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가 슬비하고 놀러가는 이야기
흑신후나 2017-02-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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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운 겨울이 가고 꽃이 만개하는 봄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각자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속에서 봄이 왔음을 느끼고 봄의 감촉을 온몸으로 받아간다.
사람들이 가득한 신서울 거리를 난 홀로 걸었다. 봄이 앞으로 왔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겨울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꽃샘추위의 영향인건지, 거리는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큰 바구니를 들고 있는 시린 손을 잠시 비비고, 휑하니 비어서 추위를 느끼는 목을 양 소매로 부여잡으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도시에서 벗어난 어느 언덕 위의 커다란 나무 아래였다. 아직까지 꽃이 피지는 않았고 꽃망울만 맺혀있지만 조금 더 있다보면 꽃이 예쁘게 피겠지. 바구니를 나무 밑에 내려두고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음을 과시하듯 크고 단단하게 땅을 지탱하며 서 있었다.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를 만져보았다. 손에 닿는 촉감은 조금 거칠었지만 생기가 있었다.
'이곳에 벚꽃이 피면 좋을텐데..'
문득 이 나무에 내가 좋아하는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맺혀진 꽃은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그 꽃이 분홍색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녀의 머리카락 처럼 말이다.
그녀의 머리는 분홍색이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굉장히 독특하고 이질적인 머리색이지만 그녀의 머리는 이상하게도 어울렸다. 마치 활짝 핀 벚꽃과 같이.
그녀를 생각하며 다시 나무를 더 더듬어 보았다. 역시나 촉감은 거칠었다.
'벚꽃이 핀다면. 이 나무, 너하고 비슷하려나?'
생각해보면 그녀와 이 나무는 매우 닮았다. 그녀의 겉모습은 나무껍질처럼 차갑고 매서웠다. 나 또한 겉의 울퉁불퉁한 촉감에 처음 다가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겉모습이 거칠다고 마음까지 거칠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거칠고 딱딱한 껍질을 내가 깨주기를 바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 보답하듯 나는 그녀의 겉을 조금씩 깨고서 그녀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 그녀와 싸움이 없이 원만하게 다가갈순 없었다. 언제나 그녀와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로 그녀와 싸웠고, 그리고 언제나 화해하고 함께했다.
잠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점심때였다. 늦게 가는 시간이 여간 잔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와 오늘, 이곳에서 오후에 만나기로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이쁘다고 생각했다.
언제쯤이었을까? 언제부터 그녀가 이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임무에서 위험에 처한 나를 구해주었을 때? 임시본부에서 침울해져 있는 나를 위로해주었을 때? 아니면 훈련프로그램에서 같이 있었을 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어디 정신을 팔고 있어? 이세하."
정신을 차렸다. 따뜻한 촉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 검은양의 요원복을 입고서 올 줄 알았던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는 곱게 차려입고 왔다. 하늘하늘한 파란색 점박이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겉옷을 하나 더 걸쳐 입은 그녀의 모습을 나는 넋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아니.. 그냥 뭐 이것저것 생각한다고..."
변명하면서 그녀에게 둘러대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흐음....그래? "
"그..그래!"
내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걸까? 왜 그런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언덕 위 나무 아래서 돗자리를 펴고 바구니에 들어있는 음식을 그녀와 함께 먹으며 이야기 한 것이 시간의 전부였지만, 시간은 마법같이 흘러갔다.
"......."
그녀는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말문을 닫는다.
"왜 그래?"
"이뻐서..."
그녀를 따라서 위를 처다보았다.
푹. 무엇인가 얼굴 위로 가볍게 떨어졌다. 손으로 집어보니 벚꽃이였다. 벚꽃을 들고서 다시 위를 보았다.
내가 올 때까지만 해도 꽃망울만 있던 나무는 어느새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녀가 오고서 나와 그녀가 있는 사이 벚꽃이 핀 것이였다.
"벚꽃. 예쁘지 않아? 난 벚꽃이 좋더라고."
그녀는 낮은 가지의 벚꽃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어느무엇보다 예쁘게.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계기로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녀는 그녀 자체로 아름답다. 계기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또....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이슬비."
그녀가 나를 보았다. 예쁜 눈이 아름다웠다.
"아니..슬비야."
그녀의 어깨가 요동쳤다. 눈도 흔들렸다. 푸른 눈과 그녀의 작은 어깨가 아름다웠다.
"잘 들어. 한번만 말할 거니까."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흩날리는 벚꽃색 머리, 작은 얼굴, 작은 입술. 전부 아름다웠다.
"좋아해. 아주 많이."
말을 끝내고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가볍게 갖다대었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온기는 확실히 전달받은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읆조렸다.
"응....나도 많이 좋아해. 세하야."
힘차게 그녀를 껴안았다. 벚꽃잎이 흩날렸고, 넘어가는 해가 우리를 비추었다. 따뜻했다. 봄이 온 것이다.
우리들의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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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 입니다. 의외로 이런것 한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초봄이 얼마전 지나갔으니. 어서 따뜻하게 되고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벚꽃은 아침에 피지만 나무는 슬비를 상징하니까 조금 늦췄습니다.!
부족한 것 많은 글쟁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