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12
한스덱 2018-10-15 0
“…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이 마스크의 근본을 송두리째로 뒤집어버리는 그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어이를 잃어버렸다.
“아니, 그럼 군ㄷ… 아니, 그 조직이 왜 저한테 이 마스크를 씌워놨다는 겁니까?”
너무 놀라서 몇 번이나 피했던 금지어를 실수로 말할 뻔 했던 나는 겨우 수치심에서 벗어났다. 이 흥미진진을 넘어서 기절초풍스러운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는 건 그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지수는 그런 나를 납득시킬 자신이 넘쳤다.
“너는 이 마스크의 목적이 입막음이라고 믿고 있었어. 그 박사의 설명을 네 귀로 들었다면 그걸 더욱 확신했겠지. 하지만, 사실 그 박사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너한테 그 마스크를 씌워놨어. 군단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 없이 말이야.”
“그럼… 이 마스크를 만들고 저한테 씌운 건 그 녀석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는 말입니까?”
“그래. 물론 그 박사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런 대담한 짓을 했을리가 없겠지. 그 녀석은 아마 군단에게도 그 마스크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했겠지. 네가 들었던 말이랑 똑같게 말이야. 좀 더 짐작을 해보면… 그 녀석, 네가 아니라 다른 녀석에게 자랑을 한 거 맞지? 너는 그걸 어쩌다가 같이 들었던 거고?”
나는 이 대담한 추측에 할 말을 잃어버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는 당사자인 나 보다도 사건의 전말을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지수는 추측의 바다 속에서 자신의 항로를 거침없이 개척해나갔다.
“그렇게 허가를 받은 박사는 얼씨구나하며 네 얼굴에다가 그 마스크를 냉큼 붙여놨을거야. 녀석은 아마도 마음에 안들었던 군단을 골탕먹이려는 생각이었겠지. 그 녀석은 의심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그 마스크의 기능을 직접 증명했을테고. 그렇다면… 네가 그 마스크의 기능을 체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겠네…”
나는 지수 때문에 그때의 굴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겪었던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재구성한 지수의 추측은, 그 정도의 굴욕 따위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을만큼 놀라운데다가, 내가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만큼 들어맞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었다.
“그럼 그 녀석은 대체 어떻게 그 조직을 골탕먹였다는 겁니까? 제가 이 마스크 때문에 고통 받는다고 그 조직이 곤란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조직은 오히려 그걸 더욱 마음에 들어하지 않겠습니까?”
지수는 자신의 추측이 정답으로 향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방해하는 이 의문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박사는 그 마스크의 목적이 입막음이라고 설명했어.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아? 너는 특정 단어를 발음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있어. 너는 듣는 사람이 네 진짜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빙빙 돌려서 말할 수도 있고, 심지어 직접 말하는 대신에 다른 수단을 사용해서 네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어. 게다가 네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걸 군단이 감시하는 것조차 아니야. 그럼 대체 어떻게 네가 군단의 기밀을 누설하는 걸 그 마스크 만으로 막겠다는 거야?”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마스크는 제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방해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하더라도, 방해는 충분히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것만으로 그 조직에게 이득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 다시 생각해 봐. 그 마스크는 네가 특정 단어를 발음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그리고 그 단어의 대부분은 군단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지. 그렇다면, 반대로 네가 어떤 단어를 말할 때 방해를 받는지만 알아낸다면, 너는 군단과 관련된 정보를 깨닫게 된다는 말이잖아?”
“…아!!”
아… 아… 아…
내 의문은 속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너무 뻥 뚫려서 상쾌함이 느껴질 지경으로 말이다.
지수가 말한대로다. 이 마스크는 내가 특정 단어를 발음하는 걸 방해할 뿐이다. 언뜻 보면 이 마스크가 군단의 기밀 사항을 누설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나처럼 할 수 있겠지만, 착각은 착각일 뿐이다. 그 엄청난 착각과는 정 반대로, 이 마스크는 군단과 관련된 정보들을 나한테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렇게 얻은 정보를 누군가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 예를 들면, 군단의 주적인 인류의 영웅인 지수에게 말이다.
한참 전에 쓰게 된 이 마스크에 숨겨진 진정한 의도를 그제서야 눈치챈 나는 탄식이 가득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수보다는 멍청한 게 분명한 나는, 범죄자의 재앙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진 형사에게 넙죽 엎드렸다.
