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파이] 그날의 기억

PlaylMaker 2020-07-24 2

*이 글엔 자극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얀데레, 집착 설정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글을 보시고 난 뒤, 기분이 나빠지신 건 제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 날은 강렬하면서도 아련했던 기억.

"야! 이슬비, 카톡 왜 무시해?"

리더에게 톡으로 오늘 일정에 관해 물었지만, 답이 없자, 직접 회의실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인물이 있었는데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사냥터지기 팀의 클로저였다.

"서지수님의 자제분이신 이세하 요원님이시군요! 만나게 뵈어 반갑습니다."

"어라? 네...... 안녕하세요."

큰소리치고 들어갔는데 괜히 머쓱해져서 돌아가려 할 찰나,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존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오늘 누가 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유정이 누나는 오늘 연차인데요... 서유리를 기다리고 계신 거면 대신 연락할까요?"

"아니요. 오늘은 이세하 요원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저를요?"

거의 접점도 없는 사냥터지기 팀의 클로저가 나를 만나러 와야 할 용무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나로선 알 턱이 없었다.
침으로 까끌까끌해진 목을 축인 뒤,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뭔가 흠이 잡힐 일이라도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일단 여기에 앉아주시겠습니까?"

"네?.... 네."

순간적으로 거부하기가 어려울 만큼의 기백이 느껴졌다. 요청이라기보다는 지시에 가까웠는데 그걸 순순히 따르고 있는 자신에게 더 놀랐다.

내 앞에는 차로 보이는 음료가 내어져 있었는데 이미 이럴 것이 의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향을 살짝 맡고 있자, 그녀는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잠갔다.

"?.....문은 왜?"

"아, 이건 말이죠.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돼서요."

그때, 과거 속에 묻혀 왔던 기억이 차츰차츰 머릿속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참, 그건 봉선화 달인 물인데 식기 전에 드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냉기를 물리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료거든요."

****


5월 15일.
그 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게임을 하고 있던 나는 배터리 방전으로 인해 더는 스테이지를 이어갈 수 없었고 방 천장을 바라보며 넋 놓고 있었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던 유일한 여가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나는 자연스레 맥이 빠졌다.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여는데 오늘 먹을 만한 반찬이 딱히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이 우중충해 밖으로 나서기는 싫었지만, 엄마의 생일만큼은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는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옮겼다.
우산은... 챙겨가야겠지.
퇴근 시간이 되었음에도 마트는 그날따라 많이 한산했다. 미역과 소고기, 그리고 잡채 재료를 사고 돌아가는데 평소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케이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너무 비싸 한동안 오지 않았던 장소.
각 빵에 걸린 가격표를 보고 왜 오지 않았었는지 뼛속 깊이 체감한다.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갑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소시지 빵, 멜론 빵, 잼 등을 건너뛰고 중앙에 전시된 케이크를 바라본다.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부터 치즈, 아몬드, 딸기 그리고 민트초코....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럼 엄마에게 어떤 케이크를 선물할까?
으음...
엄마의 기호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라 생각했지만, 막상 바라보니 갸우뚱했다.
딸기를 좋아하시니까 딸기가 좋으려나.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을 확인해보니

「아들, 엄마 조금 늦을 거 같아서 먼저 먹고 있어. 오늘도 사랑해.」

으음... 역시 사춘기 소년에게 낯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트렌드에 맞지 않는 엄마로군.
가끔은 과한 애정표현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넘겨두자.
무려 엄마의 생일이니까.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려다가 부끄러워져서 하지 못했다.
결국, 22000원이나 하는 딸기 케이크를 과감히 결제.
잘 가. 나의 신작 게임들아.

"안녕히 가세요!"

순간적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가 기뻐할 거라는 예상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래도 매일 고생하시는데 케이크 사는 돈을 아까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우수수 내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누나에게 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눈송이처럼 새하얀 머릿결, 바이올렛 같은 연보라빛 눈동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지만 내가 알기로 이 주변에 그런 행사는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래 이런 모습을 하고 다닌다는 의미.

