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4. 남산 타워 -

Articulus 2016-03-05 4




 

국제공항 이후까지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므로, 램스키퍼 함교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작중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잔인한 묘사가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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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현장 수습에 지원 요청해줘! 제이 씨는 특경대에 연락해주시고, 유리는 신서울지부 상황대책반에 연락해줘! 그리고 미스틸과 세하는 나를 도와서 현장 지원에 나서고!

  먼저 버스 안에 있는 부상자들부터 꺼내야해!"


  그 상황에서도 슬비는 당황하지않고 침착하게 각 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슬비의 말에 따라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잠깐 나는 ''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녀석이 있던 곳을 올려다보았다.

  깨진 버스의 창문 틈새로 올려다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만월만이 하늘에 올라와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그 녀석은…


  "이세하! 뭐해, 안돕고!"

  "아, 알았어!"


  나는 한쪽으로 밀려간 건블레이드를 겨우 집어들었다.

  그리고 건블레이드를 버스의 벽에 박아넣고 위상력을 폭발시켜 그곳에 커다란 구멍을 내었다. 사람 다섯 명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생기자, 테인이가 그 위로 올라가서 기어올라오는 사람들을 잡아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다행히 버스가 심하게 전복되지는 않아서인지 심하게 다친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출혈이 심한 사람들은 중간중간 끼어있었다. 특히 버스가 넘어진 쪽에 앉아있던 이들이 버스가 넘어지면서 같이 넘어진 사람들에 깔려 많이 다친 상태였다. 이들을 빨리 버스 밖으로 끌어내야만 한다.


  유리 역시 버스 밖으로 빠져나가 테인이를 도와 기어올라오는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다.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이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이들만이 버스 안에 남게 되었다. 슬비와 나는 그들을 끌어올려 위로 올려보낸다.

  이런 상황에서는 슬비의 염동력이 많은 도움이 된다. 아랫쪽에 있는 사람들을 염동력을 사용해 위로 올려주면 나는 그들을 받아 다시 위로 올려주는 식으로 계속해서 수습을 진행했다.


  부상이 심해보이는 이들은 여덟 명.

  이들은 바로 병원으로의 호송이 필요해보인다.


  마침 엠블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져 왔고, 금방이라도 부상자들을 실어나를 수 있음에 안도했다.

  버스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구출이 끝나자, 나와 슬비도 버스 밖으로 빠져나왔다.


  특경대도 구급대원들과 같이 도착한 모양인지,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슬비와 나에게 경례를 붙인다.

  "충성! 빠른 현장대처에 감사드립니다, 요원님!"

  "아니에요,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여기 상황은 저희가 맡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차원종이라도 출현한 건가요?"

  "에… 그건."


  슬비는 말 끝을 흐렸다.

  그녀도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그녀는 왜 버스가 이렇게 전복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도로에서 어떤 커다란 폭발이 있었고, 그 폭발의 기세로 버스가 전복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폭발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저절로 연상되는 이 질문에 나는 바로 답했다.

 

  "놈이에요."

  "놈?"

  "형상복제자…"

  "……"


  그 간부는 말을 그대로 잃었다.

  이 일대를 관할하는 특경대라면 지난 밤 출현한 형상복제자에 대해서도 알 터, 그렇다면 내가 한 말에 말을 잃은 이유도 짐작이 된다. 그들은 아마 거의 술취한 신고자의 환상으로만 알고 있었겠지만, 나의 증언에 의하면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이세하 요원님, 형상복제자라고 하셨던 그것, 실제로 보셨습니까?"

  "잠깐이지만 봤어요. 제 모습을 그대로 복제한 그 녀석이,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를 향해 공격을 해왔던 것을."

  "요원님의 모습을 복제했다고요?"

  "네, 분명히 제 모습과 제 무기를 그대로 복제한 그 녀석. 제가 사용하는 위상력과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이곳을 공격해왔어요."

  "음… 알겠습니다. 특경대에게는 우선 요원님의 모습을 한 녀석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려두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 일대의 특경대의 경력이 일부 강남으로 차출되어 복구작업에 투입되어서 전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그 차원종이 다시 이곳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1시간 정도만 저희를 도와 이곳을 지켜주시겠습니까?"

