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16-

PhantomSWAT 2015-05-15 10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GIGN'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흩어지는 양떼 -10-]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865



           [흩어지는 양떼 -1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958



           [흩어지는 양떼 -1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046



           [흩어지는 양떼 -1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123



           [흩어지는 양떼 -1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497



           [흩어지는 양떼 -외전-]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264



         [흩어지는 양떼 -1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2790













무기질적이라고까지 생각되는 무기질적인 회색의 방 안에 한 사내가 황급히 문을 열고 뛰쳐 들어왔다.


새치가 희끗희끗한 그 사내의 연배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임을 분명했지만,


그 유추 가능한 사실 때문이라서도 현재 그가 그만큼 평정심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재판결과가 나왔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라기에는 정확했고, 확실한 사실을 말한다기에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그 방안에 있던 남자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된건가, 재판 이틀만에 판결이 났다고?"


팀 페가수스의 특수요원 이세하가 작전명령을 무시하고 난입한 사건에 대해 진행중이던 재판이 시작된지는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을 받아들인 남자의 머리에는 불확실하던 예감이 서서히 뚜렷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그를 억누르고 있었다.


"네...그것이..."


사내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그는 그가 약간 앞으로 내밀다 만 그 서류 봉투를 낚아채듯 건네받고는 뜯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던 그의 눈동자는 곧 굳어버렸다.


"변호측의 의견은 거의 묵살하다시피 했습니다. 변호의 여지가 거의 없었어요.


상황증거니 뭐니, 점점 밝혀지는것도 확실한 위법사항들 뿐이었습니다."


방 안에 뛰어들어온 자는 그 재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였다.


그저 당연히 예정되어있던 결과를 통보 받듯이 그는 재판이 시작된지 이틀만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서류 봉투 하나만을 건네 받았고, 그는 그것을 받자마자 즉시 데이비드에게로 달려 온 것 이었다.


그 증거로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땀에 젖은 모습이었고, 연신 안경을 벗어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노고와는 관계 없이, 서류를 건네받은 데이비드는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가고있다.


"이게 무슨..!"


"지부장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저희도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변호사의 말끝이 다시금 흐려지는것을 거의 듣지도 않으며 데이비드는 코 언저리를 매만졌다.


빈말로라도 청년이라 부를 수 없는 남자는 적어도 젊은 혈기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로 보였으며,


그런 이미지와 걸맞은 굉장히 유능한 변호사였다.


데이비드의 친구이자 측근으로써 몇번의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 그의 전력중 하나로써 신임받고 있었다.


대한민국 소속 지부장이라 하더라도 결코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거나 그의 뜻에 반대하는 가 없지 않았으며,


테러의 위협 역시 몇번 겪었기에 그것을 저지할 칼과, 그것을 정당방위로 만들어 줄 방패가 필요했다.


물론, 지금의 사회에서 방패는 곧 뛰어난 언변과 말 주변이었고, 그는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최선을 다 했다면 다 한 것이다.


"알겠네. 이만 나가보게."


그의 목소리가 점점 굳어지는것을 느끼며 그 남자는 잠깐 몸이 뻣뻣해지더니,


곧 목례를 가볍게 한 후, 들어왔을때와는 달리 정중하고 신중한 동작으로 문을 닫고 나갔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결코 데이비드를 신경쓰이게 만들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그는 그가 나가자 마자 서류를 벽에다 집어 던지며 비명지르듯 외쳤다.


"이우혁!"


쾅. 그의 주먹이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책상이 위태로이 흔들거리며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서류조각들을 죄다 흩날렸다.


몇가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만년필과 펜등이 튕겨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런 웃기지도 않은 종이조각과 필기구의 폭풍 속 사이로 데이비드의 증오에 찬 눈이 번뜩였다.


"이 인간이 드디어 미쳤구나...!"


분노가 물밀듯 그에게 들이쳤다.


무기징역은 바라지도 않았다.


물론, 그것을 간절히 기도했지만 가망이 없다는것을 그는 누구보다, 혹은 그들만큼 잘 알고있었다.


사형이 아마 가장 유력할것이다.


아마 총살. 그것도 본보기로써의 공개적인 처형이 될 가능성 역시 없지 않았다.


아마 세하의 손목에는 그가 위상력으로써 공격하거나 방어할수 있을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위상 억제 수갑이 채워질 것이다.


