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Re : Dead - Rebellion (1)
루이벨라 2018-12-27 5
※ 암광세하 x 암광(?)유리
※ 지인분 썰 기반
※ 전편 「Re : Dead - Reversal」 에서 이어짐
※ 호흡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3편으로 나눌 예정
※ Rebellion : 반란(反亂)
‘내가 가야 해.’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가야만 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세하가 궁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서, 인류의 새로운 위협이 되게 된 이유에는, 유리는 자신의 탓도 있다고 생각했다.
‘구해줘야 하는데...’
세하가 자신을 구해주었던 것처럼. 유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차라리 유리 자신이 계속 그 궁전에 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런 최악의 상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자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유리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이는 데는 힘이 많이 들지 않았다. 계속 병실에 있으라고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유리의 몸은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유리는 닫혀있는 병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아마 저기 문밖에는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클로저 요원들이 있을 게 뻔했다. 서지수의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라는 발언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증거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자신에게 채워진 위상력 억제 수갑이라던가, 힘을 차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박하고 있는 끈이라든지.
아직 자신은 신뢰를 받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다. 그 점은 유리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부당한 처사에도 유리는 묵묵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전의 상황이었을 뿐, 지금은 판도가 바뀌었다. 유니온조차 인지하지 못한 더 큰 S급 재앙을 동물과 같은 감으로 먼저 알아차린 게 누구인가. 유리였다.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궁전과의 연이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이렇듯 지금의 유리는 평범한 위상능력자들에 비해 고도의 감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건, 그에 대한 해답 또한 남들에 비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저들은 날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그것이었다. 설득? 설득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그걸 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당장에만 해도 유리에게 정보를 들은 서지수와 제이가 다급하게 뛰어간 걸 보면 말이 필요 없었다.
첫 번째 방법이 안 된다면 두 번째 방법이 있다. 하지만 전자에 비해 후자의 방법은 리스크가 컸다. 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면...오히려 전자에 비해 후자가 더 신속했다.
문득 자신의 안전을 저울질 하고 있는 걸 깨달은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이미 자신은 세상을 떠난 이. 지금 여기서 얌전히 있다고 한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사라는 수레바퀴에서 팅겨져 버린 자신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수레바퀴 안으로 다시 발걸음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유리는 결심했다.
유리가 제 손에 채워진 수갑과,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끈을 풀어버리고, 문 앞을 지키던 정예 클로저들을 손쉽게 제압하는 데는 불과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궁전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 하면 유리는 궁전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을 때에도, 대략적인 위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찾는 수고는 달라진다. 궁전의 문이 열리는 곳은 항상 달라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 패턴만 잘 알고 있다면 문을 찾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흡사 뒤엉켜진 전기 뇌선과 같은 그 경로들을 다 기억하는 것이 더 큰 난관이었다.
유리는 그 경로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자신이 노력으로 습득한 지식이 아니다. 머릿속에 그냥 저장되어 있는 각인과 같았다. 유리가 말한 궁전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자신이 갇혀 있던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직도 열려 있는 문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제이와 서지수도 이 문을 통해 들어갔으리라. 유리는 절벽에 위치한 문을 향해 힘겹게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두근- 심상치 않은 변화 하나.
-운동 신경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거 같아.
“...!!”
순간 이유 없이 불쑥 나타난 불청객 탓에 손을 잘못 짚어 떨어질 뻔 했다. 다행히도 다른 쪽 손이 꿋꿋하게 유리를 지탱하고 있었기에 그런 불상사는 나지 않았다.
유리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제발, 제발...
더는 기억하지 마!
기억은 하루에도 순간순간 잘 찾아왔다. 유리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자기가 내킬 때마다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유리에게 위기를 가져다줄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거나, 주저앉아버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예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풍화되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눈물은 이제 자주 흘린다. 그럴 때마다 유리는 자신은 점점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되새겼다. 그러면 눈물은 일단 멈추기는 했다. 일단은. 그건 그냥 임시방편일 뿐. 완전하게 고칠 순 없었다.
절벽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지옥의 문 같은 조각상들이 고풍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문이 하나 보였다. 문은 당연하게 활짝 열린 상태였다. 지금의 궁전의 주인은 문 따위 닫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면 못하는 걸까?’
