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35)
벨리에나 2018-05-04 1
램스키퍼의 소멸로 사냥터지기 성 앞에서 모이던 수많은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다. 김유정 지부장은 램스키퍼 안에 쇼그를 두고 온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발을 돌릴 수 없었다. 서지수가 사람들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자기 혼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램스키퍼 안에 쇼그를 두고 온 것을 알고 있던 검은양 팀과 베로니카, 오세린, 김가면 등이 그녀가 희생한 것으로 알고 잠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마는 흑지수와 미스틱에게 각각 팔이 붙잡혀있었다. 추가로 서지수가 소마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총장은 소마를 조종할 수 없었다. 그나마 명령을 따르던 루나도 완성된 실패작들에게 발이 붙잡힌 상태였다. 유니온 총장은 베를린 지부장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버렸다.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모두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하기 위해서 각자가 준비한 수단을 대부분 사용하거나, 모두 꺼내고 말았다.
총장은 고민했다. 내게 남아있는 수가 있는가? 이 사태가 끝나면 분명 나는...... . 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저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이상 클론을 꺼내도 소용없다. 자신과 협력한다던 더스트는 맥스와 함께 차원 세계로 넘어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약점을 잡아두던 맥스는 각성하며 더스트와 아자젤을 데리고 사라지고 말았다.
쾅!
총장은 사무용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수단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총장은 분노했다. 맥스가 사라지고, 슈타인마저 사라진 이 상황에서 총장의 마지막 수단은 모두를 날려버리기엔 적합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서지수와 트레이너가 강력하더라도 베를린지부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지켜낼 순 없다.
'아, 그리고 선물 하나를 준비해뒀어.'
총장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애쉬의 말. 애쉬는 이 말을 마치고 이세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장치를 총장에게 넘겼다. 장치를 둘러보던 총장은 평범한 막대라고 생각했다.
'이게 뭔가?'
'후후, 쓸모없는 병사는 그 몸을 날려서라도 희생하는 게 바람직하지. 분열에 실패하고, 코드가 해제될 상황에 막대를 부셔버려라. 그 공간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니다. 베를린지부 건물로 들어간 트레이너 일행이 연구원들을 데리고 나오는 때를 기다렸다. 그때까지 완성된 실패작과 루나가 시간을 끌어야했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
총장은 애쉬에게 받았던 검은 물체를 꼭 쥐고 있었다. 물체는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연구동.
김재리가 차단막을 내렸어도 길을 잃은 실패작 몇몇이 건물에 침입한 상태였다. 트레이너 일행은 이를 처리하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복도에는 앨리스와 완성된 실패작들이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볼프강은 앨리스의 목소리가 나오는 예거에게 말했다.
"나도 타보고 싶은데. 재리의 VR장치보다 괜찮을 것 같아."
"안 됩니다. 이제 미니휠이 아닌 이걸 타고 요원님들을 지원할 테니까요."
"쳇, 국장님께 따로 말씀드려야겠군."
메리의 부재로 방해 전파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인간형 예거의 추가 기능이 깨어났다. 수많은 정보가 앨리스의 눈 앞에 펼쳐지면서 그녀는 오퍼레이터 활동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앨리스는 주변에 분포한 위상력자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서지수를 비롯한 강력한 자들이 현재 베를린지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서지수 요원님이 현재 베를린지부에 계십니다. 익숙한 분들도 많습니다. 칼바크 병대와 감찰국 요원들까지. 현재 그들은 루나 요원님이 계신 곳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서지수까지 있다면 상황은 끝난거나 마찬가지다."
"음? 램스키퍼의 신호가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
트레이너는 쇼그와의 신호가 끊어지지 않은 것을 파악했다. 방금 전, 이곳 지하에서도 바깥의 폭발음이 들렸다. 트레이너는 자신의 추측을 말로 풀어냈다.
"램스키퍼의 인공지능 쇼그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연결이 희미한 것을 보니 램스키퍼에서 떠난 모양이다. 적들이 램스키퍼를 노렸나보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램스키퍼는 사라졌지만 쇼그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든든한 아군까지 얻게 되었다.
트레이너의 말에 볼프강과 앨리스는 미소를 보였다. 적일 때는 산처럼 거대한 존재였으나, 그가 아군으로 옆에 서있을 때는 자신들이 그 산 안에서 보호를 받는 기분이었다.
"볼프강! 앨리스!"