 

  나에게는 이 요청에 답할 권한이 없다.

  내 옆의 이 녀석이 답한다.


  "알겠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충성!"


  경례를 한 번 더 붙이고는 그 간부는 다른 현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슬비는 다른 팀원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아마도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수색작업이겠지.


  "모두 잘 들어. 아마 그 폭발은 차원종의 짓으로 파악돼. 세하의 말에 의하면, 그 폭발은 세하의 모습을 복제한 형상복제자의 짓이야."

  "뭐? 녀석이 동생의 모습을 복제했다고?"

  "네. 그래서 우리는 팀을 두 개로 나누어서 녀석을 수색해야할 것 같아요."

  "좋아, 대장. 지시만 내리라구."

  "이세하, 놈을 마지막으로 봤던 곳이 어디야?"


  나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좋아. 그렇다면 저와 세하가 남산타워 쪽을 살펴보면서 위쪽을 수색하겠어요. 제이 씨는 미스틸과 유리를 데리고 반대 도로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능선을 수색해주세요."

  "오케이. 자, 그럼 바로바로 움직이자고. 그 차원종 녀석, 도망치는 데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놈이니까."


  슬비가 나눈대로 우리는 나뉘었다.

  아저씨와 함께 테인이와 유리는 우리와 반대방향을 향했고, 나와 슬비는 그대로 남산타워 쪽을 향해 움직였다.


  "세하, 너가 앞장 서. 놈이 도망쳤을 것 같은 방향으로 추적해."

  "알았어."


  그대로 나는 사이킥 무브로 공중에 도약했다. 나를 따라 슬비도 공중에 떠오른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은 언제나 상쾌하다. 특히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정말로 시원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슬비와 다르게 나는 한 번 도약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땅으로 내려가서 다시 뛰어올라야 한다. 나는 정말로 점프를 하는 것이지만, 슬비는 염동력을 사용해서 공중에 부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중력의 영향으로 하강하기 시작할 때쯤, 슬비가 손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땅으로 계속 착지하면 감시를 계속해서 못하잖아.

  내 손을 잡고 있으면, 나처럼 계속 부유할 수 있어…"


  버스 안에서 이 녀석과 다퉜던 것이 생각난다.

  잠깐 서로의 살결이 닿은 것만으로도 얼굴을 붉혔던 우리. 그래도 우리는 손에 장갑을 끼고 있으니 좀더 나으려나. 슬비가 나에게 화난 것이 좀 풀렸으면 좋겠는데.

 

  손을 뻗어 슬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정말로 나의 몸은 중력을 완전히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공중에 부유하게 되었다. 남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하늘에 떠본 것은 처음이기에, 왠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테인이가 그렇게 아저씨에게 또 태워달라고 졸랐던 것일까?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이래선 안된다.

  놈을 찾아야 한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그 녀석을.

  무고한 시민들에게 아픔을 준 그 녀석을 잡아야만 해.



  

  슬비와 내가 서로 반대쪽을 쳐다보고 있을 때, 나로 내 뒤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익숙한 이 소리. 이것은 건블레이드의 탄환을 재장전하는 소리이다.

 

  "이슬비, 떨어져!"

  "어?!"





  슈아아아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다행히 슬비와 내가 재빨리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둘 다 이 불꽃에 휘말려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름짓기로는 폭령검이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탄환에 위상력을 쏟아부어 폭발시키는 기술, 이것을 나 외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딱 하나이다. 내 모습과 위상력도 복제한 ''이다.


  나는 재빨리 건블레이드를 등 뒤에서 뽑아들고, 우리를 공격한 놈을 향해 휘둘렀다.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무기와 나의 무기가 충돌했다.


  "너, 누구야."

  "몰라서 물어? 나는 ''이자 ''야, 이세하."


  있는 힘껏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 놈을 밀었다. 나와 놈의 거리는 다시 벌어졌고, 나는 이미 장전된 상태인 건블레이드를 녀석에게 조준한 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놈이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를 공격할 때 사용했던 그 기술을 그대로 녀석에게 되돌려준다.


