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인간실격

신차원의이슬비 2016-03-25 0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첫번째 수기를 시작하는 말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다.


나는 타고난 익살 따위 없고, 연예고 부잣집이고 그런 것도, 형도 없는 사람이라서 요조와 동떨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나도 요조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말한 것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이것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나는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수치스럽다는 감정과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심지어 상관마저 살해하고도 여전히 끝없이 칼질을 해대야 하는가?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인생 자체가 수치인 걸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벽들 뿐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었다

저 꼰대마저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게 자꾸 두려움이다.

두렵다. 나는 내 진짜 이름을 전혀 모른다. 그저 피실험체 13호였던가. 그 이후에 인식명 나타. 부모님의 성마저 모른다. 부모도 모르고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사람을 모른다


"연기는 나날이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내 연기는 광견이다. 가장 미/친 놈처럼 구는 것이다. 왜냐? 그래야 산다. 광견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님을 내가 안다. 광견,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막이자 가면이었지만, 그것이 날 계속 갉아먹고 있다. 나는 두렵다. 나에게 "나의 것"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물건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도 말하는 것이다. 내 영혼도, 감정도, 나의 것인가? 내 연기는 나인 걸까?


"내가 삶이라는 것의 밖에 있어도, 그저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소위 그들의 생활이라는 것밖에 있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꼰대들을 웃겨야 산다. 꼰대들을 웃기기 위해선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수많은 앞의 "벽"들을 또 죽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만약 내가 죽는다더라도 그저 피실험체의 죽음일 뿐이겠지.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그러다보니 나는 남들에겐 존재하나마나한, 그러나 확실히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무다, 바람이다, 허공이다"


내가 없어진다 해도 걱정할 놈 없다. 그저 상대가 줄었다고 기뻐할 또 다른 피실험체들, 그리고 아무 신경 안 쓸 꼰대들, 그 두 부류 뿐이다.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지나간다는 것, 그것이 소위 인간 세계에서, 단 하나 같이 깨달은 진리는, 그것뿐입니다"


그렇다. 나는 행복도, 불행도 느낄 수가 없는 인간이다. 감정이라는 것, 그것을 느끼면 온갖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러면 나는 죽는다. 상대의 죽음에 슬퍼하기 시작하면 죽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 불행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저 지나가길 바라며 또 하루를 살아왔다. 그것이 나의 진리이다. 오늘 하루도 그저 지나갈 뿐이다.



2024-10-24 23:00:1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