그런데 어느샌가 이 누나는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너무 빤히 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급히 시선을 돌려**만 때는 늦은 뒤였다.
어쩔 수 없이 이 무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쪽에서 말을 걸기로 한다.

"누나, 혹시 우산 없어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씌워드릴까요?"

그러자, 내가 그 말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작업 멘트 치고는 조금 진부하네요."

가슴이 순간적으로 두근거렸다. 이성이 아닌 감정부터 반응하는 고혹적인 모습.
학교에서 배운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라는 걸 지금 적용하기엔 이미 게임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제 쪽이 키가 더 크니 우산을 제가 들겠습니다. 마침 짐도 들고 계시니 그리 해야겠죠."

"아......"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작은 키가 갑자기 원망스러워졌다.
어쨌거나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 누나에게 우산을 건네주기로 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큰 걸 가져왔어야 했는데 어깨를 어느 정도 밖으로 내밀었음에도 몸이 과도할 정도로 밀착되었다.
이러다 석봉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달콤한 로즈베리 향에 취해 그 고민 또한 바로 망각했다.
이 누나.... 정말 사람일까? 인형 같은 이질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다.
어깨가 젖어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가는 길이 설렌다. 영원히 이 향에 취해 있을 수 있으면 게임 안에 세계보다 즐거울 수 있을까?

여러 망상에 잠겨 있을 즈음 갑자기 누나가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아 자기 쪽으로 당겨왔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했지만, 나의 어깨 쪽으로 향한 시선이 누나의 행동을 설명해 주었다.

"세하군은 참 다정하네요.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거겠죠?"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유니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알파퀸 서지수 님에게는 많은 신세를 졌죠."

아, 엄마의 지인인가. 그렇다면 나를 알고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내 이야기를 하니까. 어쩌면 자신보다 내 칭찬을 하는 게 기분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엄마를 만나게 되면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전 여자에게 인기 없어요."

"직접 전하시면 더 기뻐하실 텐데 그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곧 퇴근하실 텐데요."

"그건......"

부끄럽다곤...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때문에 빠르게 뇌를 굴려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낸다.

"저보다는... 같이 일하는 분의 조언이 더 와 닿을 테니까요."

"아~ 그런 의미라면 기꺼이."

겉으로는 수긍하는듯한 대답을 들었지만, 나의 의견에 정말 동의했다기보다는 예의상으로 받아준 느낌이 더 컸다.
**... 어른들은 역시 어렵다니까.
그렇게 복잡한 상황을 뒤로하고 누나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층수를 눌렀다.

어라? 어디까지 따라가는 거지? 나......

아무리 엄마의 지인이라고 해도 집 앞까지 가는 건 실례다. 다시 1층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문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세하군은 좋은 곳에서 사네요. 저도 여기에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

정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누나가 우리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지를 못 했다.
그제야 뒤늦게 의심의 싹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나..."

"아, 잠시 옷 좀 말리고 가도 될까요? 서지수 님께는 미리 허락을 받았습니다."

"엄마에게요?"

그렇다고 하기엔 한 번도 폰을 들여다본 적도 없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뻔한 거짓말.
만약 위상능력자라면 나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비상전화에 손을 올려다 두고 누나의 요청에 응하는 척한다.

삑삑삑 삐-빅.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소 힘겹게 버튼을 눌렀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누르고 있어서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다.
덜컹.

집안에 엄마가 미리 돌아왔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나를 반겨준 건 스산한 분위기의 어두컴컴한 광경이었다.
더구나 이런 불안감에 쐐기를 박듯 뒤에서는 잠금 버튼의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안 좋은 감은 벗어나는 법이 없다. 반응 속도라면 자신이 있던 터라 엄마에게 비상전화를 보내려 했지만... 내 주머니에서는 이미 스마트폰이 벗어난 이후였다.

"?! 어라?"