  푸른 불꽃은 나를 떠나 매우 빠른 속도로 놈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놈이 불꽃에 휩싸이는 것도 1초 후의 일, 별다른 일이 없다면 놈은 그대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채 땅을 향해 떨어질 것이다. 불꽃이 놈을 덥치기 전 녀석도 똑같이 불꽃을 쏘았고, 상쇄되어 폭발만 공중에서 일으킨 채 자욱한 연기만을 흩뿌려놓는다.


  그대로 놈의 모습이 사라지려고 하던 차에, 나는 건블레이드의 재장전을 끝내고 녀석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의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녀석은 그대로 나에게 멱살이 잡혔고, 놈의 가슴에 건블레이드를 꽂아넣는데 성공했다.



  놈은 마치 피와 같은 검은 액체를 뱉어냈고, 내 옷자락에 불결한 그것이 묻었다.

  "지옥으로 꺼 져 버려, 차원종."


  그 말과 함께 나는 잡고 있던 놈의 멱살을 놓은 뒤 그대로 건블레이드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영거리의 포격이 놈의 온 몸을 삼킨다. 쏘아진 한 발의 총탄이 놈의 몸 속에 폭발을 일으켜 놈의 몸을 공중에 띄워놓자, 나는 다시 남은 한 발의 총탄을 방아쇠를 담겨 발사했다. 영거리 포격 다음의 총탄도 그대로 놈의 몸에 직격하여 폭발했고, 이 공격은 놈의 몸을 완전히 **짝으로 만들어버린다.


  놈의 몸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고, 나 역시 그 녀석을 따라 땅에 착지했다.

  그렇게 강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놈의 숨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는지, 고통스러운 신음만을 흘리고 있었다.

  동정 따위는 없다. 이 녀석의 숨을 끊어버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건블레이드를 박아넣는 일만 남았을 뿐.



  철컥 소리와 함께 재장된 나의 건블레이드는 놈의 몸을 찌르기 위해 하늘 높이 들린다.

  내려오는 가속력과 함께 마지막 폭발만 주면, 이 차원종의 숨은 끊어진다. 마지막 일격을 내려치기 전, 그놈은 입을 열어 나의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 이세하. 분하지도 않아? 왜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도 아직도 어른들에게 복종해?"

  "닥 쳐. 난 어른들의 명령을 듣는게 아냐. 나는 내 의지에 따라 너를 죽이는 거니까."

  "물러터졌어. 사실 너도 알고 있잖아, 너는 어른들에게 아직도 복종하고 있다는거.

  게임을 좋아해? 웃기지마, 게임은 너의 현실도피일 뿐이야."

  "닥 쳐! 닥치라고!"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다.

  정말로 이놈이 밉다. 이놈을 증오한다. 이놈은 정말로 나에 대해서… 어라, 내가 왜?

  나도 모르게 놈의 몸에 수차례나 날카로운 무기의 끝을 박아넣고 있었고, 그 때마다 놈은 고통에 찬 비명을 흘렸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거지?


  "잊지마, 나는 ''가 살아있는한 죽지 않아. 조만간 또 보자, ''."



  또 보자고?

  말도 안돼. 내가 이런 놈을 또 왜?

  웃기지마, 내가 너 따위를 볼 것 같아?


  "아니, 넌 여기서 죽어."


  나는 이번만큼은 내 의지로 놈의 몸에 건블레이드를 가져다 대었고,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탄의 발사소리와 함께 놈은 여느 차원종들이 사라지듯이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를 공격했던 형상복제자는 소멸했다.


  놈이 사라지자, 나는 온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기마저 놓아버리고 나는 무릎을 꿇은채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말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사실 너도 알고 있잖아, 너는 어른들에게 아직도 복종하고 있다는거.'

  '게임을 좋아해? 웃기지마, 게임은 너의 현실도피일 뿐이야.'

  '배신을 당하고도 어른에게 복종하니까 좋아?'

  '유니온은 언제나 그러했지, 엄마 때도 그리고 지금도.'

