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위상력과 함께 8화

검은코트의사내 2017-10-16 0

일단 길드에 의뢰를 접수한 뒤에 여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길을 외우는 건 자신이 없었지만 길드 건물이 워낙 크고 마을 중앙에 있기 때문에 여관에서 길드를 찾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여관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다. 내가 했던 게임에서는 'INN' 이라는 글자가 붙어서 찾기가 쉬웠지만 여기 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할 리가 없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써져 있겠지. 길드에서 접수담당을 맡은 누나가 설명해줬었지만 워낙 멀어서 그런지 설명받은 거 다 잊어버렸다.


"이런... 곤란하게 되었군."


길을 잊어버리니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다녔던 시절에 학생들이 쑥덕거리면서 유치한 놀이를 하는 게 떠오르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이러듯이 말이다. 간판에는 뭐라고 써져있는지 모르지만 유리창 너머로 진열되어있는 물건을 보면 여기가 어딘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창문 너머로 검과 방패, 도끼가 보이면 여기는 무기점이라는 걸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옷가게를 찾아야 했다. 이런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한번씩 쳐다보는 게 너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멋있는 옷을 입고 있다면서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기도 하니 곤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화이었다.


"빨리 옷 가게를 찾아야겠어."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못참겠다. 뛰어다녀야 될 거 같았다. 간판이 써져 있는 건물마다 유리창 너머로 보면서 어느 곳인지 확인한다. 여기는 대장간, 여기는 도구점, 여기는 술집, 여기는 점술소, 엥 점술? 여기 이세계도 점을 보는 데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별로 점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게임 내에서도 그런 게 있었지만 퀘스트가 아니면 보통은 실행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점을 본 적도 단 한번도 없었고, 믿지도 믿지도 않았기에 이런데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려는데 점술소에서 왠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불렀다.


"젊은이, 이번에 점을 한번 봐줄게. 어서와봐."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얼마나 장사가 안 되면 저렇게 직접 점을 봐주겠다고 나와서 손님을 유도하려고 할까? 수중에 돈은 많지만 그 돈을 점이나 보는 데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서 할머니가 내게 매달리자 일단 속는 셈 치고 점술소 안으로 들어갔다. **, 이 할머니, 만약 내가 나쁜사람이었으면 걷어차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기사들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겠지. 그리고 어렸을 때도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을 들었으니 함부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점술소 안은 어두운 분위기에 수정구슬 하나가 방석 위에 올려놓은 상태인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점술가 할머니는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마치 마녀로 묘사되는 모습이었다. 아니, 억지로 사람 들여보내놓고 마녀행세를 하면서 무섭게 표현하다니... 만약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려나? 조금이라도 한 푼 버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님을 억지로 끌어들이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으음. 자, 그럼 시작한다. 수정구슬아, 이 젊은이의 운명을 알려다오."


수정구슬이 빛나면서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점술은... 어쩌면 가짜가 아닐 수도 있었다. 수준높은 마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정구슬의 빛이 잠시동안 유지하다가 사라지자 점술소 할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똑바로 보았다.


"으음, 자네에게서 페로몬 냄새가 나는 구만. 살아가면서 아홉송이의 꽃을 손에 넣게 될 거야."


이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홉송이의 꽃? 페로몬 냄새? 아홉송이의 꽃을 어떻게 손에 넣어? 꽃집에서 아홉송이나 꽃을 사가는 사람을 뜻하는 건가? 페로몬 냄새는 뭐지? 애초에 페로몬이 뭐야? 이해가 안 되는 나에게 점술가 할머니는 계속해서 입을 열면서 나에게 말했다. 모든 남자들의 로망을 다 갖췄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도가 텄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대체 뭔소리야? 알 수가 없는 말만 내뱉고 있었다. 이래서 점은 안 믿는다는 거다. 일단 할머니의 설명에는 다 흘려들으면서 '네. 네.' 이렇게 대답했다.


"엄청 행복해질 거야. 자네같은 젊은이의 행운은 처음이로구만."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았습니다. 얼마에요?"

"으음... 실버 5개일세."


실버? 어디 내가 가진 돈 주머니의 돈을 꺼내보았다. 가만있자, 전부 다 금으로 된 동전 뿐이었다. 몇 개나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일일이 세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일단 금으로 된 동전을 꺼내자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하고 있었다.


"이... 이건 금화?"

"제가 가진 게 금화밖에 없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게."


