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플레인의 수문장 - 下

브로유리 2015-07-30 2

 용은 죽었다. 인간들 따위에 당할 용이 아니었다. 몇 번인가 쳐들어온 침략자들은 용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도 못했다. 용에게 있어 그들은 죽일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였고,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고 돌아갔다.


 분명 그랬건만, 그들을 살려 보내 인간들에게 더욱 큰 절망을 심어주고자 했건만.


 용은 자신의 힘을 과신했다.

 그럴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으나, 그 정도가 과했다.

 적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기를 수차례.


 전쟁을 치루기에 그는 너무나도 고결했고, 오만했고, 권위적이었다.


 다른 군단의 참모장의 농간으로 인간들은 ‘그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용은 자멸을 각오한 인간들의 공격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수문장은 괴로워했다. 나는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용을, 이 영지를, 이 군단을 지키겠노라고 용에게 맹세하였건만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용은 끝까지 침략자들의 앞에서 처참히 무너진 자신을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들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수문장은 그저 영토와 군단을 지켜달라는 말만 남기었을 뿐. 확실히 침략자는 강했다. 그렇기에 수문장은 용의 지시에 따라 몸을 추스르며 영지를 지키고 있었다. 무리하게 침략자와 맞서 싸우다 죽어 영토에 손상을 입히느니, 그들은 용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다. 실제로도 자신을 쓰러트린 인간들은 용에게는 꼼짝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으니까. 용의 위광을 두려워하며, 공포에 질려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바로잡아 달아나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판단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그들을 처치해야만 했다. 그들이 용이 있는 곳으로 보내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용을 지킨다는 본분을 지켰어야 했다. 용은 강한 분이시니까, 용께서 그리 명하셨으니까.

 하다못해 용에게 그들을 죽일 것을 간청했어야 했는데, 하고 수문장은 후회했다. 그들은 용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충분히 강했으니까. 전쟁에 있어 충분히 위협적인 요인이었으니까. 용이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을 했더라도,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만큼은 용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수문장은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전력을 다해야하는 전쟁이었다. 목숨을 걸고 사명을 지켜야하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용의 죽음과 군단의 괴멸. 수문장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용의 군단은 패퇴했고, 용의 자리는 텅 빈 채였다. 그나마 인간들이 데미플레인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닌 차원문을 닫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영토를 못 쓰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수문장은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새로운 용의 재림을 기다리며, 조용히 힘을 길렀다. 또한 그는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굴욕을 겪지 않으리라고. 반드시, 반드시 새로운 용을 보좌하여 군단에게 옛 위광을 되찾겠노라고.




 “용으로 **하면 ‘면류관’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거늘…. 인간의 기술력은 이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아니면, 이 몸의 힘이 부족하단 말인가….”

 “…용이시여….”


 얼마 지나지 않아 군단은 새로운 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문장이, 군단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인간 쪽에서 차원문을 열어 인간계에서 살아남은 뱀을 보낸 것이다. 그 뱀은 궁전의 선택을 받고 용으로 **했다. 그러나 용의 상태가 이상했다. 항상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힘을 불안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용의 말에 따르면, 간악한 인간 때문에 머리에 ‘면류관’이라는 장치가 심어져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이 용의 군단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병기로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용의 위광이…, 군단의 위광이… 이렇게나 떨어질 줄이야…. 다 이 몸의 부덕이니라….”

 “당치도 않습니다. 선대의 용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이 수문장의 책임입니다. 책망은 이 수문장이 다 받겠습니다. 용께서는 힘을 추스르는 데에 전념해주십시오.”


 수문장은 애써 용을 위로했다. 입에 발린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수문장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수문장에게 용을 책망할 자격 따윈 없었다. 위치도 위치이거니와, 수문장 역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용을 죽게 하지 않았는가. 수문장의 말에 용은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면류관’에 의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탄식을 흘리고, 용은 수문장에게 물었다.


