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오세린편- 1장: 제이, 쓰러지다.

Maintain 2015-04-17 6

집에서 검은양 사무소까지는,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한 15분 정도? 

사무소까지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통 불과 연기로 가득찬 아비규환이었는데.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니, 그게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주변에 크게 부서진 건물과 군군데 파여 있는 도로,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복구하시는 특경대 대원분들을 보고, 그게 현실이었구나,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아, 오세린 요원님! 안녕하세요?"

특경대 대원분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던 송은이 경정님이, 나를 먼저 발견하시고는 반갑게 인사하신다. 변함없이 활기차신 분. 내가 조금이라도 이 분의 성격을 닮았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면 난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까?

"아...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그때 이후론 처음이죠? 곧 전근가신다고 들었는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그게...이제 여기도 곧 있으면 더 이상 못 오니까...그 전에 여러분들께 인사라도 드리려고...아, 맞다. 송은이 경정님, 혹시 식사 하셨나요?"
"에휴...아직이요. 재해복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네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아, 다른 게 아니라...제가 도시락을 좀 만들어 와서요...혹시 괜찮으시다면..."
"도시락이요? 우와~저야 고맙죠! 감사히 먹을게요!"

휴, 다행이다. 거절하시지 않으셔서. 나는 경정님께 도시락을 건네 드렸고, 경정님은 정말 눈깜짝할 새에 그걸 다 드셨다. 저런, 저러다 체하면 어쩌시려고...

"걱정 마세요. 이런 걸로 체하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 오셨네요?"
"다른 분들께도 좀 드릴까 해서요...싫어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싫어한다고요? 에이, 그럴 일 없을 거에요! 얼마나 맛있는데. 아, 그럼 혹시 검은양 사무소에도 가시는 건가요?"
"예? 아... 예."
"아, 저기, 그러면..."

뭔가 말씀하시려는 게 있는 걸까? 하지만 조금 이상한걸? 경정님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시고, 몇 번이고 말씀을 하시려다 마시는데. 굳이 텔레파시를 쓰지 않아도, 지금 경정님이 뭔가 부끄러워하시는 게 있는 게 빤히 보인다.

"저...경정님...?"
"아, 그, 그게 말이죠! 벼, 별거 아니에요! 애들한테 안부 전해 주시라고요. 그리고...제이 아저씨한테도요. 부탁드릴게요."
"아...네..." 

기분 탓이었을까? 왠지 마지막에 제이 선배님을 강조하는 것 같았는데... 선배님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얼굴이 빨개지신 채 다 비운 도시락통을 건네주시고는 빠르게 사라지시는 경정님을 보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에이, 함부로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니야."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물론 텔레파시를 쓰면 경정님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일이 사실이더라도, 선배님의 일에 나 같은 무능한 후배가 끼어들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만약 선배님이 그걸로 좋아하신다면, 그걸로 됐다. 오히려 내가 더 기뻐할 일이겠지.

"우우..."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우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분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드리러 가는 내 발걸음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다른 분들에게도 도시락을 전해 드렸다. 다들 맛있게 드셔주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다시 뿌듯해져 왔다. 이런 걸로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기뻤다.

이제 남은 곳은 한 군데. 그 한 곳인 검은양 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 검은양 사무소에 오는 건 이게 처음이네. 조금은 긴장되는걸. 나는 문을 노크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걸까?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 봤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여기가 검은양 사무소구나. 신기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본다. 방 한가운데에 긴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그 앞에는 여러 낙서가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가 있엇다. 가운데에 그려진 그림은 아마 작전에 대한 거겠지. 그리고 또 한 구석에는 게임기가 잔뜩 연결된 작은 TV가 있고, 문 옆에는 긴 소파가 놓여져 있다. 조금 좁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한 사무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휴...애들도 참."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건 그 나잇대 애들답다고 해야 하는 걸까? 테이블 위에 잔뜩 어지럽혀져 있는 각종 책과 필기구. 여기저기 함부로 널브러져 있는 담요와 옷가지들, 그리고 애들이 먹었던 것처럼 보이는 온갖 음식물 봉지까지. 난장판, 까지는 아니지만, 이건 조금은 청소를 해 줘야 할 거 같다. 그래, 애들이 돌아올 때까지, 깜짝 선물이라도 준비해 줄까.

근처 가게에서 쓰레기 봉지를 사 와 쓰레기를 버리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이렇게 해서라도 애들이 더 임무를 잘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창 청소를 하다가, 소파 위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이건..."

검은색과 노란색이 잘 어우러진, 하지만 왠지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늘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수습요원 상의. 제이 선배님의 옷이었다. 소파 위에 함부로 벗어져 있는 그 옷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제이 선배님, 이렇게 옷을 함부로 벗으시면 나중에 입으실 때 곤란해진답니다? 옷에 주름이 잡혀서 모양이 잘 안 산다고요. 옷걸이에 걸어두려다가,

"......"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에 이런 장면이 많이 나왔지. 좋아하는 사람의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 갑자기 그게 생각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선배님의 옷을 코에 대고 있었다. 익숙한 파스 냄새와 시큰한 땀냄새가 겹쳐, 묘한 기분을 들게 하는 냄새가 났다. 그렇게 계속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왠지 나도 모르게 조금은 흥분이 돼서...

