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어떤 하루(feat. 170517)
루이벨라 2017-05-17 6
※ 업화(@ssdfg1151)님께 '특별한' 감사를 보내드립니다.(제 세하가 임본을 못 가서 퀘스트 스크립 주셨어요...ㅠㅠ)
"교복이 이렇게 불편했었나..."
투덜거리듯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세하의 입술은 진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입어본 교복은 뻣뻣했지만 그닥 싫지는 않았다. 창밖에는 따스한 봄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봄햇살이 눈이 부셨다. 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숨바꼭질을 하듯 간간히 보였다.
전자 시계의 숫자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등교 시간은 8시 30분까지였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 출발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세하는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계속 있어보았자 심심하기만 하고, 무엇보다도 빨리 학교로 가고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세하 자신도 몰랐다.
아침에는 그래도 날이 선선했는데 춘추복을 입은 몸은 지금 이 날씨를 따뜻하다 못해 덥다고 느꼈다. 요즘 날이 봄답지 않게 덥기는 했다. 하지만 세하가 춘추복을 입고 나온 건 개인 차이겠지만 세하는 춘추복을 입어야만 학교에 간다는 느낌이 제일 절실히 느껴질 거 같았기에 일부러 입은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세하는 아직도 자신이 뉴욕의 엉망진창이 된 거리에 있을 거만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거 같았던 사태가 끝을 맺고, 원래의 '일상' 으로 돌아왔다는게 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도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작은 걱정을 해본다.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 무너져버리는 건 아닐까. 사라지는 건 아닐까.
* * *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세하는 학교에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해 반에 가보니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유리였다. 자신과 같은 <검은양> 팀의 멤버이자, 짧게 지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기분이 드는 그런 소녀였다.
"어, 서유리. 일찍 왔네."
"아, 세하네. 좋은 아침~"
유리가 환히 웃으며 세하의 인사를 받았다. 이 소녀는 언제나 꾸밈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 보았을 때도, 계속 알고 지낸 지금까지도.
유리는 언제나 밝았다. 약간의 시무룩했던 적도 있었지만, 유리는 잘 이겨냈다. 유리가 시무룩했던 시절에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지만 뭐라 위로를 해야할지 몰랐다. 세하 자신은 인간관계에서 서툴기도 했고, 또래의 여자 아이가 시무룩해 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랐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자기도 힘든 주제에, 억지로 괜찮은 척 하는 건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내가 1등 했지롱!"
"도대체 몇 시부터 와 있던거야?"
"10분 전."
그렇게 시간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약간의 시간 차이로 이긴 것이, 유리는 너무 기뻐보였다. 유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언제나 밝았다. 그 밝음은 자신과 유리가 얼마 전에 있던 전장이 아닌, 이런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더 어울렸다. 유리가 턱을 괴고 바로 옆에 있는 창 너머를 보았다. 세하는 유리 바로 앞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늘 날이 너무 좋아서 다행이야."
"그러게. 잘됐네."
마침 '그날' 이기도 하고. 무심코 뒷말을 꺼낼 뻔 했다. 자신의 혼잣말과도 같은 말에 반응해준 세하가 신기한 듯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세하가 원래 이랬나?"
"...내가 뭘."
"아니, 학교에서의 세하는 이러지 않았던 기분이 들어서."
학교에서의 이세하는 어떻게 행동을 했는데? 라고 묻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유리는 그 말을 마치 '저 너머에는 서산이 있다' 와 같은 애매한 말투로 했다. 질문을 한 유리도 막연하게 가라앉은 어딘가의 기억을 언뜻 본 거 같았다. 그리고 세하 자신도 학교에서의 자신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만의 등교였다.
"참 신기하지. 1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이렇게 그리울 줄은 몰랐는데."
그 말을, 유리는 뉴욕에서도 했다. 잠시 숨을 터울 그 찰나의 시간에 나눈 대화의 한토막이었다.
-학교, 되게 가고 싶다. 정말로...
-...그러게. 나도...가고 싶어.