김재리가 뛰어오고 있다. 뒤이어 수많은 연구원들이 누군가를 붙잡고 함께 걸어오고 있다. 베를린 지부장. 에릭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지부장은 얼굴은 물론이고 온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에릭 자신도 지쳐 루드비히에게 기대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맥스의 기계의수가 들려있었다.
트레이너는 먼저 가장 늙어보이는 루드비히에게 다가가 자신을 밝히며 기계의수를 가리켰다.
"난 늑대개 팀의 대장 트레이너요. 당신들의 계획은 볼프강 요원에게 들었소. 당신들도 알다시피 그분의 힘은 허락 받지 못한 자는 사용할 수 없소. 때문에 나는 사용할 수 없지만, 바깥에 나보다 강력한 서지수가 도착한 상황이오. 그녀라면 필시 사용할 수 있을 거요."
에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트레이너 씨.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오. 헌데...... 지부장은 왜 저렇게 만든 거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쪽에게서 클로저만 복용하는 약품의 냄새가 진하게 났소. 무엇보다 주먹에 묻은 피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
에릭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알고도 사용하려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연구원도 비슷한 존재입니다. 죄는 달게 받을 생각입니다."
"걱정마시오. 당신들은 뉘우치고 행동할 줄 아는 자들이니까."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그리고 미스틱은 서지수가 루나를 말리는 동안 자신들은 완성된 실패작을 상대했다. 레비아가 없던 늑대개 팀은 세 명의 실패작을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람들이 점점 도착하였고, 마침내 두 팀과 노련한 미스틱이 뭉치게 되면서 실패작들은 순식간에 제압 당했다.
미스틱이 그림자를 통해 지름길을 만들어주며 그 길을 통해 서유리와 바이올렛이 달려간다. 서유리의 제압 사격으로 팔을 방패로 사용하던 실패작의 다리를 무너뜨렸다. 실패작은 급히 팔을 들어 자신을 보호했지만 바이올렛의 주먹으로 팔이 날아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미스틱이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다가 실패작의 몸을 크게 베어버렸다.
이세하와 나타, 이슬비와 레비아는 소마와 비슷한 능력으로 실패작 중에서 가장 날뛰던 자를 상대했다. 이슬비의 칼날이 오른팔을, 나타의 쿠크리가 왼팔을 붙잡으며 실패작을 붙잡아두는데 성공했다. 이세하는 소마에게 단순한 불꽃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별의 폭발을 준비했고, 레비아는 지금까지 감추어두던 용의 힘을 개방하였다. 앞뒤에서 합동 기술이 덮쳐오자 실패작은 치유 능력을 발동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티나의 저격으로 땅에 꽂힌 창들이 모두 깨지며 얼어붙은 땅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상대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조그마한 실패작. 제이는 티나의 조언으로 빠르게 달려가 아이의 어깨를 낚아챈 다음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하여 관절을 꺾었다. 그리고 미스틸과 함께 날아온 하피는 미스틸의 반응을 한 번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폭풍을 일으키며 실패작을 하늘로 띄웠다.
콱, 콱, 콱!
실패작은 머리와 가슴, 다리를 꿰뚫리며 땅에 박혔다. 하피는 놀란 표정으로 미스틸을 보았다. 미스틸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울먹였다. 하피는 미스틸을 위로해주었다.
"걱정 마요. 여긴 어른들이 해줄 테니까."
하피는 미스틸을 김유정에게 돌려보낸 뒤 티나, 제이와 함께 남은 실패작을 처리했다.
완성된 실패작의 처리가 끝나가는 무렵, 서지수도 코드에 조종당하던 루나를 완전히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루나가 맥스에게 배운 기술을 사용하여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졌지만 서지수도 거리낌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루나는 방패가 깨지기 직전에 서지수의 품에 쓰러졌다.
"...... 커, 커헉. 으우욱...... ."
눈을 뜬 슈타인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는 가슴이 한 번 꿰뚫린 상태로 램스키퍼의 폭발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자가 제어를 통해 몸을 강제로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타인을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쇼그는 정신을 차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관리국장 슈타인?"
