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슬비

제삼검 2015-09-21 1

 

피난길에 오르던 이슬비의 두 눈위로 수많은 불비들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목적지를 잃은 미사일들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차원종에게 도망가던 민간인들을 덮치고 있었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지키던 전선이 무너졌다. 같은 신서울이라고 해도 그녀의 가족이 살던 곳은 외곽진 곳에 있어서 좀 더 안쪽으로 대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 났다. 조촐한 짐 꾸러미를 들고 험한 피난길을 올랐다. 가파른 길목에 지쳐 숨을 돌릴 때 길 모퉁이에서 빛난 눈동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며 우악스럽게 움직이는 피난민들 틈바구니에 휩쓸려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바닥에 넘어져 우는 아이는 적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날카로운 어금니가 목덜미로 짓쳐 들어갔다. 어머니의 날 선 비명과 함께 시야 가득 새빨간 꽃이 피었다. 그건 이슬비를 습격한 차원종의 생명을 단숨에 앗아갔다. 남은 적들이 내게 달려들었지만 어머니가 손을 뻗자 날아간 쇠붙이들이 차원종들의 목숨을 쉽게 빼앗아갔다.

 

 

일대는 무척 고요했고 어깨로 숨을 몰아 쉰 어머니가 잰걸음으로 뛰어왔다. 연신 이름을 부르며 다친 곳이 없는지 바라보고서 꼭 끌어안았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옷자락을 쥐니 뒤통수를 짚은 어머니가 품에 고개를 묻게 했다.

 

 

" 괜찮아, 슬비야. "

 

 

안아 몸을 일으켰다. 적막이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누군가 물었다.

 

 

" 뭐야, 그 망할 녀석들이랑 같은 힘이잖아 ? "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짚은 손이 너무 억세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제 목숨들을 살려주었다는것도 잊은 채, 사람들은 이 땅에 초래한 전쟁을 모두 위상 능력자들의 탓으로 돌려대는 궤변을 해대고 있었고 이슬비가 속한 이 피난민 행렬도 다를게 없었다.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보호받고 싶어하는 역겨운 이중성에 어린 이슬비조차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 괜찮아.."

 

 

그건 그녀에게 하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그녀의 어머니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까. 적막은 단어 하나로 으스러졌다.

 

 

" 괴물이다! "

 

 

퍽 소리가 들렸다. 짚던 손의 힘이 약해지며 등 위로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이마가 깨진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 움직이려 하니 그것을 잡은 어머니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언제나 짓던 흐릿한 미소로 소리 없는 단어를 그렸다. 완성되자마자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하늘로 붕 떴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픔에 신음을 삼키며 위를 바라보았을 때 음영 진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손에는 사람 머리만한 바윗돌을 들고 있었다.

 

 

" 괴물은 죽여야해! 이 사태들은 다 너희가 초래한거야! "

 

 

" 당신들을 구해줬잖아요! "

 

 

애처로울정도로 안타깝게 울린 말은 그들에게 닿지 않은 것 같았다.

 

 

" 당신들의 목숨을 구해줬는데 어째서!! "

 

 

땅을 짚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스산한 살기를 머금은 눈이 뒤틀린 곡선을 그렸다.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발밑에 핀 하얀 들꽃이 붉게 물들었다. 치켜뜬 눈동자 위로 피가 스미며 뺨을 가로질렀다. 좌중은 침묵했다. 붉은 핏물을 끼얹은 그는 돼지주둥이처럼 입을 내밀었다.

 

 

" 너도 괴물이지 ? "

 

 

숨이 하얗게 일었다.

 

 

" 제 **도 괴물이니까 "

 

 

제 색을 잃은 돌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녀의 세계가 모노톤처럼 물들었다. 하늘의 별도 달도 대지의 바람도 물도 상자에 갇혔다. 모두의 시간이 멈춰 있었다. 두근두근 뛰던 심장박동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이슬비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무어가 그리 재미있는 지 연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토록 쉬운데 왜 어머니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을까. 손을 한 번 휘둘렀는데, 발밑에 있던 작은 돌멩이가 일어나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피가 다시 세계를 물들였다.

 

하나 둘, 그저 죽음을 일관하며 어머니를 죽인놈과 같은 눈빛을 했던 자들의 심장에 자신의 아픔을 박아넣었다. 머리의 일부분이 연분홍으로 변했고, 눈동자의 중앙부분이 시린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과함께 피웅덩이에서 무너져내려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맨 손으로 땅을 팠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끝이 갈려나가 피가 스몄지만 계속해서 팠다. 아직 어려 힘이 없으니 밀듯이 구덩이에 엄마를 밀어 넣었다. 깨진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으로 끌어 모아 묻었다. 조잡하게 만든 봉분이지만 주변을 장식한 엉성한 장식물들은 다시 와서도 그 형태를 잃지 않으리라. 너울너울 떠오르는 공원의 강변에서 엉성하게 만든 꽃다발을 내려두고 마지막에 말했던 말에 화답했다.