"그대는 보기와는 다르게 음흉하네요. 모르는 여자를 집안에 들여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조금 전까지 내게 있던 스마트폰이 누나의 손에 들려있었다. 주머니에 무언가 빠져나갔다면 위화감을 분명 느꼈을 텐데... 징조조차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엄마에게... 연락했어야 했는데 너무 경솔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누나에게 향한 호의의 감정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젖은 어깨가 만들어내는 한기는 어느 때보다 춥게 느껴진다.

"아...아..."

"쉿."

누나의 검지에 내 입술이 닿았다. 립글로스를 바르는듯한 부드러운 손놀림은 나의 두뇌를 둔하게 만들었다.
뱀이 먹잇감에 접근하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지만 나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바지 밑단이 젖어있는 불쾌함조차 지금은 너무나도 사소했다.

귀에 습기가 가득한 숨결을 불어온다. 사심이 가득한 욕망의 스킨십이 나를 점점 경직되게 만들었다.

"여자를 밝히는 나쁜 아이는... 누나에게 혼나야겠죠?"

"저....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엄마에게 무슨 원한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어머... 그럴 리가 있나요? 이렇게 귀여운 그대를 낳아주신 분인데. 당연히 감사한 마음뿐이죠."

쪽.

오른쪽 볼에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그게 입술이라는걸 알아차리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야...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이제... 저에게 주시기만 하면 감사한 마음이 더 굳건해질 텐데요."

바닥에 종이 뭉치가 무더기로 떨어진다. 좁디좁은 주머니에 뭐가 그리 들었는지 꺼내도 꺼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의 정체는.

"이건.... 나?"

등굣길, 학교, 게임방, 석봉이네 집, 병원 안까지.
장소는 다 달라도 찍힌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더 경악스러운 건 도저히 안 들키고는 찍을 수 없는 구도에서조차 보란 듯 찍혀있다는 사실.

"어떻게?..."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카메라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나를 비춘다.
찍힐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둠에 비치는 누나의 홍채는 흡사 광기를 띄고 있다.

"하~ 이제 그대를 찍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겠어요."

난폭한 손아귀에 팔을 잡혀 안방의 침대를 향해 끌려간다. 다급해 보이는 누나의 발걸음에 맞추느라 호흡이 가빠졌지만, 배려를 받을 리는 만무했다.

풀썩.

침대 위로 밀쳐진 나는 그대로 덮쳐지는 걸 받아내야만 했다. 누나는 오랜 갈증에 목말랐던 사람처럼 거친 교성 같은 숨소리를 가감 없이 나에게 토해내고 있다.

뚜둑- 뚜둑-
"하아 하아..."

숨소리에 맞춰 나의 와이셔츠의 단추가 풀어헤쳐 진다. 사실 모양새로만 보면 풀린다는 말보단 뜯긴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나는 이렇게 유린당하는 걸까.
그때, 눈에 들어온 누나의 입술.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추위에 못 이겨 새파랗게 질린 것처럼 보였다.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를 탐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
뭐가 됐든 이대로 당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누나의 유혹에 맞춰 조금 용기를 내본다.

오히려 내 쪽에서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대자, 흠칫 놀란듯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뭇거리던 입술은 조심스럽게 포개졌다.
차가운 혀가 뇌를 관통해 찌릿한 자극이 온다. 침에서 나는 봉선화 향과 몸에서 나는 로즈베리 향이 조화를 이뤘다.
누나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내 입안을 더 강렬하게 탐닉해온다.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줄 정도로 비위는 아직 강하지 않지만 내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해보려고 한다.

읍...

침대 커버를 강하게 쥐고 있자, 누나는 이걸로 대신하라는 듯 내 손을 겹쳐 잡았다.
그렇게 리드에 맞춰 혀를 뒤섞고 있다가 점점 측은한 마음이 들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흐...윽..."

여러 감정이 교차해 눈물이 흘러나온다.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누나는 나에게서 떨어졌다.
조금 전과는 다른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그대는...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래서..."