 “그대는 선대 용의 심복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수문장은 그저 용을 따를 뿐. 심복이라 여겨주신다면, 그 이상의 영광은 없습니다.”

 “그렇군…. 과연 듣던 대로다.”


 용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이 몸 역시 그대를 심복이라고 믿고 묻겠다. 나는… 과연 용으로서 적합한 자인가? 수많은 용을 옆에서 받들어온 그대이기에 묻는 말이다. 나는… 선대 용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인가?”


 용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용이 된 과정이,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보인 탓일 것이다.


 “이 몸도 뱀일 때, 여느 뱀들처럼 용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용을 꺾고 올라서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용에게 충성을 바치며, 언젠가 때가 되면 용으로 **하겠다는… 그런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을 펼치기도 전에… 이 몸은 용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인간들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 정정당당하게 싸운 결과였다. 그러나 용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불충과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이 몸은 후회 없이 싸웠음에도 절망하고 있었다….”


 용은 여기서 몸을 한 번 가늘게 떨었다. 그에게 있어, 이때가 굴욕스러운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몸은 어떤 인간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적인 인간이 순수한 의도에서 이 몸을 구해주는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용을 끝까지 보필하기 위해서, 이 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몸은 인간들의 손을 빌리는 굴욕을 인내해가면서 살아남았다. …차라리 그 때 죽었어야 했거늘…. 선대 용이 이 몸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들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몸은 살아남았다.”


 그는 뱀들 중에서도 용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뱀이었다. 선대 용은 그가 충성스러운 뱀이었다는 것은 알았다. 허나 본인의 선례도 있을뿐더러, 자신의 방침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그를 멀리하고 죽이려 했다. 물론 그가 충성스러운 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대 용은 차마 직접 죽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위험한 임무를 내렸고 그를 죽이기 위한 부대를 보냈다. 그것은 선대 용이 ‘죽여야만 하는 충신’에게 베푸는 최대한의 자비였다.


 “이 몸을 없애려고 보낸 형제들은 인간들이 처리해주었다. 이를 보면서 이들에게 속셈이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았음에도, 이 몸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선대 용의 계획이 실패했고, 그 분이 군단의 참모장의 농간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강하던 분이 쓰러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했지만, 이 몸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용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뒤이어 용의 군단이 거의 궤멸했다는 소리까지. 이 몸은 좌절했다. 충성을 바쳐야할 용은 돌아가셨고, 군단은 몰락할 대로 몰락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웃기게도 인간들 중에서는 이상한 녀석들이 있었다. 그 자들은 이 몸에게 자신의 부대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이 몸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인간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로 하자니 이상한 이야기로구나.

 아무튼 차원문도 닫혀 군단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참모장에 의해 군단이 궤멸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 몸은 그들에게 맞서 싸우는 것이 돌아가신 용의 원수를 갚는 것이라 믿으며 그 처분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인간끼리의 싸움에서 그 이상한 녀석들이 밀려났고, 간사한 인간 여자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그 여자는 이 몸에게 심어놓은 ‘면류관’으로 이 몸에게 복종을 강요했다. 한심하게도… 이 몸은 이 장치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여자의 말에 따르게 되었다….”


 용의 목소리에는 점점 분노와 서글픔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결과가 인간들의 꼭두각시라니. 자신에게 굴욕을 준 인간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수치심이 이야기를 할수록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이 몸은 인간 세상에서 한 차례의 **를 겪었다. 용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증거였건만, 이 몸은 기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이 몸은 그들의 계획을 모두 알게 되었고, 이 몸이 그들에 꼭두각시에 지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몸은… 용이 되겠다는 꿈도 잃게 되었다. 살 의미를 찾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사는 한심한 존재가 되었지….

 그런 이 몸에게 끊임없이 소리치는 인간이 있었다. 무기력한 이 몸을 비난하며 자유를 위해서 발버둥 치라고, 망할 여자에게 굴복하지마라고 외쳤지.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야 이 몸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인간에게 또 도움을 받게 된 것이지….”