 

 

" 나도 엄마를 사랑해요 "

 

 

너무 슬픈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발을 움직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가까스로 다음 피난처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쫓기듯 나와 공원의 강물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엄마를 닮아 예쁘다며 칭찬받았던 얼굴에 피딱지가 앉아 악마처럼 변해있었다. 시종일관 건조했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온몸을 작게 말고 짐승처럼 울었다. 뭐라 정할 수 없는 감정은 밀물처럼 정신을 잠식했다. 그대로 물에 뛰어들었다. 하얗게 일어난 거품이이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게 끌어안아주었다. 반짝반짝 빛을 머금은 수면이 예뻤다. 아득한 정신을 놓고 웃었다. 지금 따라간다면 늦지 않을거 같았다. 다시 그 손을 잡고 같이 저승길 오르면 그거야 말로 행복이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뜨거운 열기를 보내고있는 낡아빠진 히터 앞이었다. 몸을 일으키자 어깨를 덮고 있던 모포가 스르륵 떨어졌다. 전신을 에워싼 추위에 그것을 당겨 덮었다. 살아있는 건가, 죽어있는 건가 알 수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희끗희끗 흰색으로 탈색되어가는 머리를 가진 노란고글을 낀 남자가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시선을 마주하니 그건 탓을 하는 것도 힐난하는 것도 아닌 순수한 응시였다. 얼굴 위로 날아오는 것을 받자 그건 입고 있던 옷이었다. 피로 새빨갛게 물든 것은 원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다시 마주하고 옷자락을 내려다보니 그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딱딱하긴 했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뒤늦게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허겁지겁 입에 우겨넣었다. 잘 씹히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우물거렸다. 살아있었구나. 눈가를 따라 고인 눈물은 크게 덩어리 져 떨어졌다. 보기 흉할 텐데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걸 해치우자 더 먹으라는 듯 내밀기에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 고마워요 "

 

 

침묵을 지키던 남자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왼쪽 어깨 측면에 새겨진 'UNION' 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건지 모르지 않았다.

 

 

" 별로 "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 너도 전쟁의 희생자니까 "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괴물인데도 괜찮나요?"

 

 

그는 한동안 내 눈을 응시했다. 고글너머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화난표정을 짓고 있는것 같아서 몸을 움츠렸다.

 

 

" 넌 괴물따위가 아니야, 그저 조금 특별할뿐이지, 아직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

 

 

" 우리 엄마를 괴물이라면서 죽였는걸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줬는데도.. 괴물이라면서 죽였다구요! "

 

 

그는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말을 고르듯 긴 한숨을 쉰 그는 다시 한 번말했다.

 

 

" 괴물 따위가아냐, 너희 어머니도 너도 인간인거다. 너를 부정하지마라, '우리가' 자신을 잃게되면 정말로 밖에 뛰어다니는 괴물들과 다를바 없어지게 되는거야. "

 

 

그녀는 흡 하고 울음을 삼켰지만 이미 터져나온 화산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안에 수많은 밤하늘의 별이 흘러들어 땅을 적셨다.

 

 

 

낡은 건물폐허에서 하룻밤을 꼬박 지새고서 그가 데려간곳은 자신의 자켓에 새겨진 UNION 과 같은 로고가 새겨진 간판의 작은 건물이었다.

 

 

" 세상은  너의 힘을 필요로 한단다. 이곳에 있으면 분명 네 힘을 어떤 방향으로 써야할지 가르침을 줄거다.어머니가 죽은건 애석한 일이지만 모든 세상사람이 다 너희 어머니를 죽인 사람들과 같진 않단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어. "

 

 

또각또각- 하는 구둣발 소리가 그녀의 옆으로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긴 검은머리가 커튼처럼 그녀에게 흘러내렸다.

 

 

" 부탁해요, 누님 "

 

 

꽤나 미인상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슬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네 이름이뭐니? "

 

 

정말로 오랫만에 듣는 질문에 그녀는 한동안 생각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 기억속을 헤메이다 생각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 이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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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은 무시입니다. 클로저가 되기전 슬비 스토리 각색한겁니다.

 

2024-10-24 22:39:2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