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5
한스덱 2018-10-06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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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 호칭이 싫었다. 정말로 싫었다. 이 호칭은 내 안에 평생토록 남아서 나를 괴롭힐 한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단어는 내가 무리해서 강조한 단 한 글자 뿐이었다.
그리고 내 정체 따위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영웅이나 알파퀸, 혹은 차원종의 재앙이라고 소개하지 않았고, 나도 나를 군단장이었다고 소개하지 않았다. 서로의 정체 따위는 이미 충분히 파악했고 파악되었다. 그래서 탐색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본격적인 대결의 승패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 중요한 건 그것 뿐이야.
그녀는 여전히 나를 향해 건 블레이드의 총구를 겨누고 있었고, 나 역시 여전히 엄청난 양의 열 에너지를 띄워놓았다. 지금의 난 왼쪽 뿔도 잘려나갔고, 오른쪽 다리를 저는데다가, 온 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빌어먹을 마스크는 이 대결과는 딱히 상관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마저 쓰고 있는 난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일을 방해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하려고 한 일을 말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그녀는 포문마저 먼저 열었다.
“자, 서로 인사도 다 끝냈으니깐, 이제 그 열 덩어리는 다시 집어넣어주면 고맙겠는데?”
선공을 당해버린 난 이 대결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향해 뒤늦게나마 발포했다.
“엿이나 또 드시죠.”
서로의 의사가 명확하게 전달된 이후, 본격적인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불장난은 위험해, 동굴 속이라면 더 더욱 그렇고.”
“제 능력은 잘 알고 계실텐데요? 위험할 거 같으면 저 멀리 물러나 계시죠.”
“너나 나의 안전이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란 걸 잘 알텐데?”
“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제 밭의 안전을 걱정합니까?”
“네 밭도 제법 걱정되지만, 지금 난 더 중요한 걸 걱정하고 있어.”
“배고프십니까? 하루만 꾹 참아주시죠.”
“아, 그것도 제법 중요한 걱정거리였네. 고마워. 덕분에 생각났어”
“…….”
유리한 고지에서 날아들어온 포탄들은 내 고막의 얇은 벽을 넘어서 마음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난 그 포탄에 맞기도 전에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기에도 벅찼고, 소화전에서 냉정이 점점 빠져나가는 그 난리통 속에서 겨우 쏘아낸 포탄들은 고지에 전혀 닿지 않았다.
내가 포격을 멈칫한 사이, 그녀는 결정적인 일격을 쏠 준비를 모두 마쳐버렸다.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고 있는 건 바로 너야.”
이 포탄은 결국 화약고에 직격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집중력도 잃어버릴 뻔 했던 나는 내 머리 위에 모아둔 열 에너지를 수직으로 떨어트리는 참사에서 겨우 벗어났다.
나는 이판사판으로 내 마음속을 활활 불태우는 분노로 심지에다가 불을 붙였다. 불타는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마저도 불타고 있었다.
“당신이 날 걱정한다고? 내가 없으면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하지만, 내가 제대로 조준도 안하고 쏴버린 이 포탄은 고지에 닿기는 커녕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을 뿐이었다. 게다가, 고지 위의 그녀는 명포수였고, 내 위로 떠오른 그 포탄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너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의 너한테 도움을 받으면 내 목숨도 같이 날아가게 생겼으니깐 널 걱정하는 거야.”
내 마음속으로 내 포탄의 잔해들이 불벼락처럼 쏟아졌다. 이 마무리 일격에 꼼짝없이 당해버린 난 말싸움마저 패배했다. 그리고 라운드 벨도 올리기 전에 3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3 라운드의 선공을 잡은 나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난 열 에너지를 약초밭이 아닌 그녀를 향해 날려버릴려고 했다.
바로 날리지 않고 날려버리려고 한 이유는,
피융!
그녀가 건 블레이드로 쏘아낸 위상력이 정확하게 내 얼굴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위력은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것에도 타격을 주지 않은 채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나도 그 위협 사격에 물리적인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지만, 큰 타격을 입은 정신은 나를 묶어버렸다.
애초에 이 대결엔 선공이니 후공이니 하는 규칙따윈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반칙패를 하긴 커녕 더 더욱 유리해졌다. 그녀는 단 한 번의 선제 타격으로 내가 공격할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기세를 이어, 그녀는 나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그 잘나신 능력, 왜 안 쓴거야?”
차원종이 가진 특별한 ‘힘’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가진 특별한 ‘위상력’ 역시 에너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위협 사격을 조작하지 않았다. 초조해진 나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말았다.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겁니다!”
그녀는 이 유치한 발버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놓아줄만큼 자비롭지 않았고, 그래서 차원종의 재앙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럼 넌 내 공격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네.”
마른 침을 꿀걱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난 그 소리를 무시해버렸다.
“다음엔 제대로 써 드리죠. 시험해 보시던가요.”
이건 치명적인 자충수였다. 그녀가 망설임을 싫어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저지른 자폭이었다.
피융!
아까와 똑같은 위력을 가진 위상력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난 그 위상력의 방향을 조작해서 그녀를 향해 되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이 대결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여러분이 그녀와 나 중에 누가 더 강한 지를 진작에 깨닫기도 전에 말이다.
그녀는 정확하게 반사된 자신의 공격을 건 블레이드를 휘둘러서 간단하게 막아버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반사한 덕분에 그녀의 공격에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나는,
“아악!”
그 공격에 그냥 당해서 벌어졌을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목발마저 놓쳐버린 나는 쓸모없는 오른쪽 다리 때문에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약초들 위로 볼품없이 쓰러져버렸다. 집중력도 완전히 잃어버린 내가 장작처럼 불타버리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두 번째 공격을 발사하기 바로 직전에 내가 열 에너지를 황급히 전기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대결이 그녀의 승리로 끝날 게 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이 시시한 대결마저 끝까지 지켜봐준 여러분을 위한 보충 설명을 간신히 드려주겠다.
차원종이 가진 ‘힘’과 인간이 가진 ‘위상력’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 특별한 능력을 준다는 건 똑같았지만, 근본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그 둘을 철저하게 구분해서 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 힘들을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해 차원종이 먼저 가졌던 ‘힘’을 ‘제 1 위상력’, 자신들이 두 번째로 가지게 된 위상력을 ‘제 2 위상력’이라고 이름붙였다.
단순히 근본만 다른 게 뭐가 중요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이건 정말로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만약 차원종이 인간의 위상력을 사용하려고 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그 욕심 많은 자는 ‘힘’과 ‘위상력’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인간들은 그 무언가에 ‘제 3 위상력’이라는 적절한 호칭을 붙일만큼 작명 센스가 뛰어났다.
제 3 위상력을 가진 존재는 차원종과 인간 모두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은 누군가가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충분히 품고 싶어질만큼 엄청났다. 하지만, 여러분은 소망과 욕망의 차이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힘은 그것을 탐한 어리석은 자에게 끔찍한 벌을 내릴 만큼 엄청났고, 그래서 끝없는 욕심의 말로를 잔인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에 속했다.
제 1 위상력과 제 2 위상력은 서로 섞이면 안되었다. 금단의 영역에 속하는 무언가를 탄생시킬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힘은 섞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힘을 억지로 사용하면 끔찍한 부작용이 남는다는 건 이미 설명했고, 신체가 아닌 도구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힘과 전혀 다른 성질의 힘을 품어도 그 도구는 반드시 망가진다. 예를 들어서, 만약 어떤 차원종이 그녀의 건 블레이드로 자신의 제 1 위상력을 쏘아버렸다면, 그 차원종은 그 걸작을 만든 기술자에게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