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Remake) (1부 28화) - 폭룡왕 (完)

버스비는1200원입니다 2018-01-2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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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아직 폭룡왕이라고 풀리기 전의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판테르칸을 빈번히 침범해오는 종족들을 벌하기 위해서 단신으로 원정을 갔었다. 상당히 강한 종족들이었으나, 나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렇게 그 종족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일이 터져버렸다. 싸움의 여파로 인해 그 종족이 사는 행성 전체가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 그 행성이 대폭발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미처 제 시간에 맞춰서 탈출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대폭발에 휘말려 치명상을 입게 되었고, 판테르칸까지 돌아갈 기력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은 힘을 짜내서 장막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서 휴면 상태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렇게 휴면 상태가 된 나는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휴면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있었던 곳은 인간이라는 종족들이 사는 작은 행성이었다.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부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낫기 전까지 이 지구라는 행성에 머물면서 회복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저어..."

"?"


새하얀 백색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작은 소녀 한 명이 내가 있는 장소에 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다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괜히 이 행성에 사는 종족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소녀를 당장 내쫓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디 다치셨나요? 실은 약초가 있는데, 괜찮다면 조금 봐드려도..."


그녀는 내가 입은 부상을 보더니 매우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손에 들고 있는 약초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다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이 소녀가 걸리적거리기만 하였다. 그래서 뭐라고 하든 쫓아냈다. 그런데 다음날도 또 이곳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약초를 들고, 물론 또 쫓아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그리고 또 다음날도... 계속 쫓아냈지만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분명 귀찮게 굴지 말라고 했을텐데."

"하지만 다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서..."

"......"


심신 모두 연약해보이는 아주 작은 소녀였으나, 의지 하나만은 누구보다 확고해보였다. 그렇게나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이었을까. 결국 그 소녀가 매일 찾아오는 것을 다시 내쫓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쫓아내봤자 다시 돌아올거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또 다시 며칠이 지나 이제 입었던 부상도 거의 다 낫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문제없이 판테르칸까지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만전의 상태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만 더 휴식을 취하다가 완벽하게 회복이 되고 나서 이 행성을 떠나려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또 그 소녀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항상 있던 일이라 큰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무언가 조금 이상하였다. 평소에는 천천히 걸어오던 그 소녀의 기척이 이번에는 어딘가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누가.... 제발 도와주세요!!!"


곧 그 소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한 대로 소녀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소녀를 쫓는 것은 네 발로 걸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생물, 아마 이 행성에 살고 있는 동물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지성도 없어보이는 이런 생물에게 쫓기다니, 인간이라는 종족은 참 약하기 짝이 없는 종족인 모양이다.

아무튼, 그 동물에게 쫓기던 소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몸에 착 달라붙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으으... 이제 어떡하면 좋죠...?"

"정말이지, 너는 귀찮은 녀석이다."


나는 가볍게 그 동물을 한 번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동물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다가 등을 돌린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무리 지성이 없는 동물이라고는 해도, 상대방과의 힘의 차이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 동물을 쫓아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소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공포에 질려 있었던 얼굴이 금새 환해지고 감탄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하다... 설마 당신이 쫓아낸 건가요?"

"저런 하찮은 동물따위를 쫓아내는 일쯤은 간단하다."

"정말 대단해요! 혹시 신령님이신가요?"

"신령? 뭐냐, 그건?"


소녀가 말하길 자기 인간들은 정해진 날짜에 따라서 갖가지 제물을 모아다가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달라고 신령이라는 불확실한 존재에게 기원을 드리는 제사라는 것을 지낸다고 한다. 참... 도대체 어디까지 미개한 종족들인지 모르겠다. 신령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미신 같은 걸 굳게 믿는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나보고 바로 그 신령이라니... 나야 물론 그 신령인지 뭔지는 아니었지만 소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신령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존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 저는 '헬레나'라고 해요."

'......'
"엘드라고.... 엘드라고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인간들에게는 크나큰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어떤 종족이 인간들이 사는 이 행성에 찾아와 자신들이 가진 힘을 나누어주고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그 종족들의 이름은 '프레이먼'이라는 종족들이었다. 소문으로 얼핏 들은 적이 있는 종족들이었다. 막강한 힘을 가졌고, 수많은 종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라고.

프레이먼들에게서 힘을 받고,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완벽히 익힌 인간들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의 문명을 발전시켜나갔다. 이전의 미개하고 약한 종족이었던 인간들이 단시간에 힘을 비약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보세요, 엘드라고. 여기에 이렇게 좋은 약초들이 잔뜩 있어요."

"그렇군."