"...핫, 안돼, 안돼."

하마터면 부끄러운 짓을 할 뻔했다.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고, 선배님의 옷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쓰는 사무실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안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청소를 마무리지었다. 이제 아이들과 선배님이 오실 때만을 기다리면 되겠지.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도 모르게 깜박 졸았던 모양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왁**껄한 소리를 듣고 눈을 뜨니, 나는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아, 왔구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고, 아이들과 선배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응? 사무실의 상태가...?"

가장 먼저 사무실로 들어온 건 이세하 군이었다. 세하 군은 깨끗해진 사무실의 모습에 놀란 건지, 여기저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뒤따라 들어온 이슬비 양, 서유리 양, 미스틸테인 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왠지 그 모습이 보람차기도 하고 또 살짝 재밌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쿡, 소리내서 웃고 말았다. 아쉬워라. 깜짝 놀래켜 줄 생각이었는데.

"어라? 세린이 언니! 오랜만이에요~!"

서유리 양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다른 아이들도 그제서야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오랜만이에요. 오세린 선배님. 그때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이슬비 양은 여전이 딱딱하네. 그런 점이 저 아이의 매력이긴 하지만. 

"이제 다른 데로 전근가신다면서요? 으...귀찮아서 어떻게 버틴대요? 지금 우리도 이렇게 귀찮은데..."

이세하 군도 마찬가지고. 게임기는 하루도 손에서 안 때는구나. 슬비 양이 지금 잔뜩 째려보고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세린이 누나, 근데 그건 뭐에요?"

내 손을 보며 흥미진진한 듯 눈을 빛내며 미스틸테인 군이 조금은 어눌한 발음으로 묻는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아참, 깜박했네. 이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어서...도시락을 좀 만들어 왔어. 변변찮은 솜씨지만."

"도시락이요? 잘됐다! 마침 배도 고팠는데."

서유리 양이 눈을 빛내며 맨 먼저 도시락을 집어들었다. 저 아이의 식욕은... 참 대단한 거 같다. 그러면서 저런 몸매를 가지고 있다니. 특히 저 가슴은...윽, 갑자기 휑한 기분이 들어서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와, 이거 맛있어요! 애들아! 너희들도 먹어 봐! 이거 진짜 맛있어!"

뭐, 그래도 그 덕분에 내 도시락은 절찬리에 팔려나갔지만. 아이들이 내 도시락을 먹고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들어 오길 잘했어, 뿌듯함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김유정 관리요원님이 안 보이네?"

"아, 유정이 언니요? 서류 작성인가 뭐 때문에 지금 재해복구 작업장에 남아 있어요. 혹시 유정이 언니 도시락도 만들어 오신 거에요? 여기 놔두고 가시면 나중에 제가 갖다 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 조금 부탁할게. 그런데...  저기...제이 선배님은?"

하나 남은 도시락의 주인-제이 선배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이나 다른 볼일 때문에 늦으신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살짝 불안한 마음에 제이 선배님에 대해서 묻자, 다들 도시락을 먹던 손을 멈추는 게 아닌가. 

"큭. 제이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고, 침통한 표정으로 이세하 군이 쥐어짜내듯 말했다. 그 때도 저 정도까지 심각한 표정은 지은 적이 없는 아이인데.

"제이 아저씨...훌쩍..."

서유리 양도,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말만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이슬비 양도 푹 고개를 숙이고 있고, 미스틸테인 군은 아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기...선배님께 무슨 일이라도...?"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나라도 제이 선배님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이슬비 양에게서 제이 선배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나는, 그만 힘이 빠져서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믿을 수가 없어...그럴 수가... 선배님이...

"선배님이... 쓰러지셨다고...?"















그럴 수가...선배님이...

선배님이...독감이시라니...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즘 조금 바쁜 일이 생겨서, 글쓰는 속도가 많이 죽었네요. 
음...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것인가, 부족한 점은 없는 건가. 독자분들과의 소통은 부족하지 않은가...이것저것 생각은 많이 해 봤고, 결론은 아직 제가 글쓰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ㅠㅠ
글실력이 앞으로 좀 더 늘어났으면 좋을 텐데요.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아마 다음 편은 제저씨의 시점에서 에피소드 한두 편 정도 이야기가 전개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오세린편이 끝나고 시간이 남는다면, 단편도 하나 써 볼 생각이고요. 30일인가가 슬비 생일이던데, 그 전에 이 편이 끝날 수 있으면 좋겟네요. 단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공지 및 설문조사를 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24-10-24 22:25:4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