정말, 가고 싶었다. 뉴욕에서의 하루하루는 1달, 아니 1년 같았다. 자연스레 신서울에서 이렇게 학교를 다녔다, 라는 사실이 그런 때가 있었지, 로 바뀌는 상황을 경험했다. 세하 자신은 계속 다른 사람에 비해 평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도, 그 생활도 그리웠다. 자신뿐 아니었다. 지금 뒤에 앉아있는 유리도, 묵묵히 리더의 일을 하는 슬비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작게나마 바랬을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사건이 종결되고, 이제 신서울로 가자는 유정의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눈물이 나올 뻔 했다.
"지금쯤 다들 뭐하고 있을까."
"지금 자고 있지 않을까. 모두 힘들었잖아."
<검은양> 과 <늑대개> 가 신서울에 도착한 건 불과 이틀 전이었다. 아직도 몸의 피로를 풀어**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세하와 유리, 슬비는 바로 다음날 학교로 등교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들은 이런 평범함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너 그거 기억해?"
"응?"
"너, 이제부터 학교 나가면 안 잘거라고."
그 대화도 뉴욕에서 나눈 대화 중 일부였다.
-나도! 이제부턴 잠 안 자고 마지막 교시까지 버틸 거야!
-하하. 너한텐 무리일걸?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이제 학교에서 게임 안한다고 선언을 했었다. 유리는 그런 세하의 말에 '히힛, 그러는 너야말로 무리일거야!' 라고 대꾸했었더랬다.
-...
-...
그 직후의 이야기는 먹먹함이 물씬 밀려왔다.
-학교 가서...실컷 자도 돼. 그러니까...꼭 같이 학교 가자.
-응. 너도...게임 막 해도 되니까...같이 가자! 다 같이...
다 같이, 오게 되었어. 또 그때의 먹먹함이 마음 속에 울려퍼졌다.
"근데, 세하 말이야! 이제 컬러 렌즈 안 끼네?!"
"어? 어어..."
그렇게 말하는 유리의 맑은 벽안이 눈길을 끌었다. 뭐, 슬비도 유리도 렌즈 안 끼고 학교에 나오기도 하니까 자기도 이 정도면...괜찮지 않으려나.
"항상 말하는거지만 세하 눈색 진짜 이쁘다?!"
"...그런가."
"꼭 황금, 보석 같아!"
잘했다는 말을 저렇게 우회적으로 돌리는걸까. 아니면 그냥 사실을 말하는거 뿐일까. 전자든 후자든 상관은 없었다.
"있잖아, 세하야. 나 말이야, 정말 엉뚱한 생각을 했다?"
"...뭔데."
"하늘이 무너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뭐 그런 생뚱맞은 생각."
생뚱맞은 생각이라고 말하는거와 달리 목소리는 진지했다. 유리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풉.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세하의 그 웃음을 자신을 비웃고 있는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아니! 그게 말이야! 아니, 실감이 전혀 오지 않잖아?! 눈만 뜨면 화약 냄새 가득한 뉴욕의 거리에 있을 거 같고, 하늘은 저렇게 파랗지 않고 잔뜩 흐릴것만 같고! 그러니까...!"
"꿈일까봐?"
살풋, 웃음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허를 찌르는 세하의 물음에 유리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유리가 별 반응이 없자 세하가 재차 물었다.
"꿈일까봐? 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나도, 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
자신만 너무 이 상황을 낯설게 받아들이는게 아닐까 걱정했던 두 사람은 한박자 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에.
"뭐야! 세하 너도 그렇게 생각한거야?"
"그렇게 말하는 너도 같은 생각했잖아."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1년 전에는 분명 멀게만 느껴지던 '클로저' 라는 직책이 이제는 자신들의 삶에 녹아졌다는 증거였다.
"세하, 교복 입은 건 오랜만에 본다. 요원복 입은 모습만 익숙했는데."
"적반하장이야."
한창 티격태격하던 유리가 아까 전의 그 자세로, 턱을 괴고 창 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유리의 시선 끝에는 지금 자신은 봄이다, 라고 뽐내는 듯한 하늘이 보였다. 유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아무것도 ** 않는 걸수도 있다. 그냥, 이 푸른 하늘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건 지나가듯이 말하는 유리의 말 덕택이었다.
"그래도 신서울은 봄이다."
"그러게."
"정말,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야."
둘은 한동안 그렇게 창밖을 구경했다. 유리의 말대로, 따뜻한 봄이었다.