부상이 완전히 회복됬음에도 계속 이 행성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헬레나와 함께. 머릿속에서는 판테르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런 내 머릿속의 생각에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헬레나라는 소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헬레나는 이 행성에 와서 우연히 만나게 된 타인이다. 그러니 어떻게 되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체 왜... 나는 헬레나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 헬레나, 한 가지 물어보마."

"네?"

"너는 왜 그렇게 의술에 집착하는거지?"


헬레나는 이상하리만치 의술에 관심을 가진 소녀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손에 약초를 들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약초를 캐면서 의술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수준을 넘어 집착한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헬레나가 그렇게 의술에 집착하는 것이 자주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헬레나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것이었다.


"... 프레이먼 분들이 오기 전까지 저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들으셨죠?"


프레이먼들이 인간들을 찾아오기 전까지 인간들은 무리를 지어서 사냥을 하며 생활하는 때가 많았다. 때문에 사냥을 하는 도중에 크게 다치거나, 혹은 죽는 자들도 나오기 마련이었는데... 바로 그 중에는 헬레나의 아버지가 있었다고 한다.


"저의 아버지는 사냥을 하던 도중에 부상을 당하셨어요. 간단한 응급처치만 해도 괜찮았던 부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누구도 의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죠. 그러다가 아버지의 부상이 악화되었고, 결국 아버지는 악화된 부상 때문에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간단한 의술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아버지를 잃는 일도 없었을 거에요. 그때부터 저는 결심한 거에요. 나 자신이 의술을 배워서 앞으로 아버지처럼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고. 그래서에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헬레나가 왜 이렇게나 의술에 집착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직접 느껴본 적은 없지만, 눈앞에서 혈육이 죽어가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무척이나 분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 그럼 저도 뭘 여쭤봐도 될까요?"

"뭐냐?"

"엘드라고 님은 어디서 오셨고, 또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 너, 그건 어떻게..."

"엘드라고 님은 평범한 인간이랑은 조금 다르니까요. 머리에 작은 뿔도 나있고. 프레이먼 분들도 다른 곳에서 오셨으니, 엘드라고 님도 분명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오셨다고 생각한 거에요."


확실히... 지금의 내 모습이 용의 모습은 아니지만 보통의 인간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모습이기는 하였다. 프레이먼들이 오기 전까지 헬레나는 이런 내 모습이 단순히 조금 특이하다고만 생각했지, 프레이먼들처럼 다른 곳에서 온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무튼, 이런 질문을 받은 나는 잠깐 고민을 하였다. 다른 곳에서 왔다... 라고 말하는 건 간단하였다. 헬레나 본인도 그걸 이미 알고 물어보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 다음의 대답을 어떻게 할 지가 고민이었다. 이 행성에 오기 전에 나는 본의는 아니었지만 한 종족이 멸망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얘기를 한다면 헬레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명을 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헬레나에게 나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고 말을 한다면...


"... 확실히 나는 다른 곳에서 왔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냐면... 그저 여러곳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였다. 특이한 점은 없어."


결국 나는 대충 아무렇게나 얼버무렸다. 그래, 이걸로 된 거다. 무엇보다 내 쪽에서 솔직하게 말해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음날, 헬레나는 자신이 여태까지 모아놓은 약초를 전부 들고 인간들이 사는 도시로 향하였다. 현재 헬레나의 의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도저히 독학만 하였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본인도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지, 본인 스스로 이제부터 직접 세상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것이라고 다짐하여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사는 도시로 온 것이다. 시작은 순조롭게 보였다. 그런데...


콰앙-!!


헬레나가 깜빡 두고 온 약초가 있다고 하여 내가 대신 갖고 오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타인이 가진 것들을 약탈하며 사는 무리들이 헬레나가 있는 도시를 습격한 것이었다. 프레이먼들에게서 힘을 받고 불을 사용하는 법을 익힘과 동시에 숨겨둔 본성을 드러내며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자들이 속출한다고 들었다. 그들이 바로 그런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헬레나가 두고 온 약초를 가지고 돌아가는 그때 알아차린 나는 다급히 헬레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헬레ㄴ..."

"안 돼, 그만해주세요...!"

촤악-!

"아악!"


돌아온 내 눈앞에 보인 것은 그들이 헬레나의 손발을 봉하고 마치 장난감처럼 헬레나를 가지고 이상한 장난을 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상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몸이 뜨거워진다... 가슴이 평소보다 더 쿵쾅거린다... 전신이 힘이 더욱 들어간다... 얼굴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 그래, 이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바로 '분노'였다.


"크아아아아아!!!"