“그 단어들을 당장 알려드리죠! 이 기특한 마스크를 만든 그 기특한 녀석이 원하는대로 말입니다! 어디보자, 돌멩이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잠깐만 기다려봐.”
지수는 군단의 비밀들을 마음껏 누설할 기쁨에 푹 빠져버린 나를 멈춰세웠다.
“그 단어들도 물론 알고 싶어. 하지만, 우선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줘.”
나는 그 말 때문에 더 큰 경악에 빠져버렸다.
그렇다. 추측의 바다의 불확실한 파도를 이겨내며 항해를 하는 지수의 모험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지수를 향해 주의를 다시 기울였다.
“그 마스크에 담긴 의도는 나처럼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어. 그렇다면, 군단의 일원들 중에서 그 박사의 진짜 의도를 눈치챈 자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지수의 놀라움에 익숙해진 나는 아까처럼 멍청한 딴지를 거는 대신에 이어지는 설명을 듣기 위해 귀를 귀울였다.
“너는 군단장이었거나 적어도 그에 맞먹는 고위 간부였어. 그런 네가 배신을 했다는 건 군단의 입장에선 상당히 큰 문제였겠지. 군단은 너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 했을테고, 결국엔 너를 붙잡았어. 그 다음엔 너를 최대한 철저하게 처리하려고 했겠지. 근데 네 배신 때문에 엄청나게 예민해진 군단에게 박사가 의도가 뻔한 마스크를 너한테 씌워놓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한테 불만이 많던 그 박사가 직접 제안한 걸 군단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내가 알기론 그 박사를 포함한 군단의 고위 간부들은 바보가 아니야. 아, 물론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지수가 붙인 쓸데없는 사족에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잠자코 지수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박사는 그런 제안을 했고, 군단은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대체 왜? 박사는 무슨 자신이 있었길래 그런 짓을 뻔뻔하게 저지른거지? 배신, 그것도 고위 간부의 배신을 당한 군단은 그 중대한 문제를 왜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한 거지? 난 이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한 가지 가설을 세웠지. 그러니까 모든 의문이 술술 풀리더라고.”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지수는 진실로 향하는 키를 잡았다.
“너는 원치 않게 배신자가 된거야. 즉, 너는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했다는 말이지.”
내 입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지수의 항해 역시 여전히 거침없었다.
“그래서 군단은 네가 배신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움직이지 않았어. 물론 진상을 파악하려고는 했겠지만, 적어도 네가 진짜로 배신을 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을테지.”
내 입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수가 항해하는 바다보다 훨씬 더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는 여전히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를 모함한 그 자는 배신자를 잡아내라는 군단의 명령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너를 붙잡았어. 그러고선 군단의 명령도 없이 자기 멋대로 너를 처리해버렸어.”
내 마음이 파도에 휩쓸렸다. 짠 물을 뒤집어쓴 내 마음은 구조 요청을 보냈다. 그만…
“그 자가 널 처리하기 전에, 박사가 그 마스크를 너한테 씌우겠다는 제안을 했겠지. 아마도 박사는 그 자의 계획에 협조했거나, 아니면 어쩌다가 그 자의 계획을 눈치챘을테고. 그 자는 박사가 입을 다물어주는 조건으로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내 마음은 구명튜브 삼아서 잡고있던 판자를 놓치고 말았다. 그만… 그만…
“그 자는 너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속셈이었겠지. 그래서 너를 여기에 보낸거야. 그 어떤 존재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지옥으로 말이야. 그 자는 네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을테고, 실제로 너는 지금까지 여기에 계속 갇혀있었지. 그리고 군단에게는 네가 추적을 피해 도망쳤다는 핑계를 댔을 거야. 물론 군단은 적잖이 당황했겠지만, 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저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너는 배신자로 낙인 찍힌 채 그 일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어.”
내 마음은 발버둥을 쳤지만, 숨은 점점 더 가빠지고 있었다. 제발… 그만…
“그렇다면, 너를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그 자는 대체 누굴까? 군단장에 맞먹는 너를 감히 배신자로 몰아세울 수 있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군단의 기밀 마저도 저울에 올려놓을 수 있는 그 괘씸한 녀석… 군단의 일원들 중에서 그만큼 직책이 높으면서도 사악한 녀석은 단 한 놈 뿐이지.”
내 마음은 결국 수면 아래로 잠겨버렸다. 그만, 그만, 그만!
“군단의 참모장, 애쉬와 더스…”
“그만!!”
그만… 그만…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