  '데이비드나 유니온이나 다 한통속이라는 걸 왜 몰라?'


  "저게 나라고? 아냐, 저건 차원종이야. 나는 저렇지 않아. 나는 어른에게 이용당하지 않아. 나는 내 의지로 클로저가 된거야. 난 내 의지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클로저가 된거야. 그러니까…"

  "세하야."





  떨리던 온 몸에 온기가 되돌아온다.

  머릿속을 맴돌던 놈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차들이 통행하는 소리, 그리고 슬비의 목소리만이 있었다.


  "이슬, 비?"

  "그 녀석은 네가 아니야. 그 녀석은 차원종이고, 너는 이세하야.

  녀석의 말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아아… 아아아…"

 

  녀석의 말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눈시울이 너무나도 뜨거워져서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다. 엄마같은 이 따스함, 내 몸을 이 아이에게 맡기고 싶다.


  "이, 이세하?"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있어주면 안돼?"

  "어? 어, 응. 아, 알았어."


  보이지는 않지만 슬비의 얼굴에는 홍조가 떠올랐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니까. 그리고 버스 안에서의 반응을 봤을 때도 충분히 그럴만 하다. 그럼에도 나의 포옹을 슬비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를 토닥여주듯 나의 목 뒤로 팔을 감아 끌어안아 주었다. 이 따스함에 나는 녹아들어갔다.

  잠깐 살결이 닿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했던 우리 두 사람은 어느새인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었다.

  이 아이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슬비는 정말로 나를 싫어하지 않는구나. 그건 나의 오해였구나.



  "상황 종료. 검은양 팀, 현재 내 위치로 집합해줘. 내 위치는…"

  슬비로부터 무전이 퍼져나간다. 이제 곧 모든 팀원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슬비와 떨어지기 싫었다, 정말로.





  ◆ 4-2



  "이야, 동생! 한 건 했구만!" 

 

  "아얏!"


  아저씨가 내 등을 세게 내리쳤다.

  그 충격이 그대로 내 온 몸을 달렸다. 꽤나 아프다.


  "제이 씨, 왜 때리고 그래요?"

  "너무 대견해서 그렇지. 놈이 쓰러뜨린건 형상복제자라고, 형상복제자. 그런 녀석을 혼자서 쓰러뜨렸는데 얼마나 대단해?"

  "그거야 당연한거잖아요. 차원종을 쓰러뜨리는게 클로저의 일인데."

  "그래도 급이 다르잖아, 급이!"


  아저씨는 나를 엄청 추켜세워주고 있다.

  확실히 감사한 일이긴한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은 있는걸까?

  녀석을 쓰러뜨리고 한동안 멘붕상태였던 나는 아마 슬비가 없었으면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는 슬비에게 더 감사해야하는게 옳은데, 슬비는 아무 말없이 웃고만 있을 뿐이다.


  "슬비야, 사고 현장은 어떻게 됬어?"

  "특경대와 유니온 상황반의 빠른 대처로 지금은 정상화되었어. 다행히 사망자는 한 명도 없고, 다친 분들도 모두 며칠 내로 쾌유할 수 있을거라고 해."

  "다행이야, 정말."


  커다란 희생이 없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만약에 누구 하나라도 죽게 되었다면 분명히 크게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조기에 대처하지 못한 클로저라는 아명까지 따라붙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이 일을 일으킨 원흉을 쓰러뜨리는데는 성공했으니, 이제 당분간은 조용할까?


  그 때 테인이가 물어온다.

  "그런데 세하 형, 버스를 공격해온 차원종은 몇 마리였어요?"

  "한 마리, 왜?"

  "이상하네요. 채민우 경정님의 말씀에 따르면, 분명히 목격된 형상복제자는 넷인데. 4 빼기 1은 3이니까, 이제 세 마리 남은거네요? 근데 이렇게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차원종은 흔하지 않아요."


  테인이의 말에 아저씨도 이상하다는듯 동조했다.

  "확실히 맞아. 테인이의 말대로, 형상복제자 놈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아. 그 녀석들은 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적어도 셋 정도의 단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또 그래야 다수의 형상들을 복제해서 쉽게 제거당하지 않고."