분노의 감정에 잡아먹힌 나는 이 행성에 오고나서 처음으로 용이 되어 인간들의 눈앞에 그 모습을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몸집의 크기를 조절하기는 하였으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거대한 편에 속하였으니 위협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눈앞에 처음 보는 거대한 괴물이 갑자기 나타난 것 때문이었을까, 도시에 살던 인간들이나 도시를 습격한 인간들은 깜짝 놀라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공포에 질려 나에게서 도망쳤다.

공포에 질린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

"아... 아..."


헬레나 또한 내가 용이 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봤고, 그런 나의 모습에 겁에 질려 주저앉은 채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헬레나는 지금 나에게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크나큰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헬레나..."


나는 급하게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헬레나의 앞에 섰다. 헬레나를 일으켜주려고 손을 내민 순간,


"ㅈ, 저리 가세요! 이 '괴물'!"

"!..."


헬레나는 내가 내민 손을 거부하고 나와의 시선을 마주치지조차 않은 채 나에게 '괴물'이라고 소리쳤다. 그렇다... 이건 당연한 반응이다. 뭐가 됐든간에 방금 전 용이 된 나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저 거대한 괴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 그래, 네 말대로 하마."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니, 더 이상 헬레나와 함께 할 수는 없었다. 헬레나 자신도 이런 나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으니, 더 이상 나를 찾아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쉬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고는 해도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드디어 모든 미련을 털어내고 판테르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잘 된 일이라고 말이다.


"......"


이 행성을 떠나기 전, 나는 헬레나와 처음 만났던 장소로 왔다.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부상을 회복하는데에 전념하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걱정하며 거리낌없이 다가왔던 어린 소녀 헬레나, 그랬던 소녀가 지금은 조금씩 성숙해지고 한 사람의 숙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던가? 그렇게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내가 여기에 머무르고 있었던 건가? 대체 뭣 때문에? 아아, 그렇다...


"헬레나..."


헬레나라는 소녀, 그 한 명의 곁에 계속 있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확실히 알 수 있었고, 내가 가진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나는 헬레나의 곁에 계속 있고 싶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러한 사실이 조금씩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엘드라고 님!!!"

"!"
'헬레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서 헬레나가 뒤쫓아온 것이었다. 쉬지 않고 계속 달렸던 모양인지 헬레나는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 있었고 숨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왜 나를 쫓아온 것일까?


"엘드라고 님,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런 심한 말을... 엘드라고 님은 저를 구해주셨는데, 그런데도 저는... 저는...!"

"......"

"정말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떠나지 말아주세요...! 전 계속 엘드라고 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무뚝뚝하고 차갑기는 하셔도, 속은 상냥하고 따뜻하신 분인걸요! 저는 그런 엘드라고 님을 좋아해요!"

"이런 괴물인 나를... 좋아한다고?"

"엘드라고 님은 괴물이 아니에요! 설령 괴물이 맞다고 해도 그러면 어때요? 엘드라고 님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요!"


헬레나가 눈물을 흘려가며 목청껏 내게 말하고 있다. 나는 헬레나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심이라는 사실을. 

헬레나의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왜 그런지 나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웃어라, 헬레나."

"... 네?"

"너는 웃을 때가 제일 어울린다. 눈물을 흘리는 건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헬레나는 항상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헬레나에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 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밝게, 즐겁게, 행복하게, 그런 환한 미소를 지을 때야말로 헬레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제 말할 것이다. 헬레나에 대한 나의 진심을. 헬레나가 나와 계속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헬레나, 나도 너의 계속 너의 곁에 있어주고 싶구나. 그래도 괜찮겠나?"


헬레나와 계속 함께 있고 싶다.


"... 네!"


이제야 알 수 있다. 내가 왜 여태까지 이 행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헬레나의 곁에 머물게 되었는지, 그때 들었던 알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그 감정은 바로 '사랑'이었다.

나에게는 판테르칸에 이미 아내가 한 명 있지만 그건 정략결혼으로 아내가 된 여자... 난 그녀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였다. 정해진 상대와 정해진 결혼, 서로 마음조차 나누지 않은 상대끼리 결혼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헬레나는 다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든 마음을 내게 보여주었고, 나 또한 이런 헬레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나는 그런 헬레나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헬레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헬레나는... 나를 두고 먼저 떠나게 되었다.





"엘드라고의 기운을 추적한 결과, 엘드라고는 이 행성에 있습니다."

"좋아, 당장 그 원수 놈을 찾아내서 처치한다!"

"예!"







