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갤문학)깡통의 밤 01,02화

갓클린 2016-09-27 0


「야 꼰대.」
「응, 무슨 일이지?너 치곤 드물게 쇼그까지 데리고 오고.」

쇼그와 나타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은 함선 위의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쇼그에 의해 강제방출될 뻔한 일도 여러번이었다. 그런 둘이 늦은 저녁 함장실을 찾았다.

「아니 이 깡통로봇이...」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합니다. 대원님.」
「시끄러! 이녀석이 내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니까?」
「흠.. 쇼그, 사실인가?」
「전제가 빠져있는 말입니다. 오늘은 정기 함선 내부 청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차원종에 의해 오염된 함실을 찾았고, 전 그 함실을 폐쇄한 후 소독했을 뿐입니다.」
「소독 수준이 아니야!」

나타가 발끈하면서 말했다.

「침대며 책상이며 의자며 내 쿠크리 빼고 다 녹아버렸다니까? 내가 잠시 나갔다 와서 다행이지, 만약에 자고있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음... 효과적으로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인식된 사물 외 제거기능을 사용했는데, 확실히 생명체 인지 기능을 추가해야 겠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진짜 죽을뻔했다는 말이잖아! 이 살인깡통아!」
「그보다 차원종 오염이라는 건 어떻게 된 거지?」
「그건 제가 설명하죠.」

뒤에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든 이는 유니온의 기술지원 팀장 정도연이었다. 비록 현장에 나가는 일은 적지만, 후방에서 여러 실험과 장비의 지원을 돕는 일을 하고있는 그녀다. 그녀 역시 검은양팀과 늑대개팀의 지원을 위해 함선에 탄 이들 중 한명이다.

「나타대원님의 쿠크리를 조사해본 결과 세균 형태의 차원종 시체를 발견했어요. 자세한건 조사 중이지만, 아무래도 조사가 끝나려면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맞아, 저 여자까지 내 방에서 뭘 조사한다 그런다구!」
「정도연 팀장, 밤 늦게까지 고생이군. 그럼 폐쇄조치를 해야겠다는 건가?」
「아뇨, 이 세균형 차원종의 경우 소독에 의해 이미 활동을 멈췄어요. 폐쇄까진 필요 없을 것 같군요. 다만 연구차원에서 하루 정도는 저희가 담당하고 싶군요.」
「내 말은 안중에도 없구만...」

실제로 나타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던 모양인지, 그를 제외한 셋은 새 차원종과 방역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리고 티나가 그들을 찾아온 것도 그쯤이었다.

「트레이너, 오늘 전투의 시뮬레이션을 다운로드 받으러 왔다. 그런데 어쩐지 많이 시끄럽군.」
「마침 잘왔다 티나. 분명 오늘 나타와 함께 작전을 나갔었지? 혹시 총기나 무기에 이물질 같은 건 없었나?」
「그럴 일은 없을거다. 내가 소환한 무기들은 형태 그대로 다시 돌아갈 뿐 아니라 실제 들고다니는 간이 무기류들도 돌아가기 전 자체 소독을 한다.」
「자체 소독이라.. 나타, 너도 배워두는 게 좋겠군. 그래야 다음에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테니.」
「소독이 중요한게 아니라구! 당장 잘 방이 없단 말이야!」
「그거라면 내 방은 어떤가? 허락하겠다.」
「뭐,뭐..뭐? 깡통 방에?」
「그렇다. 어차피 난 냉각을 위한 냉장고가 필요할 뿐 방은 쓰지 않는 상태다.」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군. 안 그래도 당장 침대나 가구들을 준비하기는 힘들다. 티나의 함실에 그것들이 있으니 며칠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따라와라 나타.」
「야, 이렇게 갑자기?」

이미 티나는 저만치 앞서 걷고있었다. 나타도 재빨리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티나의 함실은 조금 더 먼, 대원 함실 중 가장 끝 자리에 있었다. 사실 지침을 모르는 티나가 다른 대원들에게 나름 배려한 것이었지만 나타가 그것을 알 리는 없었다.