  "아직 남은 세 마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저씨?"

  "글쎄. 정말로 좋아할 때만은 아닌것 같구만."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그런 놈.

  놈은 큐브 안에서 보았던 나와는 달랐다. 큐브 안의 나는 입체영상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놈들은 정말로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실체이다.

  놈이 죽으면서 남겼던 그 말, '또 보자'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놈의 거친 숨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몸이 왠지 모르게 떨려온다. 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려는 것 같다.


  나는… 놈들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놈들은 '나'이기에, 나를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애써 부정하는 것들도, 놈들은 가식이라고 비웃으며 나의 가면을 벗겨낸다. 가면 속에 숨겨진 나의 모습은 놈들에게 철저하게 폭로당하고, 놈들은 그것을 약점으로 삼아 나를 공격해온다.


  다시 만나기 싫다.

  오늘은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들어가버리고 싶다.

  녀석들을 쫓는 것은 정말로 사양하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내 바람을 아는 듯, 슬비가 말했다.

  아저씨가 묻는다.


  "대장, 평소의 대장같으면 밤을 새서라도 놈들을 찾아내라고 할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네, 확실히 지금 제 마음은 놈들을 밤을 새서라도 찾아내고 싶어요. 하지만 놈들은 아마 몸을 숨겼을 거예요. 더욱이 지금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이 넓은 신서울의 강북 지역을 다 뒤질 수도 없는 일이고요.

  놈들을 추적하는 건 우선 특경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놈들을 발견했을 때 출동해도 늦지 않아요."

  "음... 일리가 있군. 하긴 이 넓디 넓은 신서울을 구석구석 뒤진다는 것은 한 달이 걸려도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게보면 오히려 신서울 전체에 지부를 두고 있는 특경대에 맡겨 추적하는 게 더 바람직할테고.

  좋아, 그러면 이제 집으로 가면 되나?"

  "네. 당초 예상보다 빠르지만, 제이 씨와 유리와 미스틸은 이쯤에서 돌아가도 될 것 같아요. 시민아파트는 저와 세하가 한 번 만 둘러보고 들어갈게요. 어차피 저희들은 강북에 살고 있으니까요. 불만없지, 이세하?"


 

  수색이라니.

  수색 중 놈들을 또 다시 조우하는 건 정말로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어쩌면 슬비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놈들은 의식을 공유하니 아마도 우리가 이 일대로 오는 것을 알고 이미 도망쳤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승낙하는게 더 좋으려나.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것을 승낙의 표시로 받아들인 슬비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저씨와 유리, 테인이에게 돌렸다.

  "슬비야, 정말 괜찮겠어? 나 아직 좀더 수색하다가 들어가도 괜찮아."


  유리가 걱정스러운듯 슬비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슬비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답한다. 아저씨도, 테인이도 다시 슬비에게 자신들도 괜찮다고 물어왔지만, 슬비는 같은 답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차원종의 습격에 적잖이 당황했을 팀원들을 위한 슬비의 배려이곘지.

  이 녀석은 모든 짐을 자기가 감당하려고 한다, 자기가 조금 더 피곤하더라도 팀원들이 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수고를 인내해내는 바보같은 녀석. 정말이지, 엄마를 닮았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고, 아저씨는 유리와 테인이를 데리고 강남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과 같은 산 중턱에 남은 것은 우리 두 사람 뿐이었다.


  "이세하."

 

  내 이름을 부르는 이슬비.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지함이 사뭇 묻어있었으나,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찬 바람이 불어왔다.

  찬 바람은 나와 슬비의 요원복의 자켓의 아랫단을 한껏 흔들어놓고 지나갔다. 청색과 섞여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흑색 컬러인 우리의 요원복은 어둠 속에 물들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확실하게 드러나보이는 것은 슬비의 분홍빛 머릿결이다. 달빛에 빛나는 녀석의 머릿결은 정말 아름다워보였다.


  "왜 불렀어?"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음을 간파하고 답했다.

