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그렇기에 침묵했다

Forgetter 2020-03-22 7

시궁쥐 팀 부산 스토리 결말 이후의 if 설정

 

 

 

 

 

...?”

“...”

 

예상치도 못한 하루 정도의 짧은 휴가를 받아, 오후 시간에 뜻밖의 자유를 얻은 볼프강은 정처 없이 걷던 중에 우연히 누군가를 발견했다. 얼마 전에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한 부산의 어느 클로저 팀의 멤버 중 한 명이었던 거 같았다. 그 남자가 가지고 있는 인상이 매우 강렬해서 기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볼프강의 어디서 날 ** 않았나? 라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반응에 상대방도 같이 볼프강을 뒤돌아보았다.

 

상대방의 소속을 대충 예상한 쪽은 볼프강이 멈춰 세운 남자 쪽이었다. 남자가 볼프강을 보며 웅얼거렸다.

 

“...유니온 소속의 클로저인가.”

 

유니온 소속이라고 대충 가늠하는 식의 소속을 말하는 것에 대해 볼프강은 잠깐 의아함을 느꼈다.

 

그쪽도 클로저 아니었던가?”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

다르...다르다라...”

 

다르다라는 단어를 곱씹던 볼프강은 그제야 재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자가 속해 있는 팀은 미등록 위상능력자로 이루어진 팀이라고. 재리가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들은 탓도 있겠지만, 아마 가장 큰 원인으로는 중간에 장미숙이 걸쳐서 소개를 해준 덕에 부산의 클로저 팀이라고 기억에 혼선이 생긴 듯 했다.

 

볼프강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했다.

 

, 미안하군. 내가 잠깐 잘못 알았나보네.”

딱히 상관없다.”

그 때는 팀별로 면담을 가져서 제대로 된 소개를 하지 못했지.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소개하자면, 유니온 사냥터지기 팀 소속의 볼프강 슈나이더라고 해.”

김철수라고 한다.”

 

이 나라 발음은 꽤 어렵단 말이야. 볼프강은 작게 투덜거렸다. 그리고 볼프강은 살짝 난이도가 있는 발음을 가진 이 이름이, 이 나라에서는 아주 흔하고 성의가 없는 이름에 속한다는 사실에 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쪽은 어딜 그렇게 가시나?”

 

딱히 할 말도 없고, 초면이나 다름없는데도 볼프강은 답지 않게 말을 계속 붙였다. 볼프강의 물음에 철수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딱히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나처럼 그냥 길거리 구경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군.”

감찰관이 억지로 내보내더군. 조금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고.”

 

자신과는 달리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군...어쩐지 자신보다도 더 이방인 같이 터덜터덜 걸었던 느낌을 받은 건 아마 그런 이유였던 거 같다.

 

이제 더 말을 걸어볼 것도 당장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없는 거 같아, 그렇게 어영부영 헤어질 거 같았으나...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볼프강이 아닌 철수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럼 너는 나와 달리 어디 갈 데가 있었단 뜻인가?”

 

볼프강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근처에 좋은 카페라도 있으면 거기 들어가 쉴 생각이긴 했어.”

“...그렇군.”

 

볼프강의 저 애매한 대답에도 철수는 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풍선을 보고 있는 거 같았다. 조금의 바람에도 갈피를 못 잡고 모양새도 미처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런 류의.

 

그래도 중간에 쉴 수 있는 곳은 있나 보군.”

“...?”

나는 그랬다가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어질 거 같아서.”

 

무슨 의미지. 볼프강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철수가 빠른 보폭으로 순식간에 사라져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 * *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시릴 일인 줄은 몰랐다. 사실 시리다는 감정보다는 알 수 없는 뭉텅이 같은 것들을 계속 입 밖으로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딘가에 무언가를 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근 며칠 동안 몸을 혹사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임무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그런 철수에게 오늘 하루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며 강제로 무기까지 압수한 것은 바로 오세린이었다.