* * *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방과 후였다. 야간 자습을 신청하지 않은 둘은,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반 아이들의 부럽다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억지로 무시했다.
"이슬비는 먼저 동아리방에 가 있는데."
"그렇구나."
세하는 슬비에게서 온 문자를 유리에게 전했다. 그렇구나, 라며 운을 뜨던 유리가 말했다.
"그런데 슬비는, 왜 세하 너한테만 문자를 보낸거야?"
"네가 워낙 덤벙거려서?"
세하의 대답에 유리는 털털하게 웃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그렇게 말할거 까지야...
운동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축구부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한켠에서 축구를 할 뿐, 하교를 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유리가 중얼거렸다.
"...왠지 쓸쓸하네."
쓸쓸하다, 라...그건 유리와 같은 풍경을 보는 세하도 똑같이 느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세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고 말았다.
"그보다 너, 선물은 많이 받았어?"
"응?!"
정말 모르는 듯 유리 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르는 거 같았다. 세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너, 오늘 생일이잖아."
5월 17일. 아니야? 세하의 말에 유리는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얻어맞은듯한 기분? 하지만 그 생각을 한 직후, 세하의 어깨로 그리 약하지 않은 주먹이 날라왔다.
"아얏...!"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슬비가 먼저 동아리방에 간 것도 생일 파티 때문인거 다 알고 있었는데...!!"
"..."
다, 알고 있었구만. 하긴, 정미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계속 끼어있었던 유리니까 모르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렇게 따지면 유리의 연기는 평균 이상이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생일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으니 연기 평가는 그냥 도루묵인걸까.
"그보다 알고 있었네."
이번에는 세하가 한방 얻어맞았다. 뭐...뭐가? 답답한 듯 유리가 대꾸했다. 내 생일 말이야.
"...이슬비가 말해서."
"왜 답변이 늦어?"
"같은 팀원 생일 기억하고 있는게 이상해?"
"그건 그렇지만..."
세하같은 애가 기억해주니, 좀 의외였단 말이야. 도대체 유리 속 자신의 이미지는 어떤 건지 심히 궁금해졌다. 뒷짐을 쥔 채 먼저 앞서가던 유리가 별안간 멈추더니 세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걸까. 그 의문은
"내 생일은 전부 다 신서울에서 보낼 수 있어서!"
아, 그런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세하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게임기를 집어 넣었다. 어차피 학교를 나선 이후부터 하지 않았던 게임기, 계속 들고 있어야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
"...세하야...?"
이렇게, 유리의 옆으로 가서 손을 잡아줘야만 할거 같았다. 아니, 해야만 했다.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두 사람의 손은 굳은살이 많이 박혀있었다. 감촉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손 너머로 오는 사람의 체온은 봄 기온과 같이 따뜻했다.
아무 말 없는 세하를 보며 유리가 풉, 웃었다. 자신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던걸까. 상황답지 않은 유리의 웃음에 세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유리는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야, 이세하...제법 하는데?"
"...뭘 제법 한다는건지."
"그냥, 혼잣말이야."
혼잣말도 그렇게 크게 하시네요...유리가 타닥, 스텝을 밟더니 세하의 오른손을 잡고 이끌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가자! 빨리 가서 모두들 놀라게 해줘야지! 오늘 서프라이즈 파티 주인공은 너거든?! 재촉하는 유리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는 세하가 뭐라고 투덜거리는게 들렸지만 유리는 무시했다. 뉴욕에서 있었을 때, 세하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그 말은, 부적과 같이 계속 마음에 품고 다녔다. 일종의 주문이었다.
-그러니까...꼭 같이 학교 가자.
꿈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세하와 같이 돌아와서 더더욱 다행이었다. 모두와 같이 돌아와서 제일로 좋았다.
5월 17일. 그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34594
http://leesehaxseoyuri.tistory.com/28
오랜만에 쓰는 해피 세유 겸, 유리 생일 축하 소설.
생일 축하해, 유리야~~!!
임본 스토리 진행한 이후로는 얘네들의 큰 생일 선물은 '일상을 살아가는 하루' 가 아닐까하고 생각이 들어서 써보았습니다.
사실 저 퀘스트 마지막 대사가 거의 사망플래그 수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