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 복음의 시작 [1화]

톨스토이 2015-12-08 0



"크으, 이쪽 차원은 그야말로 지독하군."


메마른 사막과 같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어두운 공간.
군데군데 검은빛과 보랏빛의 암석 파편이 박혀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구의 '사막'에 비유해야만 적당할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공간에 보랏빛 섬광이 반짝거렸고, 그 섬광이 사라지자마자 그 곳에서는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한 남자가 마치 마법처럼 등장하였다.
조금 전 연구실에서 동료들을 무참히 제압하고 장비를 폭주시킨 장본인, 칼바크 턱스는 자신이 도착하자마자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을 가운으로 가리며 불만에 찬 듯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이 남자가 서 있는 곳은 말 그대로 이차원(異次原).
공식적으로는 그 곳에 도달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곳.
불과 10여년 전 인류를 그렇게나 괴롭힌 생명체들의 고향.
바로 차원종들의 본거지인 외부 차원에 칼바크 턱스는 도달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차원압이라니...준비를 단단해 해서 오길 잘 했군."


위상력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당장 그 압력에 질식해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환경에서도 칼바크 턱스는 사람의 모양을 유지한 채 메마른 차원종의 대지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다행히, 칼바크는 인간의 차원과 차원종의 차원, 간단히 말해 내부 차원과 외부 차원에 작용하는 차원압력에 대해서는 모든 인간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질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그는 실험에 앞서 이 곳으로 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흰 가운과 안에 입고있는 옷도 바로 그 준비의 일환으로서, 내부 차원에 비하면 무식하기 짝이없는 외부차원의 압력에 장시간 버티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만든 옷이엇다.
거기다 위상능력자라는 점이 합쳐지자 칼바크의 예상대로 외부차원의 가공할 압력에도 그는 정신을 유지하고 신체를 온존하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겉모양이 웬지 턱시도와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취향이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칼바크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 쪽지가 없었다면 난 아직도 그녀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겠지, 후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
차원문을 통과할 때의 충격으로 이것들이 박살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다행히 차원압력을 막아주는 옷 안에 넣어뒀기에 담배와 라이터는 멀쩡할 수 있었다.


'파식!'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외부차원에 노출된 담배와 라이터는 칼바크가 담배를 입에 물자마자 재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칼바크는 헛웃음을 지으며 독백하듯 조용히 뇌까렸다.


"칫, 담배도 하나 못피게 하는 군."


투덜대면서도 그는 어느새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 인류가 단 한번도 간 곳이 없는 이차원의 대륙 그 안쪽으로.




-칼바크가 차원문을 통과하기 10년 전-




"케르르르륵!"


때는 아직 차원전쟁의 여파가 충분히 가시지 않은 무렵.
아직도 불안정한 위상변곡률의 상태 탓에 이곳 저곳에서 소규모의 차원종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
초거대 차원종이자 전설에서는 환수로 취급받던 피닉스가 쓰러진 이후 그 여파로 인해 위상변곡률이 불안정해 수시로 차원종이 출몰하는 서울의 폐쇄지구, 구로에서 한 무리의 차원종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케륵? 케르르륵!"


날카로운 이빨과 몸에 비해 머리가 기형적으로 커다란, 마치 SD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모습.
C급의 차원종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나타난 차원종을 통틀어 그 수가 가장 많고 가장 자주 넘어오기로 유명한 무리, 스캐빈져 무리였다.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던 스캐빈져 무리였지만 이윽고 그들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로 한 듯 어느 한 곳을 향해 내달렸다.
대략 10여 마리 정도 되어보이는 스캐빈져 무리는 폐허가 된 구로 지역을 마치 제 집인양 활개치고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이 곳에는 인간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기에 스캐빈져 무리는 아직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채 그저 인간의 모습을 찾아 구로를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이 될 불쌍한 희생양을 찾고야 말았다.


"케르르르륵!"


"으, 으아아!"


운이 없게도 그들의 희생양이 된 것은 바로 10대 초반의 한 어린 소년.
차원종과의 큰 전투에서 구로가 파괴당하고, 폐쇄지역으로 정해지면서 구로와 민간지역을 격리하기 위한 시설, 자이언트 쉴드가 구로를 빙 둘러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방벽이지만 구로의 모든 곳을 완벽히 물샐틈없이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덕분에 자이언트 쉴드 곳곳에는 차원종은 지나가지 못하지만 사람 한 둘 정도는 들어갈 만한 공간이 존재했고, 물론 그러한 공간은 특경대와 군 병력 그리고 클로저들이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지만 가끔 그들의 눈을 피해 그 곳을 들어가는 무리들이 존재하였다.
물론 대부분은 호기심을 못 이겨 차원종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들어가거나, 단순히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기 위해 들어갔다 오는 이들뿐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스캐빈져의 시선에 포착된 이 소년 또한 그런 부류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이런 외곽지역까지 차원종이.."


그 소년의 뒷쪽에는 구로와 민간지역을 가르는 거대한 방벽, 자이언트 쉴드가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외곽지역까지 차원종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소년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하지만 자이언트 쉴드가 바로 뒤쪽에 있었기에 자신이 들어온 그 틈으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소년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이곳의 틈은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의 옆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을 올라가 옥상쪽까지 가야만 통과할 수 있었기에 소년의 눈에 자이언트 쉴드는 시민의 안전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아닌, 자신의 목숨줄을 옭아맨 장벽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으으...그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소년이 이 곳에 온 계기는 그야말로 단순했다.
반 학생들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발끈해버린 자신의 탓 때문이었다.
이국적인 외모..라기보다는 그냥 외국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과 이름 때문에 항상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놀림을 당했고, 따돌림 비슷한 것을 당하는 처지였기에 자신을 괴롭히는 녀석의 도발에 말려들었고, 그 결과 이러한 위험지역에 자신이 서 있게 된 것이었다.
어린 그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이런 외곽지역까지 차원종이 있을리 없을테니 구로에 갔다왔다는 증거를 그 녀석에게 보여주기 위해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려했지만 상황은 그 소년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케르르륵!"


하필이면 지금 왜 이 녀석들이 이 곳에 있단 말인가.
소년은 눈 앞에 나타난 차원종들을 저주하며 어떻게든 입구와 연결되는 건물로 달아나기 위해 애써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스캐빈져들은 눈 앞의 인간이 위상력을 가진 특별한 인간이 아닌, 자신들이 사냥해도 괜찮은 먹잇감으로 인식했고, 그것은 곧 그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휘이잉!'


"히익!"


눈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스캐빈져의 공격.
비록 앙증맞게 작은 손으로 이루어진 공격이었지만 이들은 엄연히 C급 차원종.
일반인이 그 손에 맞았다면 마치 곰에게 맞은 것처럼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살고싶다는 본능 하나로 간신히 첫 공격을 피했지만 소년의 눈 앞에 있는 스캐빈져는 총 12마리.
결코 위상력이 한 줌도 없는 초등학생이 당해낼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케륵!"


첫 공격이 신호가 되었는지 공중으로 높게 뛰어올라 소년을 향해 덮쳐가는 스캐빈져 무리.
그 모습에 공포에 질린 소년은 그대로 얼굴을 가린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대로라면 소년의 죽음은 기정사실이 될 것이 뻔해보였다.



"이런 곳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되지, 꼬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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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글을 잡아보니 어색한 부분도 많군요.

2024-10-24 22:42: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