처형을 위한 다섯명의 사수에게는 무작위로 탄이 장전된 소총이 지급될것이다.


그중 네 정은 공포탄으로, 누가 실탄이 장전된 총을 가진지 모르게 해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정신적 충격을 막기 위한 알량한 배려심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네명의 실체 없는 유령과 한명의 사신은 그의 두개골, 정확한 급소를 노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이 가장 일반적인, 그리고 고통을 가장 많이 느끼지 않는 처벌을 받을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리 되지 않기를 바랬으나, 그것이 현실적이었고, 아마도 실제로 실행될 형벌은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 란 말인가.


데이비드는 이를 뿌드득 소리나게 갈며 중얼거렸다.


"내가, 우리가...하늘이 네놈 뜻대로 두게 할 것 같은가, 이우혁...반드시 죄값을 치루게 될거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이를 악물고 다짐을 선언했다.


자신에게 그렇게 울며 매달렸던, 그 앞에서 세하를 위해 허물어졌던 영웅의 애처롭던 그 모습이 그의 눈 앞에 어른거렸기에


그의 핏줄선  움켜쥔 주먹에서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






새하얀 방안에 그는 그저 수갑과 마스크를 찬 채로 그 공허한 흰 바닥만 내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얗고 하얗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 하얀 바닥은 검다.


검고 새카맣기에 그 어떤것도 알 수 없고, 그 형체 없는 것은 다가와 그를 좀먹는다.


"큭..."


웃음인가, 비아냥거림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헛기침인가.


의미조차 명확하지도 않은 소리를 내고 그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그저 당연히 했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았다.


"하하하..."


마치 방금 전의 소리가 도화선이라도 되었던듯, 메마르고 갈라터진 그의 입술에서


그의 입을 막아버린 마스크 사이로 비칠비칠 웃음소리가 비져나왔다.


후회는 없다. 그들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는 도저히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수 없었으리라 확신했다.


구하지 못했다는 아니, 구하려 하지 않았다는 그 이름 모를 무게추가 그를 무겁게 짓누를것이라 단언할수 있었기에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그 대가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후회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사형.


아마 결단코 피할 수 없을 그 처형에, 그 이름 모를 공포감이 더욱 그를 파먹으며 비웃는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에 동료들을 구하러 간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는 더욱 소리내어 웃어본다.


웃으려 애쓴다.


"하하..."


그 거무죽죽한 무엇인가가 꿈틀대며 고통을 호소한다.


삐뚤어진 무언가가 함성을 내지르려 숨을 크게 들이쉰다.


하지만 그것은 곧 막혀버렸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밀폐된 공간이지만, 어디론가 연결된 배기구는 분명 작동하며 산소는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 하얗기만 한, 독방 감옥속에서 그는 **듯이 쫓아오는 감정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알기에


그것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두려워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숨이 콱 막혀버렸다.


-숨 쉬지마.


-숨 쉬어.


점점 시야가 혼미해지는것을 느끼며 그는 점점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푸쉬쉭 하는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린 그 하얀 공간으로만 이루어진 감옥의 벽처럼 보이던 문이 열리는것으로 억지로 숨통이 트인 듯 그 숨막히던 고통은 사라졌다.


그 문을 연 자는 다름 아닌 간수였다.


"면회다. 따라나와"


세하는 찬찬히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시야는 혼탁했고, 그렇기에 발을 몇번 잘못 디뎠지만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갔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며 많은 수감자들이 면회를 하고있는것이 보였다.


무엇인가를 애타게 외치며 우는 이들의 공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공간, 용서를 비는 이들의 공간,


그리고 유리창에 막힌채 그 실체없는 소리만이 서로에게 닿게 만들어진 공간.


유리창 하나로 밖과 소통을 막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마들 마저 막아버렸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 방 앞에서  간수가 방문을 열고는 마스크와 수갑을 풀어주었다.


"들어가. 나오고 싶다면 노크하도록."


그가 방안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것은 투명한 유리 창이었다.


소리는 전달될 수 있도록 구멍 몇개만을 뚫어놓은 그 밖에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어둑하던 복도와 달리 밝은 조명이 비추고 있기에 잠깐 혼란스럽던 시야가 다시 제 기능을 되 찾자,


그는 곧 그 실루엣의 주인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지부장님..."


