘어가자. 나도 처음엔 예전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알고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니까.
아무튼 갓세하라고 부를 정도로 내 최애캐였던 이세하의 동생이라는 황당한 설정을 가지고 태어난 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몇 가지 특전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그래도 알파퀸의 딸이라고 주어졌긴 했지만 오세린과 같은 B급이 간신히 될까말까하는 수준인 소량의 위상력. 또 하나는 날 플레인 게이트의 최보나마냥 10살 때 유니온의 연구팀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 측정 결과 아이큐 300의 천재성.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야, 이세정?!"
"어? 어, 어어...!?"
목덜미가 잡히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이 뒤로= 확 끌렸다. 이세하가 나를 뒤로 잡아끌자마자 자전거가 내 앞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거 때문에 이세하에게 안긴 형태가 되어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다행히 이세하는 내 얼굴이 아니라 빠르게 멀어져가는 자전거 운전자의 뒤통수만 노려봤다.
"저 자식이 미쳤나, 사람이 있는데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너 괜찮아?"
"괘, 괜찮아. 신경쓰지 마."
괜히 부끄러워져서 서둘러 떨어졌다. 최애캐와 가까이 있으면 마냥 좋기만 할 줄만 알았는데, 밋밋하던 가슴도 봉긋해지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빠, 빨리 가기나 해. 이러다 늦겠다."
"알았으니까 밀지마... 라기보단 너는?"
"난 자료 정리할 게 좀 남아서 있다가 가야 돼. 지금은 너 요 앞까지 바래다주려 나온거고."
"뭐? 진작 말하지! 이제 집 앞인데 뭐가 요 앞까지 바래다주는 거야!?"
"그래서 뭐, 싫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세하를 올려다보자 그래도 효과가 있었는지 흠칫한다.
"시, 싫은 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멀리까지 나왔잖아?"
"난 좋은데? 오랜만에 오빠랑 이렇게 데이트도 하고."
"데이트는 개뿔. 그리고 오랜만이 아니라 거의 1년 365일 맨날 니가 날 끌고ㅡ"
"먼저 들어가, 나 간다."
왠지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질 것 같은 예감에 한 번 껴안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서둘러 멀어져갔다. 뒤를 돌아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멀어져가는 이세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가려던 길을 멈추고 그의 뒤통수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스탯."
그러자 눈 앞에 푸른 스크린이 떠올랐다.
*********
LV 41 이세하
생명력(HP) - 8359
위상력(MP) - 1603
공격속도 - 1.02
초당물리공격력 - 2295
초당마법공격력 - 2185
물리 방어률 - 42.7%
마법 방어률 - 39.7%
*********
"이 정도면 뭐, 망캐는 아니려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 오빠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렇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특전. 그것은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ㅡ
"스킬."
*********
LV 41 이세하 [[사용가능 스킬]]
[훈련생]
발포
작렬
질주
찰나의 각성
결전기 폭령검
[스킬 티켓]
집중 포화
*********
선택한 캐릭터를 진짜 게임처럼 내가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
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1160879
소설 사이트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입니다. 세하빠+브라콘에 현실 플레이어의 능력을 지닌 여동생과 그런 동생 덕분에 강제로 먼치킨 돼버린 갓세하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