 그 말을 하면서 용은 사뭇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자신과 티격태격 하던 사이였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서로를 아니꼽게 보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들 사이에 본인들도 모르는 일종의 ‘결속’같은 것이 생겼다는 생각이 용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기묘한 관계. 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 몸은 결심했다. 용이 되겠다. 용이 되어서 이 ‘면류관’을 이겨내고 복수하겠다. 그 결심 하나로 인간들이 열어놓은 차원문을 통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다시피, 궁전의 선택을 받고 용이 되었지. 그러나 역시 보다시피, 이 몸은 여전히 ‘면류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용의 이야기는 길었다. 그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도 했지만, 이렇게 인간이 아닌 자신의 동족과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 동족과 마주보는 것 자체가 실로 오랜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족을 만난 반가움, 동시에 힘없는 지도자로서의 미안함 등등이 용의 말에서 묻어나왔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용은 수문장에게 물었다.


 “…이거 이야기가 길었군. 이 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몸은 인간들에게 한 번 당하고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던 뱀이었다. 그리고 구차하게 인간들의 손을 빌리며, 인간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남았지만, 결국 꼭두각시가 되었고 용으로 **하고 나서도 여전히 꼭두각시인 채 그대로다…. 이렇게 한심하고 혈족의 수치가 되는 용이 바로 이 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몸이… 이 몸이 용이 될 자격이 있는가? 이 몸이… 선대 용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이 될 수 있겠는가?”


 기나긴 이야기 끝에 날아온 질문. 그 질문에 수문장은 생각에 잠겼다. 용은 수문장이 생각을 마칠 때까지 인내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수문장은 입을 열었다.


 “분명 선대의 용들과 비교하면, 용께서는 비참할 정도로 굴욕적인 용이십니다. 인간들의 손에 의해 목숨을 구했고, 도움을 받았고, 정신을 차리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간의 꼭두각시이십니다.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 용은 용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었다. 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수긍했다. 그러나 수문장의 대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용께서는 이 군단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으셨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군단을 이끌고자, 우리 혈족에게 굴욕을 안겨준 인간들에게 복수하시고자 용기를 내어 이곳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궁전에게 선택받으셨습니다. 또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군단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굴욕과 수치심을 견디며 군단을 위하시는 용기를 가진 용은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뱀들도 당신을 믿고 따르며 군단이 다시 옛 위광을 찾을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께서는 용이 되기에, 선대 용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이 되기에 충분한 용이십니다.”


 수문장을 용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청했다.


 “용이시여…! 부디, 부디 이 군단을 이끌어주십시오…!”


 자칫, 아첨으로 들릴 수 있는 이야기다. 용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군단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잡기 위한 간신배의 수작으로도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수문장은 결코 그런 소인배의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이 충직하고 믿음직한 수문장의 말이 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용은 수문장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대의 말에 감사를 표하는 바다. 이 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 ‘면류관’을 이겨내 보이겠다. 그리고… 용의 군단의 옛 위광을 되찾아 보이겠다…!”


 용의 화답에 수문장은 예를 갖추었다. 그렇게, 용의 군단에게도 재기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용도 무너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올곧은 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어떤 인간 여자의 도움으로 면류관을 벗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무사히 해결될 줄 알았지만, 일전의 간악한 여자가 미리 영지에 심어둔 독가스가 용의 군단을 덮쳤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군단이 몰살당할 처지. 다른 군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선대 용의 정책으로 인해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용은 군단의 생존을 위해 인간계를 침공할 것을 선언했다. 물론 이번 침공이 성공한다고 해도, 인간들의 반격에 용의 군단은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길은 이것뿐.

 결국 서로의 생존을 건 전쟁이 시작되었다. 뱀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군단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인간들은 용이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얄궂게도, 그들 중에는 용을 도와주었던 여자의 모습도 있었다. 당연하다. 이것은 서로의 생존이 걸린 전쟁이기 때문에. 무모하게도, 그녀는 목숨을 걸고 용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했다. 제아무리 목숨을 걸었다고 한들, 그런 잔재주가 용에게 통할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용은 강직한 성품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 여자의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힘을 사용해 버린 것이다.

