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11
한스덱 2018-10-14 0
“그 마스크를 만든 건 그레모리, 그러니까 그 박사가 맞는 거지?”
첫 번째 질문은 그 몇 가지가 아닌 건가?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쉬운 질문의 쉬운 대답을 해줬다.
“네, 맞습니다.”
“그 박사, 혹시 군단한테 가진 불만이 엄청 많지 않았어? 네가 봤을 때 말이야.”
뭐지? 갑자기 왜 그 박사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거지? 나는 질문의 의도가 몹시 궁금했지만, 대답하는 걸 난감해하진 않았다.
“네, 실제로 만난 적은 몇 번 없었지만, 만날 때마다 투덜대면서 짜증을 부려댔죠. 무려 저한테 말입니다.”
그 박사는 군단장에게도 자신의 불평불만을 거리낌없이 투덜댈 수 있을만큼의 가치가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군단은 그 초전재 박사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군단을 향한 박사의 불평불만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갔다.
지수는 그 박사의 불행을 더 파헤치는 대신, 더 심각한 질문을 했다.
“그 마스크에 너를 감시하는 기능도 있어? 도청이나, 위치 추적이나, 아니면 심박수 감지라던가 말이야.”
이번 질문은 제법 어려웠다. 섣불리 대답하기가 난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 사생활 따위는 엿 먹으라는 기능들 중에서 ‘도청’은 나 뿐만 아니라 지수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인류의 영웅이 나와 함께 지옥에 갇혀버렸다는 소식이 천리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달려서 군단에게 퍼져버리고 말테니까.
하지만 지수는 목소리를 전혀 낮추지 않았다. 나와 함께한 시간이 제법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 도청의 가능성을 의심해봤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지수가 이미 배제해버린 최악의 상황을 부정해버리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기능은 절대로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지수는 역시나 신중했다. 그런 지수에게 나는 내 자신감의 근거를 제시했다.
“당신이 말한 그 기능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몰래 수집한 정보를 어딘가로 전송해야만 한다는 거죠. 안 그러면, 그런 기능이 있어봤자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지수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그 전송의 수단에는 보통 전파가 쓰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데다가, 그것 말곤 딱히 쓸 방법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전파는 에너지입니다. 더 설명 드릴 필요 있습니까?”
지수는 물론이며 여러분에게도 설명을 더 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설명을 하자면, 에너지를 조작할 수 있는 나는 내 주변에 어떤 에너지가 있는지 당연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옥에 갇힌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 주위에서 수상한 전파가 발생하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수는 만약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치밀함 또한 가지고 있었다.
“네가 알지 못하게 신호를 보낼 가능성은 없는거야? 네가 자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전파를 내보내게 만든다던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전 잠을 자면서도 주변의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상한 에너지가 감지되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죠. 그리고 전 이 동굴에서 제 수면을 방해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군단에서 너한테 그 마스크 말고 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을까? 최근에 군단의 일원 중 한 명이 배신을 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심어진 기생체에게 몸을 빼앗긴 일이 있었거든.”
“…우선 그 자의 안식을 빌어주죠. 그리고, 그럴 가능성은 요만큼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 제 몸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지수는 그제서야 만족한 것 같았다. 저 근거들의 보증은 모두 내가 섰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해봤자 득이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걱정을 완전히 떨쳐냈을 지수는 맘 편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방금 네가 말하려고 했던 단어, 혹시 나한테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어?”
질문의 난이도가 확 내려갔다. 침상에 걸터앉아있던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와 내가 캐치볼을 하느라 바닥에 널부러진 돌멩이 몇 개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그 돌멩이들을 바닥에다가 세심하게 내려놓았다. 이윽고, 하나의 단어가 완성되었다.
‘군단’
내 음식들의 피와 살을 담았던 뼈만 남아버린 반상 앞에 앉아있던 지수는, 그 그릇들을 뒤로 한 채 내 옆에 앉았다. 내가 일필휘지로 써낸 글자를 바라본 지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심문은 그걸로 끝났다. 형사는 심문의 결과가 만족스러운 모양이지만, 자신의 혐의도 알지 못하는 죄수는 영문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좋아. 지금부터 내 추측을 들려줄게. 혹시 틀렸거나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질문해줘.”
지수는 그 죄수에게 자신이 취조한 내용을 알려주는 대신에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했다. 나는 형사가 제시한 그 사법거래를 당연히 받아들였다.
지수는 우선 죄수의 프로필을 꺼내들었다.
“네가 여기에 갇힌 이유는 아마도 군단을 배신했기 때문이겠지.”
형사는 이미 내 기억을 들여다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수의 신분을 정확하게 확인한 지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네가 여기에 갇히기 전에, 박사가 널 직접 찾아와서 네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어. 내 말 맞지?”
이 추리는 제법 놀라웠다. 나는 이 유능한 형사가 요청한대로 순순히 협조해줬다.
“그걸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지수는 순순히 협조해주는 죄수가 가진 궁금증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 마스크는 군단을 배신한 너의 입을 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어. 즉, 군단은 네가 배신할 것을 깨달은 다음에 그 마스크를 만들었다는 말이지. 근데 네가 배신할 걸 깨달은 군단이 맨 먼저 할 일이 뭐겠어? 배신자를 붙잡기도 전에 그 입을 막겠다고 김칫국을 마시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 여기서, 그 마스크가 만들어진 정확한 시점은 바로, 네가 군단에게 붙잡힌 이후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대체 어느 사이에 저런 추론을 한 걸까?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수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너는 그 마스크를 만든 녀석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까? 군단이 배신자한테 ‘지금 박사가 네 입을 막기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라고 알려줄 리는 없잖아? 그렇다면, 너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그 정체를 깨달았다는 말인데… 그럼 너는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그걸 눈치챘을까? 그 마스크를 직접 가져와서 씌운 자가 바로 그 박사였기 때문은 아닐까? 이게 바로 내 추측이야. 어때, 질문 있어?”
지수의 설명을 곰곰히 되짚어보던 나는 생각을 모두 정리한 뒤에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그 녀석’은 ‘그 조직’에게 붙잡힌 저에게 이 마스크를 직접 씌웠습니다. 심지어 그 녀석은 이 마스크를 만든 게 바로 자신이라고 제 눈 앞에서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 대단하신 걸작의 위대하신 기능을 자랑스럽게 지껄이더군요. 아무튼, 당신의 추측은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지수의 추측은 정확하다. 하지만, 내가 곰곰히 되짚어본 이유는 그 정확한 추측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의문이 든 점은 바로, 그 결론이 나오게 된 과정이었다.
“제가 이 마스크를 만든 게 누군지 알고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추측을 하는 건 좀 억지 아닙니까? 당신이 제 이야기 만으로 그 녀석의 정체를 확신한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가 대신 씌워놓은 마스크 만으로 이걸 만든 녀석의 정체를 확신했을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지수는 자신의 정확한 추론을 이끌어낸 과정에 대한 내 반박을 듣고선 오히려 만족한 모양이다.
“좋은 지적이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하지만, 나는 그걸 일부러 무시했어. 내가 그런 추측을 한 이유가 더 있거든.”
취조 내용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다. 나는 지수가 들려줄 그 다른 단서를 두근거리며 기대했다.
그리고, 그 단서의 정체는 내 기대를 훨씬 더 넘어설만큼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