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16-2
이케아라 2015-07-24 4
비슷한 시각. 검은 양 팀의 작전수행 지역.
"으으음... 좀 이상해."
"응? 뭐가?"
"뭐가요? 슬비누나."
황량한 대지위에 거대한 동굴을 눈앞에 두고 모니터화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슬비가 어리둥절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자 유리와 테인이가 질문을 던졌다.
관리요원 김유정의 명령대로 노트북의 화면을 통해 동굴에 침입한 클로저들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검은양팀은 꽤 오랜 시간동안 동굴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평소엔 활발하고 장난기 넘치던 유리와 미스틸도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엔 착실하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 응해준 유리와 미스틸을 보고 슬비가 입을 열었다.
"사전에 지급받은 보고서에도 적혀있었지만, 이 동굴은 상당히 복잡하고, 꽤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잠복해있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까지 테러리스트는 커녕 제대로 된 함정조차 작동되지 않았다는 건 뭔가 좀 이상해."
"음... 함정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무사히 적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니까 다행인거 아냐?"
"그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순조로운 일이 있을땐 언제나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거든. 드라마에서 보면 언제나 그랬어."
진지한 눈빛으로 드라마를 언급하는 슬비를 보고 유리와 테인이가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셋이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그들의 관리요원이자 보호자인 김 유정과 제이가 회의를 끝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 유정이 언니! 아저씨!"
"회의는 다 끝나셨어요?"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유정과 제이를 마중한 유리와 테인, 슬비가 그렇게 묻자, 두 어른은 굳은 표정을 미처 다 풀지 못하고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실은 안 좋은 소식이 있어."
"...그게 뭔데요?"
사태의 심각성을 예측한 슬비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어오자, 제이가 혀를 차며 대신 대답했다.
"유니온본부에 차원종 출현경보가 울려버렸어. 위상력 억제기가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는 그곳에 차원종이 출현했다는건, 십중팔구 인위적으로 일어난 일일거야."
"유니온에서 차원종을 일부러 풀어 놓았다는 건가요?"
"그뿐만이 아니야. 우리가 체포할 예정이었던 테러조직들이 한참 전에 유니온 본부로 향했었다는 것 같아. 그 사실을 이제야 알려준 거였고. 역시 유니온과 테러조직은 협력관계에 있었던 게 분명해."
유니온에대한 혐오감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 제이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대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이는 팀의 최연장자로서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드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그...그래도! 어쩌면 이게 다 테러조직에서 꾸민 일일수도 있잖아요! 조금만 더 조사를 해보면...!"
쿠과강!!
그나마 유리가 어린마음에 억지웃음을 띄우며 제이의 말을 부정하려했다.
하지만, 동굴안에서 메아리쳐오는 폭발음이 유리의 말을 끊어버리고 검은 양팀을 비롯한 클로저들의 주의를 끌었다.
거대한 동굴입구를 가득 채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클로저들을 저마다의 무기를 챙기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요원들과 지원물품을 점검하고 있던 요원들도 제각각 다른 무기를 손에 든채 동굴에서 나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주시하고 있었다.
"아~! 역시 일일히 처리하는 것보단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게 제일 후련하다니까? 뭐, 금방 끝나버리는 바람에 재미는 없었지만."
"난 금방 끝내는 게 더 좋아. 이런 녀석들 상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짜증만 나니까."
그렇게 수초 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클로저들이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듣고 잠시 정신을 놓았다.
대화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인물의 목소리가 어린 청소년의 목소리 같았고, 그런 말을 아침메뉴가 뭐냐고 묻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고 있는 검은 양 팀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목소리...! 애쉬와 더스트잖아?!"
슬비의 말을 긍정하기라도 하듯 동굴에서 새까만 재와 거대한 먼지바람이 순식간에 대기를 흩트려 놓았다.
갑작스럽게 몰아**온 유해물질들 때문에 클로저들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연출만으로도 허리를 숙이다니..."
상대방을 얕잡아보는 감정을 거리낌없이 표출하며 차원종 남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도 100%은으로 물들어놓은 듯한 새하얀 은발, 10대 후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눈가에 새겨진 붉은 아이라인과, 어두운색을 바탕으로한 의상이 육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선 자타가 공인할 선남선녀인 그들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클로저들은 이 차원종남매가 뿜어대는 위상력을 감지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무기를 치켜들 뿐이었다.