 그녀도 전쟁 중이었음에도, 자신을 위해 힘을 써주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군단의 생존이 걸린 싸움에서도, 그는 명예와 긍지를 버리지 못했다.


 결국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그의 신조를 버리지 못했다. 용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인간들이 영지로 다시 쳐들어오자, 수문장이 용과 함께 싸울 것을 간청했다. 허나, 용은 그의 청을 거절했다.


 “그 자와는 언젠가 승부를 내기로 했다. 오래된 약속이지…. 그는 이 몸에게 있어 최고의 적이다. …그에게는… 적어도 그에게 만큼은, 예우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무모했다. 너무나도 무모했다.

 용의 힘은 약해질 때로 약해져 있었다.

 반면 그 자는 용에게 힘을 받아 선대 용을 쓰러트린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수문장은 다시 한 번, 용에게 함께 싸우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용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미안하군.”


 “하지만, 부탁하네. 그대는 이 영지를 지켜주게.”


 한때 인간에게 나누어주었던 힘을 거둬들이고 싸웠더라면.

 하다못해, 수문장의 청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싸웠더라면.


 이렇게 장엄한, 그러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수문장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용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그 스스로도 직감할 수 있었다.


 용의 군단은 여기서 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하다못해 용만큼은, 용에 걸맞은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수문장은 조용히 읊조렸다. 그의 말대로 그는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최강의 힘을 자랑하던 용의 군단이, 어째서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는가. 어째서 남은 자들의 최후가, 자신들의 땅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독가스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인가.

 그랬기에 그는 울부짖었고, 도끼를 크게 내리쳤다. 그러나 그것도 한 번에 그치고 말았다. 그 정도로, 그는 쇠약해져 있었다.

 그는 분노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군단이 무너져버렸는지를 한탄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수문장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만일 자신이, 용에게 인간 전사를 죽일 것을 간청했다면?

 만일 자신이, 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싸웠더라면?


 자기는, 진정으로 용을, 영지를, 군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가.


 정말 끝까지 용을 보필하기 위해 싸웠는가.

 정말 쳐들어오는 침략자를 막아내었는가.

 정말 군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가.


 용의 뜻을 핑계로 삼아,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

 용의 부탁을 핑계로 삼아,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용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될지언정,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했어야 했다.


 그것이, 수문장의 역할이 아니던가.


 “나는… 나는…! 진정으로 실패한 수문장이었단 말인가…!”


 왜 죽기 직전에야, 왜 이제야 이것을 깨달았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을 지키는 것, 영지를 지키는 것, 군단을 지키는 것.


 뒤늦은 깨달음에 그는 괴로워했다.

 후회에 사무친 그의 울부짖음이,

 듣는 자 하나 없는 울부짖음이 지키지 못한 영지를 가득 채웠다.




 마침내, 수문장도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미 짙어질 대로 짙어진 독안개 속에서, 데미플레인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다.

 이상하게도 그 흐려져 가는 데미플레인에서, 수문장에게 또렷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용.

 분명히 그것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용들의 그림자였다.


 “오… 오오… 용이시여…!”


 바닥에 쓰러진 수문장이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림자,


 아니, 용이 수문장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아닌가.


 “용이시여…. 이 불충한…, 이 불충한 수문장을…! 용서…하십시오…!”


 쿠-웅.


 거대한 수문장의 팔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용의 궁전, 데미플레인 역시 군단과, 수문장과 함께


 그 역사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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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아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올려보는 용의 군단 소재글입니다.

용의 군단, 특히 아스타로트 미화가 그 극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갓기태급으로 미화시켜준듯...

그나저나 글이 읽히기나 할런지ㅠㅠ

레비아 좋아요 레비아.

2024-10-24 22:37: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