"넌......? 기계라는 건 알겠다만, 여러 가지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일시적으로 원반의 선택을 받은 램스키퍼의 인공지능 쇼그라고 합니다. 당신이 램스키퍼 폭발을 억제하여 요원님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슈타인은 쇼그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변 환경이 눈에 익숙했다. 어릴 적에 뛰어놀던 공터는 어느새 빌딩 숲이 되었다. 이곳은 슈타인이 태어났던 곳, 독일 프랑크푸르트였다. 슈타인은 금방 돌아갈 순 없겠다고 판단해 쇼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램스키퍼가 해킹 당하고 있었습니다. 주포가 제 제어권에서 벗어나 요원님들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자폭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램스키퍼는 워낙 커다란 전함이라 주변으로 잔해가 날아갈까 두려웠습니다. 그때 램스키퍼 위에 친입자가 나타났고, 주포를 폭발시키면서 폭발을 제어했습니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죠. 저는 그게 당신이 한 일이라고 파악하여 당신과 함께 이곳으로 날아왔습니다."
"원반의 선택을 받았다고 했지."
"예. 일시적이긴 하나 저는 지고의 원반에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위상력자입니다."
"덕분에 살았다. 하지만 베를린지부로 돌아가**다. 내가 해야할 일이 남았다."
"그 전에,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저는 제가 해킹 당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준비합니다. 한 가지는 방어 코드를 설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역으로 상대방을 해킹하는 것입니다. 저는 준비했던대로 램스키퍼를 해킹하던 자를 역으로 해킹하여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모두 파악했습니다."
쇼그는 자신의 손에 홀로그램을 띄우며 설명을 도왔다.
"메리 셀리 브리지스톤과 유니온 총장. 인간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계셨겠죠. 또한 저는 2분대 요원님들의 코드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코드는 차원종 애쉬에게 조작되었습니다. 칼바크 턱스가 사용한 해제 방법은 사용할 수 없도록 말입니다. 총장은 코드를 조작함으로 거대 차원 균열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전달 받아 머릿속에 기억하던 슈타인은 마지막 문장에 눈을 번쩍 떴다.
"자, 잠깐만. 뭐라고? 거대 차원 균열? 내가 들은 게 사실인가?"
"예. 코드를 일제히 폭발시키면 그에 따른 충격으로 차원 균열이 발생합니다. 이에 필적하는 규모는 남극에 존재하는 거대 차원 균열로 예상됩니다."
슈타인은 당황할 틈도 없다는 듯 쇼그의 팔을 붙잡고 곧장 베를린지부를 향해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위상력 사용은 힘들었다. 쇼그는 쓰러지던 슈타인을 붙잡았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몸은 붕괴 직전입니다."
"내가 중요한 게 아냐. 아이들이, 사람들이 위험하다. 거대 차원 균열, 그런 녀석이 한 놈 더 열리게 되면 다시 전쟁이 발생한다. 당장 코드를 해제...... ."
슈타인은 쇼그에게 쓰러졌다. 쇼그는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방해 전파가 사라지면서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장 트레이너 함장님과 베를린지부의 사람들에게 이를 전달하겠습니다."
쇼그는 눈을 번뜩이며 트레이너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연결은 성공하지 못했고, 쇼그는 통신이 약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슈타인은 또 다른 방해 전파가 맴도는 것을 느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국장님. 자신이 서있던 램스키퍼를 날릴 생각까지 하셨네요?"
쇼그는 곧장 경계 태세에 들어갔으나 슈타인이 쇼그를 말리며 앞장 섰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관리국에서 사라졌던 메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슈타인은 메리에게 코드에 관한 것을 알렸다.
"메리, 총장이 코드를 조작하면 거대 차원 균열이 발생한다. 네가 아끼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세계가 멸망할 것이다. 당장 방해전 파를 풀어라."
"의미 없는걸요. 방해 전파를 푼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어요."
"그들? 누구를 말하는 거지?"
"당연히 반역자들이죠. 그들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해요."
메리는 슈타인 옆을 지나치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총장도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애쉬가 총장을 견제하여 코드를 해제할 한 가지 수를 만들어놨는데, 총장은 이를 눈치 채고 막아버렸어요. 코드를 해제할 힘, 아이들의 탄생에 큰 영향을 ** 맥스의 힘이 외부와 내부에서 만날 경우, 활성화된 코드가 과부화가 되면서 균열은 열리고, 아이들은 죽는답니다. 그리고 맥스가 없는 지금, 맥스의 힘만이 코드를 해제할 방법이라고 눈치 챈 그들은 어떤 물건을 찾아냈죠."
슈타인은 절망한 표정으로 연구동에 남아있던 맥스의 힘, 망가진 기계의수를 떠올렸다.
"...... 기계의수."
