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9
한스덱 2018-10-11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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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숙한 웨이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지수의 몫인 그릇 8 개가 반상 위에 가득 차려졌고, 나는 나머지 그릇 하나에 가득 들어있던 연고를 내 몫으로 가져갔다. 식사가 아니라 내 상처의 고통을 잠재워줄 연고 말이다.
나는 내 능력 때문에 음식을 자주 먹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식사를 싫어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나도 지수나 여러분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가 정말 많다. 내가 식사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마스크, 벗을 수가 없다고?”
“네, 유감스럽게도 말이죠.”
지수도 내 독특한 다이어트에 의문이 들었나보다. 그래서인지 내 요리를 차원종마냥 무참히 해치우던 도중에 내가 쓰고 있는 마스크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 빌어먹고 **맞을 마스크에 말이다.
“보기에는 평범한 철가면 같은데…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어?”
연고를 구석구석 빼먹지 않고 바르던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서 내 얼굴의 옆을 지수에게 보여주었다. 평범한 마스크라면 흘러내리지 않게 꽉 붙잡을 손이 귀에 걸려있어야 했지만, 이 마스크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지수는 눈썰미가 좋아서 이 마스크의 특별함을 단번에 간파했다.
“그 마스크, 끈도 안 달렸는데 어떻게 안 떨어지는 거야? 혹시 얼굴에다 용접을 해놨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음… 혹시 당신, 마찰력의 종류가 무엇이 있는지 압니까?”
“난 문과 출신이야. 과학이랑은 담 쌓았어.”
지수는 너무 당당했다. 그 뻔뻔함에 기가막힌 난 간신히 어이를 잃지 않았다.
“…당신, 마찰력이 뭔지는 알고 있죠?”
“그거야 당연히 알지. 빠르게 달릴 때 주변의 건물을 무너트리는 바람이 생기는 게 마찰력 때문이잖아?”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 그 예시, 당신 이야기입니까?”
“응. 수리비를 내느라 고생 좀 했지. 하하.”
고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향한 관점에서 뭔가 큰 차이가 있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내 앞에서 넉살 좋게 웃고 있는 이 좋은 사람은 이미 내 관점에서 한참은 벗어났으니까.
“당신 말대로, 움직이는 물체와 그 물체에 맞닿은 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이 바로 마찰력입니다. 정확히는 운동 마찰력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멈춰있는 물체와 그 물체에 맞닿은 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력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지 마찰력입니다.”
지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업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집중을 하지 않는 게 분명한 이 낙제생을 위해 간단한 예시를 들어주었다.
“당신은 반상 바닥 위에 올려져있는 그릇을 손으로 밀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툭 갖다댄다고 그 그릇이 밀리지는 않을 겁… 이건 그냥 예시일 뿐입니다!”
나는 내 귀중한 수업 자료에다가 돌에 긁힌 흠집을 손가락 힘 만으로 내버리려고 한 불량 학생을 간신히 뜯어말렸다.
“…아무튼, 당신이 제 그릇을 밀어서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의 힘을 줘야만 할 겁니다. 이처럼, 표면에 맞닿은 채 멈춰있는 물체를 움직이려면 그 물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 이상의 힘을 줘야만 합니다. 여기서, 멈춰있는 물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이 바로 정지 마찰력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낙제생과 우등생을 가려내는 선생님의 필살기,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이 수업의 학생은 단 한 명 뿐이고, 그래서 지수는 내 질문을 전혀 회피할 수 없었다. 내가 이 불량 학생의 대답도 듣기 전에 성적표에다가 최하점을 매겨버리려고 한 그 순간,
“그러니까, 비탈면에다가 뭔가를 올려놨을 때, 그 뭔가가 미끄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있게 만드는 게 바로 그 정지 마찰력이라는 거지?”
“…정확합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하지만, 그건 차원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지수를 얕잡아본 나는 이번에도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나를 당황시킨 이 전학생은 응용력이 뛰어났다.
“그럼 그 마스크가 네 얼굴에 딱 붙어있는 이유도 그 마찰력 때문이라는 거야?”
이 좋은 사람이 가진 모자르거나 나쁜 점은 대체 뭐가 있을까? 나는 이런 얼빠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느라 할 말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용력이 뛰어난 전학생은 심지어 통찰력마저 뛰어났다.
“좀 이상한데? 마찰력도 결국은 에너지잖아? 그럼 네 능력으로 그걸 조작해버리면 그만 아니야?”
나는 감탄의 박수라도 힘껏 쳐줄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우등생은 단지 게으를 뿐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에 한해서 말이다. 나는 지수에게 뜬금없는 박수 대신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정답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이 마스크가 제 얼굴에 달라붙은 이유가 바로 제 능력 때문이거든요.”
“…뭐?”
나는 지수를 위한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걸 궁금해할지도 모르니 특별히 지수가 아닌 여러분을 향해 설명을 해드리겠다
이 빌어먹고 **맞은데다 기가막히는 마스크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 마스크는 특정 대상의 무의식에 간섭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에너지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의 무의식에 말이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다시피, 군단의 일원들 중에서는 물론이며, 그 밖의 다른 존재들 중에서도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는 오직 나 뿐이다.
하지만, 난 오직 나만을 위해 제작된 이 마스크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간섭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게다가 그 누군가가 여러분의 몸에 거머리먀냥 달라붙어서 기생하고 있다면? 심지어 그 혹 덩어리를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흥분해서 이유를 나열할 필요도 없이 내 심정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집중을 해**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능력을 발동시킬 때가 있다. 여러분이 심장을 뛰게 만들거나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의식적으로 집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이 내 특이한 잠버릇을 예시로 든다면 100점 만점에 90 점을 받으실 것이고, 내가 흙바닥에서 난리를 쳤는데도 흙이 하나도 안 묻은 것을 예시로 든다면 100 점에다가 추가 점수까지 받으실 수 있다.
마스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이 마스크는 내 무의식에 간섭해서, 이 마스크를 제자리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힘과 똑같은 양의 정지 마찰력을 발생시키도록 내 능력에다가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정지 마찰력의 원천은 바로 내 빈약한 위상력이다. 즉, 지금 난 이 끈도 안달린 마스크를 내 얼굴에서 때어내려는 중력만큼 내 위상력을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있다. 아, 그렇다고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건 아니다. 내가 스스로 회복하는 양이 잃어버리는 양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밑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이 마스크는 어디까지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발동 중인 능력 때문에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마스크를 때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능력을 사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내 무의식과 무한한 소모전을 치를 수는 없잖은가?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정말로 적절한 꼴일테니까.
그리고, 만약 지수가 자신의 힘으로 내 마스크를 억지로 때어내려고 한다면, 난 나도 원치 않게 발동한 내 능력 때문에 내 위상력을 그 괴력만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차원종이나 위상능력자의 신체는 위상력 덕분에 비약적으로 강화되지만, 반대로 그것을 잃어버리면 비약적으로 허약해진다. 그리고 내 빈약한 위상력은 지수의 괴력보다 한참은 부족하다. 그러니까, 지수가 정말로 내 마스크를 때어낸다면, 위상력을 순식간에 전부 잃어버린 내 신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