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 마지막에 그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1
PMARIA 2017-01-02 0
그의 주부생활은 고달프다 - SE
12월 25일 일요일. 크리스마스.
팀원들과 한집에서 지내기를 약 반년이 지났다.
여차저차 시끌벅적하게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찾아온다. 팀원들과 함께 맞는 첫 크리스마스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든 무슨 날이든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초,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도, 학교나 유니온 시설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 집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날, 이런 의미밖에 없는 날에 불과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클로저가 되어서도 여전히 내게는 게임 이벤트가 추가되는, 아이템의 드랍률이 높아지는 날, 여느 때보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러운, 그런 휴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석봉이와 함께 밤새도록 레이드 뛰는 날이지.
밖으로 나가봤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끊임없는 교통 체증과 이른바 리얼충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서로 연인을 데리고 길거리에서 꺄꺄호호 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막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
게다가,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정말 그 말대로라고 생각한다. 이런 날에 한해서 꼭 사건사고가 많아지니까. 그런 일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그러니 밖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집 안에서 따뜻한 마실 것이나 마시면서 자신의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것이 이롭겠지.
그것이 독서든, 음악 감상이든, 게임이든, 추운 날에 밖에 나가지 않고, 따뜻한 집 안에 누워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집 안에 있으면서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을 보내겠다고 꿈 속에서 다짐하고 있는 나를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현실로 되돌렸다.
띠리링-, 띠리링-
베개를 뒤집어쓰고 귀를 막으며, 아직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책상에 올려져 있는 시계를 바라본다. 나타나 있는 시간은 아침 11시 30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창문을 통해 따스하다 못해 따가운 햇살이 눈가로 내리쬔다. ……무시하고 잠을 다시 자기에는 글렀군.
「……이런 아침부터 누구야 진짜.」
잠을 포기하고,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오는 누군가에게 불평을 퍼부으며, 아까부터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에 손을 향하고 귀에 가져가 댄다.
「……여보세요.」
『뭐야? 아직도 안 일어났던 거야?』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혹여 다를까 귀에서 떼고 화면을 바라본다. 나타나 있는 이름은 「이슬비」. 확인을 마치고 다시 귀에 가져간다.
「야, 오늘 같은 휴일에 늦잠 좀 자면 뭐 어때서 그래.」
『넌 휴일만 되면 늦잠만 자는 게 아니라 그 상태로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잖아. 이 방구석 폐인아.』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여태까지 못 하고 쌓인 게임들만 몇 개인데. 그리고 집 안에만 있는 게 뭐 어때서!
평일에 열심히 집안일 하는 주부가 휴일에 좀 쉬겠다는데.
「알면 좀 냅둬.」
『됐으니까, 지금부터 말하는 장소에 2시까지 와.』
「……뭐? 아니, 야! 난 오늘 집 안에서만 있을 거라니까!?」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게다가 날 불러서 뭐하려고? 짐꾼이라도 시킬 셈이냐?
『세하 너, 유리한테 못 들었어?』
「뭘?」
『오늘 저녁에 크리스마스 파티한다는 거.』
「……금시초문인데.」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까 됐어.』
「아니아니아니, 전혀 안 됐거든? 막 일어난 터라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고.」
『어서 준비해서 나오기나 해.』
「……그전에 한 가지 물어보자. 그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거, 어디서 하는 건데?」
『어디겠어? 당연히 우리들 집이지.』
뭐가 당연하다는 거야. 그걸 다 누가 치우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내기해도 좋은데 유리 녀석은 파티 끝나고 곧바로 곯아떨어져서 정리하는 건 내 몫이 될걸.
「휴일에 쉴 생각이었는데 이런 휴일까지 집안일을 하게 할 셈이냐? 악마냐고 너희들은.」
『더한 것도 될 수 있는데?』
……말을 말자.
× × ×
감고 있는 눈을 뜨고,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밖으로 꺼낸다. 화면에 나타나 있는 시간을 바라보고 그녀와의 약속 시간이 된 것을 확인한다.
그녀가 아직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헤드폰을 꺼내 스마트폰에 연결한 뒤 귀를 덮는다. 살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그에 관련된 장식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목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목에 두른 머플러를 조금 올린다. 매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이 시기가 되면 역시 피부에 맞닿는 공기는 한층 더 차갑다.
귀에 덮힌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약 20분 정도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더니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얘 왜 안 와? 나 낚인 거야? 이대로 안 오면 나 동사하거든?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추위에 몸을 살짝 떨고 있자,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
「……느, 늦어서 미안.」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따뜻한 봄을 연상시키는 듯한 벚꽃색 머리카락의 소녀, 슬비가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녀의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설경에도 지지 않을 만큼 태양 빛을 연주한다. 서둘러 뛰어와서 그런 것인지 그녀의 뺨은 근처에 세워져 있는 루돌프 장식의 코처럼 붉어져 있었다.
