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3 진흙 속에 맑은
Sehaia 2017-07-21 4
유니온 소속 유소년 위상 능력자 팀, 검은양 팀. 내가 얼결에 수락해 버려 유니온의 노예, 아니 유니온의 클로저 팀으로 활동하게 된지 벌써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차원압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있었기에, 대체로 훈련과 브리핑 정도로만 끝나는 팀 활동의 나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나 그런 일상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 팀은 왜 이렇죠?”
이건 진즉에 뭐라 하고 싶은 부분이었는데, 이제야 말을 꺼낼 수가 있었다. 그래, 이 팀은 어딘가 이상하다.
“어떻게 팀원이 두 명 밖에 없을 수가 있어요?”
“그게, 분명 내정된 사람들은 있거든. 있는데, 한 명은 설득에 애를 먹고 있고, 한 명은 독일에서 오는 중이라 시간이 좀 더 걸려야 적응이 될 거라며 아직 안 보내주고, 남은 한 명은 최근에야 결정됐어.”
“그래서 얘랑 저 둘이서만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겁니까.”
“야, 이세하!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마!”
이건 말도 안 된다.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라고 할까, 불안불안하다고 할까. 애초에 이것이 팀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유니온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만, 최근에서야 팀원 선정이 완료되었다는 것엔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거기에 누구는 설득에 애를 먹고 있다니, 그거 아직 팀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머리를 가볍게 감싸 쥐고 훈련 프로그램에서 퇴장을 신청한다.
훈련 프로그램이란 건 지난번 스캐빈저 무리 침입 때 겸사겸사 구해낸 가상현실 프로그램이다. 사용자의 의식을 가상현실로 옮겨 현실적인 모의전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오른팔을 찔려가면서까지 구해낸 것이 저런 잔소리꾼과 이런 훈련 프로그램이라니,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그런 미련한 짓을 했단 말인가.
‘Log out’ 이란 말이 울려 퍼지며 주변에 있는 건물들과 차원종들이 먼지가 되어 녹아내린다. 곧 이어 시커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눈이 뜨였다. 그 때 이후로 몇 번 해보긴 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끝없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러다 전기 끊기면 많이 무섭긴 무서울 거 같다.
“수고했어, 얘들아.”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가 복귀를 반긴다.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것이 현실감을 고양시킨다. 저 훈련 프로그램 안에서는 외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니까, 아무래도 그런 점에서는 가상현실이란 것이 느껴진다.
그 외에는 현실과 너무 차이가 없어서 께름칙하다. 실전을 명목으로 했기 때문에 통각의 경우도 거의 생생하다. 다만 통각이 한계를 넘은 경우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의식을 셧다운 해버리지만, 어찌됐든 아프단 것은 똑같다. 찔리면 아프고, 화상을 입으면 따갑고, 시간이 지나면 지친다. 이런 것까지 현실을 반영하지 말라고.
상처는 남지 않아도 몸은 통각을 기억하고 있다니, 묘한 기분이다. 마치 살가죽을 벗기고 몸에 상처를 새긴 다음 흠짐 없이 그대로 다시 덮어씌운 것 같달까. 오히려 눈에 띄는 상처가 없는 것이 소름이 끼친다.
“보다 실전에 가까운 감각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야.”
글쎄, 그런 걸 굳이 실전처럼 힘들게 해야 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건데. 관두자. 어차피 얘와의 대화는 언제나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괜한 말을 해서 입만 아프게 떠들 필요는 없다.
“음, 나중엔 통각을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현실에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위험하기도 할 테고, 쇼크사로 죽는 게 없지도 않으니.......”
뒤에서 중얼거리는 흰 가운의 연구원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설마 우리, 마루타인 건 아니겠지.
그런 우리의 불안을 지우려하는지 유정이 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친다.
“그건 그렇고, 훈련도 끝났고 신규 팀원을 소개할게! 세하야, 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다니, 그건 무슨 얘기지.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나는 내 좁은 인맥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기껏해야 게임 속 친구나, 석봉이나, 그 외엔.......별로 없군. 새삼 내 좁디좁은 인맥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럼, 들어와. 유리야.”
훈련실의 문이 열리며 귀에 익은 이름과 함께 교내 신문에서 본 익숙한 얼굴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눈이 이질적으로 푸르다.
“안녕! 신강고등학교 2학년 C반에 진급 예정인 서유리라고 해!”
활기차게 걸어들어오며 자신을 소개한 소녀는 여러모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일단 밀어붙여오듯이 기세 넘친 두 산.......아니, 아니, 이게 아니라, 교내의 전 검도 유망주가 같은 유니온 팀원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로 첫 번째 이유가 결정적인 게 아니다.
