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클로저스 1편

중게 2015-08-09 0

0.

 

나는 약하다. 훈련소에서도 클로저가 되고나서도 계속 속으로 되새기고 있던 생각이었다.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팀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 때문에 팀의 클로저가 죽을 뻔한 사건도 있었다. 유니온에서 우리 팀을 배정받은 관리요원도 내게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작전 중에 큰 실수를 해도, 크게 다쳐도 그녀는 힐난하는 말 한마디 없이 별 관심 없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는 했었다.

 

임무 수고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묻어나왔다. 그리고는 무관심한 눈동자를 내게서 손에 든 태블릿으로 옮겼다. 나를 이미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태블릿에서 바삐 움직였다. 곧 다음 작전 내용을 브리핑 할 것이다. 괜히 상처투성이인 어깨가 욱신거렸다.

 

, 뭘 그리 시무룩하고 있어?”

 

굵은 목소리와 함께 같은 팀인 민정의 팔이 뱀처럼 목을 휘감았다. 팔을 뒤덮은 긴 상처에 눈을 살짝 돌려버렸다. 전에 있던 작전에서 실수한 나를 도우려다 입은 상처였다.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었지만, 그게 쉬운 일이란 말인가. 죄책감과 역겨움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팀에 별 문제는 없다. 팀워크나 전력의 문제도 없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존재다. 나는 약했다. 싸움 센스는커녕 스캐빈저 한 마리 잡는 것도 힘겨웠다. 애초에 나는 훈련받은 군인도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다. 클로저 요원이 된 것도 전부 위상력 때문이었다.

 

그 위상력만 없었다면 위험한 전장에서 싸우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위상력만 없었다면. 위상력이 개방한 결정적인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이었다. 길가를 지나던 도중 갑작스럽게 위상력을 각성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유니온의 사람 말로는 특이케이스라던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클로저 특수 양성 시설 [아카데미]. 나는 아카데미에 다니지 않고 기본 훈련만을 마치고 클로저 요원이 되었다. 내 의지가 아닌 유니온의 의지로. 공무원이라 인생 피었다고 하지만 좋아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당장 내 목숨이 위험한데 어쩌라는 말인가.

 

그런 적 없어. 브리핑에 집중해.”

미안.”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에 괜스레 까칠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는 내 행동에 멋쩍게 팔을 치웠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는 나를 위로해주려고 먼저 다가온 것이다. 차원종에게서 나를 보호해주려다 대신 상처 입기까지 했다. 얼른 입을 열어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이 한마디를 말하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인가. 생명의 은인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준 동료에게. 이빨이 서로 부딪히며 딱 소리를 낸다. 부끄러움과 모멸감에 자살 충동까지 느껴버린다. 그런 와중 듣기 좋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와 몸이 움찔한다.

 

참 한심해라.”

 

나에게 하는 말일까.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끼기긱 소리가 나도록 돌려본다. 팀원의 여성 클로저중 한명인 리로가 추궁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발자국 움직이자 새까만 머리카락이 마치 춤을 추듯 살랑살랑 흔들렸다. 내 앞까지 걸어온 리로는 대놓고 나를 욕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추궁했을 뿐이다.

 

어쩜 그리 뻔뻔할 수가 있니? 너를 구해준 친구에게 그것밖에 말 못하는 거야?”

 

그녀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날카로운 창에 박힌 것처럼 미안함에 가슴이 아파온다. 그러나 입은 솔직하지 못했다. 원하지 않는 말이 튀어나와 그녀에게 화풀이 하듯 소리친다.

 

친구? 웃기지마. 나는 도와달라는 말 따위 한마디도 한적 없어!”

너 참 최악이구나.”

 

최악이다.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책하고 차갑게 대답한다.

 

, . 얘들아, 진정해! 나는 괜찮다니까!”

너는 저 말을 듣고도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거야?”

 

보다 못한 민정이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고는 거리를 벌리게 했다. 태블릿을 건드리던 관리요원도 무덤덤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인물이 아닌 나를. 팀의 트러블 메이커는 오직 나밖에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무슨 일 있나요? 서로 싸우지 말아주세요. 같은 팀원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말투는 상냥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같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또 무슨 사고 쳤니?”

 

그녀의 만류에 리로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화난 듯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마주 노려보고 싶었지만 내게 그럴 권리는 있는 걸까. 결국 시선은 마주치지 못하고 흐지부지 내려가고 만다. 상황이 정리되자 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2024-10-24 22:37: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