  돌아오는 그녀의 말은 무엇일까?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그녀는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계속해서 따라가보건대, 그녀가 가리킨 곳은 남산 위에 아름답게 빛나는 탑.


  "남산 타워… 가, 가지 않을래?"

  "이슬비… 너…"

  "시, 싫으면…, 시민아파트로 빨리 수색나가자. 그래, 수색나가자, 빨리 가자."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빛이 보인다.

  설마 싫어할리가.


  "야, 이슬비."

  "어?"

  "너, 내가 얼마나 참아왔는지 모르지."

  "뭐, 뭘? 앗? 이, 이세하!?"

 

  나는 슬비의 손을 그대로 잡았다.

  엄청 부끄럽다. 녀석도 부끄러워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이, 이 손 놔줘! 이세하!"

  "시끄러. 너 그러면 안 갈거잖아. 네 감정에 좀 솔직해져, 이슬비."


  슬비는 계속해서 나와 손을 놓으려는듯 저항했지만, 나의 완력은 슬비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억지로 놓지않기 위해 손에 힘을 잔뜩 준채, 나는 그녀를 끌어내듯 이 숲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 근방의 인도를 따라 조금만 움직인다면, 바로 저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길도 금방 보일 것이다.

  비록 나나 녀석이나 둘 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비록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손 안의 온기는 전달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좀 걷다보니 슬비의 저항이 사라졌다. 더 이상 손을 놓기 위해서 힘을 주는 일은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반대방향으로 향하던 움직임도 그쳐서, 우리는 순탄하게 인도 쪽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좀 더 녀석보다 앞서긴 했지만, 슬비는 내 손을 놓지 않은채 나를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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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타워로 올라가는 길을 쭉 걸어, 빛나는 타워 앞에 섰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대다수는 연인들로 보였고, 그만큼이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나 여러 외국인들도 보인다.

  저녁 9시를 넘어 벌써 30분이 다 되어가는 이 야심한 시각에도 이곳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른다.


  광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손을 놓았다.

  수많은 인파 가운데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그다지 두지 않았다. 눈 앞에 솟아오른 저 높은 타워 안에는 전망대, 식당 등의 온갖 유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올라갈거지?"

  슬비가 물어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 위에 안올라가는 건 사치다.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입장권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섰다. 줄이 꽤나 길게 늘어서 있어서, 꽤 기다려야할 것 같다. 


  1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쪼르륵 소리가 우리 두 명에게서 났다.

  배가 엄청 고프다. 생각해보니 우리 두 사람은 저녁도 먹지 않은채 하교하자마자 이곳으로 이동했었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자니 참기가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줄을 벗어나면 우리는 적어도 다시 길면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곳의 운영시간이 평일에는 저녁 11시까지인 것을 고려했을 때, 당장 지금 들어가도 우리는 겨우 2시간 정도밖에 안에 있지 못한다. 물론 2시간이면 충분히 많은 시간이겠지만, 계속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그 2시간을 계속해서 갉아먹는다.


  "어쩌지, 슬비야. 엄청 배고픈데."

  "하지만 줄을 벗어나면 너무 늦게 들어갈텐데."

  "저 위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긴 하지만, 저녁식사는 9시 반까지만 주문이 가능할거야. 게다가 저녁은 엄청 비싸고… 우리 급여 들어올 때까지는 두 주는 더 기다려야하잖아."

  "그러면 돈은 내가 낼게."

  "어떻게 그래! 그리고 돈 문제보다는 시간 문제야. 우리가 9시 반까지 저 위의 식당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더 문제라구."


  사실 이곳 한정 물가는 신서울의 물가보다 3-4배 가량 비싼 것을 감안하자면, 저 위에서 저녁을 먹는 것도 사실 매우 힘든 일이다. 입장료만 해도 꽤 비쌀텐데, 저 위의 식당에서 제일 싼 음식을 먹더라도 족히 1인당 10만원은 그냥 날아간다.

  새로나온 게임을 사고 엄마가 내 돈으로 쇼핑하느라 돈을 많이 써버린 덕분에, 지금 통장 속에 남아있는 돈은 어림잡아 15만원.

