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충견-3화-
렘넌트 2016-01-28 0
결론적으로 나는 살았다.
말렉은 말 그대로 바싹 익혀져서 쓰러졌고 상황이 종료되자 유니온이 오기에 앞서서 벌처스의 처리 부대들이 도착했다. 내가 알 수 없는 밀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안도감보다도 허탈감에 휩싸였다.
어쩐지 허전했다.
어쩐지 실없는 헛소리가 듣고 싶었다.
어쩐지, 어쩐지 알파가…… 보고 싶었다.
나는 벌처스 소속의 병원으로 이송된 후 치료를 받았고 의사로부터 알파가 죽었다는 말과 임무는 실패로 처리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명색이 의사란 놈의 ***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쉽게 나오자 화가 치밀었다.
의사는 그런 나를 보며 코웃음을 치면서 내가 곧 ‘투견장’으로 이송될 것이라 말했다.
투견장이란 벌처스의 처리부대중에서도 실적을 내지 못한 ‘개’들을 뽑아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을 어딘가의 ‘높으신 분’들이 관람하는, 일종의 쇼다.
처리부대는 처리부대대로 살육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고 높으신 분들은 높으신 분들대로 즐거운 구경거리가 생기는 셈이니 일석이조인 곳이라고 한다.
나는 완치된 후 눈과 귀를 봉쇄당하고 구속 복이 입혀진 채로 이송되었다.
나를 구속시키는 것이 풀어진 것은 어느 깜깜한 지하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어딘지는 알 수 없었고 천장이 굉장히 높았다. 드문드문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 자연적인 햇빛이 아니라 인공적인 빛이었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관람석일 것이다.
기력과 의지가 모두 사라졌기에 나는 그저 죽음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척 보기에도 질이 나빠 보이는 녀석들이 들어왔다. 나랑 같은 ‘투견’일 것이다. 면식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 질 나빠 보이는 녀석들 중에서도 특히나 질이 나빠 보이는 녀석이 인사도 없이 내 얼굴을 후려 갈겼다. 시야가 흔들리고 짭짤한 피의 맛이 났다. 등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너 듣자하니 임무에 실패했다면서? 그것도 푼돈 벌 수 있는 임무에서 말이야.”
놈은 음산하게 웃었다.
“참 기구하다, 그치? 아무런 실력도 없으면서 그저 회사가 하라는 대로 다 해서 개중에 개라고 불리면서 이 짓거리를 해왔는데 말이야. 내 짜증나는 감시관이 너를 좀 본받으라고 할 정도였어.”
놈은 아무래도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참 곱상하게 생겼군. 머리도 길고 말이야. 진짜 멀리서 보면 여잔 줄 알겠군. 이 봐 내가 너를 안아 볼 테니까 저항하지 않으면 살려주지 어때?”
놈의 옆에 있던 녀석들과 천장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놈은 재미없다는 듯 내 머리채를 잡고 그대로 땅바닥에 내다 꽂았다.
“시시해서야 원, 구경거리도, 내 흥밋거리도 안 되잖아!”
놈은 연신 내 배에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쿨럭 거릴 뿐이었다.
“내가 좋은 거 알려줄까? 실은 면류관은…… 의료기구가 아니야.”
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면류관은 의료 신상품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놈은 낄낄 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는 기밀도 뭣도 아니니 말해주지. 면류관은 차원종의 머리에 박아서 조종을 할 수 있는 기계장치야. 네가 거기에 간 것도, 말렉을 만난 것도, 전부 다! 차원종을 조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였지! 알겠냐? 이 띨띨아!”
찰칵.
놈의 그 한마디에 흩어졌던 내 의지가 스스로 조립되기 시작했다.
알파가 이용당했던 것도.
알파가 죽어야만 했던 것도.
알파가 지금 조롱당해야 하는 것도.
전부 다 얼굴도 들지 못할 정도로 충성했던, 갈 곳이 여기 밖에 없어서 충성했던 벌처스란 말인가?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웃고 있는 알파, 울고 있는 알파,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알파. 그리고…….
그런 알파를 보면서 남몰래 조소를 보냈던 나, 그런 알파를 보면서 한심한 녀석 취급한 나.
그런 알파에 대한 호의와 짜증을 지금에서야 눈치를 나.
파지직, 파지직.
몸에서 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말렉을 쓰러뜨릴 때 생겼던 분노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변환계 능력 중에서도 나름 상위에 속하는 전기능력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위 기술.
전광석화.
자신의 몸의 위상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서 몸을 전기와 같은 성질로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 소모가 너무 커서 단 몇 초 밖에 유지시킬 수 없다.
전기는, 빛은 1초에 지구의 일곱 바퀴 하고도 반 바퀴를 더 돌 수 있는 속력을 가진다.
몇 초면 충분하다.
놈들도 이상함을 눈치 챘는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나에겐 그 마저도 느리게 보였다.
내 몸은 점점 번개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파크가 점점 강해지더니 내 몸은 하얀색의 에너지로 변해버렸다.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그대로 나의 몸을 에너지를 내던졌다.
제일 먼저 가장 질이 나쁜 녀석과 부딪쳤다. 엄청난 스파크와 빛을 내면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버렸다. 이것을 본 나머지 놈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더 빨랐다. 지구상의 생명체라면 그 누구도 ‘번개’를 추월하지는 못한다. 놈들을 새까만 숯덩이로 만들어버리기 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한계까지 위상력을 끌어올렸다.
남이 타죽는 꼴을 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높으신 분들도, 벌처스도 모두 태워버리기로 했다.
스파크를 넘어 ‘섬광’이 된 내 몸은 천장으로 돌진했다. 뒤에서 뭔가가 파괴되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사람이 보이면 그 즉시 몸을 부딪쳐서 태워버렸다.
좋다, 태워주마, 태워주마, 태워주마. 전부 다!
두런두런 들리는 소리에 나는 몸을 틀었다.
지금까지 태운 녀석들 보다 덩치가 있는 거구가 보였다.
나는 그 놈을……!
콰그작!
태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