"아아, 아이들은 아까운데 어쩔 수 없죠. 좀 오래걸리겠지만 다시 만들어볼까요? 데이터는 남아있으니까요."
메리가 공간을 넘어갔다. 슈타인은 그녀가 도망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코드를 해제하려고 하는 순간 세계에는 또 다시 전쟁이 발생한다. 아이들을 내버려두더라도 총장은 코드를 조작할 것이다.
털썩.
지친 슈타인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이 빠졌다. 맥스가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혼란을 겪는 슈타인을 보며 쇼그도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메리가 다시 사라지며 방해 전파가 없어졌지만 쇼그는 트레이너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총장은 코드를 조작할 수 있다. 쇼그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여 내린 결론이다. 지금 트레이너에게 연락을 취한다면 상황을 앞당길 뿐이다.
트레이너 일행과 서지수 일행은 마침내 베를린지부 건물과 사냥터지기 성 중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많은 병력에 트레이너 일행은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서로를 발견한 볼프강과 미스틱은 아직까지 코드에 조종당하는 2분대 아이들의 곁을 지켰다. 예거를 조종하던 앨리스는 김유정을 만나 서로의 정보를 전달했다. 트레이너는 늑대개 팀에게 잘해주었다는 말을 건네면서 에릭과 함께 서지수에게 다가갔다.
"서지수."
"아, 역시 무사했네. 당신이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말렸을지 상상이 가는데."
"...... 어쩔 수 없었다. 대원들을 습격할 때는 진심으로 말린 것이다. 그보다 이걸 껴라, 서지수."
트레이너는 서지수에게 팔에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개조된 기계의수를 건넸다. 서지수는 한눈에 맥스의 것이라고 이해했다. 에릭은 서지수가 안고 있던 루나와 흑지수가 안고 있던 소마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2분대 아이들의 코드는 철저하게 조작되었습니다. 이 코드를 해제하기 위해선 단순한 오염이 아닌, 뇌와 완전한 분리를 시켜야합니다. 이런 작업에는 모든 위상력을 다룰 수 있는, 만능이라고 불리는 맥스 요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기계의수는 한 때 맥스 요원님의 신체를 대신하던 것입니다. 연구동에는 맥스 요원님의 힘을 추출한 것이 있어 그것을 주입했습니다."
에릭은 기계의수를 열어 서지수의 왼팔에 끼웠다. 그녀는 울프팩 팀 시절, 교관이었던 맥스의 신뢰를 받아 그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 기계의수가 정상적으로 활성화되자 주변으로 맥스의 위상력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크, 카아아악!"
루나와 소마가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총장이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조종한다고 여기며 서지수에게 얼른 코드를 해제하라고 말했다. 서지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서지수는 트레이너에게 루나를 넘겨주어 붙잡게 했다.
"조금만 참아, 루나야."
서지수는 왼팔을 뻗어 루나의 머리에 가져갔다. 루나는 몸을 떨며 머리까지 함께 떨렸는데, 마치 고개를 젓는 모습으로 보였다. 서지수는 점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소마를 바라보았다. 루나를 지키던 미스틱까지 볼프강과 흑지수에게 합류해 그녀를 말릴 정도였다.
루나와 소마는 본능적으로 맥스의 힘을 거부하고 있다.
서지수는 팔을 회수했다. 트레이너는 의문을 가졌다.
"왜 그러지?"
"이상해. 이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거야."
트레이너도 서지수와 마찬가지로 루나와 소마를 번갈아보았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이대로 냅둘 생각인가? 맥스 선배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행동해야하고, 책임을 져**다. 그리고 열쇠는 네가 쥐고 있다. 네가 판단해**다, 서지수."
서지수는 트레이너의 말에 고민하며 고개를 조금 떨어뜨렸다.
"흣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땅에 발이 닿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슈타인과 쇼그를 뒤덮었다.
"그레모리......?"
"뭐야, 슈타인. 왜 그러고 있어? 어라? 잠깐만, 여기 베를린지부가 아니잖아? 여기서 멈춘...... ."
커다란 그림자는 슈타인 앞을 가로 막던 그레모리를 옆으로 비키게 했다.
"포기한 건가?"
"...... 모르겠네. 확실한 건 더 이상 내가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의지가 없어보이던 슈타인은 고개를 들어 맥스에게 물어보았다.
"자넨 지금까지 뭐하다가 온 건가?"