유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자신의 빈 두 손을 보자 이제야 자신이 무작정 이 곳으로 직진만 하였다는 걸 깨달았다. 변변찮은 무기 하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급한 마음에 눈에 띌 수 있는 죄수복을 마침 있던 유니온 수습 요원복으로 갈아입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무기 하나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 있는 무기라고는 해도 요원복 주머니에 있던, 아마 이 요원복의 주인이었을 누군가가 썼을 소형 권총 하나와 탄환 6개가 전부였다.
“총...”
투둑- 또 주책없게 눈물이 총 위로 떨어졌다. 반가워서 그랬으리라.
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익숙한 무기가 하나 들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탄환이 적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유리는 권총을 들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악몽 비슷한 것을 꾸었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상하게 내가 친분을 가졌던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있는 꿈입니다.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꿈이라서 그런 걸까요. 목소리는 나올 의사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이들과 나의 관계를 뜻하는 단어들은 전부 다르지만, 적대되는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친구, 동료, 가족, 선생님, 지인 등등...
나는 그 친근함을 내 손으로 부숴버렸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요. 아무도 답해주지 않습니다. 아예 내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기에 답을 해주지 않는 걸까요? 내가 질문을 했더라면, 원하는 답을 알려줄 이는 있었을까요?
있었다면, 아마 전 그 사람의 목도 베어버렸을 겁니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것이 저는 그 정답이라고 불리는 녀석이기 때문이죠.
쓰러져 가는 이들은 점점 많아집니다. 하지만 누구도 날 말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너무 약한 탓이죠. 난 내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이 강함을 계속 추구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황이 만족스럽습니다.
나약했구나, 나약했어, 나약할 수밖에, 나약함 그 자체...!
머리가 복잡합니다. 좀 생각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에 딱 제격인 게 바로 검을 휘두르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베어버릴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당장 눈앞에 있는 걱정에만 연연하여, 무턱대고 베어버린 후의 미래에 있는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 뒤의 것이 막상 **온다면 난 또 무언가를 베어버리겠지요. 그렇게 계속 반복되어지는 삶.
...내 삶은 원래부터 이랬던가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뿌연 안개 속을 거닐는 기분. 사람이 시각을 통해 가늠하지 못할 때에는 많이 예민해져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그 안개를 뚫고 다니다, 발을 헛디뎌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난 지금 현재의 안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 현재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참 우습네요. 이런 나를 조롱할 정도의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의 나를 굳건히 유지하는 데에만 해도 모든 성과 열을 다 쏟아 붓고 있으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습니다.
또각- 또각-
“...”
누가 이리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일정한 간격의 구두 소리. 그 간격은 자로 잰 듯, 한 치의 오차 없이 저마다 같은 간격입니다. 그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목적이 있는 걸음. 처음입니다. 호흡이 잔뜩 흐트러진 사람들과 마주쳤던 나에게 처음으로 침착하게 다가오는 사람입니다.
마치,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철걱- 아마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무기가 장전이 되는 소리입니다. 상대방이 만반의 준비를 하며 다가오는데 내가 진영이 흐트러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다가오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무뎌진 검에 흐르는 선혈을 닦고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각- 이 궁전에 들어온 침입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검은색의 구두코가 보입니다. 뒤이어 다른 쪽의 구두코도 나옵니다. 상대방이 있는 곳은 어둡고, 내가 서 있는 광장은 밝은 편입니다. 분명 광장 한가운데에서 피범벅이 되어 있는 내가 보일 텐데도 그 사람은 두려운 기색 없이 여상히 걸음을 당차게 옮깁니다. 낯설면서도 낯이 익은 그 모습에 난 몸의 방향을 틉니다. 호기심이 생긴 탓입니다. 그러자 마침 복도의 끝을 지나, 광장의 입구에 들어온 이의 모습을 이제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는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옅은 물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 익숙한 색에 정감을 느껴버리기까지 합니다.
이 사람은...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이도 내가 가지고 있던 친근함 중 하나였을까요? 그리고 난 그 친근함을 또 부숴버리겠지요.
참으로 슬프게도.
[작가의 말]
http://leesehaxseoyuri.tistory.com/120
클로저스 온리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온리전에서 판매하였던 세하슬비, 세하유리 회지는 판매목록을 정비하여 통신판매(통판)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가되는 판매목록 중에 'Re : Dead' 또한 있을 예정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