할머니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어디로 가는 거지? 혹시 거스름돈 준비하러 가는 건가? 여기 세계의 화폐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알아야하고, 참 공부할 게 너무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뢰에 추가할 걸 그랬나 보다. 잠시 후에 할머니가 은화 5개를 가져와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서는 은화를 실버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혹시 다른 화폐도 있으려나? 동화같은 것도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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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같지도 않는 예언을 듣느라 시간낭비를 해버렸고 돈도 낭비했다. 일단 예언은 믿을 만한 게 못되니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데다가 어차피 흘려들었으니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빨리 옷 가게나 찾아야될 거 같았다. 한참 걸어가다가 마침내 창가에 비친 양복이 진열된 것을 보았고, 나는 즉시 반갑다는 듯이 옷가게로 문 열고 들어갔다.


"어서옵쇼, 자낙 패션샵에 잘 오셨습니다."


간단한 옷차림에 코트를 두른 아저씨가 날 맞이해주었다. 머리색깔이 처음보는 색이었다. 연두색같으면서도 노란색 같은 느낌이다. 콧수염에도 그게 잘 드러나 있는 상태, 이런 색깔을 한 머리는 처음봐서 그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저기, 손님?' 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 저기... 옷을 좀 사려고 하는 데요."

"으음? 그러고 보니 자네... 그 옷과 바지는 어디서 났는가? 이거 아주 디자인이 잘 되어있군. 나에게 팔지 않겠나?"

"그... 그건 죄송합니다. 이건 파는 게 아니라서요."

"금화 30개 주겠네. 어떤가?"

"저기, 이건 파는 게 아니라니까요."


옷가게 괜히 들어왔나? 내 옷을 사겠다고 난리를 피우다니 말이다. 이거야 원,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척 보아하니 이 사람이 주인인 거 같은데 오랜 시간 동안 내 옷을 붙잡고 흥정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절대로 팔지 않겠다면서 말했다. 내가 이렇게 팔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옷은 그냥 장식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싸워왔던 순간을 함께했던 동료들과 추억이 깃든 복장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옷을 절대로 팔 수는 없었다. 물론, 당분간은 안입고 다녀야겠지만 말이다. 신은 원래세계로 내가 돌아갈 수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은 잊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의 노력으로 특수 요원까지 올라왔다고 해서 옷이 소중하다는 게 아니다. 정식 요원이 될 때부터 나는 유니온에게 안 좋은 감정이 들었는데 우리가 승급한 이유는 그저 유니온 상층부인 그들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정식 요원으로 임명해줬을 뿐이다. 특수 요원 때도 마찬가지다. 불안정한 승급심사에 우리 검은양 팀을 끌어들인 것, 본래 규정과는 어긋나는 승급심사를 거친 셈이 되었다. 어차피 승급해서 얻은 지위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즉, 내가 특수 요원까지 승급해서 옷이 소중한 게 아닌, 모두가 함께 아수라장을 헤쳐나간 흔적이 담긴 옷이라는 게 된다는 사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팔 수가 없는 것이다.


"흐음,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가 없구만. 좋아. 포기하겠네. 옷을 사려고 했지? 좋은 거 골라보게."


당연하죠. 이런 건 돈으로 계산할 수 없으니까요. 일단 포기를 해주니 다행이었다. 내가 입을 만한 옷은 역시나 검정색 밖에 없을 거 같았다. 나는 많은 색 중에서 검은색을 좋아했다. 그저 혼자 있는 게 좋았으니까, 클로저 활동하면서 혼자 있으려는 습관은 조금씩 버리는 듯 했지만 말이다. 검은색 상의와 긴 바지면 될 거 같았다. 으음, 여기 이세계에도 와이셔츠라는 것을 팔고 있는 모양이다. 딱히 내가 멋 부리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코트, 그리고 검은 바지까지 이렇게 3종류를 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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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가게에서 나온 나는 유리창에 비친 거울을 보면서 단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넥타이가 없어서 조금 허전하지만 이정도면 적어도 눈에 띄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클로저 요원복은 쇼핑백에 담은 채로 가져간다. 옷 문제는 해결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여관찾는 길,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야될 거 같았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 혹시 여관이 어디있는지 아시나요?"


지나가던 사람은 여관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헤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기점이나 도구점, 옷가게도 구경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점술소는 영 아니지만 말이다. 다시는 그런 데 안간다. 하지만 가다가 또 길을 잊어버렸다. 분명히 쭉 앞으로 가다가 대장간에서 왼쪽으로 꺾으라고 했었는데 간판의 글을 모르니까 대장간을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나쳐버린 거 같았다. 나는 또 다시 길을 잃어버린 신세라는 것을 알자,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이거야 원..."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약속이 틀리잖아!!"

"왜 이러는 거야? 언니... 약속이 틀리다니? 우린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한 거라고."


응?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여자목소리와 남자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지? 일단 목소리는 골목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뭔가 문제가 터진 모양인데 그냥 끼어들지 말까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쓰여서 발걸음을 옮겼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17:2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