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1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6 2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기척이 느껴졌다. 또 덮칠 준비를 하시고 계시겠지. 이번에는 문만 발칵 열어놓고, 문 옆에 기대어 섰다.


콰당!


 같은 수에 계속 당할 줄 아셨나? 엄마가 그대로 몸을 앞으로 내민 채로 바디 슬라이딩을 하고 계신다. 여기가 무슨 워터파크인 줄 아시나? 허구헌날 저렇게 나를 덮치려고 하니까 정말로 한 숨이 나온다.


"히잉, 너무해!"

"엄마, 나이가 대체 몇이에요? 이제 그만 좀 하라고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이렇게 반겨주는 게 당연한 거잖니."

"이런 식으로 반겨주실 필요 없어요."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엄마가 나를 반겨주는 것은 이해하긴 하지만 매일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꼭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엄마의 기습 공격을 피했다고만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마침 엄마도 계시니까 내 고민을 말씀드릴까 생각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보나마나 클로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 날 대화한 것만 해도 어색한 관계가 이어질 뻔했었으니까.


"아들, 오늘 저녁은 뭐야?"

"으음, 오늘은 된장국 해드릴게요."


 가끔은 엄마도 요리를 좀 배워서 해줬으면 좋겠는데, 요리학원에 갈 수 없는 처지라는 말 도 안 되는 변명으로 기피하고 계신다. 사실은 요리를 하기 싫어하시는 거잖아. 소질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아예 배우려고 하지도 않으셨었다. 요리는 내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면서 자신이 요리하면 엉망이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아들이 해주는 구수한, 된장국, 호박넣고, 당근넣고, 감자넣고, 두부 넣는 된장국."

"그 노래는 뭐에요? 즉흥곡이에요?"
"엄마 노래 어때? 잘하지?"

"네. 잘 하시네요."

 식탁에 앉아서 아이처럼 깜찍한 미소를 지으면서 애교를 부리신다. 조금 적당히 해주었으면 하지만 말을 해도 들을 사람이 아니니까 포기했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이러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사실을 안다. 오늘 하루도 재미없게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일부로 나를 위해서 저러는 거라고 판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 바보니까.


 예전의 그 명성은 이제 어디로 갔다 버리고 장난끼가 많은 사람으로 탈바꿈을 해버리셨다. 냄비가 끓는 것을 확인한 나는 엄마가 말한 재료들을 넣고, 국자로 저으면서 살짝 맛을 본다. 간이 제대로 맞았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 오늘도 잘 되었다.



*  *  *



 구수한 된장국과 함께하는 둘만의 식사였다. 반찬은 기본 5찬이었고, 된장국이 메인메뉴였다.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세하야. 혹시 너를 귀찮게 하거나 하는 사람 없었니?"


 엄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오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었지만, 엄마에게 말할 정도는 아니다. 순순히 포기하고 돌아간 거 같으니까. 유니온은 미성년자들을 감정없는 전투기계로 키우는 것처럼 보였다. 위상력 능력자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어서 유니온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자유는 줘야 되는 거 아닌가? 클로저 요원이기도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다. 나같은 나이 대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PC방이나 당구장을 가면서 즐겁게 노는사이가 아닌가?


 그런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목숨을 건 전쟁터에 나가는 꼴이라는 게 불만이었다. 차원종을 물리칠 요원들이 부족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만.


"없어요. 아직은."

"우리 아들, 고민이 있나보네. 혹시 클로저가 될 지 안 될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네."


 숨겨봤자 얼굴에 다 티가 나니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엄마는 방긋 웃으면서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계신다. 전에는 클로저가 안 되기를 바라셨는데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미소를 보이고 계신다.


"엄마, 꼭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거 같네요."

"그게 아니야. 꼭 네 아빠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해서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네. 헤헷."


 아빠가 나처럼 두 눈을 내리깔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멍하니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항상 고민이 많으신 분이셨었지. 일과 가족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셨다고 알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고민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엄마, 아무래도 저, 클로저가 되어야겠어요."

"이유를 들려줘도 되겠니?"

"그냥, 제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엄마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시선을 오른쪽 아래로 내리깔면서 뭔가 생각에 잠기신 듯 했다. 클로저가 되는 것에는 전에 반대하셨는데,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니 흔들리고 계신 듯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엄마는 반대하고 싶은데, 그래도 하고 싶은 거니?"

"클로저 일이 지금 위험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그 애를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거 같거든요."
"그렇구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엄마는 더 이상 말릴 생각은 없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구나."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겠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감정은 들 거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자진해서 도우려고 할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별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동시에 착한 사람도 많은 법이니까.



*  *  *



 UNION은 인원 보충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정체불명의 습격자에게 클로저 요원이 습격당하는 일은 이어지고 있었다. 총동원해서 찾아나서고 있었지만 아직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 감시카메라를 동원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전부 부수고 다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화면을 **도 못하고 있었다. 습격자와 만나는 자는 대부분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전직 클로저들이 나서도 그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는 건가?"


 데이비드 국장이 사무용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양쪽 손을 깍지 낀 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전직 클로저들도 나서서 찾아내고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미성년자 클로저들도 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니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내놓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국장님. 미성년자 클로저들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키고, 민간인 생활로 잠시 보내게 한 다음, 정예 클로저 투입을 요청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도 동일해, 유정씨. 지금이야말로 정예 클로저들이 나설 때야. 상부에는 안 그래도 보고를 했던 참인데 답변이 내려오지 않더군. 아마도 상층부 측에서도 곤란한 일이 발생한 모양이야."


 차분한 말투로 상황정리를 하던 데이비드, 그리고 관리요원인 김유정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활동을 중지시키고, 사태가 가라앉을 때까지 정예 클로저들이 담당하는 것을 원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미래의 꿈나무나 다름없는 클로저들은 나중에 A급 클로저 이상이 되어서 정예 클로저로 UNION을 이끌 인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상층부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지금 클로저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애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인터폰의 벨이 울렸다. 데이비드는 오른손을 움직여서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면서 말한다.


"데이비드 국장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데이비드는 딱딱하게 답변하면서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던 김유정 요원을 보고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쓸쓸한 목소리로 답변한다.


"아무래도 유정씨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을 거 같아."

"그럴수가!"


 언성을 조금 높이는 반응을 했다. 상층부에서는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예상한 대로 지금은 클로저 한명이라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니 미성년자 클로저들의 활동 중지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대로 아이들이 죽어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녀의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