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나타] 이젠 아냐
키아나 2016-01-27 3
"속절없다."
난 이말을 들을 때마다, 입에 담을때마다 불쾌함을 느꼈다.
꼬리말고 도망가는 놈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억지로 만들어 낸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그런 말 따윌 할 시간에 한 놈의 목이라도 더 베겠어!"
그렇게만 생각하던 나는 호기롭게 외쳤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도 듣기도, 입에 담기도 싫어하던 말이었거늘.
그 말이 입에서 근질근질 피어올랐다.
"...망할 놈들."
'이제 넌 우리와 함께 할 거야.'
'재와 먼지.'라는 그 망할 놈들은 날 멋대로 잡아다 군단장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다른 놈들이라면 이 자리를 얻다못해 안달복걸 하지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런 역겨운 감투 따위는 필요없다고.'
'아니, 넌 곧 이 감투가 간절해질걸.'
"웃기고 앉아있네."
나는 그때 그놈들의 말을 생각하며 콧방귀를 팡 뀌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옆자리에 놓여있던 검을 들어올려 휘리릭 돌려봤다.
그리고 음식을 나르던 스캐빈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캬아아악!"
"끼아아아악!"
스캐빈져의 목이 허공에서 맴돌다 힘없이 툭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다른 그들은 기겁하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이렇게 생생한데."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살의가 생생한데. 간절해 질거라고? 웃기지 마!"
그들에게 들으라는듯 소리를 바락 질렀다.
허나 그들은 들릴리가 없었다.
만일 듣더라도 "개소리."로 치부하며 흘려 넘기겠지.
순간 무기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나부랭이들한테 화풀이를 일삼는 것뿐.
우스워보이지 않게 몸을 부풀리며 으르렁 거리는 것 뿐이었다.
이럴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또한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들과 같은 감투를 썼다는게,
그들과 같은 피가 내 몸에 흐른다는게,
"내가 이럴려고 자유를 갈망했었나?"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자살기도를 수도없이 해봤었다.
그러나 몇 번이건 실패했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망할... 망할...!'
이가 바득바득 갈렸었다.
또한 내 자신이 한심한 겁쟁이로 느껴졌었다.
이토록 허망한데,
이토록 괴로운데
아직도 "죽기 두렵다."는 마음이 무의식에 산재해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속절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내가 죽을 날만을 기다려왔었다.
"...전령입니다."
"...전령?"
"인간들이 침입해 왔으니 속히 지원을 요청한다는..."
"...인간? 외견을 상세히 언급해 봐."
"외견은 식별이 어려운탓에 상세히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이 버러지가..."
"다, 다만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
"특징?"
"그 인간이 지나간 길에는 푸른 불꽃이 일었다는..."
"...알겠다. 속히 가세하지."
/
"... 지원? 웃기지 마,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그 놈들이 날 막아섰다.
'망할.'
"넌 오래토록 살아남아서 우리의 장난감이 되어야 해."
"그러니 새장 속의 새 처럼 조용히 모이나 쪼아먹기나 해!"
깐족거리는 태도에 열이 뻗쳤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가며 놈들의 비위를 맞췄다.
"날 전장에 내 보내 줘."
"웃기지 마. 죽을려는 걸 모를 줄 알고?"
"... 너희야 말로 웃기지 마. 내가 너희보다 먼저 죽을 줄 알아? 네 놈들을 썰어버리기 전까진 절대 죽지 않을거니까."
"흥, 감언이설에 넘어갈 줄 알고?"
"그만."
"애쉬!"
"...전과는 달리 눈빛이 살아있군, 적어도 거짓말은 하는 눈빛은 아냐, 네 제안. 받아들이지."
"헹, 쫑알쫑알 시끄럽기는 그 인간이 있는 위치나 빨리 말해."
"황혼의 가도 쪽이다."
/
놈이 말한 위치에 당도했다. 저 멀리 익숙한 경관이 보였다.
"푸른 불꽃."
주변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확신이 점점 선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 질 수록 확신은 더욱 선명해졌다.
주변을 물들인 그 근원이 보였다.
확실히 놈이었다.
놈은 서슬퍼런 눈으로 날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꿰뚫어버리겠다는 기세의 저 검광 서린 눈.
"버러지."
몇 년 만인가. 입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이제 속절없다고 절망할 일도 없어, 종지부를 찍을때가 온 거야.'
기쁨에 겨운 나는 놈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 설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목적을 이루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쁘기 그지 없었다.
놈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몸을 웅크려뜨리며 나를 꿰뚫을 섬광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발자국.
내딛기 무섭게
놈은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동시에 나도 삶의 마지막 발자국을 내디었다.
'이젠 아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 자리를 뜰 수 있게 되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