“이야, 방금 영상으로 너희가 훈련하는 거 잘 봤어! 세하야, 너 예전에 검도라도 한 거야? 검을 쓸 때 힘 분배가 잘 되던데?”
“아니, 그냥 옛날에.......그보다, 너가 날 어떻게 아는 거야?”
“응? 너 유명하잖아! 교내에 얼마 되지 않는 위상 능력자! 너 모르는 애들 별로 없을걸? 애초에, 이번에 같은 반이 될 친구들 이름 정돈 알아야지. 어제 반 배정 발표 났잖아.”
내가 위상 능력자라는 얘길 이렇게 상큼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학교에 있다는 사실이 난 더 놀랍다. 거기에 벌써부터 반 애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성격이 활기차다는 건 얘기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그러나 위상력에 대한 얘기가 나온 이상,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쟤 분명 그것 때문에 대회에서 탈락 했을텐데. 물론 나한테 있어서도 위상력은 그다지 즐거운 화제는 아니다. 서로 민감할 만한 주제를 저렇게 가볍게 꺼내는 것에 탄복한다.
그 와중, 옆에 있던 이슬비가 예상외의 발언을 한다.
“C반이라, 그럼 나와는 다른 반이겠구나.”
“뭔 소리야. 넌 아카데미 졸업했잖아.”
“의무교육 상 고등학교에 재적은 해야 해서, 이번에 신강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어. E반으로 배정을 받았을 거야.”
설마 같은 학교라니. 그럼 나 혹시 복도에서 얘 만나면 잔소리 먼저 듣는 거 아닌가? 생각만 해도 안 그래도 끔찍한 고등학교 생활이 더 끔찍해진다.
“아, 그래. 이슬비 맞지? 유정이 언니한테 얘기 들었어. 네가 리더라고 했지? 잘 부탁해!”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은근슬쩍 이쪽을 그렇게 째릿 하고 노려** 마시지. 최소한 네가 잔소리만 덜 해도 나도 좀 더 협조적으로 변할 거 같은데. 거기에 게임기 뺏어가지마.
“그건 그렇고, 역시 위상력을 쓰면 검도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나? 시험해 보고 싶은 기술들도 잔뜩 생기는걸!”
눈을 빛내면서 검도 얘기를 꺼내는 모습에 위상력 얘기로 인한 경직도 맥없이 빠져나간다. 피차 위상력은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분명 이번 검도대회에서 위상력 판정으로 우승 실격을 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위상력에 혐오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쓸데없는 걸 생각한 걸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러니 세하야, 갑작스럽지만 유리와 한 번 대련해 주지 않을래?”
“예?”
“아직 위상력에 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지, 원래 적성이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유리는 직접적인 타격과 무기 강화 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러니까, 대련해서 얘의 적성 찾기랑 위상력 적응 훈련을 도우라는 건가요?”
“응. 아무래도 슬비하고 대련하기에는 조금 상성이 애매해서.”
분명 얘가 염동력, 전자기력 계열이었던가. 서유리가 아직까지 쓸 수 있는 것이 ‘강화’밖에 없다면 확실히 이슬비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서유리가 사용할 무기는 필연적으로 검이 될 텐데, 범위든 능력의 활용도든 어떤 쪽으로 봐도 서유리가 이길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일이라는 거군.
“뭐, 이것만 끝나면 전 돌아가도 되는 거죠?”
“어? 응.......아마도 그럴 거야.”
괜히 말 흐리지 마요. 어차피 더 할 것도 없는 걸 아는데. 매일같이 하는 합동 훈련도 끝났고, 개인 훈련까지 끝냈는데 거기에 신규 클로저 훈련까지 시키다니. 사람을 부려먹는 데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여기는 유니온.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곳이다. 더러운 사회생활의 일면을 벌써부터 체감하다니, 내 여생에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주고 싶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대련하면 되는 거죠?”
“저기 훈련장에서 하면 돼. 내구도는 신경 쓰지 마. 위상 능력으로 강화한 총격에도 문제없어! 걱정 말고 실력을 보여주렴. 아, 그리고 네 위상력 특성은 네가 가장 잘 알 테지만, 힘 조절 잘 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훈련장으로 걸어간다. 비록 맘에 들진 않아도, 이걸 빨리 끝내야 오늘 자 게임 이벤트에 참가하러 갈 수 있으니, 빨리 끝이나 내자. 머리와 어깨를 돌리자 우득우득 거리는 소리가 나를 반긴다. 벽에 걸려있는 죽도를 하나 꺼내든다. 평소에 들던 건블레이드보다는 가벼워서 위화감은 좀 들지만, 길이가 맞으므로 그냥 쓰기로 한다. 위상력으로 적당히 감싸면 내구도야 그럭저럭 올라가겠지.