"무엇이 누나를 이렇게까지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우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긋남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저를 안는다고 누나가 괜찮아질 것 같으면 백번, 천 번이라도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누나에게도 좋지 않아요. 이제 그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요."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누나의 동공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왔다.
부디 이게 긍정적인 신호이길 바라며 실같이 늘어진 침을 닦고 대답을 기다린다.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저기? 괜찮으세요?"

"저....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아니 도저히 용서받을만한 일이 아니야. 아하하하하.... 이런 짓을 하고도 용서받을 리가 없잖아?"

큰일이다. 예상보다 심하게 아픈 모양이다. 좀 있으면 엄마도 올 텐데... 빨리 진정시키지 않으면....

"아들! 왜 잠금으로 해놨어? 케이크는... 현관 앞에다 둬놓고."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집으로 돌아와 계셨다는건데... 숨기기엔 늦었다.
어쩌지... 누가 봐도 불건전 교제로 보일 텐데 엄마에게 들키는 날에는 슬퍼하실지도 모른다.

일단 누나를 진정시키고 말을 맞추려는 찰나
어라...
어느새 누나가 있던 자리엔 드라이아이스 같은 하얀색 잔상만이 남아있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긴박했던 마음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려 할 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세하야!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어... 그게."

와이셔츠는 흠뻑 땀에 젖어있는 채였고 몸은 이상하리만큼 기운이 없었다.
즉, 아픈 사람으로 오인당하여도 특별하지 않다는 뜻.

"아니에요... 조금 피곤한 것뿐이에요. 그러고 보니... 저녁 준비 하나도 못했는데..."

"...아니야! 아직 한창 자랄 나이인데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빨리 녹두 해물죽 만들어줄게."

"노...녹두 해물죽이요?...하하...  이미 저녁 간단하게 먹어서 이만 자러 갈게요." 

저걸 먹었다가 괜히 심장에 안 좋아질 수 있으니 빠르게 방으로 돌아갔다. 무언가를 빼먹은 것 같지만 누나가 사라진 것만 해도 다행이니 더 의심을 사기 전에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부드러웠지 누나의 입술.

여운에 잠길만한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누나는 이성으로서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에서 헤어나기 위해 이제 그만 게임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충전 중이던 게임기의 전원을 켠다.


***


아들을 걱정스럽게 살펴보던 서지수는 현관 앞에 떨어져 있는 사진 뭉치를 하나하나 펼쳐보았다.
예리하게 번쩍이는 그녀의 뇌는 무슨 일이 아들에게 있었는지에 대한 추론을 하느라 분주했다.

`이건... 도촬인가.`

구도로 봤을 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찍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자기 아들이 어떻게 이 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걸 왜 현관 앞에 널 부러 놨는지에 관해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엄마에게 상의를 하지 않았다는 건.... 걱정시키기 싫다는 의미겠지.`

서지수는 세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아들은 이제 겨우 중학생, 경우에 따라 이 일에 대해 강하게 추궁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관에 이어 안방도 돌아본다. 땀 냄새와 뒤섞여있어 제대로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미묘한 향수 향이 코로 흘러들어왔다.

`여자 향수...로즈 베리인가?`

그리고 바라본 침대 시트.
격하게 움직이기라도 한 듯 심하게 모양이 헝클어져 있다. 아파서 뒤척이다 보니 그랬다고 하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

어렵게 찾아낸 머리카락. 자세히 ** 않으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색감을 띄었다.
천하의 서지수조차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세하야... 엄마가 너를 믿어도 될까?"



*죄송합니다. 즉흥적으로 쓰는 바람에 다음 화는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ㅜㅜ 원래 결말 정도는 정해두는데 이전 글을 만회하려는 욕심에 마음이 앞섰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고민인데 개인적으로 제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자괴감과 회의감이 너무 심하게 들었네요. 으... 현타왔습니다.


2024-10-24 23:35:3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