"콜록! 콜록! 저 녀석들... 왜 이런 곳에서 등장한 거지?"
어찌어찌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를 치워낸 제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애쉬와 더스트가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게 어지간히도 신기한 모양이군. 뭐, 단물이 다 빠진 아저씨라면 우리계획을 예측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에휴~ 그래도 한때는 나름 귀여웠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김이 다 새네..."
"됐으니까 왜 네놈들이 여기 있는 지나 말해!"
격정적인 감정으로 소리를 치는 제이를 보고 애쉬와 더스트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그런 걸 순순하게 밝혀 줄 것 같아? 강남에서 조금 도와줬던 것 때문에 서로의 관계를 잊어버리기라도 한건 아니겠지?"
원래 차원종과 인간은 불구대천의 원수다. 이렇게 서로의 언어로 말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답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애쉬와 더스트를 보고 제이가 짧게 혀를 찼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차원종 남매는 잔혹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손을 마주잡은 채 클로저들을 가리키며 말할 뿐이었다.
"어쨌든...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적으로 만나게 됐으니까 잠시 놀아달라고. 인간들."
"꺄핫! 오랜만에 날뛰려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대는데?"
마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미소 짓는 그들을 보고, 클로저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위상력을 발산한 뒤, 전투태세에 임하기 시작했다.
------------------------------------------------------------------------------------------------------
다시 유니온의 비밀 실험실.
갑자기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S급 차원종 라움에 의해 지금 상황을 파악하게 된 세하는 세차게 흔들리는 동공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테러조직과 차원종이 유니온본부를 습격하고, 아저씨랑 다른 애들은 애쉬와 더스트랑 교전을 벌이고 있다니... 이게 정말 사실이야?"
"어머. 방금 전까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 나한테 확인을 요구하는거야? 설마 내가 가짜 영상이라도 흘려보내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난 그런 귀찮은 짓은 안 해. 난 오직 사실만을 얘기 할 뿐이라고."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쫙 피며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말한 라움을 보고 세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이를 악 물었다.
'역시 높은 자리에 있는 어른들은 다 썩었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차원종과도 손을 잡아버리지. 이래서 권력자들이란...!'
세하는 높은 지위를 가진 권력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가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몹쓸 짓이라도 서슴치 않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차원종과 결탁해 강남을 불바다로 만든 신서울의 전(前)지부장이나 김기태같은 인물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강남뿐만 아니라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를 가진 아메리카 대륙을 폐허로 만들어 위상능력자의 권위를 앞세우려는 어른들이 이런 악행을 벌이고 있다.
인륜을 저버린 유니온의 만행에 세하가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라움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나를 통해 지금상황을 깨달은 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어?"
"......계획을 막고 싶어. 그리고 이런 일을 벌인 유니온에게 죄를 묻고 싶어."
너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 라움의 말에 세하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움직이며 본심을 말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세하의 눈을 보고 라움이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그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을 어루만졌다.
"그럼 한번 해봐. 너 혼자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 궁금하던 참이었거든. 하지만, 지금의 네 상태론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할테니까 특별히 내가 힘을 빌려줄게."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하는 자신의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듯 한 감각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만해도 사슬의 영향으로 혈색을 잃어가던 몸이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고, 연구원들에 의해 흡수당했던 위상력이 전혀 다른 성질을 띈 채 몸을 지배해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경험에 세하가 당황해하고 있었을 때, 로브를 날개처럼 펼친 라움이 떠나가듯 말했다.
"차원전쟁시절의 네 어미처럼, 한번 신나게 날뛰어봐. 이세하군?"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말을 끝으로 세하는 유니온에 대한 복수심과 파괴욕구만을 남겨둔 채 모든 이성을 잃어버렸다.
--------------------------------------------------------------------------
(메이플)프리드가 주인공인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전 주인공이 흑화하는 스토리가 좋습니다 후후훟
늑대개를 플레이한 뒤로 검은 양 팀도 불행한 결말을 맛보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나리오를 대충 짜둔 상태라 그럴 수가 없네요 (아쉽)
*새벽에 약 20kb분량을 써서 뿌듯했는데 이걸 한꺼번에 다 올리니까 에러때문에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번거롭게 2개로 나눠서 올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