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2-3
한스덱 2018-09-19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그 나중에가 아직은 오지않은 지금, 내가 준비한 여러 선물들 중 하나인 식사에 정신이 팔려있을 그녀를 대신해,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내 안식처와 내 모습의 묘사를 해주겠다.
사방은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색 암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던졌던 암석 덩어리나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보여주지는 않기 위해 세심하게 배치해 둔 돌멩이 편지는 물론이며, 그릇, 수저, 반상, 그리고 침상까지 마찬가지로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색이었다. 지금 그녀와 내가 있는 그 공간은 그 신비한 암석만으로 만들어진 길쭉한 아치형 통로의 중간 지점이었다. 침상은 내가 앉아있는 벽의 반대편 벽에 툭 튀어나와 있었고, 반상은 나와 내 침상이 각각 등을 맞대고 있는 벽과 함께 꼭짓점이 되어서 삼각형을 만들 수 있도록 통로의 중간 쯤에 장애물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방과 가구 모두를 암석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사방이 암석 천지인데다 소리가 메아리치기도 하는 내 안식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동굴이다.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그 침실의 폭은 약 7 m였다. 그 아치형 통로의 중간 지점에서 동굴의 안쪽에 해당하는 방향으로 더 들어가면, 내 집을 느닷없이 처음 방문한 손님을 제법 놀랍게 만들어 줄만큼 충분한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꿈만 같은 공간이 숨어있다. 한편, 내 반상이 그 뒤로 지나가는 걸 제법 열심히 방해하는 방향으로 나가버리면 내 안식처의 출구인 동굴의 입구가 나온다. 지금 내 안식처 속에는 제법 많은 생명들이 숨쉬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동물에 더 가까운 생물은 그녀와 나 뿐이었다.
내 안식처에 대한 기본적인 묘사는 끝났고 다음은 내 소개를 할 차례인데, 우선 두 가지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겠다. 첫 번째는, 난 여러분이 내 몸을 가지고 여러 이상한 상상을 하길 바라는 **가 절대로, 결단코 아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이 내 생김새를 상상하는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나에게는 요만큼도 없다.
우선은 전체적인 생김새이다. 일단 내 양 손은 검지손가락을 포함한 5개의 손가락을 가졌다. 그리고 내 몸은 웅크린채 앉을 때 필요한 두 다리도 가지고 있었다. 이 특징들 덕분에 내 전체적인 생김새는 짐승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내 기억상으론 난 흰 색의 긴 생머리를 가졌다. 그러니까 내 생김새를 더 정확히 말하면 흰 색의 긴 생머리를 가진 인간 여성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난 여성이지만, 차원종은 인간이 절대로 아니니 인간의 언어로 굳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암컷이다.
잠깐 부가설명을 하자면, 군단의 병사들 대부분은 인간이 아닌 괴물에 가깝게 생긴 존재들이다. 하지만 난 차라리 악마에 더 가깝게 생긴 존재였다. 사족을 더 붙이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야기에서 제법 큰 비중을 가졌던 등장생물인 박사와 참모장 역시 괴물보다는 악마에 더 가깝게 생긴 존재들이다.
여러분이 내 앞에서 이상한 상상을 실제로 할 일은 절대로 없을테고, 여러분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아까도 말했듯이 내겐 전혀 없으므로, 상상의 나래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싶은 여러분을 위해 더 자세한 묘사를 해드리겠다.
내 몸은 인간의 미적 관점으로 따져서 나올 곳은 적당히 나왔고, 들어갈 곳은 적당히 들어간 몸매를 가졌다. 다만, 실제 인간의 몸과는 다르게 내 머리의 오른쪽에는 그렇게 길지 않은 뿔 하나가 나 있었다. 왼쪽에도 마찬가지로 생긴 뿔이 나 있었지만, 옛날에 잘려나가고 다시는 나지 않았다.
난 양 손에는 튼튼한 검은색 건틀릿을 끼웠고, 내 발목 위에서 무릎 밑에까지는 마찬가지로 튼튼한 검은색 각반을 씌워놓았다. 이 건틀릿과 각반에는 각각1개씩, 총 4개의 제법 커다랗고 반투명한 보석들이 박혀있다.
그리고 나는 거의 헐벗었다. 내가 입은 천 옷은 차라리 넝마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내가 첫 번째로 알려준 사실이 거짓말이냐고 나에게 따져도, 난 구석기 시대 인간들의 주요 거주지였을 동굴 속에서 간석기만을 사용해 내가 기르는 약초만으로 가느다란 섬유를 뽑아내서 바느질을 하는 방법은 몰랐을 뿐이다. 그래도 이 천 덩어리는 인간 여성에 가까운 내 몸에서 가려야만 하는 부분은 완벽하게 다 가려주었으니 의류의 역할 중 하나를 간신히 해내고 있기는 했다.
헐벗은 여성형 차원종이라는 허구적 사실만을 바탕으로 상상 속 세계를 더 자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어서 얼굴 생김새도 얼른 가르쳐달라고 나에게 조를지도 모를 여러분께 추가로 더 알려드릴 게 있다. 사실 난 여러분께 중요한 한 가지를 알려드리는 걸 깜박 잊어먹었다.
내 정확한 생김새는 여러분이 그려낸 아름다운 상상을 충분히 박살낼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얼굴을 실제로 본다고 해도 그 자는 정확한 생김새를 알 수 없을 거다. 그 누군가가 투시능력이라도 가진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내 얼굴은 2개의 물건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내 콧잔등부터 이마 사이에는 넓적한 안대같은 무언가가 씌워져 있다. 안대하면 흔히 생각나는 소재와 디자인을 가진 물건을 떠올렸다면 안타깝게도 틀렸다. 내부차원의 물건으로 따지면 스키 고글과 비슷하게 생긴 내 ‘보물 1호’ 는 천보다는 훨씬 더 단단하고 두꺼운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 소재는 내 건틀릿 및 각반과 똑같이 검은색이다.
그리고 내 인중부터 턱 사이에는 보물 1호와 마찬가지로 넓적한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그 ‘빌어먹을 마스크’ 역시 천처럼 얇고 무른 소재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내 보물 1호와 건틀릿, 그리고 각반과는 다르게 흰 색이었다.
내 얼굴은 안대와 마스크 덕분에 상반되는 두 색깔로 철저하게 가려졌다. 이것만으로는 별로 큰 타격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여러분의 상상 속 세계는 곧 종말을 맞이할 운명이다. 내 예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내 생김새에 대한 평가를 확실하게 결정시킬 종말의 예고와 같은 묘사를 내려주겠다.
난 심각한 장애를 가진 환자였다.
우선, 보통의 이야기 속에서 안대로 눈을 전부 가린 등장생물들이 대부분 다 그렇듯, 나는 이 세상의 진짜 생김새를 볼 수 없는 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기대어 앉아있는 벽 옆에는, 그녀가 받은 걸작품인 건 블레이드와, 내가 만든 걸작품인 목발 하나가 나란히 세워진 채로 그녀가 식사를 들이키는 걸 같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목발은 내부차원의 치료실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지만, 평범한 목발과는 다르게 푸른색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끝내기 결정타를 날려주겠다.
내 온몸의 피부들은 심각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거칠게 벗겨져 있었다. 벗겨진 피부 밑에 숨어있던 속살은 그 혐오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혐오감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줄 노란색 진물이 흘러나오거나 흉물스러운 딱지들이 달라붙어있지는 않았다. 바깥으로 드러나버린 속살이 울부짖는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내가 매일 밤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약초색 연고를 꾸준하게 발라준 덕분이다