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오직 한 번 그리고 오직 한 사람에 대해서
혜우비 2015-06-29 0
한 번, 오직 한 번 그리고 오직 한 사람에 대해서
{ 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 }
-로버트 브라우닝
6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여름처럼 내리쬐는 햇빛은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자신의 기분과는,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화창하나 날씨에 괜히 울컥해 길에 굴러다니던 깡통을 찬다.
깡- 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짐도 잠시 곧바로 찾아온 정적은 숨막힐 정도였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비가 내리는 것. 비가 내린다면 자신의 표정도, 눈물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할테니까.
그는 내리는 빗 속에 자신을 감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
손가락 군데군데에 붕대가 감긴 손을 쭈욱 뻗어 햇빛을 가려보았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행동에 결국 그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노란튤립'
차라리 이대로 두 눈을 꼬옥 감고 저질러버린다면 과연 너는 나를 어떻게 볼까-. 지금 눈에 너밖에 보이지가 않아서, 내 머릿 속에 네 생각밖에 안나서, 내 마음속에 네가 가득 차있어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이 마음이 짝사랑인건지, 단순하게 스쳐지나가는 감정인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지 그의 느낌이 그렇게 말하고있다. 이건 짝사랑이고, 자신이 겪고 있는건 상사병이라고.
하루라도 널 안보면 보고싶고, 매일 널 보면 만지고 싶다는 충동밖에 들지 않아.
억지로 참고 억눌러도 언젠가 무의식적으로 너에게 손을 뻗어버릴 것만 같아.
몇분동안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던 그가 입술을 꼭 깨물고는 손을 힘없이 내리고 공허한 눈으로 앞을 바라본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너의 곁에 닿을 수 있다고. 나는 그걸 아는데 왜 쉬이 발걸음이 안움직이는걸까.
지금 내 마음은 널 보고싶어 미치겠으면서도 막상 널 보면 그대로 안아버릴 것 같아.
그는 방금까지 자신의 눈 위에 올려두어 햇빛을 가렸던 손을 보며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 손을 뻗으면 너를 잡을 수 있을까, 넌 날 바라봐줄까, 내 곁에 있어줄까 온갖 잡다한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떠돌아다니고 그걸 애써 지우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저번에 우연히 자신의 손을 스쳐지나갔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 찰랑거림과 부드러움이, 손가락을 간지럽히고 지나갔던 그 순간이 그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때 그는 눈치챘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른사람과는 다른 의미였다는 것을.
항상 보는 그녀의 얼굴이 달라보였던건 한순간이었다.
그저 나에게 환하게 미소지었던 어느 순간부터 너에게 관심이갔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너를 좋아하는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해맑게 웃는 너의 모습이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임무 수행중에도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은 너를 향해 있나보다.
혹여나 네가 다치지는 않을까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어느새 준비하고 있는 내가 보였으니까.
그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수습요원이었을 적에 그녀는 아마 외강내유였으리라.
자신이 보기에 그녀는 많이 어렸고, 연약해보이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몇 달 지나지 않아 승급한 그녀의 모습은.
수습요원의 복장에서 정식요원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을정도로 강인해보였다.
고작 그 몇달 사이에, 그녀의 내면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복잡했었다.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는 슬픈 눈으로 손을 바라보다 주먹을 불끈 쥐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는 더 이상 강해지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반드시 더욱 더 강해져서 너를 지킬거라고.
비록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나는 싸울것이라고.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들과, 나의 어여쁜 노란색의 튤립에게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