「…….」
평소 그녀의 헤어스타일인 원 사이드 업과 달리 깔끔하게 펴서 청순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주는 벚꽃색 세미롱에 바다를 연상시키는 맑은 파란색 눈동자. 옆에 조그만 검은 리본이 달려있는 회색 베레모에 겉에 걸친 베이지색 코트, 추위를 잘 타는 그녀의 목 언저리에는 친구인 유리가 전에 선물해준 청록색 머플러가 둘러져 있었다.
치맛자락이 짧은 새하얀 눈색의 스커트에서 술술 뻗어 나온 다리는 검은 레깅스에 싸여있다. 키 높은 갈색 가죽 부츠는 키가 작은 것이 컴플렉스인 그녀가 골랐을 법했다. 평소 그녀의 이미지보다는 조금 기합이 들어가 있는 듯한 복장이었다.
신선한 모습의 그녀를 약속 시간에 늦은 것에 대한 불만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자, 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사과를 한다. 그 모습에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고, 귀에 덮은 헤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보통 불러낸 사람이 약속 시간에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미안해. 돌아다니다가 유리랑 정미와 마주쳤는데 그대로 끌려다녔더니 늦었어…….」
끝에 말을 흐리고는 피곤에 찌든 듯한 얼굴로, '……게다가 어느샌가 처음에 나왔을 때 입고 있었던 옷들도 유리 손에 들려있었고.'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딱히 화난 거 아니다.」
약간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지.
근데 사람을 불러내 놓고 돌아다니기도 전에 지쳐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나 코앞에 있으면 작게 말해도 들리거든? 일단 굿잡이다 서유리!
「……어, 어쨌든 늦어서 미안해.」
「됐어. 어차피 그렇게 오래는 안 기다렸으니까. 저쪽 벤치에 앉아서 조금 쉬었다가 가자.」
서둘러 뛰어온 것과 유리와 정미에게 끌려다닌 탓에 지친 그녀에게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를 권하고,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뽑아 그녀에게 건냈다.
딸깍.
경쾌한 소리를 내며 손에 들린 캔커피에서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얼음장 같이 차가워진 손을 캔커피의 온기로 녹이며 목으로는 액체를 넘긴다.
슬쩍 시선을 그녀 쪽으로 돌리자, 눈을 감고서 캔커피를 뺨에 가져다 대고 포근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나 추웠냐.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고, 나도 손에 들려있는 커피를 홀짝인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를 약 5분. ……진짜 어색해 죽겠네.
그녀와 단 둘이 있게 됐던 일이야 여러번 있었지만, 나야 나대로 게임이나 했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보고서나 공부를 하기 바빴기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가 않는 한 대화가 오고 갈 리 만무했다.
그랬던 그녀와 내가, 이렇게 사복 차림으로 휴일에 단 둘이서 만났던 경우는 없었기에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살펴보기 위해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슬쩍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던 그녀의 눈과 마주쳐, 급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뭐야, 뭐냐고! 왜 쳐다보고 있던 건데! 불러냈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라 좀!
그렇게 약간의 침묵이 계속되고…… 결국, 입을 먼저 뗀 것은 내 쪽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파티 때 먹을 음식 말고 뭔가 더 준비할 게 있는 거야?」
내가 입을 떼자, 그녀는 손에 쥐고 있는 빈 캔에 향하던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정말 유리한테서 아무 말도 못 들었나 보네.」
「그렇다고 말했잖냐. 애초에 난 파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금시초문이라고. 그것도 유리 본인한테 들은 것도 아니라 너한테 들은 거지만.」
나보고 요리 만들라고 할 거면 미리 말을 하든가. 그래야 장을 볼 거 아니냐고.
「근데 미리 말했으면 넌 죽어라 반대했을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서 유리는 당일까지 말 안 했던 것 같은데?」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아냐? 미리 말해두고 반대당했었으면, '세하 엄마가 또 투덜거려-' 라고 하면서 나한테 매달리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누가 엄마라는 거야? 어찌 됐든, 장담해도 좋은데 그 녀석 분명히 말하는 거 깜박했을걸. 지금도 잊은 채로 정미랑 쇼핑 삼매경일 거다.」
「…….」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와 그녀는 지금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쇼핑을 즐기고 있을 바보 소녀를 생각하며, 시선을 허공에 향하고 조용히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댔다.
× × ×
쇼핑몰 안으로 들어와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 지각 소녀와의 쇼핑을 개시했다.
밖과 마찬가지로 쇼핑몰 안은 인파로 숨이 막혀올 정도였다. 옆을 슬쩍 보니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에 그늘이 지어 있었다. 임무라면 모를까, 이런 사적인 일로 사람이 많은 곳에 올 일이 그다지 없었던 탓이겠지.
생각하고 있던 걸 그대로 말했다가는, 이 지각 소녀에게 '네가 남 말 할 처지야? 너도 게임 페인이면서 뭘 그래?' 같은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 다물고 있겠지만.
「사야 할 것만 빨리 사고 나가자. 속이 다 울렁거리네.」
클뽕이 사라져서 쓸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보라 짱 때문에 클뽕이 솟아오르네요.
그래도 그다지 늘어난 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