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마지막 무대
엔라이튼 2015-01-2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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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내 마지막 무대가 되겠군..."
"김기태 요원님?"
김기태, A급 클로저이자 현 강남의 치안을 맡았지만,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졸전과 업무태만 덕분에 악명이 자자한 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그가 이 격전지에 나타나 뜻 모를 소리나 내 뱉은 것이 슬비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강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도 이런 여유나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이곳엔 어쩐 일이시죠? 대답해 주십시오. 김기태 요원님."
해답을 요구하는 슬비의 말에는 평소 그녀의 성격과는 달리 경멸감이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김기태 말 없이 등을 보이며 격벽을 부수려고 날뛰는 서유럽의 재앙이었으며 지금은 강남의 재앙이 될 지도 모르는, 헤카톤케일에게 고정시키고만 있었다. 이 지경까지 와서도 자신을 무시하자 마침내 화가난 슬비가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려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저런 놈이 한 트럭으로 와도 전부 처치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지금은 어찌될지 장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나가버렸으니 원...."
"무슨 말씀이세요,요원님? 힘이 빠져나가다....설마!"
'힘이 빠져나가다' 그 말의 의미가 어떤 뜻인지를 깨달은 슬비의 귓가에 체념이 섞인 김기태의 한 마디가 파고들었다.
"그래, 위상력 상실증이다."
위상력 상실증,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위상력을 상실하는 질병으로, 클로저 요원들에겐 저주의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슬비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가 왜 그리도 우리에게 그런 모습만을 보여왔는지를. 그런 절망스러운 현실을 짊어진 그였지만, 모든 걸 내팽게치고 주저앉는 대신 그는 건방지고 오만한 A급 요원의 행세를 하면서 하루하루 약해짐에도 불구하고, 늘어만 가는 업무의 부담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참아가며 지금까지 묵묵히 싸워왔던 것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진실에 할 말을 잃어버린 슬비를 뒤로하고 김기태의 말이 이어졌다.
"한 동안은 어떻게든 버티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 싸웠지만, 점점 더 힘에 버거웠어. 이젠 그것도 한계군..."
"요,요원님..."
"...그 목소린 또 뭐냐, 꼬맹아. 우는거냐? 집어치워. 너 까짓게 이 김기태 님을 동정하다니."
짦은 침묵 후 다시 말을 이어가는 김기태의 목소리엔 예전의 거만함이 뭍어나왔다. 하지만 슬비는 그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A급 요원의 신분만을 믿는 무능한 자 라고 그를 험담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경멸감은 어느새 그녀의 마음속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 동안 그에게 모욕을 준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김기태는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고 날뛰는 헤카톤테일에게 발걸음을 옮기며 슬비에게 말했다.
"볼 일 없으면 빨리 여길 떠라. 벌써 차원종놈들의 후속부대가 잔뜩 몰려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세린이에게 그 동안 못난 상관 모시느라 고생 많았다고만 전해줘."
"기,김기태 요원님! 어쩌실 작정이세요!"
"아, 말했잖아."
김기태는 처음으로 뒤돌아 슬비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오만함이 뭍어나오는 듯한 미소와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한 가지가 바뀌었다. 그의 눈빛은 흐리고 망설임으로만 가득찻던 예전과 달리 결의와 투지가 담긴 찬란한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슬비는 말문이 막혔다.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한 몸을 내던져 거대한 악을 막으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A급 요원 김기태, 그의 단호한 의지와 기합이 담긴 한 마디가 울려퍼졌다.
"이 김기태님의 마지막 무대가 될꺼라고 말이다!"
"기,김기태 요원님!"
그를 만류하려는 슬비를 뒤로한 채 그는 푸른 잔상만을 남기며 앞으로 폭발하듯이 뛰쳐나갔다. 전선으로 뛰어드는 그의 손엔 변함없이 묵철의 쌍검이 들려있었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하며 수 많은 적을 베어넘겼고 자신과 시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던 든든한 동반자.
끝까지 함께 가보자고, 친구!
한참을 날뛰며 격벽을 뜯어내던 헤카톤케일이 거대한 힘의 흐름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김기태를 바라봄과 동시에 그가 비상하였다. 찬란한 푸른 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고, 그가 내뿜는 기세와 합쳐져 마치 초신성과도 같았다.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승리를 쟁취하고 많은 이들의 우상과도 같았던 유니온 최고의 정예요원.힘을 잃었으나 클로저의 의무를, 사명감을 잊지않은 김기태. 모두의 미래를 위해 싸워온 그의 무대는 마지막을 향해 치달았다.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산들바람 베기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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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Clo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