그런 세하의 모습을 본 데이비드는 미소를 띄웠고, 세하는 의자로 발걸음을 옮겨, 인사를 간단히 목례로 취하고는 자리에 허물어지듯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데이비드는 잠깐이지만 무엇인가를 억누르는 듯 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을 뿐, 그 역시 아무 말 없이 그가 자리에 앉을때 까지 그를 바라 보고만 있었다.


"잘 지내는가, 이세하 요원."


"네."


간결한, 그리고 그저 그런 의미만이 아닌 더욱 많은 것 들을 내포한 인삿말 만 이 둘 사이에 오고갔다.


무뚝뚝하지만은 않았던 데이비드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사무적인 태도는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세하의 말투는 기계가 말하는 듯 딱딱했으며, 억지로 말하는 듯 억양 역시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잠깐 놀란 표정을 짓고, 그리고 그대로 다시 무표정한 표정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하를 보며 데이비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 답지 않은 말투로 크게 소리쳤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알지도 모르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네..."


"약속..이라니요?"


오히려 그 격정적인 데이비드의 말과 달리 세하의 어조는 평온했으며,


그 말을 듣는 데이비드는 더더욱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자네 어머니와 약속을 했어. 자네의 처벌을 덜어달라고 하셨지만...하지만 그러지 못했네...자네와, 자네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


"아니, 괜찮습니다. 마음써주신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하의 입꼬리는 데이비드도, 심지어 그마저도 모른 채 애처로울정도로 미세히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리고.. 자네 재판결과가 나왔다네"


데이비드는 자신의 앞에 내려 놓았던 서류를 집어들어 그에게 건네 주려 하다,


눈 앞에 보이는 유리창에 가로 막히자, 잠시 한숨을 내 쉬더니 봉투에서 종이를 빼내어 그의 눈 앞에서 들이 대어 주었다.

그저 침묵만이 한동안 둘을 감쌌다.


세하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는 몇 번씩 자리를 바꾸며 데이비드의 손에 들린 문서를 읽었고, 데이비드는 아무 말 없이 그런 그에게 고개 숙인 채로 바닥만을 내려다 보았을 뿐이었다.


마침내 세하가 고개를 뒤로 빼내며 짧게 한숨을 내리 쉬자 데이비드 역시 손을 내리고는 그보다 조금 긴 한숨을 내 쉬고는 봉투에 서류를 집어 넣었다.


"재미있네요."


그리고 얼마인지 따질 수 없을만큼, 그리고 너무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무렵,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던-데이비드의 시선을 회피하려 하던건 아니었겠지만- 세하가 말문을 열었다.


데이비드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할 말이 사라진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이 목 안에서 휘감아 엉켜들었기에 말문이 막혀버린것이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 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자조하듯 그는 서늘하게 보일정도로 정적인 웃음을 입술을 비틀어 지어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데이비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현기증이 날정도로 어지러워졌다.


그 정도로 고개 숙인 그의 모습은 허무하리만치 공허했다.


"결국 내 마지막 목숨까지 구걸받다니, 재미있네요."


몇가지, 그리고 그것을 이을 몇마디 문장.


그렇지만 그것들은 모조리 데이비드의 목 언저리에서 콱 막혀버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명확했다.


세하 역시 무슨 말을 가슴속에 감추고 있는지도 명확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아무말 없이,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숨막히는 정적으로 둘은 서로를 이끌었다.


"언제 하는건가요..."


다시 입을 연 것은 세하였다.


적막한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사라지기까지 데이비드는 일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모든 감정을 제쳐 두고서라도 사무적으로써 행동해왔던 그의 본능은 대답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2주일 뒤에 자네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SS급 차원종을 섬멸해야하네."


"그렇군요...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정적.


더 이상 말을 이을 필요도 없었고, 그리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만큼 그의 말은 세하에게 있어서 충분한 설명이 되었고, 그것은 그에게 있어 사형 방식의 선고와도 같음을 알기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은 데이비드에게도 어떻게 행동할지를 가르쳐 주는 이정표가 되었기에 그 역시 자리에 앉아 시선을 내리 깔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적막이 흐른 뒤, 세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데이비드는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다시 힘없이 그의 옆으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세하는 그것을 보았는지, 보 지 못했는지, 분명 평상시와 다름없지만 위태로이 보이는 발걸음을 옮겼다.