 

  슬비가 돈을 내겠다는 것을 큰소리 쳐서 막기는 했지만, 사실 눈 앞이 막막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게임은 나중에 살걸... 급하게 엄마한테 돈이라도 꾸어볼까? 아니다, 우리 엄마는 지금 쯤이면 드라마를 보느라 내 전화 따위는 무시할게 뻔하다.

  후, 이를 어쩌지. 입장권만 사서 남은 돈으로 슬비만이라도 저녁을 먹게할까?



  우웅-

  자켓의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한 번 울었다. 진동으로 해놓은 것을 풀어놓지 않았구나.

  아마도 한 번 밖에 진동이 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어떤 알림이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일텐데, 아마도 스팸이겠지? 이 나라에서는 나의 개인정보가 겨우 몇 십원에 팔려나가서 돌아다니고 있을테니.

  그래도 궁금하니 한 번 봐볼까?

 

  핸드폰을 꺼내서 보았다. 익숙한 번호다.

  이 번호는 분명히 제이 아저씨의 번호인데, 무슨 문자를 보내신거지?


  메시지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동생, 대장과 좋은 시간 보내고 있나? 

  수색 작업이 끝나면 남산타워라도 들러서 좀 즐기라고. 

  원래는 시간이 나면 유정 씨와 둘이 오려고 미리 사둔 입장권인데 말야,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지. 마침 식사도 안했을 것 같으니 둘이서 식사라도 하면서 좋은 분위기 만들라고. 물론 양식이면 좋겠지만 한국인에겐 양식보단 한식이 더 잘 맞아서 말이지, 한식당 이용권이니 원망하지는 말라구. 그럼.』



  메시지 끝에는 기프티콘같은 성인 입장권 두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인파를 뚫고 입장하기 위해 입구로 가야 한다.

  이 정도 인파라면 아무리 가까이 붙어있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 부끄럽지만 다시 손을 잡아야 한다.


  "슬비야, 입장권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응? 진짜?"

  "신이 우리를 도우셨나봐."

  "진짜야? 입장권, 정말 안사도 되는거야?"

  "응.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빨리 위로 올라가자. 그리고 저기…"

  "응?"

  "이번에는 허락받고 손 잡으려고."

  "… 바보."


  내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슬비는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에게 선수를 빼앗긴건 조금 억울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쁘다고 해야할까?

  우리는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입구를 향해 인파를 헤치고 천천히 나아갔다.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오자, 입구 부근은 한산했다.

  입장수속을 거치기 위해 입구의 여직원 앞으로 다가서자, 그 사람은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머, 강남의 영웅 이세하 씨와 이슬비 씨 아니세요? 두 분이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이 부근에서 작전이 끝나서, 서울 야경을 볼겸 놀러왔어요."

  "그러시구나. 그럼 1시간 전쯤에 저 아래에서 들렸던 그 소란은 아마도 그 작전의 일환이었나보네요. 차원종이라도 이 근방에 나왔나요, 호호호."

  "그러니까 저희가 이곳에 왔겠죠."

  "음~ 그래도 몸 성한게 참 다행이네요. 클로저 분들은 너무 험한 일을 하시다보니 많이 다치시잖아요?"

  "그렇죠. 몸 성한게 참 다행이네요."


  대화가 참 어둡다.

  그리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직원은 우리를 본 것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생각하는지, 이번에는 슬비에게 말을 걸었다.


  "이슬비 씨, 그런데 이렇게 두 분이서만 작전을 뛰시는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검은양 팀은 총 다섯 명인데."

  "저희는 작전을 끝내고 이곳에 온 거예요. 다른 팀원들은 집이 강남이기도 해서 먼저 돌아갔어요."

  "어머, 그러면 다른 분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이곳에 오신 거예요?"

  "ㅇ, 예?"

  "어머어머, 어쩐지 어쩐지! 정말 잘 어울려요, 두 분."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빠, 빨리 안으로 들여보내주세요. 저희 시간 없어요."

  "아, 맞다. 저도 깜빡하고, 호호호."



  뭐지, 이 느낌은.