「왜 이렇게 멀어 헉헉... 여기야?」
「그렇다. 누추하지만 잘 지내길 바란다.」
「그런말은 대체 어디서 들은거냐... 그런데 전등은 어디서 켜?」
「응? 그런게 필요한가? 켜본 적이 없다.」
「당연하지 멍, 아니 깡통로봇아! 네 눈은 어떨지 몰라도 난 어두운데서 아무것도 안보인다구!」
「알겠다. 하지만 사실 나도 어둠속을 잘 보진 못한다. 다만 항상 같은 동선을 움직여서 필요없을 뿐... 이것인 것 같군.」


하고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나타는 으악 소리를 내며 본능적으로 눈을 가렸고, 티나는 가만히 서서 그런 나타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따라한다. 아쉽게도 나타는 그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아무런 인테리어가 되지 않은 흰 방, 방에 있는 건 오직 흰 침대와 흰 냉장고 뿐이다. 침대 역시 잘 개어진 상태인 걸 보아 한번도 눕지 않은 것 같다.

「...뭐, 내방보다 더 넓은 거 같네.」
「내가 알기론 이 함실과 너의 함실간 크기의 차이는 없는
.」
「아,알았어. 하여간 깡통들은 재미 없다니깐... 저 냉장고가 네가 자는 데야?」

나타가 작은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맥주 서너개 들어갈 것 같은 아담한 냉장고다.

「그렇다. 그렇다면 저 침대가 네가 자는 데군」

티나가 나타의 행동을 흉내내듯이 침대를 가리킨다. 티나가 머릿속 교관을 따르기로 한 뒤부터 이런 행동이 부쩍 늘었다. 나타는 유치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우선은 귀찮은지 뭐라 하진 않는다.

「푸...그렇군. 내가 자는 침대지... 근데 로봇도 잠은 자는거야? 네가 자면 쇼그도 자나?」
「쇼그도 잠을 자는지, 잔다고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휴식을 겸하는 것은 맞다. AI의 주 코어는 식히고 소모하는 에너지와 몸이 내는 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서브코어에서는 당일의 전투현장 등을 재구현시켜 모의전투를 실행한다. 아까 트레이너를 찾아갔던 이유도 다른 전투들을 다운로드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있다가 다시 찾아가는거야?」
「아니,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군. 오늘은 너와 진행했던 임무장소를 구현시킨 후 합동 가능성을 알아보겠다. 내일이면 여러 합동기술들을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외부자극이 있거나 트레이너의 호출이 있기 전까진 깨지 않으므로 날 깨우려면 냉장고 문을 열어라.」
「알았어..」

나타는'괜히 미안할 뻔 했네' 라 생각한 후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뻗듯이 누워버린다.

「그럼 불은 네가 꺼줘. 피곤하단 말이야.」
「알겠다. 좋은 꿈꿔라.」

딸깍 핏...

마지막으로 저건 또 어디서 배운 말일까 생각하며 잠에 드는 나타. 그리고...

부스럭 부스럭
나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몇시간 **도 못하고 다시 깨버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냉장고 앞 책상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티나 너냐?? 깡통이 몽유병도..」

그러다 문득 티나가 했던 아까의 말이 떠올랐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까진 깨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 한밤중에 꼰대가 깨울리도 없고)
자신의 쿠크리를 쥐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방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멍청이! 어떻게 해야되지... 우선 방에서 튀자. 튄 후에 뭐라도 갔고오는 거야.)
그리고 나타는 문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기억해둔 뒤, 아까 확인해둔 전등 스위치를 확 켰다!

딸깍 ...핏
탓탓탓

「앗, 눈부셔!」
「응, 깡통?」

반쯤 눈을 감고 문으로 달려가던 나타는, 티나의 목소리에 우선 행동을 멈추고 돌아봤다. 그곳에는, 엉거주춤 냉장고에서 나오고 있는 티나의 모습이 있었다.

「아아, 깼어요? 몰래 나가려고 했는데, 헤헤.」
「너..너였어? 근데 내가 알고있던 티나가...」
(아닌데...)