“오! 역시 유니온은 뭔가 다른데? 시설도 짱짱하고, 땀 냄새 잔뜩 풍기는 우리 도장과는 달리 청소도 깔끔하고. 약간 진정이 안 되는걸.”
“됐고, 빨리 빨리 끝내자.”
“에엑, 뭔가 딱딱해.”
내 태도가 맘에 안 드는지 투덜대면서 목에 목걸이를 차기 시작한다. 분명, 위상력 제어 도구 였던가. 가뜩이나 하얀 목에 검은 테가 둘러지니 하얀 목이 더 튀어 보인다. 누구 취향인지는 몰라도 외향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진지하게 분석해 봅니다, 예.
그에 이어 팔에 제어 장비를 하나 더 찬 뒤,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예상대로, 일본도와 비슷하게 생긴 검이다. 그에 이어서 가벼워 보이는 권총을 꺼내든다.
응? 권총? 잠깐, 저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이거 내가 불리한 거 같다만.......대련은 공정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간다.”
눈빛이 바뀌었다. 검도 대회에서 상을 휩쓴 경력은 농담이 아닌 건지, 승리를 노리는 진지한 매가 한 마리 눈앞에 서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검 한 자루를 들고 일직선으로 들어온다. 눈이 아슬아슬하게 따라갈 정도로 빠른 속도에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그러나 공격이 들어오기 직전, 움직임을 포착한다.
머리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오는 공격을 도신으로 튕겨내는 것에 집중한다. 세 번을 연이어 튕겨낸 뒤 급하게 허리를 틀어 빈 옆구리를 향해 죽도를 휘두른다. 들어갔다고 생각한 그 때 내가 벤 것은 서유리의 잔상. 본체는 이미 뒤로 빠져서 혀를 쏙 내밀고 있다.
“에헷, 아직은 좀 어렵다? 속도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실감이 안 나는걸? 이렇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실격처리 당할 만도 하네. 이거,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건 그쪽이라고 말하고 싶다. 위상력 적성이 특화되어있지 않은 게 아니다. 아무래도 그냥 위상력 계열이 강화계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전처럼 빠른 움직임을, 아무리 제어구를 달고 있다곤 해도 이런 단기간에 익히기는 불가능하다.
단순한 신체능력 강화는 나도 할 수 있다. 다리에 힘을 모아서 질주하는 것과 사이킥 무브는 기초 중의 기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런 역동적이고 빠른 움직임을 내가 하라고 한다면 글쎄, 시간이 상당히 걸리지 않을까.
내가 천천히 분석을 하던 도중, 갑자기 씩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뻗는다. 그러고선 권총을 꺼낸다. 흠, 근거리 전투는 강화된 검도로 메꾸고 중, 원거리는 총으로 견제인가. 나름 괜찮네.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력이 좋은 무기조합이다. 근거리 전투밖에 안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한 발쯤은 맞겠지!”
야, 진짜냐. 아무래도 총은 처음인지 겨냥만 하고 그냥 나 몰라라 난사한다. 궤적을 읽기는 오히려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거는 맞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위상력만은 제대로 실려 있다. 상대의 손이 가는 방향에 맞춰 움직인 죽도가 갑자기 추를 매달은 것처럼 무거워진다. 잠깐 스톱을 외치고 살펴본 죽도에는 몇몇 총알이 깊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거, 제대로 하지 않으면 조금 위험할 것 같다. 머릿속을 저며 오는 위험 신호에 몸이 멋대로 위상력을 끌어올린다. 머리에 피가 쏠리고 제대로 된 파악은 오로지 전투를 위해서만 헌신한다. 몸에서 서서히 위상력이 흩날리고 세포가 처음부터 끝까지 활성화된다.
죽도를 뒤로 살짝 늘어뜨리고 상대방의 왼쪽을 향해 몸을 날린다. 역시나라고 할까, 검도 대회 1등답다고 할까. 내 움직임을 읽고 곧바로 양손으로 검을 들고 공격을 막아낼 자세를 취한다.
그래봤자, 의미 없어.
“터져라.”