총장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물체가 금이 가면서 더 이상 쥐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총장은 물체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에서 기계를 꺼내 물체를 고정시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총장은 두 코드가 폭발하면 공간이 깨지면서 거대 차원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런 리스크 때문에 총장은 마지막 수단을 아껴둔 것이다. 사라진 더스트와 아자젤은 물론 맥스까지 그 균열을 통해 돌아올 수 있다. 다만 그들과 함께 오는 것은 이름 없는 군단이다. 두 번째 전쟁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현재 베를린지부에 몰려있는 반역자들을 한꺼번에 없앨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세계가 멸망한다. 소수의 인류만을 살린다는 총장도 이런 선택은 두려웠다.
쩌저적.
검은 물체를 고정시킨 기계가 박살났다. 물체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총장은 떨어지는 물체를 낚아채지 못했다.
검은 물체는 완전히 깨졌다.
루나와 소마는 축 늘어졌다. 맥스의 기계의수를 깨부순 서지수는 그녀들의 반응에 놀라며 에릭을 불렀다. 에릭이 아이들을 파악하던 중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 뚝.
아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이 멈췄다.
맥스가 공간을 걷고 있다. 수많은 무장 병력, 뭉쳐있던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과거의 울프팩 팀과 여러 위상력자. 맥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루나와 소마의 머리가 이질적인 모습이 되었다.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멀쩡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맥스는 루나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루나의 코드에 잠겨있던 안나. 반차원종화가 진행되던 안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시에 옆에서도 동일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소마의 코드에 잠겨있던 안나. 반차원종화가 진행되던 안나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양 옆의 안나를 바라보다가 맥스는 정면에서 다가오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백발의 머리카락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였다. 루나가 원하는 완전무결한 분위기, 소마가 원하는 아름다운 미소. 소녀에게는 모든 것이 존재했다.
"날 또 깨운 거야?"
"미안하군. 원반."
소녀는 맥스의 공간에 있던 네 명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거 굉장한걸. 너의 힘을 완벽히 거부하고 있잖아?"
"그래서 널 깨운 것이다. 가능하겠나?"
"맥스. 난 완전하지 않은 존재야. 네가 알게 된 것처럼 난 반쪽짜리에 불과하니까. 넌 울프팩 팀 때와 마찬가지로 '선택'을 해야해."
울프팩 팀을 구출했을 때, 맥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자신과 울프팩 팀의 죽음을 통해 차원 세계가 멸망하는 것, 두 번째는 자신과 울프팩 팀에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받게 하며 살아남는 것. 맥스의 선택으로 인해 그가 아끼던 존재들이 모두 고통받게 되었다.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첫 번째, 아이들이 죽으면 코드에 의한 거대 차원 균열은 발생하지 않아. 두 번째. 아이들이 살 수 있지만 코드를 바깥으로 던지게 되면서 거대 차원 균열이 발생해. 무엇을 선택할 거야?"
그는 선택했다.
소녀는 아이들의 코드를 꺼냈다. 붉게 달아오른 코드는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코드가 제거되자 안나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어 아이들의 내부로 들어갔다. 소녀는 두 개의 코드를 손 위에 띄운 채 맥스에게 건넸다. 맥스는 소녀의 손에 있던 코드를 하늘로 높이 던졌다. 곧이어 하늘은 검게 물드는 것처럼 크게 깨지기 시작했다. 거대 차원 균열. 맥스조차도 닫을 수 없었던 균열이 베를린지부 상공에 발생했다. 그때,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차원종이 나타나지 않았다. 차원종이 나타날 일은 없었다.
소녀는 입을 벌리며 맥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첫 번째 선택은 그에게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을 선사했다.
맥스는 웃고 있었다.
소녀도 맥스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네가 이긴 것 같네, 맥스."
"그래."
"치사한걸. 미리 손을 써두다니."
"나도 모든 것을 예상하진 않았다. 다만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네 선택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까."
맥스는 소녀의 손을 잡고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갔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거대 차원 균열이 스스로 닫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차원 세계에 가장 위협적인 적이 차원종과 손을 잡다...... . 너도 많이 변했구나, 맥스."
다음 편은 '울프팩, 잊혀진 어금니'의 마지막 편이자 에필로그입니다.
스스로 잊혀진 존재가 될만큼 맥스의 인생에 있어서 '선택'은 '고통'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또 다시 선택해야했고,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을 수 없었던 선택을 합니다.
마지막 편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