나타가 아는 티나는, 우선 엉거주춤 냉장고에서 나오지도 않지만(보통은 구른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는 로봇이 아니었다. 

「그게... 사실은 제가 그 교관이에요.」
「......뭐?」
「제가 티나의 교관... 아니 티나 몸의 원래 주인, 티나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렇게 원래 티나라면 하지 않았을 악수를 건너는 티나. 나타는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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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자연스러움을 위해 나타 1인칭으로 바꿔봄.


우선 악수하자는 거겠지? 

손은 얼음장처럼 한기가 새 나가고 있었지만, 그 행동은 지금까지 본 깡통의 모습 중 가장 인간스러웠다.

아니... 역시 무리였다. 난 손이 닿자마자 그 차가움에 바로 손을 떼버렸고, 깡통 역시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아직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아, 됐고...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아는 깡통은 이런 말투를 쓰지 않는데?

「네 저도 뭐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요. 우선 티나라고 합니다. 이 머릿속에 있다가 지금 나왔어요.


깡통이 원래 사람이었고, 그중 죽은 사람의 뇌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다.


「뭐야, 그럼 그렇게 말을 잘하는데 우릴 지금까지 로봇이라고 속여왔던 거야?

「아뇨, 절대 아니에요! 원래 티나가 잠을 잘 때만 깨어있고 최근 이 냉장고에서 눈만...


우드드득

아마 한팔로 냉장고 문을 열다 아예 문짝을 뜯어내버린 것 같다.

앗...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하하...

깡통이 웃음으로 넘어가려 하고있다. 악수하지 않은게 다행이군...


「아무튼 눈만 깜빡이는 정도였는데 몸을 움직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하면서 팔을 흔들어보는 깡통. 문짝은 아직 들고 있는 채다. 

무섭다구


「아무튼 오늘 일은 모두에게 비밀이에요, 티나한테도요! 그럼, 티나를 잘 부탁합니다.

「야야, 잠깐만! 어딜 가려는거야?

「네? 저는 말하자면 꿈 같은 존재에요. 티나가 깨기 전에 이제 돌아가야죠.


라고 하면서 깡통은 다시 쭈그려 앉아 냉장고에 몸을 끼우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너에 대해 잘 모른다고! 그런데 날 끌여들여 놓고 이렇게 책임없이 혼자 빼기야?

「그럼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선... 아까 말한 교관이라는 게 뭔데?

「그건 저의, 아니 티나의 명령권자를 부르는 명칭이에요. 신서울에 왔을 땐 트레이너씨를, 그후 홍시영씨, 지금은 머릿속의 저를 교관으로 칭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교관이라는 것도 제가 8년 전 죽기 직전까지 트레이너씨를 교관님으로 부르던 것에서 왔지만요.

「트레이너가 네 교관이었다고?

「네. 그것에 대해 얘기하면 긴데...


깡통, 그녀가 말해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8년 전, 아직은 미숙한 견습 클로저였던 그녀와 역시 미숙한 교관이었던 꼰대(트레이너). 그녀는 훈련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인간형 차원종의 습격에 무리한 작전을 수행하다 죽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망가졌고, 교관은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한 과학자에 의해 로봇의 형태로 되살아나긴 했지만 그 몸에 그녀는 없었고, 그것마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악령"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그녀를 구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트레이너였다. 그 후의 행적은 나와 비슷했고, 최근 감정 역류장치를 제거하여 감정과 기억을 깡통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알던 깡통과 지금 내 앞애 있는 깡통의 차이는 뭘까? 기억, 감정 모두 같다면, 무슨 차이가 같은 깡통을 이렇게 달라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재미 없는 이야기였죠?

「...그렇네.


난 깡통의 손을 잡아 끌어 일으켜 세웠다.

더럽게 무겁네.


「나가자.

「네?

「못들었어? 나가자구. 돌아가기 전에 재밌는거 하고 가야할 꺼 아니야?

「그래도...

「먹고싶은거, 하고 싶은거 없어?

「...라면

「뭐라구?

라면 먹으러 가요. 저 그거 먹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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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1: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