헬레나와 나는 서로 관계를 맺고 아이들까지 낳아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약초를 캐고 집에 돌아왔는데 헬레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약초를 캐고 있는 모양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였다.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심상찮은 예감을 느낀 나는 집에서 나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무언가가 날카로운 날붙이에 베이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보았다. 그곳에 도착하자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으아아아앙~!"

"... 헬... 레나...?"

"......"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들로 이루어진 수십 명의 무리들 앞에 목이 베여 피로 웅덩이를 만든 채 싸늘한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헬레나와 그 뒤에서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나와 헬레나의 아이들이 목이 찢어질 기세로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헬레나를 살펴보았다. 엄청난 출혈, 차가운 몸, 그리고 뛰지 않는 심장... 그걸 본 나는 점점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 무리들이 나를 보며 말하였다.


"네놈, 엘드라고로구나! 잘 만났다, 이 원수! 우리들은 네가 멸망시킨 종족의 생존자들이다! 동족들의 원수를 갚기위해 지금까지 너를 쫓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순순히 우리들의 복수의 칼을 받아라!"


그들은 내가 이 행성에 오기 전에 본의 아니게 멸망하게 만든 종족들의 생존자들이었다. 지금 이 행성에 온 것도 나에게 동족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 네놈들이 죽인 거냐...?"

"뭐?"

"헬레나를... 그녀를 죽인 것이 네놈들이냐고 묻고 있다...!"


그들 중 한 놈이 들고 있는 칼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 녀석은 네놈의 아이를 낳았다! 괘씸하기 짝이 없더군. 그래서 죽였다."

"고작 그 따위 이유로... 헬레나를 죽였다고...?!"

"네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ㄷ..."

"죽어라."


순식간에 주변에는 피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죽은 헬레나, 그리고 나와 헬레나의 아이들을 제외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전부 없애버렸다. 주변의 산천초목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평지가 될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폭주하였다.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헬레나를 죽인 자들은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오직 선혈만을 남긴 채 전부 내 손에 죽임을 당한 지 오래였다.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죽어있는 헬레나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풀썩 주저앉았다. 한순간에 헬레나를 잃고 말았다. 만약 내가 헬레나와 같이 있었다면 헬레나를 죽게 만들지 않았을텐데... 아니, 그 이전에 내가 만약 그들이 속한 종족을 멸망하게 만들어서 원한을 갖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미안하다, 헬레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헬레나가 죽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 나...


"... 아니, 나 때문이 아니다..."


그래... 나 때문이 아니다.


"헬레나가 죽은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놈들이 애초부터 살지 않았다면 헬레나가 죽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 일도 없을거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탓에 헬레나가 죽은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자들이 살지 않았다면 헬레나가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은 헬레나에게 맹세하였다.


"저쪽 세상에서 지켜보고 있어다오, 헬레나... 더 이상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일테니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는 걸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내버려둔 채 다시 판테르칸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 인간들은 없애버리지 않았다. 나의 힘으로는 아직 프레이먼들의 우두머리를 이길 힘도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헬레나가 태어나고 자란 행성과 나와 헬레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테르칸에 되돌아가고, 그때부터 나는 죽은 헬레나에게 맹세한 대로 주변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멸망시켜나갔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힘은 점차 강대해지고, 나는 엘드라고가 아닌 '폭룡왕'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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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왜 그러지? 뭔가 이상한가?"

"몰라서 묻는 건가요?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도록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없애버리겠다니...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에요!"

"어째서냐? 내 말대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면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뭐라구요...!?"
'틀렸어, 이 사람... 이미 마음이 완전히 뒤틀려있어...'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뭘 하려는거죠?!"

"몰라서 묻나? 과거에 하던 일을 마저 하려는거다."
'그리고 날 봉인시킨 백룡... 네놈은 내 힘이 완전히 회복되고 난 뒤에 처리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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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간들에게서 폭룡왕이 부활하였다는 소식이 모든 종족에게 알려졌다. 그 소식을 접함과 동시에 드디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들 모였나?"


염신 메테우스가 직접 임명한, 각자 한 명이 한 종족 전체의 전력과 맞먹는 힘을 가진 강대한 존재들...


"다들 들었다시피 알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판테르칸에서 악명을 떨친 폭룡왕이라는 존재가 부활하였다. 드라간들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당시 폭룡왕이 멸망시킨 종족의 수는 약 30... 그런 존재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 메테우스가 명령한다."

"......"

"모든 사도들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폭룡왕 엘드라고를 찾는다! 그리고 찾는 즉시 신속하게 처치한다!"

"예!"


염신 메테우스와 그 휘하에 있는 사도들이 폭룡왕 엘드라고를 처치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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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다굴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죠

그냥 해본 말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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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8: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