 

차원종을 처리하는 것, 교단과 관련 있는 자들을 처분하는 것. 오늘만이라도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말라는 세린의 명령이 있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떠밀려 거리로 나왔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알맞을까에 대해 생각하자니 머리가 잘 굴려가지 않았다.

 

그냥 그 특정 순간만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때에 느꼈던 격렬함을 철수는 지금도 애써 눌러 담고 있었다.

 

저수지는 철수에게 있어서 돌아갈 곳이었다. 단순히 중개인과 심부름꾼의 관계가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공백에 가까운 자신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해준 존재. 처음에는 빚을 갚을 심상으로 하는 의무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 움직였던 기간은 짧았다.

 

단순히 자신에게 의무에 불과했더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모든 걸 다 부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철수는 옆에서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 미래만큼 강렬한 감정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속이 끓었던 정도는 미래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까 자신을 볼프강 슈나이더라고 하던 남자가 부러워졌다. 그 남자에게는 돌아갈 곳도, 그리고 중간에 잠깐 쉴 수 있는 곳도 있는 거 같았다. 자신에게는 돌아갈 곳도,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 같은 곳도 없다. 전자의 경우는 박살이 나버렸지만, 후자의 경우는 좀 달랐다. 몸을 움직일 때는 그래도 조금은 감정이 수그러들기 때문에, 딱히 그 잡념을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꾸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끝없이 용솟음이 치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세린이 그런 자신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것인지 특단의 조치를 내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어느 지점을 특정지어 계속 걷고만 있었다가 볼프강과 조우한 것이다.

 

문득 철수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행인들은 누구 하나 자신처럼 길을 떠돌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제각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또는 서투르게나마 지도 어플을 보며 그래도 나아가고는 있었다.

 

걸고는 있지만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철수는 실소를 작게 터트렸다.

 

어느덧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겠지만, 슬슬 밤이 되어가고 있어서 철수는 할 수 없이 모두가 머물고 있는 숙소 방향으로 걸어갔다. 너무 오랫동안 안 돌아오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걱정을 끼치게 되는 셈이었으니.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자신을 제일 먼저 반겨준 사람은 바로 미래였다.

 

김철수...”

“...”

돌아왔어?”

 

철수가 현관을 열려고 하기 직전에 안에 있던 미래가 마치 철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철수가 돌아온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동문에 가까운 식으로 철수를 맞이했다.

 

그 사건 이후로 철수는 미래를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이전에는 여러모로 눈을 마주쳐도 아무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흉내라도 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미래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더라도 철수에게는 오열하던 미래의 표정만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도 철수는 자신을 맞이해준 사람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돌아왔다.”

감찰관이 기다리고 있어.”

, 그렇군.”

 

이번의 깜짝 외출은 세린의 지시였기에 보고를 해야 하는 건 마땅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린이 대기하고 있는 방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미래가 그를 불렀다.

 

김철수!”

“...”

 

...미래가 지금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걸까. 철수는 두려워졌다. 그러나 자신이 등지고 있는 미래는 무엇이 더 두려운지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음 계열의 말을 그나마 뚝뚝 끊기더라도 들리기는 했는데, 그 앞에 있는 자음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아 미래가 하고 싶은 말을 예측으로라도 맞출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래 쪽이 훨씬 더 빨랐다.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

그럼 어서 감찰관한테 가봐.”

“...그러지.”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좀 작고 나직하게 부르는 미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철수.”

“...”

“...죽지 마.”

 

그리고 철수는 미래의 이 바람에 도대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는 게 지금 자신의 처지에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대답이 없는 철수에게 미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죽으면 안 돼.”

“...”

 

그래도 철수는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그 약속을 절대로 미래의 앞에서 지킬 수 없는 못난 사람이다. 지금의 자신이 그 못난 사람이고, 이름 모르는 기억 잃기 전의 남자는 그보다 훨씬 더 못나고 못된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철수는 침묵했다. 하지 못할 약속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것이 더 나았다.

2024-10-24 23:35: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