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유리] 넌 아마
구금 2020-01-23 2
전에 연성 문장 진단 돌렸던 게 너무 좋아서 뒤늦게라도 끄적였습니다. 현대 AU고 , , , , , ,나타유리 진짜 맛있는데 다들 한 입만 해주세요 진짜, , 찐짜 , , 찐짜 , 맛있는데 , ,이거 사약아닌데,,,,한 입만 해줘요 츄라이, ,, ,, , 츄러이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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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마 평생 내 마음 모를걸.
바보가 떠날 때 한 말이었다. 오랜 기간 진득이 붙어있던 인연에 어울릴만한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른다니? 내가 널 얼마나 잘 알고 있는데. 약간의 오만이 섞인 자신감은 그녀가 남긴 말을 자꾸만 곱씹게 했고 생각을 반복할수록 되레 나타는 질긴 인연의 끝을 오려낸 가위가 실은 날이 빠진, 뭉툭한 날붙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찜찜함이 싫어 의사가 정해 건네준 무병장수의 길, 이라는 종이에 2번을 지웠다. 술을 마시니 괜히 그런 말을 남긴 그녀에게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보냈다는 사실이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어떤 말을 했어야 바보도 지금쯤 이별을 생각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결국 그녀가 제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는 마음에 든 문장 같아 제 처지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어. 나타는 그녀가 두고 간 주황색 칫솔과 거의 다 써 입구 근처를 눌러야 간신히 나오는 클렌징 폼 따위를 이별 열흘 만에 버리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머리끈이 거슬렸다. 머리를 묶다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려서 잔뜩 사 놓았다고 말하던 그 머리끈 무더기가 이제 몇 남지 않았네, 하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짜증나 결국, 당연하게도 쓸 일이 전혀 없는 머리끈을 휴지통에 넣자 다음은 그녀가 주로 쓰던 컵이 눈에 거슬렸다. 꼭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를 묶고 부엌에 가서 머그잔에 찬물을 넘칠 듯 따라 마시던 행동이 눈에 훤하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머리끈과 컵이 나오자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욕실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 중고로 팔면 제법 돈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걔 건데 그냥 버릴까, 하는 고민이 제법 치열하게 싸워 결국 물건을 보고 결정하자는 결론이 나와 열흘 만에 찾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방을 정리하자 늘 꽉 차 있던 집에 숨통이 트인 것 같았다. 훨 났네. 하지만 웃기게도 박스 어딘가 고이 모셔놨던, 좋아하던 작가의 초판본, 제법 이름을 들어봤던 작가의 프로그램 북, 동기가 하나만 가지고 가달라고 떠넘기던 유화 같은 것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다 못해 흘러넘쳐 집은 상당히 불규칙적이고 개연성 없는 박물관이 되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임에도 그런 집이 싫어 괜히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제 딴에 쉬이 그녀를 놓아줬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타는 사사롭게 연에 매달리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 감정을 내보이는 순간, 그게 약점이 되는 것 같아 그녀를 약한 사람이라 치부했지만 실은 그녀가 매우 강한 사람이란 사실을, 나타는 지난 몇 년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고 제 곁을 떠난 그녀처럼 가벼이 어디론가 떠날 수 없었다. 결국 돌고 돌아 들어간 곳은 제 작업실이었다. 몇 년 전 만지작거리던 조각상부터 몇 개월 전 그만둔 수채화까지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타는 작업실 불을 켜 그 모습을 두 눈에 담는 순간 벙찔 수밖에 없었다. 저게 그대로 있다는 점에서 도둑이 들지 않음을 감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작업실을 제때 정리하지 않아 쌓이게 만든 자신을 탓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참을 입구에 서 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천으로 씌워놨지만 그게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는 풍경화에 다가갔다. 몰래 그리느라 제법 애썼지. 게다가 그땐 전시회 일정도 겹쳤었어. 나타는 내가 지금 또 지나간 일에 감정을 쏟아 매달리는 건 아닌지, 한편에서 생각이 났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저절로 그때 생각이 났다. 방금 그런 문장을 떠올린 머리를 탓하며 여름날 같이 갔던 그 여행이 빠르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행을 잡은 건 유리였다. 잡지 기자와 미팅이 끝나고 오랜만에 같이 퇴근길을 걸을 때였다. 셋째 주에 쉴 수 있으니까 여행가자. 6시라는 시간과 어울리지 않게 멀쩡히 떠 있는 해에 그냥 걷지 말고 차 가져올걸. 잠시 날씨를 탓하고 있을 때 그녀는 흘리듯 말했다. 사실은 엄청 가고 싶으면서, 며칠 전에 코치님이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쥐가 나서 고생했대, 하고 자신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해 나타는 이걸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고민되어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손을 잡았다. 앞서 말했듯 아직 지지 않은 해에 무더운 여름날이라 이 선택은 썩 좋지 못했다. 유리는 손을 빼며 일 바쁘면 괜찮아, 하고 그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집에서 에어컨 바람 왕창 맞아야지.”
그 말이 자꾸만 귀에 울려 저녁 식탁에 앉아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같이 가고 싶다, 말하니 역시나 그녀는 웃어 보였다. 전적으로 원하는 게 있으면 해주겠다, 선언했고 그녀는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갑작스레 여행의 폭이 좁게 줄어들었다. 정말 이걸 원한 건가? 싶어 물었지만 그녀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응. 좋지 않아?”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응. 좋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바다가 보이는 깔끔한 숙소에서 그들은 여느 때와 비슷하게 시간을 보냈다. 구태여 다른 점을 꼽자면 여긴 서울이 아니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됐고 원한다면 곧장 바닷물에 뛰어들 수 있으며 서로 진득하게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타는 처음 숙소 방문을 열고 현관에 내려놓은 짐을 지나쳐 곧장 창가로 걸음을 옮기는 유리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날은 밝아 햇빛이 쏟아지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 묶지 않은 왼편 커튼이 느릿하게 흔들렸다. 여름이라는 걸 실감나게 창문 너머 찾아온 매미 소리가 가득했던 그 방. 나타는 짐을 빼는 날 슬쩍 그 창가를 찍었다. 그저 여행이 즐거웠다고 표현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바다 전경은 오랜만이라 참고용으로 찍은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하고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추측에 나타는 구태여 변명하지 않았다. 그곳에 서 있는 유리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찍었다고.
덮어 놓았던 천을 걷자 그때 보았던 풍경이 고스란히 나타의 눈앞에 펼쳐졌다. 오른편에 뒤돌아서 웃는 유리의 미소까지. 너도 아마 평생 내 마음 모를 거야. 그림을 앞에 둔 나타가 그렇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