  기분이 나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것 같은 이 느낌. 알 수 없는 느낌이다.


  빨리 이 사람과는 작별하는게 우리에게는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저씨에게서 온 입장권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허가를 받은 뒤 입장했다.

  우리에게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로 인사하는 그녀에게 겉치레의 인사를 남기고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우리를 보고 저마다 소곤거리며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그들에게는 정규 클로저가 이런데에 오는게 더 이상한가보다.

  하긴, 우리 두 사람은 요원복 차림인데다가 등 뒤로는 차원종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무기를 휴대하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지.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멈춰서지 않고, 매우 빠른 속도로 타워를 올라간다.

  우리가 내릴 층은 타워 1층, 즉 가장 첫 번째로 도착하는 곳이다. 빨리 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저녁을 먹어야만 한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우리는 재빠르게 그 안을 빠져나와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이제는 전투적으로 밥을 먹어야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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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한식당은 뷔페식이라, 메인 디쉬를 시키면 나머지 사이드 디쉬는 직접 가져다 먹으면 된다.

  우리는 그렇게 30분동안은 아무런 눈치도 안보고 음식을 먹어치웠다. 클로저들은 작전에 나서면 위상력을 사용하는데, 이 때 위상력만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의 많은 부분도 소모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클로저들은 항상 잘 먹어도 저절로 살이 빠지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리라고 할 수 있겠지. 유리는 혼자서 한우고기 5인분은 눈깜짝할새 먹어치우니 말이다.


  클로저가 위상력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때는 당연히 차원종과의 전투 때이다.

  이미 전투 하나를 겪고 이곳에 도착한 우리에게는 당장의 체력 보충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음식섭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0분 가량 쉬지않고 그렇게 먹어댄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먹어대니 포만감이 차오는 지금 쯤에서는 우리는 먹던 것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모든 자리는 창가이기 때문에 신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는 신서울의 야경은 참 아름다웠다.

  안타깝게도 한강 너머의 강남은 강북과는 다르게 찬란하던 불빛이 모두 꺼지고 어둑하다. 신서울 사태로 인한 것이다. 아름다운 강남을 구해냈음에도 지금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왜이리 쓸쓸할까.


  슬비는 핸드폰을 들어서 야경을 찍고 있었다.

  나도 찍을까 하다가 우연히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푸훗."

  웃음이 나왔다. 나의 웃음소리를 들은건지, 슬비는 사진을 찍다가 말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이세하, 그 웃음은?"

  "우리, 얼마나 배고팠길래 이렇게 먹었을까?"


  슬비의 입술 오른쪽 아래에 살짝 무언가가 묻어있다.

  아마 음식을 먹던 도중 묻은 모양이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고.

 

  냅킨을 들어 내가 직접 그녀의 얼굴에 묻는 것을 닦아주었다.

  내가 그곳을 스윽 닦자 그제서야 얼굴에 무언가가 묻었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인지, 아무말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귀엽다, 정말로.

  이 녀석이랑 있는 시간이, 정말로 좋다. 그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

  아마, 나 - 이세하 - 는 이 녀석 - 이슬비 - 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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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주캐는 유리인지라 유리의 스토리라인에 나오는 이야기는 완전히 알고 있죠.

  그중에서 유리가 세하에 대해 정확히 짚어내는 부분이 있는데, 그 때 유리가 세하는 "덩치만 크고 속은 아기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죠. 이점에 착안해서 세하의 정신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하의 속은 무의식중에서 어머니를 찾게 되지요. 작중에 슬비를 마치 엄마와 같다고 계속해서 묘사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세하의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보시면 되실 것 같네요.

  나의 세하쟝은 이렇지 않다능! 이러시면 저도 할 말이 없으니, 이러지는 말아주세요 ㅠㅠ


  기다려주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제 성향은 달콤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P.S. 독자님들 중에서 그림에 소질이 있으신 분들, 혹시 커버 일러스트 하나 그려주실 수 있으신 분은 Arculus 혹은 캐릭터 아이디 LuxStellae로 친구추가 주세요~




2024-10-24 22:59:4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