머잖아 그는 문의 앞에 다다랐고, 잠깐의 자유를 얻은 그의 손은 문을 노크하기 위해 힘겹게 들어올려졌다.


"꼭 살아 돌아와주게"


그가 막 문을 두드릴때, 그의 등 뒤에서 그 한마디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성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따듯하고, 동시에 수없는 감정이 섞인 착잡하다 못해 뜨거운 목소리가 그에게 흘러들었다.


"꼭, 살아 돌아오게! 자네는 죽으면 안돼, 이렇게 자네가 죽어버리면 죽을 짓을 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 오게!"


그의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는 막 간수가 수갑을 채우고 마스크를 씌우는 것으로써 완전한 자유를 속박당한 세하에게 똑똑히 들렸으리라.


적어도 비틀거리는 세하를 보며 그는 그리 생각했다.


마스크가 채워져있어 그는 대답 할 수 없었지만, 그가 돌아서기 직전,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아를 자각하고 그것을 찾으며 혼란스러워 하고


죽음에 절망하는 짐승의 그것과 같은 칠흑같은 눈동자는 그 고통의 감정이 일으키는 회오리속에서도


그것들을 비집고 나오는 대답을 가려 버리지는 못했다.


그는 눈으로 대신 대답한것이다.


기필코 그리 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므로써 그 어떤 방법보다 강렬한 대답을.


그런 그의 모습은 몇초 되지도 않아 육중한 철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으나,


데이비드는 그 자리에 남아서 그저 허탈한 심정을 애써 부여잡고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던 자네의 어머니께선 자네가 어떻게든 살기를 원한다네, 이세하 요원..."


언젠가 보았던 모두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는 그녀의 등을,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에 살짝만 치면 부서질 것 같은 등을 떠올리며

그 앞에서 그녀가 세하를 살려달라며 흐느껴 말하던 것을 떠올렸다.


알파 퀸으로써의 부탁도, 정예 클로저 요원으로써의 부탁도 아닌, 오로지 그의 엄마로써 한 부탁.


그녀가 아마 잊어버릴정도로 오랫동안 철저히 숨겨왔던 감정으로,


그리고 어쩌면 위상력이 발현 하고 나서부터 결단코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눈물로써 전해진 마지막 부탁을 생각하며


그는 조용히 고개 숙여 자신의 무력함을 뼛속 깊이 되 새겼다.


"...정말 미안하네."





-----------------------------------------------------------------------------------------






어둑어둑해진지는 이미 오래되어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방 안에서 유정은 검은 양 팀 멤버들 전원 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마감처리가 매우 훌륭한 종이 봉투가 들려 있었고, 광택나는 보랏빛 문양으로 새겨진 대한민국 정부의 표식은 더욱 그 고급스러움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것을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경멸 뿐이었다.


많이 울었던 것인지 약간 부은 발간 눈동자와, 옅은 화장을 몇번 고친 흔적은 가뜩이나 기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더욱 초췌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검은 양의 관리 요원이었다.


그렇기에 전달 사항은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맡은 의무였다.


그리고 그런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입 속에서 몇번씩은 거친 예행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세하는 한국에 서식하는 SS급 차원종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형 대신 내려진 처벌이라고 해요."


침묵. 그리고 지극히 짧은 숨소리.


깜빡이는 형광등이 남은 수명을 불살라가는 소리가 탁탁 들려오며 불규칙적인 박자로 그 정적을 기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누구도 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이윽고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지배적으로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씨근대는 소리는 결국 유리에 의해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SS급 차원종이라고요? 차라리...차라리!"


유정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분노를 표출한 마땅한 대상이 없었으므로 그녀에게 대고 말하는것에 대해 후회를 뒤늦게 느낀것인지 유리의 말꼬리는 점점 흐려졌으며, 끝내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믿을수 없어... SS급 차원종이라니... 그냥 죽으러 가라는 이야기군"


잠시간의 침묵 후, 간신히 무겁게 한마디 내뱉으며 제이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곧장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당장 유리와 슬비쪽을 바라 보았다.