죽도 끝에 검이 닿은 것이 느껴진 순간, 위상력을 폭발시켜 검을 튕겨 내버린다. 순간, 서유리의 눈이 놀람으로 동그래졌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내려친 죽도에 반응이 늦은 서유리의 검이 다시 한 번 겹쳐지고, 연이은 폭발에 서유리가 검을 놓친 채로 밀려난다. 멈추지 않고 달려들어 허리춤에 있는 권총 수납함을 찔러서 떼어낸다.
“야야, 항복항복! 머리 좀 식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올린 채로 항복을 외치는 목소리에 오감이 돌아온다. 승부의 끝을 인식하자 격하게 새어나오던 위상력이 숙면을 고한다.
손을 보니 폭발을 견디지 못한 죽도가 태워먹은 죽순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미 끝자락은 부러졌고 몸통 부분은 검게 그을렸다. 아무래도 적당히 하라고 한 유정 누나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듯하다.
“이야, 대단했어! 진짜 검도 같은 거 안 배운 거 맞아, 세하야? 위상능력자는 모두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분명 공격은 막았을 건데, 충격은 그대로 들어오더라?”
“이 정도는 누구나 해. 단지 내 위상력은 상대방의 방어를 무시하는 충격을 줄 수 있어서 방어해도 별로 소용없을 뿐이야.”
“에엑? 그건 완전 사기 아냐? 공방이라는 게 성립조차 안 되잖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라니, 말도 안 돼~.”
죽도를 상대로 총을 꺼내든 녀석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야.
물론 강력한 능력인 건 맞다. 그야말로 전투에 최적화된 능력이나 다름없다. 그저 부수는 것에 특화되어있는 능력이다. 이슬비같은 능력이라면 실생활에 도움이라도 되지, 이건 실생활에서 그렇게 쓸 일도 없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난 흡연자가 아니니 라이터 대신으로 쓰기도 애매하고. 이거 정말 쓸데없네.
“어쨌든 재미있었어! 좋은 승부였습니다!”
“네네, 이걸로 끝 인거지.”
위상력을 너무 오랜만에 크게 끌어낸 탓일까, 몸이 살짝 뜨겁다. 이대로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심정이다.
계속 싱글거리며 팔을 휘둘러대는 모습이 키 큰 걸 확인하는 어린아이 같다. 아무래도 방금 전 대련에서 위상력을 사용한 전투가 꽤 마음에 든 듯하다. 그렇게 몸을 계속 움직이다, 나를 보곤 갑자기 표정을 살짝 찡그린다.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으음, 세하야. 너 원래 그렇게 새치가 많던가?”
.......?
“아니, 내가 잘못 본 건가? 속 머리카락이 잿빛으로 보인 거 같은데.”
아아, 그러고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군. 요즘 위상력을 너무 자주 끌어냈나. 이번 대련이 화근이 된 모양이다.
“잘못 본 거겠지.”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래서 싫다니까. 뭉게뭉게 피어나는 물음표를 똑 떼다가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래도 아직 들키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괜한 얘기 같은 건 그다지 할 생각도 없고, 이 이상의 말은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품고 있다. 그러니 조용히 입을 다물도록 하자. 딱, 두 가지 물음만 빼고.
“너, 클로저는 왜 된 거야?”
“엉, 클로저? 아하하, 그게.”
난감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계속해나가는 서유리의 얼굴에는 티 한 점 없었다.
“우리 집, 되게 가난하거든. 내가 검도로 돈을 벌어야 되는데, 이게 웬걸, 1등 탈락이라더니 상금도 없다네?
그러던 와중에 탁! 제안이 왔어. 클로저가 되면 공무원이라잖아? 이런 취업난엔 역시 철밥통이 최고지, 암암. 이거 잘만 하면 검도보다 안정적으로 돈 벌겠다, 싶어서. 별로 선택할 건덕지도 없었지 뭐.”
“.......그래.”
신문지로 닦아낸 때 묻은 창문처럼 역경 속에서 빛을 발하는구나, 그 순수함은. 그렇다면 역시 이 질문은 할 수 없다. 이런 건, 나 같은 녀석이나 생각하는 거니까. 목 끝까지 차올랐던 질문을 역겨움과 함께 삼켜버린 후, 훈련실에서 나온다.
만일, 괴물이 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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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이번엔 유리 영입 편이었습니다. 새삼 배틀물을 잘 쓰는 사람들이 대단하는 느낌이 든 에피였습니다. 장면 하나하나를 전부다 구상하고 쓰는 거, 묘사도 그렇고 어려워요, 어려워.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재미있으셨다면 댓글과 추천 하나씩만 주세요. 언제나 그렇듯 피드백 환영합니다!
이거 명전을 갔네요......자고 일어났더니 신기한 것을 봤어.....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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