누구보다도 세하의 존재가 필요할 그녀들에게 그의 말은 쐐기를 박아넣는 위험한 발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는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던것이었던지, 유리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슬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한 작은 동작조차, 제이는 놓치지 않고 보아버렸기에,


그는 할 수 만 있다면 자신의 입을 호되게 때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실언을 했다는것을 깨달은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책상만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도저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항상 그에겐 무능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는것을 그 자신이 인지했기에, 제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이 차원종과의 전쟁으로써 어린 시절을 희생당했고,


이 소년 소녀들의 앞날을 지켜주리라 결심했음에도,


그것은 그저 무능한 자의 각오밖에 없는 텅 빈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


그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침묵밖에 흘러가지 않는 방 안의 분위기를 느끼며


문득 자신이 책상모서리를 움켜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단 사실을 눈치채며 피식 쓴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항상 그들이 사용하던 정감 있는 실내는 마치 여러 감정이 우겨 들어간, 불안하기 그지 없는 폭탄 처럼 변해버렸고,


도저히 폭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이 도저히 자신들이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쓰디쓴 사실을 견디지를 못할것을 알기에.


결국은 점점 안색이 파리해져가, 안쓰러울정도로 창백해진 고개를 숙인 유리가 그 기폭제를 당겼다.


"잠깐만...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올게요, 언니."


와락 의자를 밀치고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눈 주위는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언제나 명랑하게 웃고, 모두의 분위기를 띄워주며 제법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런 그녀의 암묵적인 역할마저도 자신이 무시한 채였다.


그리고 한번 당긴 기폭제의 방아쇠는 도저히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유정 역시 손에 든 차트로 얼굴을 가려보려 시도하다 용이하지 않다는것을 깨닫고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로 이번 보고는 마친다는 말과 함께 나가버렸고,

슬비는 그런 그녀의뒤를 황급히 따라 나갔다.


물론 유정이 걱정되서만은 아니라는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는 알고 있었다.


"썩을."


조그맣게 중얼거린 욕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미스틸테인에게도 들릴 정도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둘밖에 남지 않은 방 안의 분위기를 한없이 낮추는데에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후, 그런 제이의 귀에 아직은 미성인 목소리가 물어왔다.


"SS급 차원종은... 얼마나 강력하나요?"


미스틸테인, 회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년은, 천진난만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얼굴로 조심스레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제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부터 말하자면 그가 확실한 답을 할 수 있을만한 지식이 없으므로 - 아니, 그 뿐만이 아닌 모든 인류가 그러한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섬나라였기에 고립될 수밖에 없던 일본에서 그래도 항전을 계속하던 인류가 열도의 중앙을 중심으로 거주 가능지역이 반토막이 나버리고, 거의 전투력 상실 상태에 이르게 된것은 바로 한마리의 SS급 차원종 때문이었고


비교적 차원종들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며-그것도 B급의 차원종들이 많이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수비전을 펼치던 유럽연합을 뭉개어버린것은 언제부턴가 나타난 단 두마리의 SS급 차원종이었다.


그렇기에 SS급 차원종과 맞서 싸운다는것 자체가 무모한 행위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것은 수치로 도저히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인류에게 그 강함을 나타낼만한 단어나, 수치는 없었다.


그렇지만 설명을 요구하는 후배에게 결국엔 사실을 알아버리게 될 후배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제이였기에, 가까스로 어느정도 수치로써 나타낼 수 있는 말을 골랐고,


망설임 끝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미스틸테인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통상적으로는 S급 차원종의 4배...아니 5배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놈들을 SS급이라고 불러, 동생."


그렇게 말을 하는 그 조차 가늠 할 수가 없었다.


저번에 그들이 상대한 식별명 '스피더' 는 S급 차원 종 중, 가장 최하위 계열에 속하는 놈이란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거의 위상력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 공격만으로 S급의 위험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하면 물리공격이 주를 이루기에

위상력의 능력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놈을 상대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원들 중 엄선된 인원은 놈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헝겊조각마냥 찢어지고 날아가는 시체조각들 앞에서 그는 그저 도주하는것만이 죽어버린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였다.


그런데 한국 내에 서식하는 SS급이라니.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공허하게, 자신의 무능함에 질린 듯 한 한숨섞인 목소리가 깜빡이는 형광등을 감싸고 한차례 서늘히 방 안을 스쳐 비추었다.




-------------------------------------------------------------------------------------------------



짜잔!


오랜만입니다.


2024-10-24 22:27: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